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각하면 역사책, 한국학,실학자 구암 한백겸의 후손 한만년 사장 ,선친 한기악(1898-1941, 독립운동가) 선생 학술상인 월봉저작상(월봉은 한기악의 호이며,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월봉마을 이름) , 영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현대사 전공), 한경구 국민대 교수 등을 연상하는데 일조각을 먹여살린 책들은 어떤 저술일까요. 대학 교재로 널리 쓰인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무애 양주동의 <증정 고가연구>,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연구> 시리즈 등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저는 국문학 전공자라서 1981년도에는 교양국사시간에 이기백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한국사신론>을 교재로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한 책인 줄은 몰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이 풍부하여 안내역할을 충실히 하는 저술이고 뒷 편에 있는 참고서지 부록이 너무 유익했다는 기억입니다. 1983년에 서울 교보문고에 가서 무애 양주동의 명저 <증정 고가연구>(일조각)을 거금 35000원에 구입했던 일이 생생합니다. 향가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자료로서는 적격인 무애 선생님의 <고가연구>는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동료 친구들 중 나이 많은 정인이 형은 복학생이었는데 거금을 내고 책사는 나를 대단한 장서가라고 칭찬하고 격려한 적이 있었죠. 대학을 졸업할 때 이사짐의 규모 중 책의 수량이 어느 정도냐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면 박스에 몇 상자인가가 기준인데 졸업생들 중 장서가 많은 학생은 500여 권 이상이 되어야 대학생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편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신 김동욱 박사는 큰 학자가 되려면 학술저서가 1만권이상의 장서를 갖추라고 후학들에게 당부했답니다. 그 분도 정년이후 대우교수로 봉직하신 단국대학교 도서관에 훌륭한 장서인 나손문고를 기증하고 떠났습니다. 최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서 개최하는 학술회의에 갔다가 연민 이가원 박사께서 기증하신 연민문고 (4만권)가 중요한 서적으로 가득찼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연암 박지원의 후손들인 반남박씨 종친회에서 나오신분이 계셨는데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저술들을 대전에 사는 후손(박영범)이 간직하다가 이가원 선생이 1960년대에 성균관대에서 박사논문을 최초로 쓴다고 하시니까 그 논문을 쓰도록 장서를 몽땅 넘겨준 사례에 해당합니다.그 이후에 1965년에 을유문화사에서 이가원의 <연암소설연구>라는 대작이 탄생하여 경향의 지가를 올렸습니다. 연민 이가원 박사를 추모하며 학술활동을 하는 단체는 연민학회인데 그 회장은 진주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허권수 교수입니다. 연초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습니다.허권수 교수는 중학생일 때 연민 이가원 선생께 편지를 써서 문의를 하는 학구적인 학생이었답니다. 주고 받은 간찰만 해도 500여 통이 된다고 나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민의 수제자라고 내가 이야기했더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