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동선 소리에 그 배를 보니 거기에 그 사람들 중앙에 아버지가 서계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 그 보릿대 갓을 쓴 작은방 손님도 계셨다.. 그분이 철선 갑판위에 우두커니 서계신 어머니를 보고 보릿대 모자를 벗고 그 민둥한 대머리를 보이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어머닌 아버지의 흔드는 손도 그 보릿대 모자의 정중한 인사도 멀거니 보고만 섰지 아무런 답례를 하지않았다. 그 배는 개웅을 따라 동으로 한참가다 북으로 휘어지는 커브에서 시커먼 바위 위에 홀로선 소나무를 돌아 방향을 북으로 틀었다가 다시 넓은 하얀 감물을 만나 서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잠시 잠간이었다. 그 배는 멀리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배가 지난 그 하얀 포말의 꼬리를 남겼던 뱃길은 한참 더 있다가 사라졌다 .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린 주인의 뒷모습을 여태 보고 있던 개 배스는 수문위에 홀로 앉아 있다가 혁이를 보고 일어나 반가운 듯 꼬리를 치고 혁이를 향해 달려왔다. 이 모두가 눈 깜작할 사이였다. 천천히 어머니가 철선에서 내려오고 개 배스와 혁이를 대리고 그 뚝 밑 노적장 그 공판장 드넓은 마당에 왔을 때는 이미 그 수많은 사람들은 간 곳 없고.. 허망하게 그 산덩이처럼 쌓아두었던. 노적가리들은 다 없어지고 그 노적가리에 밑바닥 깔이 목으로 쓰였던 나무 기둥들과 헌가마니때기들 짚마람들만 널러져있었다. <“아이고 저 흉물스런 애물단지! 결코 저 사단을 벌리고 말았구먼!> 하고 새 주막집 응삼이 첩 뚱뚱이는 큰소리로 엉뚱하게 불맞은 철선을 탓하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 어쩐지 저 철선이 불이 나서 이곳으로 뜨겁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밀어 닥칠 때부터 예감이 않 좋았어요. 무슨 불길한 액이 밀어 닥칠 것 같았어요. 방정맞은 생각 같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불 맞은 새까만 철선을 가리기라도 하듯이 서북쪽 솔밭언덕 아래 아늑하게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서있는 커다란 기와지붕 창고는 사방 벽이 다 허물어지고 험상궂게 귀신 날 것 같이 텅 비어있었다. 그 꽉 찼던 나락가마니들은 단 한가마니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 기와집 처마에서 용머리까지 그 어디서 날아 왔는지 수많은 참새들이 제 세상 만난 양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멀리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추럭에 순사들을 가득 싣고 이리로 오고 있을 거요 . .아이-쿠 도망가야지 뭐 죄는 없지만 제수 없이 한대라도 맞으면 맞는 것만 공것이니까.> 사공 강영수가 말했다. <야 막둥아 ! 배기 뜰 수있나봐라!> < 네..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막둥이가 대답했다 <충분해.. 시간은 지금 영암읍에서 출발해서 월산 근방에 오고 있으니까 구림으로 돌아서 모정으로 해서 그 험한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올 려면 아마 한 시간은 걸릴 거야.> 대만이는 단배를 피우면서 부두 쪽으로 서서히 걸기 시작했다. <저 강 가운데 배 띄워놓고 유람이나 하는 샘 치지> 강영수가 근수를 손짓해서 데리고 가면서 하는 말이었다. < 어이 봉기 자네도 가세! 여기 있다가 제수 없이 맞지 말고..> 근수가 봉기 한태 한 말이었다. <아니야 자네들이나 가! 나라도 있어야지 아무도 없으면 쓰나?> 봉기는 이제 창고 문이 다 열리고 창고 벽들마저 다 헐려서 사방이 툭 터져서 필요도 없게 되어버린 창고 열쇠 그 묵직한 열쇠꾸러미를 쨍그랑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럼 자네는 자네 알아서 해! 우린 가 네.