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나를 협박한다. 더러는 옆구리를 찌르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거다. 그럴 적마다 허락 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도 쉽게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다.
자신이 가정을 꾸리면 이것도 기르고 저것도 키우겠다며 시위한 지는 제법 되었다. 희귀동물을 키우는 제 친구의 이야기를 갖고 와 채근질도 한다. 매번 그 또한 하나의 생명체이기에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해도 늘 허기져 있다. 성공담이 연 꼬리 잇듯이 이어지니 말이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분이 가까이 있었다. 독신인 그분은 강아지가 적적한 집안에 활기를 안겨주고 동지애랄까 가족애를 느끼게 해 준다며 흐뭇해했다. 자식처럼 돌본지도 십여 년이나 지났다. 간혹 사람도 못 먹는 육포를먹이는 등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찮아 보이건만 동물 사랑은 더해만 간다. 대소변 처리로부터 북적이는 털도장애가 아니라 한다. 이와 같이 장점을조롱박 매달듯 대롱대롱 엮어 낼 때는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일 정도다.
솔직히 나는식물을 키우는 것도 힘들다. 때 맞춰 물 주기와 환기를 시키는 기본적인 일에서조차 데면데면할 정도다. 한 수 더 떠서 축하 화분 받는 것 까지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다보니 반려동물 애호가들의 동물사랑이 유별난 행동으로 보일 때가 사실 많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식물을 키우게 되었다.
계기가 된 것은 수년 전 직장에서 일이 생겼다. 동료 몇 명으로 부터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잘 되면 자기들 덕으로 생각했었다. 그와 반면 잘못되면 무조건적으로 시스템이나 문제를 푸는 방법이 다를 때가 많았던 내 탓으로 돌렸다. 직장에서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집사의 역할을 하다 보니 인정받을 일 많았던 것이 눈에 가시였던 것 같다. 서 푼 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이지만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복도나 공개된 장소에서 까지 투명인간을 만드는 데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행사로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해야할 일이 생겼다. 그들이 천천히 갈 터이니 따라오라던 말만 믿고 나섰다. 문제는 고속도로에서 생겼다. 갑자기 비바람이 내리쳐 앞이 안 보이는 악천후가 펼쳐졌다. 그것보다 더 했던 것은 앞서 가던 차량의 운전자였다. 출발할 때 한 말과 달리 백 킬로 이상의 속도로 도망치듯 내달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내가 교통사고 이후 고속도로와 IC 두려움증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줄행랑쳤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뒤따라오는 차를 고속도로에 버려두고 종적을 감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소리 없이 저지르는 고문 등등을 이겨내야 하는 하루하루는시퍼런 멍울을 수도 없이 남겼다. 어느 날 부터는 신경성 말초 신경염증 비슷한 증세가 있더니 오른쪽엄지손가락에 이상이 생겼다. 이 모두가 세상을 향한 내 목소리였으니몸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있어야 지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지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게 있다면 두 번 다시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는 거다.
간과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상이 되던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을 포기했다. 할 수 없이 그저 소신껏 임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또한 사람으로 인해 다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비상구가 필요했다. 이리저리 다니며 찾으려고 용 썼다. 먼저 사람은 일순위로 제외시켰다. 그 다음으로 동물도 사람 이상으로 손길이 필요하기에 외면했다. 그러다가 식물에서 약을 찾았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꽃집 주인의 권유로 마음을 정한 건 바로 다육이었다. 나를 곧추세우기 위하여 하나둘 사다 모은 것이 드디어는 수십 종에 이르렀다.
다육이는 아침 출근과 함께 소꿉장난하듯 창밖으로 내어 놓았다가 퇴근할 때는 실내에 들이기를 반복했다. 그것뿐만 아니고 열에 하나라도 배곯을까 내 목을 축일적마다 물까지도 나누어 먹었다. 물을 조금 과하게 주면 노곤해하면서 병이 들기는 했다. 솔직히 물은 화분의 웃 흙이 꺼덩꺼덩 마른 후에 주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해악 질을 한 셈이다.
그렇게 왕초보 노릇을 하면서도 억지로 화분수를 줄이거나 없애는 일만은 없었다. 햇빛도 중간다리 역할을 참하게 해 주었다. 다육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부터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제 분신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더러는 오가는 이들에게 나눠주면서도 화분들 수가 풀빵 부풀어나듯 늘어났다.
다육이는 노골적으로 칭얼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막의 낙타처럼 생명력이 강했다. 죽은 줄 알고 화분을 엎다보면 새순이 발견된 적도 많았다. 이는 그동안의 손길을 기억하고 화답하는 의리로 보였다.
화분도 키 자랑 하는 것 보다는 펑퍼짐하고 넓은 것이 어울린다. 그것도 화려한 무늬나 유약을 바른 것 보다는 숨구멍이 여드름 자국처럼 송송 나 있는 것이 좋아 보인다. 개인적인 취향인지 깨지고허접한 그릇이 제 격일 때도 많다. 세월의 나이가 읽히는 기왓장에 몸을 맡긴 것도 멋스럽다. 장인이 빚었지만 가마에서 구워지다 실패한 옹기류로 집을 장만해 주어도 제 식솔들 갈무리하는데 불평이 없다. 오히려 흙 본래의 질감이 편안하게 와 닿아 본인 옷을 입은 것 같다. 몸을 담아내는 것조차도 수더분한 것이 좋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갈수록 힐링의 방법이 많아지고 있다. 독서, 음악, 미술, 대화, 원예 등 낯선 얼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해진 이유다. 이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위기에 처해있거나타다만 숯 동강들처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맞춤형 처방이자 묘약이 될 것이다. 단, 주변 사람들과 공존해야하니 본인의 취향이라 할지라도 까다롭게 택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오늘도 창틀의 다육이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