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찰은 사찰 가운데 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하는 건축물입니다. 진영(眞影)을 모신 건물을 중심으로 할 때에는 원당이라고도 하지요. 그 중에서 궁궐 안에 모신 원당은 내불당 또는 내원당이라고 합니다.
원찰 중에 특히 왕릉을 모시는 경우는 따로 능침사찰이라고 합니다. 능침사찰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조선왕조실록 세종2년(1420)의 기록 가운데, “능침 가까이에 사찰을 세우는 것은 고려 태조로부터 시작되어, 우리 조선에서도 역시 개경사가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어 고려 시대에 이미 능침사찰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세에서의 복을 비는데 불교의 힘을 빌고자 했던 왕실의 요구에 따라 원찰의 한 유형으로서 성립된 능침사찰은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는 물론이고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에서도 여전히 지어졌습니다.
조선시대에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상황에서, 유교는 내세에서의 명복을 기원하는 기복신앙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왕실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 그 역할을 맡아왔던 불교에 의지하여 선왕의 명복 등을 빌기 위한 능침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이러한 불교 의존에 대해 유림 세력이 반대했을 때, 왕실은 유교 규범의 주요 요소인 효(孝)의 덕목을 빌어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왕실의 필요로 인해 건립된 조선시대의 주요 능침사찰을 살펴보면 대략 별첨 자료와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대적으로는 조선 전기에 많이 몰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