> 근수는 봉기를 아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영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큰 목선들은 두 척이 나란히 사이좋게 하얀 돛을 펄럭이며 이 포구를 떠나 성제리 쪽으로 유유히 떠나갔다.. <빵> 총성이 고막이 터질 정도로 한방이 울리고 까만 재복과 까만 모자를 쓴 경찰들을 태운 트럭 한대가 공판장 한가운데에 드르륵하고 멈추자 수십 명의 경찰들이 그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귀가 시리도록 지저귀던 그 수만 마리의 참새 때 소리도 뚝 멈췄고 겁에 질린 참새 한 마리가 처마 밑에 날아 들어와 파드득 파드득 날개 짓 하며 제비집 턱 바지 위로 가만히 숨어든다. 엄청 화급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지배인 봉기는 그 새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그 트럭이 멈춰서고 경찰들이 총을 들고 그 차에서 뛰어 내리자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어슬렁어슬렁 그 차 앞으로 걸어갔다. <당신 뭐요?> 제일 먼저 총을 한방 쏘면서 트럭에서 훌떡 뛰어내렸던 순사가 봉기한태 물었다 <네 저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 봉기가 그 순사한태 겁에 질려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말했다. < 이 새끼 뭐야? 너는 그러니까 네 사장 최철이가 다 알아서 했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죄도 없다. 이 말 하려고 그러지? 이 새끼 어디서 노가리 까고 있어? 네 사장 최철이가 너는 그러라고 시켰겠지? 이 건방진 새끼! 어디서 각본 쓸라고 그래. . 그래 너는 그러니까 네 말대로 아무것도 모른 죄 값을 받아야 돼! 모르긴 뭘 몰라 이 새끼야 다 짜고 한 거지... . 이 새끼가 어디서 오리발 내밀라고 . .엎드려뻗쳐!> <....> 봉기는 말없이 그 순사가 하란대로 땅바닥에 엎드려뻗쳐를 했다. <어이 거 차에 곡괭이자루 가지고 와!> 그 순경이 뒤로 돌라보면서 다른 순사에게 명령하자 두 순사가 차에서 곡괭이자루 두 개를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들고 봉기 옆으로 왔다 <저 놈이 바른 말 할 때까지 두들겨 패! > <툭탁 툭탁> <아이고 아이고 사람 죽네! > <이 새끼야 네 사장이 시켰지? 그래서 네가 오늘 아침 창고 문 열어줬지? > <아닙니다. 창고문은 제가 안 열었습니다. 아마 사장님이 열었을 겁니다.> 툭탁 툭탁 아이고아이고 계속 두 순사는 떡매치듯이 봉기 엉덩이에 곡괭이자루를 내려치며 말했고 이기다 못한 봉기는 그 만 양손을 뇌 버리고 땅바닥에 납작 뻗어져 그 매를 맞고 있었다. 봉기의 엉덩이에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흐르는 피가 마치 어린애 오줌 싼 바지처럼 엉덩이에서 철퍽거리고 있었다. <이 지독한 놈 끝내 거짓말만 하고 있어 거짓말하면 누가 손해인지 알아 ? 너만 더 맞아 맞는 것만 공것이야 이 미런한 놈아! > <아닙니다. 오늘 아침 저는 무서워서 도망쳤습니다. 사장님은 저에게 아무런 말도 안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사람 죽네 .. 여기는 네 직장입니다 여기가 일이 있어야 먹고 삽니다 정말입니다. 나락을 지키고 보관하는 것이 내 일이었습니다. > <짜식 거짓말하고 있네. 오늘 아침 네 집에도 나락 몇 가마니 갖다 놨잖아? 남들이 다 가지고 가니까 얼씨구나 나도 갖다 먹자. 하고 가지고 간 것 아냐?> <아닙니다. 저는 이날 평생 굶어서 죽었으면 죽었지 나락 한 톨 건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저희 집엔 나락이라곤 한 톨도 없습니다. 가보시려면 가보십시오?> < 야! 그만 두들겨 패고 그놈 집에 한번 그놈 끌고 가봐! > 그 처음 총을 한방 쏘았든 순경이 상관인 듯 그렇게 명령하자 봉기를 한없이 내려치던 곡괭이자루는 매를 멈추었다. <네!> 하고 지금까지 봉기 양쪽에 서서 곡괭이자루로 봉기를 번갈아 내려 패던 두 순사는 쨍그랑 소리 나게 곡괭이자루를 차위에 던져 넣고 그들 뒷 허리에 찬 수건을 끄집어당겨 흐르는 땀을 그들의 이마와 뺨에서 닦으면서 트럭 옆에 기대어 새워둔 각자의 총을 짊어지고 봉기를 일으켜 세우고 끌고 갔다. 