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 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총각 시절 달았던 과장을 이제야 하면서 그게 자랑할 일인지 의아했다. 겉으로는 기쁜 듯 축하한다며 짤막하게 대답하고 끊었다. 뒤늦게 교육계 출신인 아버지께 들으니 경북교육청에서 그 자리는 교육감, 국장 다음 자리였다. 장학사에서 교장으로 다시 장학관이 되어 이제 과장이 되었으니 실로 기쁠 것이다. 몰라 마음껏 축하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사기업에서도 대기업 정도는 직급에 체계가 있지만, 중소기업의 직급은 붙이기 나름이었다. 내 경우를 봐도 직급은 시시때때로 달랐다. 첫 직장에서는 공장에서 일할 때는 주임, 밖으로 영업 다닐 때는 과장으로 같은 직장에서도 두 개의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중고자동차 장사는 부장으로 시작했고, 친구 따라간 다단계 회사에서는 대뜸 사장님으로 불러 당황스러웠다.
공기업에서도 직급 때문에 오해를 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교정청에서 퇴직한 처남의 얘기다. 교정청에서는 부장이 말단에 가깝다. 어쩌다 상관과 안기부에 출장을 갔다. 별 의미 없이 인사 치례로 명함을 내밀었는데 비상이 걸렸단다. 안기부에서는 제일 높은 직급이 부장인데 다른 정부기관의 부장이 왔으니 의전의 격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잠시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두고두고 회자하였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중고차상사를 할 때, 옆 상사 직원이 찾아와 푸념했다. 사장이 월급을 올려 줄 때가 되어 기대하고 있으면 기다렸던 월급 대신 직급을 올려 준다며 투덜댔다. 근무한 지 이 년 동안 월급은 안 오르고 직급만 과장에서 상무까지 올랐다고 했다. 직급이 중요하긴 해도 배고픈 사람에게 월급을 대신할 수 있을까.
나이가 환갑이 넘고 보니 친구들을 만나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가 쉽지 않다. 퇴직한 친구는 재직 중 거친 직급 중에 가장 부르면 좋아할 직급을 불러 준다. 한 번이라도 동기회장을 했으면 회장이라 불러준다. 자그마한 마트라도 했던 친구는 사장으로 부른다.
아버지의 선배분이 교육감으로 지내다 인근 중학교에서 퇴직하셨다. 명절날 동기들이 인사 가면 그중 벽창호 같은 분이 기어코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모두 교육감님이라고 부르고 당신도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했는데, 교장선생님이라는 소리는 대화 중에 삑사리로 들렸다.
지금 나를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다. 직장에서는 직급이 반장이다. 실제로는 반장보다 선생님으로 말을 걸어온다. 고등동기들은 동기회장을 했다고 공회장으로 부르다, 요즘은 공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직급이 그 사람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불린 직급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니 나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