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이미지 보기와 책 읽기
우리 인류의 가장 소중한 습성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를 중시하는 것은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고, 돈을 모으는 것은 재산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함이다. 또한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들을 남기기 위하여 책을 출판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책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껍질 등지에, 그 후에는 그 종이가 무수히 많은 문화적 집적물을 담아 두는 그릇이 되었으니 그런 기록물들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글을 배운 후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었다. 최소한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지금처럼 늘기 전까지는 그랬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가구 당 1대씩으로 늘자 가장 먼저 가져온 변화는 책을 읽어 들이는 방식의 변화였다. 이전까지는 종이에 쓰인 활자를 눈으로 읽어서 대뇌에 저장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종이가 없어도 저장하는 방식이 개발되고, 그 저장물을 볼 수 있는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인간 상호간의 의미전달이라는 의미론적 요소와 이를 지탱하는 문자의 중요성이 극단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1960년대의 릭라이더가 ‘컴퓨터는 통신’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이후에는 인터넷의 대중화를 통해 인터넷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이전처럼 아날로그 방식으로 움직이던 세상이 급격한 디지털시대로 전환되었고, 급기야는 활자를 대신한 다른 형태가 대두되었다. 곧 활자를 보는 게 아닌 이미지를 바로 보는 방식으로 전환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은 컴퓨터 화면을 먼저 보고 자란 세대이니 활자화된 책에 친숙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따라서 요즘의 학생들은 책을 읽는 것이 옛날처럼 당연한 것이 아닌 특별한 행위가 되었음도 또 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책은 여전히 열심히 읽어야할 당위성을 지닌다. 우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을 이야기하는데는 이미지보다는 언어가 우선하니 그렇다. 인간은 언어와 사고를 통하여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해 나간다. 언어를 통하여 사고하고, 또 사고 기능을 신장시킨다. 또 사고를 통하여 언어로 표현하며 언어 능력을 신장시킨다. 그런데 이미지가 우선하는 세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 태에 언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언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데도 존재한다고 말 할 수도 있을까? 또 한 이미지가 우선한다고 말하면 우리 인간들은 살아 있음을 0과 1이라는 숫자로 기호화된 수학적인 알고리즘 속에서나 확인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수학적인 질서로만 귀결되어지나? 그건 결코 아니다. 만약 수학적인 질서로만 이야기한다면 수학적인 질서로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 부족한 종교와 철학과 예술 행위와 많은 인문학의 범주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과연 우리가 그런 것들을 버리고 살수 있을까? 따라서 이미지 보기는 책읽기의 보조수단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것이 아직도 책이 유효한 이유이다.
다음으로 책은 생각을 자극해 준다. 그것도 텔레비전처럼 말초적이고 오로지 재미만을 위한 자극이 아닌 이성과 감성에 자극을 주어서 생각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가령 어떤 사건에 대하여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글을 통하여 상황을 전달하였다고 할 때, 그 상황을 이해하는데 텔레비전은 그냥 화면이 지나가고 말이 들리니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진행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생각이란 엄두도 낼 수 없게 된다. 라디오는 화면이 보이지 않으니 화면을 생각하게 되고, 글은 화면도 소리도 없으니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글을 읽는 것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고, 논리력을 기르는데 가장 합리적이다. 이 것이 또한 다른 매체에 비하여 책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이다.
다음으로 책은 사람의 행동을 능동적으로 변하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화면을 본다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읽는다는 것은 문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니 그건 바로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게 된다.
또 한 읽는다는 것은 의미의 재구성 작업이다. 독자가 초등학교 1학년이든 대학생이든 간에 읽는 과정에 접어들었다면, 글의 의미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의미의 파악은 그냥 읽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우선 독자는 글자나 단어를 판독해야 하고, 글자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다음으로 이들 여러 단어들의 상호관계를 분석하고 종합하고, 더 나아가 이 모든 정보들보다 한 차원 높고 추상적인 중심내용을 찾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독자의 두뇌는 맹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어떤 매체가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며 이런 능력을 배양케 할 것인가? 이 점 또한 책이 유효한 이유이다.
위에서 든 이유 말고도 책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책에 들어 있는 정보도 무한하다. 또한 지금은 책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 권의 책이라도 곁에 두어 두고 볼 수 있으면 한다.
2001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