봉기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일어나 엉덩이에서 흐르는 피를 질척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두 순경의 어깨에 기대어 한발 안발 앞으로 끌려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봉기를 끌고 가서 봉기 집을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똥통 옆에 두엄 속까지 작대기로 쑤셔서 확인하고 나서 봉기를 끌고 나와 순희 집으로 왔다. 그리고 순희의 창고를 보고 눈짓했다. 봉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창고 열쇠꾸러미에서 그 곳 열쇠를 찾아 그문을 열었다 . 커다란 나무창고문을 열자 거기에는 가득 나락가마니가 천정 닫게 쌓여있었다. 그걸 본 순사들은 입을 벌리고 와 하고 크게 놀란 눈치였다. 거기에 쟁여진 나락가마니들은 공판을 볼 때 자판을 찍은 흔적들이 하나도 없었다. 말하자면 정부양곡이 아니었다. <다 같이 공평하게 나누어서 잘 살자는 공산주의자 군당위원장 집에 왜 이리 벼가 많아? 완전히 불공평하게 스리... 순 공산당하자 면서 인민에게 하는 말은 다 거짓 말 이구만... 공산당 군당위원장 집이 이렇게 부자라니 참 웃기는 만.. > 경찰하나가 혼자말로 두신 거렸다. <됐어 문 닫아..!> 새 주막집에서 이곳으로 뒤 늦게 따라온 경찰관 처음에 공포탄 한 방을 쏘았던 그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 네가 이집 열쇠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왜 거짓말을 해?> 봉기를 때리라고 명령한 그 사람은 봉기에게 또 그렇게 따졌다. <아닙니다. 낮에는 내가 일을 하려니까 이 열쇠를 다 가지고 있지만 일과가 끝난 밤에는 다 이 열쇠를 사장 집에 돌려줍니다. 정말입니다 물어 보십쇼!> <그러니까 오늘아침 일은 사장님이 알아서 했다 너는 전혀 모른 일이다?.> <네! 그렇습니다.> 봉기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순사들은 순희 집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순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사람이 돼지 밥통이 놓인 큰 항아리 밑에 까라놓은 그 널판자를 퉁퉁 구둣발로 차서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순희가 듣기에도 좀 공허한 그 울림소리가 틀렸다 땅에 까라진 두꺼운 널판지 그냥 그 딱딱한 울림이 아니라 속에서 무언가 공간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그 순사는 그냥 그 정도로 지나쳤다. 순희는 가슴이 콩만 해지는것 같았다 만약 그 순경이 그 돼지밥 쌀겨항아리를 들어 재기고 그 널빤지를 들어 올려 그 밑에 항아리에 가득 담긴 고액권 돈 다발을 다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했다. 누구 돈을 도둑질해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벌어서 우리가 가진 우리 돈이지만 만자중에 그 엄청난 돈이 발각되면 분명 그들은 그것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순희는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이 푹 나왔다. <다른 집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철 사장이 철저히 사원들 단속은 잘 시켰던 것 같습니다. 이 마을 주민 대부분이 다 이 공판장에서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철저하게 공판장 나락은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응. 알았어. 최철 이란 사람이 아주 주도면밀한 사람이군. 자기 식구들은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신뢰에 금이 가지않게 하려고 잘 단속 했구먼..> 대문 밖으로 나간 경찰이 공판장 넓은 마당에서 상관에게 보고하는 한 순사의 말이 순희 귀에 들렸다. 이유 없이 오지게도 두들겨 맞았다. 아마 봉기가 이 포구의 양곡분탕사건의 맨 첫째로 매타작을 당한 사람일 것이다 봉기 말고는 부녀자들 뿐 남자 란 한 사람도 없었다. 다 도망가고 그래서 봉기만 맞고 다른 사람들은 맞지 않았다. 