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그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꿈꾸며
- 박미림 6 시집 (애기봉 연가)를 읽고
-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Nostalgia는 향수鄕愁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혹은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을 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고향이 두 개 있다고 한다. 나고 자란 곳과 주거지로 살 게 된 곳. 복잡하고 다변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고향을 갖고 살 게 된다. 살다 보면 피붙이보다 이웃이 더 가족 같다는 말을 듣거나 하게 된다. 태어난 고향보다 더 많이 살게 된 지금의 고향이 더 고향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두 개의 고향은 서로 다른 질감을 갖고 있다. 태어난 고향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연속선 상에 존재하며 지친 여름날 그늘과 같은 정신적 휴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남아 있다. 살면서, 오래 살면서 현실의 고향이 된 곳은 그리움보다는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부대끼면서 같은 하늘 아래 호흡하며 산책하며 때론 다투거나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노스탤지어는 이 모든 감정의 소산이며 감정의 발화점에서 바라보는 살아온 시절과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동시에 안식할 곳이 있다는 말이다. 태어나고 자라온 곳, 어쩌면 본향本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과 살며 살아온 곳 살아가는 곳, 두 개의 고향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삶에 대한 경향과 모습이 태생적이며 근본적인 그리움이라는 원초적 감정에 가장 충실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것, 시라는 장르는 그러한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가장 기초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와 고향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시와 고향은 인간 근원에 대한 문제이며 현대시의 근간이 되는 서정의 기본 매뉴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미림 시인은 태어난 고향인 해남에서 상경하여 수도권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성혼 이후 20여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김포에서 살았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 가장으로 살면서 향토문학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의 회원, 사무국장, 부회장, 회장 등을 역임하며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시간 동안 척박한 향토문학의 발전을 위해, 어쩌면 제2의 고향이 된 김포를 위해 청춘 이후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까지 김포 문인협회의 고문으로 그녀의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지키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시집을 다섯 권이나 냈으며 이번에 발행하는 시집이 여섯 번째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게 한다. 평생 한 권의 시집을 묶는 것도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여섯 권이라는 시집의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여섯 권 속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가 사뭇 진지하고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 많다는 점이 이번에 발행하는 (애기봉 연가)를 읽어본 필자의 느낌이다. 생은 살아본 사람만이 안다는 말이 있다. 그녀가 시 속에서 추구하는 것의 본질은 이전 1~ 5권의 시집에서 유추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 보다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인간관계의 정情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미림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이웃이라는 단어로 통칭될 수밖에 없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정확한 말이 될 것 같다. 현대사회는 아파트라는 주거단위를 기준으로 누가 이웃인지 구별할 수조차 없는 말 없는 시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눠야 할 것은 나누고 채워야 할 것은 채우며 서로 의지해야 할 것은 의지할 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고향을 고향으로 인식해가면 사는 사람의 바른 자세라는 것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바르게 산다는 것은 누구나 하지 못 하는 일이다. 때론 평범하지만 그 속의 나를 대중 밖의 나로 결합시키는 일은 평범을 더욱 소소한 평범으로 만드는 일이며 (이웃)이라는 말의 정의를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별일 없다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을. 무수히 많은 일을 만들면서 분쟁이나 다툼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닌, 감정을 양보하고 이해하고 감정선의 어느 곳은 날을 세우기도 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다. 문제는 그 양보와 이해, 날을 세우는 것은 간격이다. 적정한 지근의 거릴 유지할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박미림의 기존 작품을 읽으면 그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박미림 시인은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평화와 안식을 위한 지근의 거릴 유지하는 방법은 먼저 다가서는 것이라고 한다.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가서는 것. 가장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원숙하거나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체험과 경험으로 체득한 것을 시로 표현한 것이기에 그녀의 작품이 좀 더 생활에 가깝고 서정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애기봉 연가)는 기존 시집 1 – 5 권에서 추구하던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좀 더 광의적인 관점으로 주제와 소재를 확장했다. 김포가 제2의 고향인 박미림 시인이 김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따듯한 시선이 1부 서른 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미림 시인이 거주를 시작할 즈음의 김포는 지방 외곽의 소도시였다. 사회가 확장하고 위성 도시들이 그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현재는 인구 오십만을 바라보는 중견 도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김포를 잘 모른다. 다만, 주거지로서 외곽 위성도시의 베드타운 기능을 갖춘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미림 시인은 이런 외부의 시선을 불식하고자 시인의 제2의 고향인 김포의 명소와 김포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 김포가 표방하고 있는 평화의 도시라는 개념을 그녀의 작품에 접목하였다. 시집 제목 역시 김포시에 소재하고 있는 애기봉을 소재로 (애기봉 연가)라고 명명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김포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김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라는 장르에 묶었다. 이쯤에서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성과 목적성 역시 시를 쓰는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고향이 된 박미림 시인의 김포가 하는 이야기, 김포에서 살아 숨 쉬는 선인들, 역사적 고증과 가치에 대한 재해석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김포라는 도시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반추하고 그것에서 김포를 다시 조망할 기회를 획득하는 것 역시 김포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동시에 박미림 시인의 삶과 도시와 사람에 대한 시선을 공감하는 것 역시 문학과 역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개인의 소회와 감상을 시로 승화하는 것이 대부분인 시대, 자신이 거주하고 살아온 도시를 시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박미림 시인이 김포를 얼마나 사랑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말이다. 몇몇 작품을 통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그곳에 내가 있고 우리네 삶의 진정성이 음각되어 있다. 이 가을에 그동안 스치며 지난 김포의 풍경을 내 가슴의 향수 어딘가에 가득 담아보자. 저 앞에 펼쳐진 넓은 평야 넘실거리는 고개 숙인 이삭의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시집이다. (애기봉 연가)는.
