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몸치의 댄스일기17 (초기중독증세)
(2003. 6. 24)
전에는 혼자 연습했던 것들 강습 받은 일들이 모두 게시판에 올릴 글의 소재였고 내용들이었다. 그만큼 댄스에 관해 호기심이 많았고 내 자신이 그걸 한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근데 요즘은 내가 겪은 연습 내용도 강습 내용도 글 쓸 거리가 못 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글을 올리는 일이 이제 시큰둥 해져버린 탓도 있겠고 처음과 달리 나의 경험이 별 얘깃거리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다 겪어야 하는 과정이고 절차일 뿐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사건이라 흥미거리라구 하는 생각부터 든다.
처음에야 나 혼자만 그렇게 하는 줄 착각했고 또 대단히 별 해괴한 짓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닌 걸 가지구 나 혼자만 호들갑을 떤 그런 기분.
요즘도 난 시간만 허락되면 내가 즐겨 찾는 연습장에 가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왈츠 베이직을 길게 연습하구 스텝도 반복적으로 밟아 보구 루틴도 연결시켜 보고 하는 짓이야 초기 입문시기와 비슷한 발광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그치만 그게 나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한 가지를 배우고 습득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고는 그런 내용을 남들이 보라고 게시판에다 올리는 것조차 어째 좀 그렇다.
말부터 앞서는 인간치고 제대로 끝장을 못 보듯. 나도 이제야 아이쿠 하는 심정이 든다. 도대체 무슨 알맹이로 100회까지 연습일기를 올린단 말인가. 매번 어디서 무슨 연습을 얼마동안 하구 또 무엇을 했다 이렇게 쓸까.
초등학생 방학숙제로 일기쓰기가 주메뉴인 걸 우리 아이한테서도 느꼈고 나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며칠은 거창하게 몇 장 쓰지만 나중에는 도저히 쓸 꺼리도 생각나지 않고 꾀도 나구.
어쩔수 없이 오늘은 숙제하고 놀았다. 오늘은 놀다가 공부하고, 그리고 일찍 잤다 든가. 오늘은 날씨가 맑았네 어쩌네 그것도 며칠이지 그 다음부턴 아예 쓰지도 않던 기억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기 땜에 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고민을 하기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겨울방학인가 여름방학인가 하여튼 어느 방학 때 이미 이전 학기에 써놓은 일기를 학교에 제출해서 검사까지 받은 것이었는데, 계절이 바뀐 다음 학기의 방학일기로 날짜만 바꿔서 제출하도록 제안해주니까 아무것도 아직 모르는 저학년 때라서 녀석이 좋아 하면서 정말 그렇게 해버렸다.
겨울방학 때 날씨 난에다 눈이라고 써놓고 일기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어쩌고 저쩌고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걸 여름방학 때 날짜만 고쳐서 여름방학 일기인양 여름방학 과제물로 정말 학교에 제출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 고학년이 되어서도 또 일기 타령을 하기에 내가 그 방법보다 한 수 더한 수법을 제안했다.
예전에(작년에 쓴 일기)를 또 연도와 날짜를 고쳐서 제출하라고 했더니...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정말 우리 친아빠 맞어? 하고 처량하고 불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 적이 있었다.
난 녀석을 골탕 먹이려다 작전이 안 먹혀들어서 실망했지만 성장하니까 녀석의 돌머리도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겨 있었다.
이제 내가 그 꼴이 되어 버렸다.
공개 게시판에다 100회까지 어쩌구 저쩌구 말부터 앞서서 떠벌거려 놓고는 이제 쓸 건덕지도 못 찾겠고... 맨날 하는 연습이 그게 그거고...
이것 참!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글타구 누가 강제로 써달라고 한 것도 아니구 물론 내가 글쟁이라서 그걸로 밥 먹고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은 내 무덤을 내가 판 꼴이 된 셈인데....
누가 하란 것도 아니었구 이제 와서 발뺌하기도 뭣하구 증말 난감하구먼...
무슨 취미건 나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대부분 홀딱 미쳐버리는 경향이 강했다. 남들이 하는 걸 보면 다 멋있어 보이고 엄청 재미있을 것 같구.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들 잘 하는 줄 알구 나도 시작만 하면 곧바로 그렇게 될 줄 알구 겁 없이 덤볐다가 금방 싫증 내구 중간에 포기해 버리구.
