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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오후 광조우 광효사를 마지막으로 혜능대사의 수행 도량을 함께한 일정을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으로 밤을 지내게 될 혜주로 발길을 돌린다. 광조우에서 혜주는 광후이 고속도로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고속도로가 생긴지 4~5년이 지나니 통행차량이 물라보게 많다. 이 고속도로는 광조우에서 혜주를 거쳐 산토우까지 이어진다. 이전에 한국 출장 시 광주공항으로 자주 이용했는데 새벽에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하곤 하였다.
혜주는 진정 나에겐 제2의 고향이며 중국에서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중국을 이야기할 때 혜주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중국을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현재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외지 사람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 산과 호수로 이루어져 물 많고 공기 좋은 도시, 나날이 발전하는 도시, 인심 좋은 도시 등… 풍수적으로도 좋고 아직까지는 물가도 싼 편이고... 나는 이미 혜주 예찬론자가 되어 있다. 혜주명예시민이 된 나는 중국인과 함께라면 나도 혜주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해 본다.
이처럼 살기좋은 혜주를 자랑하기 위해 처음부터 일정에 넣어 두었다. 오늘 저녁 이벤트와 호텔 예약 등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설레임을 안고 혜주로 향했다. 모두 노곤함에 잠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줄곧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혜주 톨게이트인 수이코우(水口)를 빠져 나와 20여분 만에 닿은 곳이 혜주 서호 정문이다. '惠州西湖'라는 거대한 편액이 걸린 정문이 우리를 반긴다. 오후 5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다. 먼저 서호를 관광하고 재래 시장에 들러 선물을 사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서호(西湖)는 혜주의 상징이다. 내가 혜주에 온 후 너무나 친숙한 서호를 이제야 소개한다는 생각에 미안함마저 든다. 서호를 시작으로 혜주의 구석구석을 알려볼까도 생각 중이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평일 오후인데도 유람객이 많이 보인다.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스쳐간다.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소음들로 약간 분주한 서호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는 보트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다. 한 시간 정도 뱃놀이를 하면서 서호의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서호(西湖)는 광동성 혜주시(惠州市) 서쪽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의 3대 서호(西湖)중 하나다. 옛적에는 풍호(豊湖) 또는 <저라선자(苧蘿仙子>라고도 불리기도 했는데, 고대의 중국에서 일컫기를 "대 중국에는 36개의 서호가 있으나 혜주의 서호만이 항주와 비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혜주의 서호는 그 모습이 수려하고 많은 시인 가객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송(宋)나라 때 제방을 쌓아 호수를 에워 쌓고 정자와 다리를 만들어 이루어진 이 호수는 1,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항주의 서호와 마찬가지로 인공호수이다. 송소성원년(宋紹聖元年) 즉1,049년에 중국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혜주에 거주하면서 혜주 서호를 높히 평가하고 돈을 기부해 서호를 건설했으며 수많은 감동적인 전설과 아름다운 시들을 남겼다. 이후 여러 조대를 걸친 건설과 보수를 거쳐 서호는 날이 갈수록 아름답게 변해 <산과 호수로 이루어진 도시>의 수려한 풍경을 형성했다.
전체 면적은 3.2평방 킬로미터이고, 그 중 호수의 면적은 1.68평방 킬로미터, 물 깊이는 대부분 1.5미터 정도 이지만, 일부에는 3~4미터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호수를 정비할 때는 부분별로 물을 없애고 하는데 그 때는 바닥까지 구경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서호의 풍경은 'S'자의 모습을 띠고 있고 띠같은 제교(堤橋)가 서호를 5개 큰 부분으로 나뉘어 5호<五湖> (평호-平湖, 풍호-豊湖, 남호-南湖, 악호-鰐湖, 능호-菱湖)와 6교<六橋> (서신교-西新橋, 공북교-拱北橋, 연하교-煙霞橋, 영선교-迎仙橋, 명성교-明聖橋, 원통교-圓通橋)의 풍경을 이루면서 유기적이고 독립적인 다섯 개의 호수로 구성되어 서호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길을 따라 천천히 산보하듯이 걸어가다 보면 잘 정리된 길과 호수면 위로 길게 늘어져 있는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왼쪽으로는 혜주시정부 영빈관이 있다. 여기서 주요 손님과 상담하고 아래층에서 만찬을 한다. 나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그리고 서호 물위에 떠 있는 화려한 유람선에 온갖 치장을 해 놓은 배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번 춘절 때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도 밤이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서신교 다리를 넘어 길 양옆으로 늘어진 나무 사이를 따라 걸어가면 서호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사주탑(泗洲塔)이 있는 보탑산(宝塔山),이 있다.
