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으면서 길옆 곳곳마다 병아리 주둥이 같은 개나리꽃이 화사하게 종종거리고, 곱게 단장한 목련도 하얀 미소를 보내며 길손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렇게 꽃마중을 받으며 한참을 달리자 시원스런 바다가 보인다. 부안의 바다, 새만금의 바다가 봄볕에 몸을 기대고 사그락사그락 소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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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갈매기 모양의 솟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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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이따금 바다가 봄볕에 눈이 부신 듯 뒤척이면 새들이 하르륵 끼욱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물비늘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바다의 몸으로 떨어진다. 평화로운 정경이 저런 것이구나 하며 눈을 돌리니 형형색색의 만장들 가운데 다양한 솟대들이 서 있다. 장승도 넉넉한 웃음 가득 서 있다. 딸아이가 신기한 듯 "와" 하며 달려간다.
솟대들은 여러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 모양의 솟대는 바다를 향해 있고, 갈매기 모양의 솟대는 저 멀리 방조제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뭍을 보고 있고, 어떤 것은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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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무엇을 염원하고 있는 것일까? 왜 저 솟대들은 바다 한 곳이 아닌 하늘과 바다와 뭍을 보고 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기며 솟대의 숲 속을 걸어보았다. 본래 '솟대'는 삼한 시대에 소도에 세워져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의 안녕이나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우기도 했다.
요즘은 집 대문 앞에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바닷가 갯벌에 세워진 '솟대'는 무척 드물었다. 그것도 단순한 관광용이 아니라 무언가 염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들을 담은 솟대. 그 솟대들은 바다의 꿈이요, 갯벌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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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과 솟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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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그러나 내 눈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게 있다. 난파선 같은 모습으로 하늘에 걸려있는 '새만금호'라는 붉은 글씨를 달고 있는 배 한 척이다. 배를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장승과 솟대 사이를 뛰놀던 딸아이가 어느 결에 다가와 손을 잡더니 배를 보곤 묻는다.
"아빠! 왜 하늘에 배를 올려놨어요?" "응, 글쎄. 니가 생각해 보렴. 왜 하늘에 걸려 있는지."
아빠의 재물음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딸아이가 의외의 답을 한다.
"저 배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가고 싶은가 봐. 바다도 가고 하늘도 가고… 그런데 배가 왜 다 떨어졌어요? 구멍도 나고… 그럼 하늘도 못 날고 바다 속으로 빠져버릴 텐데. 아빠, 그치?" "그래, 그렇겠구나. 이제 저 배는 망가져서 하늘도 못 날고, 바다에 가지도 못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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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쓸쓸히 떠 있는 새만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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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새만금호'라는 그 배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세워진 듯 파손된 채 하늘 한가운데 쓸쓸하게 떠있었다. 새만금 공사를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의 무너진 소망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새만금 공사가 전북의 희망이고 꿈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사가 완료되면 전북은 아주 잘 사는 곳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환경도 살고 개발도 하고 해서 정말 잘 사는 도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단군 이래 가장 어렵고 큰 사업이라는 새만금이 훗날 후손들에게 꿈이고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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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로이 떠있는 물새 너머 방조제 공사 현장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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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헌데 평온한 바다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새들을 바라보려니 그 희망이라는 것이 왠지 모를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새들의 모습은 평화롭다. 허면 저 바다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저 새들은 알고 있을까? 앞으로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나의 상념을 깨우듯 딸아이가 내 손을 잡고 물가로 가자고 한다. 물빛이 맑고 투명하다. 바다가 아닌 무슨 호수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한 발자국 물 속에 발을 디디니 겨우 발목을 올라온다. 작은 바람에 찰랑거리며 물 부딪치는 소리가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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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저렇게 날으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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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딸아이가 "아빠, 바다 속이 다 보여" 하며 돌멩이 하나를 들어 바다를 향해 던지자 작은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작은 파문이 일자 새들이 파르르 날아오르다 금세 내려앉는다. 또다시 던지자 새들이 날아오른다. 신이 난 듯 딸아이가 "야호! 이리 와"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 새들이 끼룩끼룩 거린다. '싫어. 우린 여기가 더 좋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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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솟대의 소망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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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새들이 날아오르는 수평선 저편에 방조제가 보이고, 공사 현장도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물결이 잔잔하고 호수 같은 느낌이 든 이유가 저 방조제 때문인가 보다. 바다를 막아버리면서 바다는 호수가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 호수, 그럼 호수 다음엔 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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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진 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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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딸아이와 물가를 따라 걷는데 작은 어선 하나가 반쯤 기울어진 채 떠있는 게 보였다. 조금 세찬 바람만 불어도 침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울어진 배 위로 새만금 공사를 반대하던 어민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되어 왔다. 어쩌면 그들의 작은 꿈도 하늘에 걸려있는 난파선 같은 배처럼, 저 바다 위에서 기울어진 어선처럼 무너졌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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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딸아이와 사진을 찍고 자동차로 오는데 관광버스 한 대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다. 그들은 우르르 솟대와 장승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다. 한 아이에게 엄마인 듯한 사람이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을 뒤로 하고 5분 정도 변산 방향으로 차를 모니 새만금 전시관이 보인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려고 방향을 트니 경찰이 가로막는다. 못 들어간단다. 왜 못 들어가냐고 물으니 높으신 분이 와 있단다. 그럼 안에 있는 관광차나 승용차는 뭐냐고 하니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지금은 못 들어간다며 그냥 가시라고 친절함까지 베푼다. 은근히 화가 올라 대체 그 높으신 분이 누구냐며 따지듯 묻자 웃으며 또다시 친절함을 베풀어 준다.