그들이 얼마나 고수인지 입문해보고야 알 수 있었다.
글구 그만큼 고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돈 투자 그걸 깨달을 정도까지만 되면 나가떨어지는 게 내 특기인데....
아직은 댄스에 싫증을 느끼지도 느껴질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스럽다.
싫증은커녕 도리어 약간씩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빠져들고 묘미를 느끼고 지금은 단지 글을 올릴 내용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바둑에 미친 사람 낚시에 빠진 사람 골프에 미친 사람 등등. 많이 봐왔고 나도 다 접해봤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것들은 중단 상태다.
어쨌든 마약중독 알콜중독 도박중독 이런 것들 보다야 무슨 취미든 취미생활 쪽에 미치는 게 경제적으로든 인생 가정 가족들한테는 훨씬 다행스런 일일 게다.
난 단지 니코틴 중독이라서 그게 큰 골칫거리일 뿐이긴 하지만. (이것도 엄밀히 말해서 마약중독인 국가에서 허가 난 인정해주는 중독이라서 그렇지.)
이제는 아무래도 댄스 아니 좀 더 정확히 구분하자면 왈츠한테 초기중독 증세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하마터면 테너 색소폰에 중독될 뻔 했는데... 그것보다 왈츠가 아무래도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혼자서 기본 박스 베이직을 해도 힘이 들어도 힘 든 줄 모르겠고...
내추럴 스핀턴을 해도 재미있고... 더블 리버스턴을 반복해도 어지러워서 마룻바닥이 빙글빙글 천장이 뱅글뱅글 돌아도 계속 하고픈 욕구와 의욕이 더 생기니 말이다.
미국에서 게시판의 내 글을 보시고 격려해주시는 어느 분의 글에서처럼 그런 한 동작을 최소한 수 천 번을 연습해야 된다는 글귀가 자꾸 귓전에 맴돌다 보니...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언제까지 그 분의 이론대로 그 연습 횟수를 채우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갈 뿐이다.
그러다보니 무조건 무대뽀 전법으로 무식하게 단순반복 동작을 되풀이 하게 되는데... 사실 난 그게 무지하게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이 어떤 중독 초기 증세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미쳐가지 않구 빠져들지 않구 중독증세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한 가지의 단순 반복 동작도 연속적으로 계속 하니까 재미가 있어진다. 이거 정말 웃기고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변화 없고 단순반복 동작이 얼마나 지겹고 싫증나고 무료한가. 다른 일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았다.
근데도 난 왈츠에 관련된 가장 단순반복 동작도 아직까지는 싫증도 안나구 지겹지도 않구 할수록 점점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 뿐이다.
장소 공간만 확보 된다면 나 혼자서 왈츠 음악에 맞추어 틀리거나 말거나 혼자서 스텝과 루틴 연습도 참으로 재미있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선배 고수님들의 의견은 혼자서도 재미를 느끼는데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파트너와 음악에 맞춰 홀딩하고 하면 이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황홀감과 오르가즘까지 맛본다는데... 난 아직 그 수준도 아니거니와 그런 파트너도 없고 파트너가 있다손 치더라도 아직 음악도 못 맞추고 홀딩하는 자세도 잘 모르고 리드도 못 하구. 스텝도 모르구 더군다나 스텝들이 조합인 루틴은 더더군다나 모르니. 그런 말씀은 나하고는 거리가 먼 다른 세상 얘기일 뿐이구.
난 그렇게 하지 않구서도 이미 황홀감 무아지경 다 맛 본 상태다. 단지 그놈의 오르가즘이란 것만 아직 왈츠 연습하면서 접해보지 못했을 뿐이지.
혼자 해도 얼마나 재미있고 황홀하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데... 이 말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고 믿어줄까 싶을 정도다.
연속적으로 약 한 시간 정도씩 베이직을 연습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왈츠의 기본 루틴을 계속 연습하면 처음에야 음악도 맞았다 안 맞았다 내 맘 대로지만 연속적인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안 맞추려고 해도 저절로 맞아 떨어진다.