사주탑은 보탑(寶塔)이라고도 부른다. 원래의 이름은 대승탑이였단다. 소동파가 혜주로 올 때 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단다. 보탑은 전목(塼木)구조로 되었으며 서호의 제일 높은 건축물이다. 당(唐)나라 때 사주대승가(泗洲大僧伽)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유단정((留丹亭)은 신해혁명(辛亥革命)<마안전역(馬安之役>에서 희생된 열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서주탑에서 내려와 왼쪽길을 따라가면 소동파의 마지막 부인인 왕조운(王朝云)이 묻힌 조운묘(朝云墓)가 있는 육여정(六如亭), 소동파 기념관인 동파기념관(东坡纪念馆) ,구곡관(九曲观 )등으로 가고 오른쪽은 민가등 서호 파출소로 가는 길이다.
나는 사주탑에 한번 올라간 적이 있다. 입장료 5위엔을 내야 한다. 총 8층으로 이루어져있어 올라갈수록 계단의 폭이 좁고 가파르게 경사지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폭이 좁아 일방 통행을 해야 한다. 중간 중간 밖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창이 나 있는데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만 한 크기의 공간이다. 일단 꼭대기에 올라가서 밖의 경치를 본다면 힘들게 올라온 보상을 받고도 남는다. 시원하게 펼쳐진 서호의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한번은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은 소동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고산이 있다. 고산은 서호에 있는 작은 동산인데,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 이와 비슷한 모습의 항주 서호의 '고산'이라는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고산의 입구에는 당송8대가 중 1인인 소동파(苏东坡)의 입상이 세워져 있으며 여러 가지 소동파와 관련된 문화재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의 서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는 도시의 대부분은 소동파가 임직하거나 다녀간 곳이라는 것이다. 그 중 중국 3대 서호인 항주 서호, 영주 서호, 혜주 서호는 모두 소동파가 유배를 갈 때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입장권10위엔을 주고 계단을 따라 고산에 올라서면 처음 보이는 것이 소동파의 석상이다. 흰색의 석재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석상이다. 그 석상을 중앙으로 해서 양 옆으로 길이 나있는데 왼쪽편의 길로 들어서면 육여정과 동파 기념관으로 갈 수 있다.
육여정에는 소동파의 부인인 왕조운(王朝云)이 묻힌 조운묘가 있다. 왕조운은 소동파가 혜주로 올 때 이곳에 같이 와서 34살의 나이로 묻혔다고 한다. 왕조운의 무덤 주위로는 그녀를 기리는 문장과 그림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조운묘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동파기념 1관, 2관을 볼 수 있다. 고산(孤山)의 정상에 위치한 기념관은 언제나 나무의 그림자로 인해 청량하고 맑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잠시 지친 다리를 쉬고 문인의 향기를 느끼기에는 적격인 분위기이다. 이곳은 소동파의 글과 시, 그리고 그의 초상화와 같이 일생의 흔적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당송 팔대가 중 한 사람인 소동파의 이름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려준다. 그 중 동파기념1관에는 소동파의 출생과 일생 동안의 여정을 중국전도 위에 선으로 표시를 해놓았다.
