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三聖記全 下篇(삼성기전 하편). ―25
4. 관경 : 관할하는 경내를 뜻하는 매우 막연한
경계 관념이지만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보여주는 말로
온 <누리>라는 말의 <누리>의 뜻이 담겨 있다.
<滿洲源流考(만주원류고)>에 珠申(주신)이라는 말은
所屬(소속)관경을 뜻한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주신>이 곧 肅愼(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기도 하다는 뜻이니,
우리 선조의 기개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 피붙이가 터잡고 사는 땅,
온누리를 <주신>이라 한다는 뜻이다.
民世(민세) 安在鴻(안재홍)은 심지어 <주신>은
한님이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赐,사. 하신)>
땅을 뜻하는 <주신>이라고 해석했거니와
<아침 해가 조용히 비친다>는 뜻의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는 종래의 조선국호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코믹한 말인가를 알 수 잇다.
5. 화백 : 신라 때의 화백제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때 벌써 <화백을 주관하여>라는 말이 있으니 놀랍다.
<隨書,수서> 新羅伝(신라전)에 "共有大事則聚群官 詳議而完之
(공유대사즉취군관 상의이완지)"라고 있고
<唐書,당서> 新羅伝(신라전)에 "事必與衆議號和白 一人異則罷
(사필여중의호화백 일인이즉파)"라 한 것을 보면
화백회의는 중대 사건이 있어야 개최된다는 것.
회의의 참석자는 보통 인민이 아니고
群官(군관) 즉 百官(백관)이라는 것.
또 여기서 한 사람의 반대라도 있으면
결정을 짓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의할 때에는 신라 고유의 신앙과 결부된
경주 주위의 네 영산인 동쪽의 청송산, 남쪽의 오지산,
서쪽의 피전산, 북쪽의 金剛山(금강산)에서 하였던 것이다.
화백은 귀족뿐 아니라 전 사회에 널리 행아였고,
각계의 독재력 발생을 억제하여
국가의 완전성을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으니,
이를 南堂会議(남당회의)로 보는 이도 있다.
아뭏든 민주주의의 모델은 바로 한국사의 화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6. 삼한 : 여기 韓(한)은 나라가 아니고 汗(한)
즉 세 임금을 뜻하니 辰(진), 番(번), 莫(막)의
세 조선을 통치하는 임금을 말한다.
7. 단군 : 檀(단)을 옥편에서 찾아보면 박달나무 檀(단)과
반음절을 時戰切(시전절)이라 적은선의 발음도 있으니
단과 선의 두 가지 발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單于(단우)라 적고 이를 반드시 선우라 읽는
흉노왕의 호칭이나 禪(선)의 古子(고자)가 䄠(선)인 점도
참작하여 단보다는 선으로 읽음이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편 대종교의 예배의식을 䄠儀式(선의식)이라 함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저 우리의 삼신신앙은 예로부터 한( 桓 :天, 한:천),
감 (地神,지신. 혹은ㄱ,ㅁ), 선 (人神,인신)의 세가지 신칭이
고유한 우리 말로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은 하늘 → 하느 →한의 줄인말로
ㄱ,ㅁ→곰 →儉(검) →固麻(고마)→蓋馬(개마)로,
그리고 人神(인신)에 해당하는 말로
선 → 仙(선) → 禪(선)으로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따라서 선이라는 발음은 정작 한문으로<仙,선>자를
쓰면서 잊혀져 간 듯하다.
중국 사서에서도 天一(천일), 地一(지일), 太一(태일) 가운데
太一(태일)이 最貴(최귀) 라고 하여
人神(인신)인 선이 제일 귀한 신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人神(인신)이야말로 하늘, 땅을 다 포함한
삼위일체의 신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 人神(인신)을 우리의 고유한 발음으로
선이라 했던 것이다.
하늘(=桓仁. 한인, 한님 )의 피를 받아 ㄱ,ㅁ님(땅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한님의 아들인 단군은 곧 선이니
그를 단군이라 읽을 것이 아니라 <선군>이라
읽음이 옳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우리는 모두 <선군>의 후손이니
우리 또한 혈관 속에 한님의 피가 흐르는
한님의 아들 곧 한님임에 틀림 없다.
송아지는 황소의 아들이지만 송아지도 소(牛,우)요
황소도 물론 소이다.
이처럼 한님의 아들인 선군의 피를 받은 우리 또한
모두 한님이요 선군이다.
한국의 신앙관은 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하다.
진리는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데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복잡한 도그마나 교리 속에 갇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아니 "내가 곧 한님 하느님이다" 하는
소박한 신앙관이야말로 한국 종교의 알맹이인 것이다.
신은 외부에서 찾지말라.
<나>는 肉我(육아)와 神我(신아)의 둘이 있으니
육아의 껍질을 벗으면 神我(신아)가 드러난다.
우리 종교는 이 육아를 벗는 수업을 뜻한다.
종교의 지도자도 스승도 필요 없다.
내 속에 있는 한님을 찾아 내는 것이
곧 신앙이요 종교인 것이다.
천도교의 人乃天(인내천)신앙이 사실은 진리인데,
신을 외부에서 찾던 종래의 신앙관 때문에
人乃天(인내천)이라는 신앙이 한동안 많은 박해를 당하고
이단으로 지탄되는 웃지 못할 한국학의 비극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國祖(국조)단군은 사실은 국조 䄠君(선군)이라 해야 함도 모르고
단군교, 대종교로써 한국사를 연구 신앙하는
뭇한국 사람들의 희극도 이제 중단될 때가 왔다.
단군이 아니고 <선군>이다.
최초로 인신의 경지를 터득하신 국조를 <선>으로 추앙하며
우리 또한 그의 후손으로 <선>됨을 자각하는
한국 종교의 오묘한 신앙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한국 신앙의 회복>.
지금 우리 민족에게 이 보다 더 큰 과제는 가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이를 육체의 靈化(영화)
또는 육체의 완성이란 지극히 고운말을 써 왔다.
우리 모두 육체를 영화시켜 영화 육체를 완성하자.
그것이 한님, 한웅, 선군(단군)이 역사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보여주신 지극히 높은 차원의 종교적 시범이었으며,
또 가장 소박 단순한 종교적 계시였기도 하다.
이 소박한교리를 마음 속에 아로새기는
현대의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숫자가 곧 한국의 GNP에 맞먹는
국가운명 역사발전 지수로 인식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