집 집 마다 경찰들이 들어와 정부양곡을 가져다 놓았는지 부엌이고 헛간이고 광이고 곡간이고 다 둘러보고 지나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전날 저녁에 내일 아침에 이런 일이 있을 거란 걸 최철 사장은 막둥이 에게 이야기 했고 막둥이는 모든 종업원들에게 알렸다. <절대로 양곡에 손을 대지 말라!> 그래서 아무도 이 마을 사람들은 정부양곡에 손을 안 댔었다. .하지만 다른 부락사람들은 날마다 경찰에 두들겨 맞는 것이 거의 일상생활이 됐다. <이 마을에서 주로 선동한 사람이 누구냐? > <누가 시켜서 누구 집에서 누구 랑 모였었느냐? > <남로당 당원이 누구냐? > <누가 권유를 해서 가담했느냐?>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없는 문초를 받았고 사람들은 매일 콩 타작 하듯 곡괭이자루 몽둥이찜을 받았다. 정작 맞아야 할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부락에는 없는데 그렇다고 죄지은 사람이 없다고 몽둥이질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봉기가 두들겨 맞듯이 이유 없이 경찰은 양민을 두들겨 팼다. 그리고 그 이튼 날 부터 분탕 되었든 양곡들은 회수되기 시작했다 이장과 반장이 다 주민들에게 밀해서 그리고 누구 누구가 몇가마니 가지고 간 것을 알아서 다 다시 되받아내기 시자가했다. 그러나 하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다른 부락에서 참여했기에 그 조사도 그리 쉽지가 않았고 더더구나 그 숫자가 정확히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실종된 정부양곡을 찾는 일이 시작됐다. 들로 산으로 깊은 들샘 속도 긴 장대로 넣어 보고 언덕 밑에 묻어둔 것도 발견하고 들판에 거름더미처럼 위장하여 나락가마니를 밑에 놓고 그 위에 겉으로 두엄을 얹고 짚으로 이영을 씌운 것도 찾아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어도 그 나락가마니 숫자는 안 맞았다. 양장이장 정준상이와 군청에서 파견한 양정계직원이 나락 가마니가 들어온 쪽 족 좌칭(坐稱) (앉은 저울)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했다 가을에 공판을 볼 때 검근을 해서 창고에 넣어 놓거나 노천에 노적가리를 했다가 지금 농사가 시작되기 전 3-4월 봄에 다시 검근을 하면 그 근수가 맞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누가 그렇게 시켰는지 실이 90근 가마니, 새끼줄 무게 포함해서 정확히 96근을 달아서 받아 드리라고 했다. 그러니 가지고 갔다가 그냥 그대로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100 가마니를 가지고 간 경우 약 200근을 더 보충해서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 개개인이 가지고 간 경우는 가지고 간 가마니 수에 약 두 근을 더해서 검근을 미리 해 가지고 오면 되니까 사람들은 몽둥이찜질이 무서워 두 가마니 가지고 간 사람은 너 근 정도 열가마니 가지고 간 사람은 약 스무 근 정도 그렇게 나락을 더 첨가해서 갖다 줬기에 별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 몽둥이 새례보다는 싸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동호리에서는 부락사람들이 가지고 온 나락들을 전부 이장 유동철이가 청년들을 시켜 각가정으로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고 이장이 이것을 동각 한곳에 모아두게 했다. 동각 창고에 입고하거나 그 앞마당에 노적해 두었다 그 것이 수백 가마니 아니 근 천가마니가 되었다. 이걸 양곡을 회수 하는 책임자 양장 이장 정준상이나 군청직원은 그대로 반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고 동호리 이장 유동철이는 <이것이 무슨 소리냐? 나는 나라를 위한 충성심에서 이것은 정부양곡이니까 다시 회수 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사전에 부락민의 분란을 막기 위해 이렇게 내가 압수 해두었던 것인데 국가에서 상은 못줄망정 무슨 나락을 더 내놓으라고 하느냐?> 고 이렇게 팽팽하게 맞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만약 한 가마니 당 두 근씩 더 담아서 반환하라면 수천 근을 이장 유동철이가 물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그 나락을 가지고 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호리 이장 유동철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는 약간 길준이보다 많았지만 긴준이 또래로 길준이 동창이다. 