고산입구로 내려와서 왼쪽을 꺽어 돌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문이 나 있다. 여기서도 5위엔을 지불하면 들어갈 수 있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는데 구곡교가 있는 구곡관(九曲观)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이 구조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직선 형태의 다리가 아니고 직각으로 꺾어진 채 이어져 있다. 자세히 세어 보니 아홉이 아니다. 중앙에는 원앙정(鸳鸯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여기에선 잠시 쉬며 수면 위에서 주위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사진에 담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그 길의 끝에는 작은 섬, 점취주가 있다. 점취주에는 별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입구에 멋드러지게 늘어진 나무가 보물이다. 길을 가로막고 늘어져 있는 가지 밑으로 고개를 땅에 숙여야만 갈 수 있다. 그리고 정각에는 이름 석자에 붓글씨로 시를 지어 주는 서예 노인어른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듣기로는 중국전국 서예대회에서 2등을 했다고 했는데. 옛날에는 오는 손님마다 선물을 해주곤 하였다. 점취주를 한번 둘러보면 그곳에서 방화주로 이어진 다리 송파교가 보인다. 구곡교보다는 근래에 지어진 다리인지 이곳은 직선으로 이루어졌다. 역시 운치는 조금 떨어진다. 이 다리를 넘어서도 나가는 출구가 있다. 들어 올 때는 입장료 5위엔을 내야 한다. 이전에 회사에 근무할 때 사장님과 후문을 통해서 걸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까마득한 아름다운 추억이다.
후문으로 나가면 가장 명당자리에 도교사원이 있어 혜주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여기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많다고 한다. 도교사원 오른쪽으로 나가면 대로가 나오는데 LG대로(大道)이다. 2002년 내가 혜주에 발을 디디던 해에 혜주시정부에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때는 혜주시정부에서 투자를 위해서는 뭐든 하던 시절이었다. 투자설명회를 하기 위해서 광동성장까지 한국에 갔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나도 가서 1억불 사인을 하고 혜주신문, 방송에 뜬 적이 있는데 이후로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이 대로가 지금은 주위에 워낙 발전되어 빛이 좀 바랜 느낌이 든다. 하여튼 이곳이 한국의 위상을 높인 역할을 하였다.
혜주 서호의 볼거리는 아직도 많다. 몇 번 서호에 왔지만 찾을 곳이 많이 남아 있다. 소개를 하자면.. 호산(弧山), 풍산(豊山), 봉산(鳳山), 자미산(紫薇山), 비아령(飛鵝嶺), 점취주(點翠洲), 백화주(百花洲), 부벽주(浮碧洲) 등 푸른 산과 섬들이 서로 교차되고 제교와 정자, 사원, 원림이 서로 어울려 구름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혜주서호는 명나라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미 유명한 혜주서호14경(十四景)을 이루었단다.
혜주서호 14경으로는 옥탑미란(玉塔微瀾),소제완월(蘇堤玩月),상령운비(象嶺云飛), 유단점취(留丹点翠),방화추연(芳華秋?),화주화우(花洲話雨),홍면춘취(紅棉春醉), 여포풍청(?浦風淸),서신피서(西新避暑)호산소적(孤山蘇適),비아람승(飛鵝攬勝),풍산호기(豊山浩氣), 남원록서(南苑綠絮), 수렴비폭(水簾飛瀑)이다. 혜주 14경은 모두가 한 폭의 그림과 한수의 시와 같아 사람들을 흡인한다. 나는 아직 다 둘러보지 못하였지만 조만간 찾아 볼까 한다.
또한 혜주서호는 역사적으로 우수한 인물이 많이 나오고 인문경관이 많다. 역사상 소동파를 대표로 하는 400여 명의 문인들이 혜주를 찾아 서호에 감탄을 표시하면서 많은 고귀한 문화유산을 남겨 놓았다. 근대 혁명의 선구자인 손중산(孫中山), 요중개(廖仲愷), 등연달(鄧演達)과 중국공산당인인 주은래(周恩來) 등이 모두 혜주성에서 서호기슭에서 혜주인민들과 함께 성세 호대한 혁명활동을 진행하고 빛나는 혁명의 발자취를 남겼단다. 그래서 고산 뒷편에 혜주를 빛낸 분을 모신 경현사(景賢祠)라는 사당이 있다.