2. 다초점의 의미
연가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닌 풍경과 사건일 수도 있다. 김포에 소재한 애기봉은 과거 분단의 상징이었다. 애기봉의 전설과 현재의 상태를 다음 백과사전에서 일부 인용해 본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154고지이다. 신분증을 내고서야 오른 애기봉 정상에서는 북녘땅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송학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기에 이곳이 왜 민간인 통제구역인지 가늠할 수 있다.
애기봉은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애첩인 애기(愛妓)와의 슬픈 사랑의 일화가 서린 곳이다. 愛妓峯(애기봉)이란 이름은 병자호란 때 끌려간 평양감사를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그리다 죽은 기생 애기의 한이 서려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리고 1968년 애기봉을 방문한 故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의 恨과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恨이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그래서일까? 매년 추석 때면 이곳 망배단에는 가족과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찾아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한다.
민족의 한과 통일의 염원이 깃든 애기봉은 최근 한강하구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400km를 흘러 서해바다(염하)를 만난다는 祖江(한강하구의 이름) 조강은 400km를 흘러온 한강 물이 민물의 생을 다하고 늙었다는 의미와 할아버지처럼 편안한 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 애기봉에서 바라보는 조강은 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편안한 모습이다. 또 북녘땅을 휘돌아 나오는 임진강과 멀리 예성강, 강과 바다를 구분하지 않은 염하강 그 한가운데 외로이 떠서 남북을 넘나드는 새들의 터전이 되고 있는 留島(유도)까지 한강하구의 역사와 문화가 서렸기에 조강물때 맞춰 서울로 오르는 황포돗대 모습이 선하다. 『포털 다음 백과사전』 일부 인용
김포시에서는 최근 분단의 상징이었던 애기봉을 평화의 거점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화생태공원을 준공하고 일반인의 인식개선을 위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박미림 시인의 작품 중 (애기봉 연가)를 살펴본다.
애기봉 연가
세월과 함께 녹슨 분단의 아픔이 서걱거린다
실향민의 마른기침소리 낮게 드리우는 날이면
이 땅을 흔들어 깨우듯 군화 소리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환청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온 산하로 울려 퍼진다
일제히 부는 바람이 깊이를 잴 수 없는
그리움 심어 두고 떠난 자리에
수십 년 동안 피고 진 이름 없는 들꽃만이
남도 아닌 북도 아닌 모습으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저 강을 건너
저 산을 넘으면
내 부모 형제, 창호지에 눈물 적시던
그때 그 모습으로 날 반겨주실까
우두커니 서서 서러운 잔영을 기억하는
이산의 아픔에 가슴 멘 이들이
숨 고르기 한세월 너무도 길고 길구나!
보라! 철새들의 저 자유롭고 평화로운 항해와 날갯짓을
이제는 서서히 서로에게 훈습되어야 한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화해와 용서로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에서
비상하는 이 땅의 주인으로
통일 염원하는 두 손 모아 하나 되어야 한다
애기봉에서는 어느새 훈풍이 불어대고 있다
*애기봉: 애기봉(愛妓峰)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기생의 이름인 애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애기와 평양감사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미림 시인이 본 애기봉의 모습과 변화는 다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애기와 평양감사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연가)라는 말에 좀 더 초점을 두었다. 그것은 분단이 부르는 평화의 거점에 대한 (연가)로 승화되길 염원하는 또 하나의 시선이다.
