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2코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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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학 교과서’, 수월봉에서 꼼짝하지 못한 이유
제주올레 12코스가 시작되는 ‘무릉외갓집’에 도착하니 여직원이 막 출근하여 마켓의 문을 열고 있다.
무릉외갓집이 무얼 하는 곳인가가 궁금해 안으로 따라 들어가며 묻는다.
“무릉외갓집은 무슨 가게여요?”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꾸러미형태로 매달 집으로 보내주는 회원제 배송 서비스를 하는 마을기업입니다.
무릉외갓집은 물품을 판매하는 마켓이면서 감귤따기, 감귤모찌만들기 같은 체험활동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지난해에는 문재인대통령이 무릉외갓집을 방문하여 “지역주민들이 주도해 스스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무릉외갓집’의 경제모델이 인상 깊다”면서
“이러한 모델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단다.
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각종 농산물과 가공식품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다.
여직원은 올레길 걸으면서 드시라고 귤 몇 개를 손에 집어주는 배려까지 잊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도 땅이 비옥하기로 이름난 무릉리는 마을이름처럼 살기 좋은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직거래형태인 마을기업 ‘무릉외갓집’ 같은 모델이 그것이다.
일찍이 마을이름을 무릉리라고 했던 이유도 비옥한 토양을 갖춘 살기 좋은 고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을 앞에 ‘무릉도원’이라 쓰인 표지석이 이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을 표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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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리 들판을 지나는데 귤을 비롯하여 마늘, 양배추, 케일 같은 농작물이 풍요롭게 자라고 있다.
들판 뒤로는 멀리서 한라산이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들판 곳곳에 있는 2층의 지하수 관정시설이 눈에 띈다.
이 관정을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린 후 주변 밭에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자동으로 물을 뿌려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올레길은 너른 들판 가운데 밭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곳의 드넓은 들판은 육지의 웬만한 들판보다 훨씬 광활하다.
제주도 서쪽과 서남쪽에 위치한 제주시 한경면과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제주도의 다른 지역보다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넓은 밭에도 어김없이 검은 밭담들이 쌓여 있다.
밭담은 밭의 경계도 되지만 바람을 막아줘 농작물이 바람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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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이어지는 밭담은 길손들의 다정한 벗이 되어주고, 잠시 후 오르게 될 녹남봉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길을 걷다가 자꾸만 뒤돌아보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아 한라산의 모습이 산의 윤곽만 보여줄 뿐이다.
모슬포의 모슬봉과 산방산 역시 평지 위에 우뚝 서 있지만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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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길을 지나 둔덕 같은 높이의 녹남봉에 오른다. 녹남봉에는 원형으로 된 분화구가 있다.
오름에 녹나무가 많아 녹남봉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키 작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 가까운 기슭과 등성 곳곳에는 일제 때 주변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파 놓은 진지동굴이 10개나 있다.
길이가 무려 50m나 되는 동굴도 있다.
원형의 분화구 안쪽과 사면 일부에 귤밭이 조성되었다가 지금은 대부분 벌목되었지만 여전히 분화구 안쪽은
농지로 사용이 되고 있다. 제주도의 오름 중에서 굼부리 중심이 농경지인 곳은 녹남봉이 유일하다.
분화구 테두리에는 늦가을임도 불구하고 백일홍이 울긋불긋 피어 화장한 여인처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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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를 돌아 내려가니 신도1리 마을이 녹남봉에 기대어 자리하고 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가니 폐교 운동장이 나온다. 폐교된 신도초등학교 자리에는 ‘산경도예’라는
도자기 체험 문화공간이 들어서 있다. 신도1리 마을골목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 걷는데,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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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무암 밭담은 구불구불 이어져 수많은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 같다.
그 옛날 어머니들은 남은 천들을 이어 붙여 조각보를 만들었다. 이런 조각보가 모자이크 같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듯이 제주도의 밭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조각보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북쪽으로는 넓은 밭 뒤로 수월봉이 포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밭에는 케일이나 양배추, 무 같은 작물도 있지만 대부분 마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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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같은 밭에 눈길을 빼앗겨 걷다보니 어느덧 해변에 도착해 있다.
제주도 해변은 언제 봐도 깔끔하고 시원하다. 검은 현무암과 군청색 바다가 어울린 모습은
우리의 시선을 금방 사로잡아 버린다. 용암이 흐르다가 굳어진 바위들은 이제 막 굳어진 것처럼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은 파도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져 몽돌이 되었다.
수평선을 이룬 바다에는 듬성듬성 작은 어선들이 떠 있어 외로움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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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하멜일행 난파희생자위령비’가 서 있다.
1653년 7월 30일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이 항해를 하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던 중 같은 해 8월 16일 이곳 대정읍 신도리 해안에서 암초에 부딪쳐 난파되어
하멜을 포함한 승무원 64명 중 28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희생자 28명의 영혼을 달래고자 2017년 8월 이 위령비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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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 주변 바닷가는 예로부터 ‘무병장수 도구리와 모살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하늘나라 선녀가 연회를 베풀기 위해 신도마을 바닷가로 내려와 해산물을 넣어둘 곳을 찾던 중
‘도구리’ 같은 해안바위를 발견, 큰 도구리는 해산물을 넣어두는 곳으로 작은 도구리는 목욕하는
장소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신도리 해변에는 큰 도구리 하나, 작은 도구리 세 개가 있다.
‘모살물’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신도리에 살던 효녀 순덕은 편찮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물질을 나왔다가 큰 도구리에 갇힌 세 마리의 거북을 발견하고 “거북아! 미안하지만 너희들을 아버님의 약으로 써야겠다.”고 하자,
자신들은 “본래 거북이 아니고 옥황상제의 자녀로 보름달이 떠 있을 때만 돌아갈 수 있는데,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날이 새는 줄 몰라 갇히게 되었다. 우리를 작은 도구리에서 풀어주면 돌아갈 수 있으니,
살려주면 소원 한 가지씩 들어드리겠다”고 했다.
순덕이 첫 번째 거북을 풀어주며 “나의 소원은 아버님의 병환이 나아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자,
하늘에서 “마을 해안가 모래밭에 물을 솟아나게 할 것이니, 그 물을 떠다 아버님께 드려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거북들도 도구리에서 옮겨주자 소원을 말하라 했는데, 소원은 한 가지로 충분하다면서 “나머지는 다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들어 달라.”고 했다. 순덕이 하늘에서 가리켜 준 곳에 가보니,
새로 솟는 물이 있었고, 이 물을 떠다 드리니 아버님의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그 물은 마을사람들도 사용했다. 이 물이 용천수인 모살물이다.
그로부터 도구리를 신성시해 가뭄이 들면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포제도 지냈다.
사람들은 첫 번째 도구리를 돌며 기원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