서호를 따라 맨 안쪽으로 가면 왼쪽에 소동파 고택이 위치하고 있다. 4각으로 구성된 기와집이다. 여길 나와 조금 더 가 경비실을 살짝 벗어나면 왼쪽 계단을 오르면 준제선사(准提禅寺)라는 사찰이 있다. 이전에는 문을 닫았다가 다시 정비하여 개방을 하였다는데 많은 참배객들이 들러는 곳이다. 혜주 서호를 다 둘러 볼려면 하루는 꼬박 걸린다. 넓은 면적에다가 굽이 굽이 물로 채워져 있어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
오늘은 오후 늦은 시간에 서호에 도착하는 바람에 소공파 고택(古宅)을 둘러보고 바로 서둘러 나온다. 겉치레로 본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여태까지 본 서호를 배경으로 여행기를 적어 본다. 서호와 혜주의 밤을 밝히는 전등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혜주의 야경인지 나는 일행들에게 오늘 저녁에 야경을 꼭 감상하시라는 당부도 한다. 그래서 혜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광이 좋은 강티호텔로 예약을 해 두었던 것이다.마지막 비밀 무기인 셈이다.
늦은 식사시간이지만 한국으로 가져갈 선물을 사기 위해 서호 정문 길 건너 교서(橋西)시장으로 간다. 우왕좌왕 다소 혼란스러움도 있었지만 가게를 나누어 흥정을 해 가면서 잘도 산다, 대부분 잣을 주문한다. 다른 농산물도 있지만 한국보다 싸고 품질이 괜찮는 모양이다. 나도 상점 주인과 흥정을 하고 거둘어 준다. 중국은 모든 물건을 저울로 정량을 달아 판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수박을 쪼개 달아 팔 정도니 혼자 생활해도 낭비는 거의 없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치는 상점들인데 오늘따라 왜 그리 농산물이 많이 보이고 좋게 보이는지… 관심을 기울이면, 뭐든 새롭게 보이게 되나 보다.
교서(橋西)시장에서 10여분을 가면 저녁 식사 장소가 있다. LG대로 쪽으로 가야하는데 차선 변동이 많아서 안내를 잘못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실수를 했다. 식당이 있는 골목 위치가 헷갈려 다시 차에 내려 확인하는 바람에 또 늦어진다. 식당에 전화했더니 길 입구에서 기다려 우리를 맞아 준다.
이 식당은 몽기(蒙記,멍지)라는 광동 해물요리 전문점이다. 요사이 혜주에 맛좋은 음식점이 많이 생겼지만 멍지 음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오늘의 마지막 밤을 위해 싸고 맛있는 매뉴를 주문해 놓았다. 식당내부도 깨끗이 새로 장식을 하였다. 일행분들이 VIP룸에 입장하더니 탄성이 나온다. 2개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테이블을 돌려가면서 먹으면 음식이 뒤따라 줄줄이 나온다. 이 정도의 인원이 되어야 광동요리를 다양하게 맛 볼수가 있는 것이다. 한두 사람이 온다면 차라리 한국식당이 훨씬 낫다. 이전에 노키아 공정심사 패스하고 기분 좋아 한잔 하던 바로 그 VIP룸에 일행들과 함께 온 것이다. 옛 추억을 더듬으니 더욱 기분이 좋고 일정을 마무리 하는 시점이라 생각하니 한편 섭섭하기도 하다. 늦은 시간이라 시장하여 얼마나 맛이 있던지 거의 남김이 없다. 25명이 3,150위엔.. 우리나라 돈으로 6십만원 정도… 매우 싼 견적이다. 좀 유명한 요리를 몇 개만 추가해도 상상 못할 금액이 요구된다, 광동요리 가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2 시간 가량의 만족한 식사시간을 보내고 강티호텔에 와서 체크-인을 한다. 강티는 서호를 배경으로 4년 전에 조성된 5성급 호텔이다. 현재로는 혜주에서 가장 고급이다. 내년 초에 문을 열 동강변에 짓고있는 40층짜리 푸리호텔이 오픈하기 까지는 이곳이 최고다. 40% D.C를 하여 트윈에 500위엔. 한국 돈으로 8만5천원. 서울의 모텔 값도 안 된다. 짝을 지어 방을 배정 받고 여장을 푸는 것을 보고 나는 밤1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늦게 귀가를 해서도 잠을 잘 수 없다. 항상 일이란 마지막 마무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족, 친지, 아는분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자료가 필요할 것 같아 다녀온 상세 일정과 사찰 자료를 다시 편집하여 오신분들(21명)에게 줄 자료를 인쇄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되어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아침 일찍 호텔로 환송을 가기 위해 5시에 눈을 떴다. 회사 갈 준비를 하고 6시 30분경 2층 호텔 식당으로 가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혜주의 마지막이 너무 좋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신다. 