수십 년 동안 피고 진 이름 없는 들꽃만이
남도 아닌 북도 아닌 모습으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남쪽도 아닌, 북쪽도 아닌 모습은 얼핏 최인훈의 소설 속 회색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분단이라는 모습이 가진 분단의 모습이다. 어느 것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시인의 탄식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말로 분단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 그 안타까움을 철새들의 날갯짓에서 빗대 시인의 염원을 말하고 있다.
보라! 철새들의 저 자유롭고 평화로운 항해와 날갯짓을
자유, 평화, 항해, 날개가 표방하고 있는 것은 남이나 북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공간과 거침없이 비상해야 할 민족의 하늘을 꿈꾸는 시인의 가슴이다. 시인은 자연스럽게 애기봉의 풍광을 소개하면서 애기봉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꿈, 평화의 거점으로 변화하는 모습에 대하여 왜곡된 시선이 아닌, 진솔한 시선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 (애기봉 연가)인 까닭이다.
시인의 시선은 역사적인 유물과 분단을 넘어 모두가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으로 피사체를 옮긴다. 김포시에서 시행하는 김포 북변 시장 오일장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상설시장이 대부분이라 오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오일장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김포에는 오일장이 개장하고 있다. 김포 북변의 오일장은 그 자체로 명물이며, 삶의 산물이며, 김포에 사는 사람들의 곡진한 삶이 묻어 있는 것이기에 더욱 사랑받고 있는 장날이다.
김포북변오일장
장이 서는 날이면 북변 유료주차장 주차구역마다 만선을 꿈꾼 어부의 생선이 파킹 되고 농민의 노랫가락이 푸성귀와 곡식이 되어 파킹 되고 근로자의 땀과 눈물이 사이즈 다양한 신발과 각양각색의 옷이 되어 파킹 되고 대출금과 소리 소문 없이 오르는 물가 감당하며 사는 사람들의 술과 음식 먹거리 가득한 주막이 파킹 되고 아이들 군것질 어른들 군것질 가득한 부스도 파킹 되고 없어서 못 판다는 것 빼고 다 있는 잡동산 생활용품이 파킹 되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세기의 논쟁 주인공과 인간과 가장 친하다는 반려동물이 파킹 되고 내 고향 어머니의 손맛을 빌어 만들어진 밑반찬이 파킹되고 붉거나 단단하거나 굵거나 달콤한 과일도 파킹 되어 있다 구역마다 운전대와 조수석에 앉은 상인들과 차에 오른 승객들로 만석이다 서울에서, 일산에서, 먼 외지에서 오일장을 찾은 승객들은 서슴없이 정류장마다 오르내리며 흥정을 하고 결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운치 있는 풍경과 정이 있고 북적거리는 맛에 파장 시간마저 만석인 소통의 장, 김포북변 오일장은 오늘도 사람꽃이 풍성하다
박미림 시인이 오일장에서 본 것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운치 있는 풍경, 가격을 흥정하거나 덤이 있는 상인들의 정을 보는 것이다. 뭐든 돈을 주거나 받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는 전통적인 풍물의 모습을 작품에서 그리고 있다. 오일장의 상품들은 다양하다. 고품질의 상품과 토속적인 상품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런 왁자지껄한 소리와 풍경이 혼재하는 곳, 오일장이라는 곳이 말해주는 풍성한 사람꽃이 의미하는 것은 정情이다. 가치로 환산하거나 교환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교환하고 환산할 수 있는 근원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곳을 작품에 그려냈다.
박미림 시인의 시선은 매우 다양한 초점을 갖고 있다. 특히 김포 풍무동에 소재한 (김포 장릉)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역사를 역사의 배후에 존재하는 배경에 선수를 두지 않고 김포 장릉이 가야 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명징한 답을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김포 장릉은 조선 시대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 황후(1578~1626)구씨를 모신 능이다. 능은 능이 만들어진 배경은 차치하고 능이 가진 물상의 풍경에 대한 바램을 이야기한다.
