25일째
오늘은 비가 내렸다.
온종일. 빗속을 걸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긴 시간을 비 맞으며 걸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참으로 행복했다.
가끔 들리는 워낭 소리, 판초 우의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 외에는 아무 소리가 없다.
오로지 적막. 그런 적막 속을 홀로 걸었다. 행복하도록 걸었다.
이 길을 야고보의 길이라 한다.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하면 디아고, 디아고 앞에 세인트 (saint: 성)를 붙여 샌디아고가 되었고, 이것의 된발음이 산티아고다.
야고보는 당시 땅끝이라고 하는 스페인에서 선교했고,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 야고보의 추종자들이 그의 유해를 배에 싣고, 그가 선교했던 스페인 땅에 묻었다.
때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 모두가 이 일을 쉬쉬했고, 야고보의 무덤은 구전으로만 내려왔다.
걷다가 만난 이색 조형물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수도사 하나가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별이 나타나 한 곳을 비추었다. 급히 가보니 전설처럼 들려왔던 야고보의 무덤! 그 위에 성당을 세우고 이름을 콤포스텔라라고 했다. 콤포(들판) 스텔라(별).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리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중요한 것.
많은 순례자들은 말한다.
이 길은 가성비가 매우 높다고. 보통 여행을 하게 되면, 항공료를 포함해서 하루 350달러에서 550달러를 잡는다. 그러나 카미노는 하루에 100달러 정도가 든다. 그러니 가성비가 높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데, 그것 이상이다.
이 길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중에 마주치는 이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들의 삶. 이런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머릿속에만 있던 지식을 가슴으로 내려보내고, 그래서 만들어지는 지혜! 언제인가부터 함께 걷는 신비한 발소리! 어디 가서 얻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28km를 걸었다. 이제 135km 남았다. 일주일 안에 끝난다. 행복하기만 했고, 행복을 빼면 남는 것이 없는 이 길이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내일부터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겠다. 25일의 이 길을 마치면서 드는 결심. ‘언젠가 세상의 모든 길을 다 걸어야 하겠다!’ 〈계속〉
길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글·사진=송희섭 애틀랜타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은퇴목사
첫댓글 참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마음의 양식이 된다해도 저는 가지 않습니다. 제 한계를 알기 때문이지요 한계가 없으십니다
저도 저의 한계를 알기에
교과서되로 안하고 저의 저질체력에 맞추어 가다가 버스 택시도 이용 하고 건너 뛰기를 여러번 했어요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도 중요 하다고 생각해요
온종일 빗속을 걸어도 행복한 순례길이군요.
점점 순례길에 빠져듭니다.
저희들도 글속에서 같이 걷는거 같아요
머리속에서 비디오가 돌아갑니다
내가 걷는걸 상상하며 꿈도 가져 보고요
세상의 모든 길은 곧 순례자의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산티아고의 시간과 추억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 어떤 길 위에 있는지 인지를 한다면 충분한 자기 발견도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여행자님의 수고와 시온님의 참여에 공동체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그쵸, 각자 나름되로의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AqQC25iN0GE?si=IeqlM-SMKTOzL6yT
아주 오래된 옛 찬양이 떠오르네요
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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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 안남아서 아쉽네요 정말 정말 대단하십니다
매일 걷는것도 걷는거지만 저는 매일 잠자리 바꾸는게 더 힘들더라고요
거기다가 배낭을 팩 언팩 하다 보면 그나마 있던 기운이 다 빠지고요
목적지 도착 하셨을때 다들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고 하던데 어떤 감정이셨는지 궁금하네요
남은 135키로 숨고르며
여유있게 걸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