그래 이들처럼 아직 속없는 어린애나 다름없었지만 이미 죽을 고비를 몇 번을 겪은 산전수전을 다 격어 본 사나이다. 대동아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초등학교를 열일곱 살에야 졸업했다. 원래 집안이 가난해서 정식으로 제 때에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 4학년에 공민 학생으로 처음 초등학교에 편입 했다. 그래서 만학도로 늦게야 몇 제 동생 벌들과 함께 졸업을 했던 것이다. 누가 기회란 항상 용감한 사람의 몫이라 했던가? 졸업을 했지만 더 공부를 하고 싶어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으로 고용살이 하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형편에 중학교 진학이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위에 형 종철이는 그나마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체 남의 집 담사리를 하고있는 형편이라 동철이는 그래도 형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자위를 해 보지만 그렇다고 집의 형편에 눌리어 형처럼 지계지고 남의 집 고용살이 하기는 정말 싫었다. 그 때 마침 아버지가 고용살이 하고 있는 그 주인집의 큰아들이 징병영장이 나왔다. 그 사람 이름으로 대신 군대에 가기로 하고 당시 자기집에서 소작으로 붙여먹고 있는 논 두 마지기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군데에 갔다. 교묘하게 타고 가던 군함이 미군 어뢰에 맞아 침몰되어 수많은 군인들이 수장됐는데 천우신조로 용케 동철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사고가 난 곳은 필립핀 어느 해역이었다. 일본군인들에 의해 구제된 유동철은 . 타이와 버마 국경의 콰이강의 다리 공사장에 파견되어 잡혀온 연합군 포로들을 데리고 일을 하게 됐는데 해방이 되자 모든 군인들이 다 귀향이 됐지만 동철이는 전범수용소에 감금되어 3년 징역살이를 더 하고 나서야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전범자의 죄목의 이유는 포로를 먹을 것도 제대로 안주고 폭력을 행사하여 중노동을 시켜 연합군 포로를 혹사 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방의 기쁨도 만끽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전범자로서 3년간이란 징역살이를 한통에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실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집으로 돌아 왔다. 아무튼 그렇게 일본군에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죽지 않고 돌아 왔다는 데 동철이 에게는 더 이상 기쁨일수가 없었다. 동호리 부락에서는 동철이 귀향을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부락 사람들은 그의 귀향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그들은 동철이를 부락 이장으로 주민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그래서 이장이 된 것이다. 천진난만한 동철이 생각에는 말 할 수없이 부락민들이 반갑고 또 고마웠다. 고향에 돌아가면 그 죽기보다 도 더 싫은 일 지계를 짊어지고 등짝이 벗겨지도록 지계 질을 하면서 그 고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면서 귀향을 했었는데 그러한 동철이 고민을 부락사람들이 알기나 하듯이 부락 이장을 하라고 하니 아무 물정도 모르는 동철이는 좋기만 했었다. 동철이 생각에 일정 때 보아 온 부락 구장(이장)은 농사 일 같은 것은 않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얼쩡얼쩡 놀고먹는 사람이었다. 