"행사가 한 시간 후면 끝날 것입니다. 한 시간 후면 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때 오세요." "아니 대체 어느 누가 어떤 비밀스런 행사를 하기에 못 들어갑니까? 대통령이라도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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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과 솟대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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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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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도 왔냐고 묻는 소리에도 그냥 지금은 못 들어간다고만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나오는데 영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러고 보니 좀 의문 나는 게 있었다. 부안에 들어서자 무장한 군인들이 곳곳에 서서 오가는 차량들을 감시하기도 하고 통행을 안내하기도 했었다.
오늘 새만금 전시관에서의 행사와 군인들과의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씁쓸했다. 어느 높으신 분의 비밀스런 행사에 전시관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변산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딸아이가 "아빠, 왜 못 들어가게 해?" 하는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친구 블로그에 마실 다니다 요새 그분들이 찍은 솟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떠오르는 게 있어 포스팅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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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 님이 찍으신 파주 심학산 '돌곶이의 솟대'. http://blog.joins.com/wy0115/8135100
예스런 전통에 맞게 다산, 풍요의 상징인 오리가 그 위에 놓여져 있다. 저 푸른 하늘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내 기억으론 파주 헤이리에도 최병수 작가가 만든 솟대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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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님이 여행길에 찍으신 제주 '우도의 솟대'. http://blog.joins.com/pearl39/8125271
내 생각으론 개펄 체험과 마찬가지로 '솟대 만들기' 체험행사에서 사람들이 만든 걸 전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제주 솟대 역시 풍어와 액땜(그리고 특이하게는 몽고 등 외세의 침략 방지), 마을 경계 등을 모티브로 하는데(돌하르방의 생김새가 남자 성기의 모습이라면, 솟대에 매단 헝겁은 여자의 치마폭을 연상케 한다), 체험 행사에서 만든 거라면 여기에 현대스런 기복(부자 되기, 자녀의 학업 기원 등)이 더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오리나 기러기 대신 물고기 모습의 조각들을 대에 얹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유래했다고 하는 북아시아권의 솟대 문화는 조선반도 남단, 특히 제주, 호남지방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조선반도 북단에서 눈에 뜨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 솟대는 샤머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을 세우는 것은 대개 풍요, 다산, 액땜을 기원하거나 장승이나 돌하르방 처럼 마을의 경계를 짓거나, 주술의 힘을 빌어 외세의 침략을 막아보자는 순진한 바람에서 나왔다. 요새는 각 지방의 축제마다 솟대를 만들어 세우는 통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정 삼청각에서도, 안면도 꽃지에서도, 온천리에서도 솟대를 본 기억이 난다.
내 기억 속의 여러 솟대들 가운데 아래 최병수 님의 작품들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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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황새울의 영농단에 그려진 벽화, 최병수의 <새벽 닭>. 그 위에 현장미술가 최병수의 <경운기 솟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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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을의, 최병수 <미사일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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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만든 대추리의 솟대들. "우리의 땅, 누가 찝적대!"하고 외치는 것 같다. 그들, 그리고 우리들의 염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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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개펄에 세워진 최병수의 솟대 아,여기도 바닷가라서 그런가? 막대 위에 기러기 말고도 꽃게, 물고기 등이 보인다.
위의 솟대들은 리얼리즘의 향기가 물씬 나는 작품들이다.
로맨티시즘이 깃든 솟대가 있는 곳, 그 가운데 한 곳을 소개한다면... 아래는 덕소 근처. 잠깐 다녀오던 길, 여기서 차 한 잔 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이미 청평에서 마셨기에 다음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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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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