김포 장릉
- 인헌왕후의 전언
해 뜨면서 질 때까지 양지바른 곳이라고
아들은 깊은 수면 중인 나를 깨워 이곳으로 이장시켰지
명당 값을 하는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어
아주 마음에 들어 이승에서의 모든 일 다 잊고
볕 잘 드는 능에서 온갖 자연의 소리
자장가 삼아 넋 놓고 잠들어 있는데
어느 날부터 들리는 괴 동물의 울음소리인지
마른하늘에 천둥번개 소리인지
알 길 없는 소음 때문에 불면증이 생겼어
이곳으로 이장시킨 아들이 또 다른 명당을 찾아
나를 또 이장시켜줄 것도 아닌 처지이니
이 또한 자장가 노랫소리려니 하고 사는 수 밖에는
익숙해진 소음 그냥저냥 견뎌볼까 해
그래도 소음의 진원지가 궁금해서 두더지에게 물었더니
무슨 큰 비밀인 양 귓속말로
"내가 터줏대감 느티나무 가려운 곳 긁어주고 얻은 정보인데
사람들이 먼 거리를 오고 갈 때 타고 다니는
비행기라는 것이 하늘을 나는 소리래"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행기 다니는 길이
내 안식이 내려다보이는 하늘길이라니
사알짝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한 번도 타보지 못해서일까?
너무 일찍 태어나 죽은 미련일까?
능 저 아래 어디쯤 보랏빛 꽃창포가 피었나 보다
노란 꽃도 피어 있다고 하는데
오늘같이 눈부셔 오는 날엔 얼마나 더 화사할까?
오가는 사람들이 능 밖에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
내가 묻힌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비행기 소음을 피해 귀동냥으로 듣는 날이다
들리니?
김포장릉: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장릉은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1578~1626) 구씨를 모신 능이다
김포에 장릉이 있는지, 그 장릉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실재 장릉은 그 규모나 장릉에 식재된 숲의 다양함, 깔끔하게 정리된 산책로 등을 볼 때, 우리나라 어느 곳의 능보다 아름답고 수려한 경관이다. 시인은 이런 장릉에 대한 정보를 김포 관내 혹은 김포 이외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능 저 아래 어디쯤 보랏빛 꽃창포가 피었나 보다
노란 꽃도 피어 있다고 하는데
오늘같이 눈부셔 오는 날엔 얼마나 더 화사할까?
오가는 사람들이 능 밖에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
내가 묻힌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비행기 소음을 피해 귀동냥으로 듣는 날이다
들리니?
시인의 말은 결구 한 줄에 다 들어있다. 들리니? 라는 말속에 본 것과 느낀 것과 경험한 것에 대해 말하고 싶고 알리고 싶고 충분히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향토에 대한 사랑이며 향토에 대한 자부심이며 보다 근본적인 글의 목적성에 대한 강력한 표현이다. 보랏빛 꽃창포의 화사한 색감을 잃고 사는 도시의 사람들과 장릉의 수려한 풍광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가을의 질감을 건네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시는 전달인지도 모른다. 내가 본 것, 느낀 것, 내가 알고 있는 소소한 것들을 따듯한 손에 가득 담아 전해줄 때 받는 사람의 가슴을 더 따듯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지도 모른다. 박미림 시인의 장점이다.
다초점의 다양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김포에는 용화사라는 절이 있다. 그 용화사 절은 김포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로 크거나 유명한 절은 아니다. 다만, 그 절에는 스님의 눈동자를 닮은 우물이 있다고 한다. 스님의 눈동자가 어떤 눈동자 인지 눈동자를 닮은 우물은 얼마나 깊은지를 잘 표현한 글이다. 살펴본다.