근데 선생님 앞에서나 강습 시간에 일부러 음악을 맞추려고 의식하면 자꾸 틀리고 음악 박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구. 그것도 아직 경험부족의 초보자의 징표일 게다.
아무튼 나 혼자서 그렇게 지속적인 연습에 몰두하다보면 혼자 도취 되는 걸 보면 왈츠는 흡인력이 엄청난 모양이다.
난 혼자서 루틴연습을 할 때도 사실은 내 마음속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온갖 상상과 환각 속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도 되구 동화속의 왕자도 되어 보구. 세상에서 가장 잘 나고 돈 많은 부호도 되어보구. 그런 나만의 멋진 세상을 그 순간에 접해볼 수 있구 내 마음대로 나만의 환상세계로 빨려드는데. 왜 굳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파트너가 있어야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습용 파트너들도 앞에만 있으면 공연히 긴장 되구. 나 혼자서는 잘 하던 스텝과 루틴도 헷갈리구 신경 쓰이구 음악도 더 맞추기 어렵구.
사실은 내가 하수다보니 고수 숙녀님들이 날 잡아줄 이유도 없을 테니까... 매번 나보다 조금 더 잘 하거나 나랑 비스무리 한 수준끼리 함께 버벅대니 아직은 내가 홀딩하고서 재미를 느끼기엔 시기상조임이 분명할 게다.
지금 나의 희망은 어떻게 시간적 여유만 좀 마음대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곳저곳 공간을 기웃거리며 아무데서나 연습을 좀 더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난 매번 왈츠의 기초 연습에 대한 갈증과 욕구불만을 해소할 길이 없다.
입문 첫 시점에서 내가 왈츠에 대해서 너무나 한이 맺혔고 원한이 사무치기에 내가 이놈의 왈츠만은 반드시 어느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갈고 닦아 보고 싶다.
글구 나두 어느 정도 왈츠의 고수가 되면 두고 봐라. 내가 아무 하고나 왈츠를 추나... 내 마음에 안 들면 나도 아무 하고나 절대루 절대루 맹세코 내가 왈츠를 안 춘다. 정말 글케만 된다면 나두 좀 비싸게 놀아야지. ㅋㅋ... (사실은 하두 한이 맺혀서 한 번 해본 소리임. ㅎㅎ.... 글치만 올챙이 적 시절의 설움과 기억은 몽땅 지워 버리구 난 처음부터 고수인척 놀아야지...ㅋㅋ)
글치만 당분간은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그런 기대는 꿈으로 끝날 것만 같다. 그 정도로 연습해서 익힐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다른 여건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좋아 고수가 안 되어도 지금처럼 나 혼자서 즐기면 되니까... ㅎㅎ...
[댄사모] 댄글
cbmp
강변마을님 머지않아 고수가 될것 같은데요............. 03.06.24 08:26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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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24 다음카페 [사즐모]에 “예전글”이란 제목으로 재탕으로 올렸던 댓글.
댓글
이별없는세상 07.01.25 09:05 첫댓글
왈츠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저로써는 무자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어느 곳이건 장소만 주어진다면 원 없이 연습하고픈 여인입니다.. 청노루님 글에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답니다.
겨울나그네 07.01.25 09:27
글거리가 매일같이 일기쓰듯 있는 것은 아니지요.....특히 왈츠 연습은 질루하게 이어지기에 글거리가 많질 않네요....ㅎㅎ
허둥지둥 07.01.25 18:39
노루님 저는 지방에 사는디 얼마 전 서울 무도장 갔었는디 파트엄씨 나 혼자 솔로로 배운 왈츠를 한번 해 보겠다고 잡았는디 스탭 몇 번 몬나가고 "아줌씨하는 말 미안합니다 " 왈츠라는 것이 혼자 하기는 참 힘듭디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왈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지 노력이 필요 허것습디다.
눈동자2 07.01.26 01:51
진정한 메니아는 쏠로 댄스에서도 댄스가즘을 느껴야 하는데 언제나 그런날 오려나~~ㅉㅉ 청노루님 너무 비싸게 보여서 감히 신청 한번 못하네요, 나두 열심히 노력해서 좀 비싸게 놀아야지??(허~걱...그런 날이 오기는 할려나???) 가슴에 남는 글 잘 보고 감니다. 다음 글 기다리며 즐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