사실 동호리는 150호가 넘는 농촌치고 큰 마을이었기에 이장 하나쯤은 자기 농사일 않고 부락일 만 보면서 먹고 살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다 동철이는 그것이 그렇게 좋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장자리가 그처럼 좋은 자리라면 누가 동철이를 이장을 시키나 자기들이 해 먹지. 동호리는 원래가 거의 최씨들이 자자일촌이고 있고 유동철이 같은 타성은 하얀 쌀에 늬 만큼이나 보기 드문 마을 이다 < 왜? 최씨가 아닌 유가인 동철이를 이장을 시킬까?> 그 생각을 바로 못했다. 다만 아무 물정 모르고 속없는 동철이는 이것이 남 대신 그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일본군에 다녀온 대가로 최씨들의 고마움 표시로 해석하고 받아 드렸다. 착각은 자유였다. 동철이는 혼자 커다란 오산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동철이 생각처럼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며칠 지나 보니 사실은 이장이란 것이 여간 어려운 자리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낮에는 경찰을 상대해야 하고 밤이면 남로당을 상대해야 되고 인간이 완전히 박쥐행세를 해야 하는 시국이란 걸 동철이는 몰랐던 것이다. 알고 보니 차마 사람치고는 못할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 누가 그 짓을 하려고 하겠는가? 우익이 무엇이고 좌익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동철이는 다만 군대 가지전 그때 세상의 이장만 생각하고 이장이 좋다고만 생각했던 것인데 이것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이장이란 자리였다. 정말 까딱 잘못했다가는 어느 귀신이 잡아 갈지 모르는 험하고 살벌한 세상 이었다. 거기서 며칠을 고민하던 동철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자기가 배운 군대훈련을 부락 청소년에게 시켜서 부락방위군을 창설해야겠다. 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동철은 군대식 훈련을 청소년들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대창을 깎아서 총처럼 짊어지게 하고 각 소대장과 분대장을 임명하고 소대장과 분대장은 계급처럼 완장을 차게 하고 이사무실(里事務室)에 방위대 본부라고 간판을 내 걸고 부락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군대식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야경과 보초를 서게 하여 부락에 들고 나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무슨 일로 누구 집에 왔는지도 다 물어서 기록해서 동철에게 보고하게 했다 .그래서 동철은 부하들로부터 다 보고를 받아 부락민의 동정을 다 알고 있었다. 동철이가 이 같은 자기부락 군대를 만든 지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곳 양곡분탕사건이 벌어 졌던 것이다. 불과 귀향하여 이장이 된지 몇 달이 않 되어서 이다. 그래도 명색이 군대 생활을 했던 이장 동철은 전범 죄로 3년 징역살이를 하면서 지휘관의 책임이 무엇이란 걸 알고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선량한 농민들을 선동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결사반대 항의 표시로 이렇게 양곡을 분탕한 것은 결코 순탄하게 넘기진 않을 것이며 또 현 부락 이장인 자기에게 모른 척 했다면 수수방관(袖手傍觀)죄를 가담했다면 부락민을 선동한 중죄를 물을 것이란 걸 뻔히 알았다 이 느닷없는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리고 명령했다 그 불덩어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한곳에 정부양곡을 모아 두어야 한다고.. 이는 앞서 말했듯이 멋모르고 이 부락 이장이 되고 나서 낮에는 경찰 측에서 밤에는 남로당 측에서 이장에게 이것저것을 시키는 것을 보고 이장 동철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지 우리를 구해줄 사람은 경찰도 아니고 남로당도 아니라고 스스로 우리가 우리를 지키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날마다 저녁이면 동각 앞에 모이게 하여 “앞으로가!. 