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의 역사
한국 탁구는 1924년 일본을 통해 들어왔구요 최초의 시합은 이해 1월에 개최된 경성 일일 신문사 주최의 핑퐁경기이구요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1928년 YMCA에서 제1회 조선 탁구대회가 열리게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올림픽 메달 리스트라고하면 탁구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체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유 남규선수가 같은 대한민국의 김 기택선수를 물리치고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 금메달을 획득헸구요 현 정화, 양 영자 선수가 중국의 첸징, 자오즈민을 물리치고 여자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 이후로는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유 승민 선수가 중국의 왕하오를 물리치고 16년만에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아시안 게임이나 단체전등에서는 우리나라도 좋은 성적을 여러번 거두었죠,,,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탁구가 아시아에서도 어쩐지 일본에게 조차 밀리는 느낌이 들기도합니다.
그리고 사담 몇 마디 덧붙이자면 원래 탁구공은 지름 38mm , 2,5g의 사이즈였지만 랠리가 너무 빨리 진행된다는 이유로 올림픽에서의 퇴출위기에 놓이자 현재의 40mm 2,7g의 공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경기도 21점 5세트에서 11점 7세트로 바뀌었구요.
이로 인해 강력한 스매싱과 쇼트를 앞세운 전진속공형의 선수들은 차츰 자추를 감추게되고 전진속공이라 해도 스매싱보다는 파워 드라이브가 주류를 이루게됩니다. 공이 커지고 무거워지면서 그만큼 공의 속도가 느려졌기때문이죠
게다가 스피드 글루가 완전히 금지되면서 펜홀더 전형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형편입니다.
그리고 스피드 글루는 헝가리의 그람파설과 (구) 유고슬라비아의 슈르베크설이 있는데 보통 그람파 설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처음 스피드 글루효과를 발견한 것은 1970년대 후반 평양대회 직전이었다. 팀 메이트인 요니에르나 게르겔리에게도 이 사실을 숨겼다. ... 중략 동료들과 같은 접착제를 시합때마다 바르고 반쯤 말린 상태에서 붙인 것 뿐이었지만 동료들에게는 특수한 접착제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람파의 후일담 중에서]
그리고 스피드 글루 효과를 발견한 그람파가 이끄는 헝가리가 27년만에우승 탁구레포트지1979년 7월호에는 '예선에서 중국과 대전한 헝가리는 호쾌한 파워 드라이브로 중국팀의 쇼트를 꿰뚫었다.
이전처럼 탁구대에서 물러나지 않고 랠리전으로 끌어들인뒤에도 그람파는 백 핸드와 파워드라이브 요니에르와 게르겔리는 양 핸드 파워드라이브로 중국팀의 쇼트를 무너뜨렸다.
...중략... 이것이 "헝가리는 사상최고의 팀이다"라는 찬사를 듣게했던 그들의 실력이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파워드라이브의 위력은 정말 엄청났었다.
그런데 1972년 일본에서 중학생이 스피드 글루를 흡입, 유럽에서도 스피드 글루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국제탁구연맹의 용구위원회가 "스피드 글루를 사용하는 장소를 제한할 것"을 제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시행되었다.
이 뒤로는 V.O.C라고 하는 휘발성을 비롯한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된 글루는 사용할 수 없으며 접착시트및, 수성글루만을 이용하여야한다,,, 라는 규정이 생기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