용화사 주지스님은요
봄바람 따라나선 길 용화사에 갔었네
앞마당 넓은 구옥을 리모델링한
주지스님 내실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네
투명한 유리로 만든 우물 뚜껑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훤하게 속을
드러내 보였고 아직 살아 숨 쉬는
우물에 내 얼굴을 비추었지만
그 깊이는 알 수가 없었네
모든 것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곳에는
스님이 건네준 홍차에서
미니팬지 꽃 내음이
진하게 우러나고 있었네
꽃꽂이는 살생이라던 주지스님
야생화 꽃으로 내실을 가꾸고 계셨네
우물의 깊이는 알 수없지만
스님의 그 깊은 마음은
스님의 눈동자에 있었네
주지 스님 내실에 깊은 우물이 있다고 한다. 불빛 아래 속이 훤하게 보이는 우물, 우물은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우물에 비친 내 얼굴은 깊이 모를 우물 속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용화사와 우물, 말갛게 우려낸 차 한잔을 건네는 주지 스님의 손길, 꽃꽂이는 살생이라며 설파하는 스님의 노안에서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 속에서 다시 스님의 눈을 발견하고, 그 곁에 잠시 머문 내 얼굴을 발견하고, 그 모든 인연의 인과관계는 상생과 화합과 어울림과 조화라는 것으로 윤회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하지 않은 그 무엇이 아니라 평범한 그 무엇들이다. 늘 곁에 존재하기에 존재조차 모르고 사는 우리들, 하지만 어떤 날 불쑥 존재가 느껴지고 느껴진 존재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산소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용화사가 그곳에 있었고, 그곳에 우물이 있었고, 우물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물이다. 다만 우리가 우연으로 생각하고 살았을 뿐. 박미림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유명하고 좋은 것도 좋지만 그 반면,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도 포용하고 살아가는 풍경들. 그 풍경들이 정작 김포라는 도시를 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포를 사랑하는 것은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아니다. 도로를 재포장하는 것도 아니다. 녹지에 아파트를 건설하여 많은 유입인구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인구 백만의 도시, 천만의 도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구성할 수 있는, 그 행복을 행복으로 품을 수 있는 여유를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박미림 시집 (애기봉 연가)에서 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부르는 노래다. 그 사랑의 대상이 김포라는 도시라면 너무 확장적 사고일까? 적어도 시인이 말하는 연가의 조건과 대상은 좀 더 광의적이며 좀 더 창조적이며 좀 더 평화적인 도시, 김포에 대한 연가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싶다.
3. 2부의 이야기들
1부가 김포에 대한 이야기와 소개, 향토에 산재한 풍경에 대한 이야기라면 2부에 소개된 작품들은 시인 일상의 이야기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서론에서 언급한 이웃이라는 말과 가족이라는 말, 관계라는 말에서 비롯되는 연상의 이야기들 속에서 박미림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의 깊이와 그 근원의 가치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공감의 영역을 얻는다면 시집 한 권에서 너무 얻어가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이라는 말이 있다. 별반 중요하지 않거나, 매일이 매일스러운 일상을 소소한 일상이라고 한다. 그 소소한 일상의 어느 지점에 시가 있으며 시적 질감이 농후하게 배어있는지 알면 시를 이해하거나 시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시가 되는 지점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모든 일상이 시가 되는 지점이라는 것에 반론은 없다. 다만, 어떻게 무엇을 시라는 장르의 핵심으로 승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엄격하게 말하면 시인의 능력이다. 발화점과 개화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 과정에 나만의 알레고리를 접합하면 좋은 작품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좋은 작품의 기준은 글솜씨가 아닌, 세상을 보는 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준이다. 말 잘하는 사람의 입이 아닌, 따듯한 사람의 손길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이다. 시집 속 작품 한 편을 소개한다.
장미꽃 엄마 팬티
빨래 바구니 안에 빨간 장미꽃잎처럼 접힌 엄마 팬티가 보인다 통풍 잘 되는 넉넉한 사이즈
팬티가 필요하다 해서 작년 이맘때 부식거리와 함께 보내드린 몇 장의 꽃 팬티 중 하나다 나는 생전 처음 엄마 팬티를 조물조물 빨고 있다 장미꽃 수놓아진 팬티에서는 엄마가 좋아하는 장미향이 났다 빨랫줄에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인이 어머니에게 선물한 팬티 중에 장미꽃 팬티가 있었다. 어쩌다 보니 세탁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엄마의 장미꽃 팬티, 장미가 수놓아진 팬티에서는 장미 향이 났다. 그리고 빨랫줄에는 넝쿨장미가 흐르러지게 피었다는 것이 전부다. 해설하고 말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을 2부 작품 중 가정 먼저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장미꽃이 수놓아진 팬티의 장미 향과 빨랫줄에 흐드러지게 핀 넝쿨장미다. 누군가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다면 본문에 쉼표 하나만 쓰겠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한 적이 있다.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는 본문에 아무 말이 없어도 시가 된다. 말이 많아야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유와 은유 함축이 많아야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수사의 향연이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주목할 것은 마음이다. 곡진하고 진중하고 진실한 마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팬티라는 단어가 부끄러운가/ 장미 향이 나는 팬티가 부끄러운가? 아니다. 그 모든 행위가 담보할 수 있는 자식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시를 쓰다 보면 종종 느끼는 것이 보여주기 위한 작품들이다. 나는 지식이 많아. 나는 지혜로와, 나는 이 정도 되는 시를 쓰지. 다 웃기는 말이다. 쓰고 나서 자신도 보기 싫은 시, 인위라는 조미료로 가득한 시는 읽기도 전에 던져버린다. 최소한 시라는 장르는 영혼이 있어야 하며 언술이 아닌 언어가 있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이고 마음이다. 장미꽃 엄마 팬티는 언어다. 시인의 언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시인이 진솔하게 전달해주는 언어의 향기다. 박미림의 시집에서 장미꽃향이 가득 넘치는 이유다.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가면의 가면이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지속해서 풍경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 속 풍경에도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때론 비관적이거나 때론 구차한 변명에 머물 때가 많다. 하지만 그조차도 변명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변명이라도 좋다. 자신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일, 쉼 없이 보여주는 일에 부지런하다 보면 민낯에 익숙해질 때가 있다. 그 민낯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그때가 우리가 가장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질 때다.