뒤로돌아가.! 열중쉬어! 차려! 받들어 총! ” 하는 군대 훈련을 시키고. 밤이고 낮이고 부락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면 “왜? 그 사람이 그 집에 다녀갔는가? 그 사람은 누군가? 그 사람과 그 집은 무슨 관계인가? 하는 것을 조사기록 케하고 밤이고 낮이고 부락으로 드나드는 길을 당번을 정해 놓고 보초를 서게 했다. 그리고 호칭을 자기는 대장이라고 부르게 했고 각 소대에 소대장 각 분대에 분대장을 뒀고 계급과 책임 그리고 지휘권을 주었다. 누가 그랬든가 인간이란 계급의식에 사는 동물이라고... 아니 인간이란 자기가 명령하고 지휘할 수 있는 자기 부하가 있으니 살맛이 있는 동물이라고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는 말은 인간은 거미처럼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벌이나 개미처럼 집단을 이루고 살려는 본능이 있으며 그 집단을 이루려는 본능에는 질서를 유지하려는 본능도 있다. 바로 그 질서유지 본능이란 계급의식이다. 계급을 가지면 자기 계급에 대한 존엄의식이 생기고 그 존엄의식은 상급자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수반하면서 자기 지휘권 확보를 통해 자기능력을 내보이려는 현시욕 본능이 있다. 그래서 그 조지은 결속되고 그 힘은 막강해진다.. 징기스칸이 그랬고 나폴래온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고 일본천황이 그랬다. 이것은 그 한사람의 인간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 인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응집하려는 그 본능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집단을 만들어 놓으면 그 집단은 성장하고 지속하려는 본능이 있다. . 동찰이는 나이 어려서 전쟁에 참여해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 인간의 태생적인 성질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려고 하는 그 본능적이 특성을 파악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가족과 우리 마을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자. 는 구호 아래 부락 자율 방위대를 결성했었다 아직 외부 세계를 구경하지 못한 이 속없는 이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가 어린애들 같았다. 어린애들이 병정놀이를 좋아 하듯이 천진하게 군대 훈련을 재미있어했고 즐거워했다. 처음에는 모두 대창을 깎아서 총처럼 짊어지고 훈련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보다 군인답게 목총을 깎아서 정말 총처럼 보이게 짊어지고 그 끝에 단검을 만들어 꽂았다. 그리고 목총을 짊어지고 완장을 차게 해서 계급의식을 주입해 놓으니 그들은 군대식 경례를 하면서 점점 군인다워졌다. 그리고 이 부락 전 주민은 점점 더 유동찰 장군의 부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부락은 부락민이 전부 이 유동철 장군의 부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수많은 부하를 둔 동철은 그 수많은 부하들을 통솔하는 정말 장군다운 장군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동철이도 장군다운 뱃장과 결단력이 생겼었다. 누가 그랬듯이 정말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 너희들 내 부하들을 내 허락 없이 털끝만큼 이라도 건들었다간 내가 너희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 살기 어린 섬뜩한 진짜 총검과 복날 개 패듯 사람을 두들겨 패는 곡괭이자루를 든 그 순사들 앞에 동철은 떡하니 버티고 섰었다. <이 짜식들아! 내가 네까짓 것들이 무서웠으면 벌서 태평양 물고기 밥이 됐거나 콰이강에서 살아오지 못했어..> 그는 미군에서 전범 죄로 3년간 징역살이 하고 오면서 얻어 입은 미군 군복과 군화에 권총반도를 차고 있었다. <다 내가 시켰고 다 내가 이곳에 보관하고 있으니까 다 나 한태 말해! 