어떤 분은 홍콩 야경보다 혜주 야경이 훨씬 좋다고도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는데 처음 오신 분들이 그런 판단을 하고 있으니 그럴 듯도 하다. 서호는 구석 구석 전등을 숨겨 놓고 밤이면 밝히고 큰 아파트 지붕위에는 형형색색의 전등이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특히 동강 다리 위에는 밤마다 불쇼가 연출되어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를 구경하기 위해 저녁에도 유람선이 2번이나 운행을 한다. 이런 혜주의 야경을 밤새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만든 자료를 일행들에게 건네주면서 심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작별을 고했다. 다음에 개인적으로 또 오실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도 하고, 전화번호, 메일 등을 자료에 함께 추가해 드렸다. 여행 일정 내내 함께한 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지 마음 한구석 허전함이 밀려온다. 아무쪼록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결실이 앞으로의 수행정진에 많은 보탬이 되길 빌며, 3박 4일 간의 여행후기를 마감한다.
'惠州西湖'라는 거대한 편액이 걸린서호 정문이다. 혜주시내에 위치해 있어 혜주시민이라면 언제든 서호를 드나 들 수 있다.정문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서주탑,구곡관,동파기념관을 관람할 때는 관람료를 내고 들어 가야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승용차주차장을 지나면 오른쪽에는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나오고..양쪽의 나무가 어울어진 길을 따라 왼쪽은 풍호,오른쪽은 평호로 갈라진다. 조금만 가면 서신교 다리를 건너면 서주탑이 나온다.
서주탑..보탑(寶塔)이라고도 부른다. 원래의 이름은 대승탑이였단다. 소동파가 혜주로 올 때 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단다. 보탑은 전목(塼木)구조로 되었으며 서호의 제일 높은 건축물이다. 당(唐)나라 때 사주대승가(泗洲大僧伽)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서주탑에서 내려다 본 서호 풍경..뒤에는 강티호텔과 금년 연말에 오픈하는 혜주에서 가장 좋은 5성급 푸리 호텔이 보인다
서주탑에서 바라본 점취주(點翠洲)로 연결한 구곡관..
구곡교가 있는 구곡관(九曲观)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이 구조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직선 형태의 다리가 아니고 직각으로 꺾어진 채 이어져 있다. . . 그 길의 끝에는 작은 섬, 점취주가 있다. 점취주에는 별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입구에 멋드러지게 늘어진 나무가 보물이다
점취주에 있는 가지가 양사방으로 뻗은 고목수... 누구라도 올라가 사진을 찍고 싶다
소동파 동상
동파기념관으로 2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소동파가 다닌 중국 지방 행선로
왕조운의 석상 옆에는 묘가 있다
주말이면 서호호수에 뱃놀이를 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연인끼리 페달을 밝고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서주탑과 서호 호수와 정자의 아름다운 풍광..
풍호쪽에 위치한 혜주시정부 영빈관이다. 뒤에 리르 (麗日)백화점이 보인다.
동파가 살았던 고택
준제선사(准提禅寺)라는 사찰.(불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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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헤능 대사 수행 도량을 따라 함께한 여행을 제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서호가 있는 혜주에서 여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후는 혜주에 관련된 여행 정보를 소개 하겠습니다.
잘 다듬어진 좋은 글,좋은 사진들,잘 읽고 있습니다. 혹 시간이 되면 혜능 선사의 발자취 꼭 한번 가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과 정보 부탁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