가면의 가면
안녕!
오늘은 화장이 잘 되었는지 거울을 보지 않기로 해
창에 비치는 나를 응시하는 멍 때리는 일도 하지 않기로 해
핸드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는 어설픈 시간 낭비 하지 않기로 해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나이 탓이라고 변명하지 않기로 해
원형탈모 감출 부분 가발 사이트 검색 않기로 해
조금 먹는데 살이 찌는 이유는 나잇살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않기로 해
못생긴 손톱 네일아트로 감추지 않기로 해
짝퉁 명품 가방 들고 출근하지 않기로 해
153cm 키 156cm로 보이기 위해 굽 있는 신발 신지 않기로 해
울퉁불퉁 몸매 감추기 위해 보정 속옷 입지 않기로 해
가면의 가면이 더 뻔뻔해지기 전에
사람이 진솔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진솔과는 거리가 먼 위선을 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특히 여자라면 더하다. 외모가 삶의 99%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더 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큰 조건이 거울을 보지 않는 것, 네일아트로 손톱 가리지 않는 것, 굽 높은 신발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아니다. 철이 들었다는 말이다. 보여지는 것, 보이는 것의 객관이 아니라 보일 수 있는 것,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는 주관이 우세하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사람에 가까운 형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보여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첫인상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작 보여줘야 할 것,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시의 본문에서처럼 가면의 가면이 더 뻔뻔해지기 전에 민낯의 나를 내게 보이고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 좋겠다. 감추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꾸미는 것이라고 위로하자. 위로받기 위해서는 진심의 나를 먼저 내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박미림 시인이 말하고 있다.
4. 맺으며
박미림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애기봉 연가) 1, 2부를 읽었다. 1부에서는 김포와 관련된, 부속된 풍경과 사물과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작품들로 구성된 요즘 시집에서 쉽게 보기 힘든 대중성과 사회성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박미림 시인과 같이 오랫동안 김포에 산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김포에 서린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일종의 습습한 아픔을 공유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시인이 가진 향토애와 향토문학에 대한 열정의 깊이가 새삼 느껴진다는 것이 어쩌면 (애기봉 연가)만이 가진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부에서는 박미림 시인이 가진 인간적인 고민과 애증 혹은 사랑 혹은 관계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상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시 한 편 혹은 시집 한 권에 모두 담길 수는 없다. 다만, 그녀가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에 대한 것은 얼추 짐작이 간다. 때론 우린 실수도 하고, 때론 우린 힐링도 하고, 때론 우린 스스로 도취하여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삶이라는 섭리 속에서 빚어지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 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가끔은 무기력해진다. 그럴 때 박미림 시인의 (애기봉 연가)를 펼쳐 그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내 삶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정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린 그렇게 지나온 것들을 반성해 가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 볼 만하다는 것이 삶이다. 마지막으로 박미림 시인의 작품 한 편을 소개하며 맺는다.
반성
내 아이들의 엄마인 것을 반성하고
내 부모의 딸인 것을 반성하고
주변인들 가슴을 아프게 한 그 어느날
죄지음을 반성하고
사랑할 이유가 또 있음에 반성하고
그 사랑 때문에 지금 누군가가
가슴 부여잡고 있음에 반성하고
아직 잠들지 못한 내 영혼이
깨어 있음을 반성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음에 반성하고
여전히 가난한 내 살림살이를 배곯게 하는
나의 무능력을 반성하며 기도한다
두 번 다시는 같은 반성하지 않게,
나의 반성은 이쯤에서 배곯게 해달라고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중봉 문학상 대상, 문학세계 문학상 평론부문 대상, (월)모던 포엠 문학상 평론부문 대상. 김포신문 (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연재 중, (계) 가온문학 창작지원금 수혜, (계)문예 바다 편집 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