자 나 말 다 했으니까 나 한태 할 말 없으면 돌아가! > 수많은 부락 방위군을 정열 해놓고 그 앞에서 좀 높은 곳 동각 토방 위에 서서 어찌나 그 순경들을 고양이 쥐 다루듯이 당당하게 호령하듯 말하니까 순경 인솔자도 기가 죽어 서 슬슬 물러갔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한 사람도 경찰에게 문초를 받거나 몽둥이세례를 당한 사람은 없었다. < 이 짜식들아! 상을 주었으면 주었지 무슨 나락을 더 보태란 말이냐? >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동철이가 떠들자 양장 이장 전준상이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다른 부락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다 두 근씩 더 넣어서 받아 들였는데 오직 동철이가 이장을 맡고 있는 이 마을만 임의로 덜 받아 들일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군청직원에게 물었다 . < 가을에 공판 당시 받아들일 때 한 가마니 나락 무개와 봄에 한 가마니 나락 무개는 다르지요? 말하자면 자연 감량이란 것이 있지요? > <그렇지요. 그건 당연하지요. 건조 상태가 아니라도 나락이란 쌀과는 달라서 그 나락은 숨을 쉬고 있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 호흡작용에 의해서 그것이 극히 미세하겠지만 그 무게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맞아요. 자연 감소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부에서 양곡 도정 업자에게 나락을 줄때 가을에 줄때와 봄이나 여름에 줄때 그 무개가 다른데 받아 들이는 쌀의 양도 다른가요?> 하고 이장 정준상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 군청직원에게 물었다. <아니요 . 그건 아니지요. 다만 일등급이 몇 가마니냐?. 2등급짜리가 몇 가마니냐? 3등급짜리가 몇 가마니냐? 거기에 나락이 쌀로 환산했을 때 그게 달라질 뿐이지 나락 한 가마니에 쌀이 몇 근 이다 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아 그렇군요? > 정준상이는 그렇게 일단 대답을 받고나서 그전부터 의심이 잤던 자기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돌아보게 됐다. <그럼 이건 뭐야? 말하자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뙈 놈이 받는다고 엉뚱한 도정업자만 배 불릴 일만 해 온 것 아니야.?> <그럼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더 벼를 받아드린 것인가? 한 가마니에 두 근 잡고 열가마니면 스무 근 백 가마니면 200근 천 가마니면 2000근 만 가마니면 2만 근... 아! 2만 근이면 이게 나락이 몇 석 이냐?. 나락으로 100석이 넘는 양을 더 받아드렸다. 야 이걸 가지고 누굴 좋으라고 이렇게 내가 헛일을 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외로 나락을 더 많이 받아드렸다고 전 주민에게 다 나누워 줄 순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이걸 도정업자만 좋으라고 가만히 묵과 할 수는 더더욱 할 수없는 일 아닌가? > <이걸 어쩌지?> 준상이는 심히 괴로웠다. 내가 어떻게 이 100석이란 나락을 찾아 먹을 수가 없을까? 내가 도정을 할 수 있으면 간단 할 탠데... 내가 도정을 안 하고서는 이 나락으로는 200가마니가 넘는 거금을 모조리 다 한 푼도 달란 소리 못하고 엉뚱하게 눈도 코도 본적 없는 생판 알지도 못한 목포의 어느 도정 업자에게 주고 말다니 이일을 어쩌면 좋냐? 그런 생각에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준상이 머리에 지금 최철 사장이 지어놓은 방앗간 대만이 아들 길준이가 운영하고 있는 그 최신식 설비를 갖춘 그 방앗간 생각이 났다. . 이 돈이 있잖아 나락100석이면 적은 돈이 아니야 이걸 뇌물로 써서 내가 정부양곡 도정 권을 딴다면 내가 바로 도정업자가 된다는 것 아닌가? |
첫댓글 ㅅㅅㅅㅅㅅㅅㅅ
잘 읽었습니다
기분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