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인구지진과 농촌 살리기
낮은 출산율에 심각한 고령화 지역 편중으로 지방소멸 위험
농촌 중에서도 면지역 더 심각 내년 지역균형 예산 마련 다행
지방분권·주민자치 강화 중요 마을 및 읍·면 통계 정비 급선무
얼마 전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경제부총리가 ‘인구지진(Age Quake)’이란 말로 인구구조 변동의 위기를 염려하며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말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인구는 5183만명으로 전년 대비 2만여명이나 줄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출생아수(27만2000명)가 사망자수(30만5000명)에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시작됐다. 더구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6.4%로 머지않아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노년 부양비가 크게 늘어나는가 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소멸 문제가 지진처럼 엄청난 위력을 가진 잠재적 위험으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밀도는 2019년 기준 1㎢당 515명으로 일본(348)·영국(279)은 물론 중국(153)·미국(36)보다 월등하게 높다. 그런데도 인구를 걱정하는 것은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그리고 지역적 편중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시장 위축, 자원배분의 왜곡 등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특히 일자리가 부족하고 생활 여건이 취약한 농촌지역이 인구지진의 위험에 보다 많이 노출돼 있다. 같은 농촌이지만 지난 20년간 읍지역의 인구는 374만2000명에서 511만3000명으로 늘어난 데 비해 면지역은 560만명에서 465만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읍지역이 9.6%에서 17.4%로, 면지역은 18.9%에서 31.5%로 각각 늘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의성군 단촌면은 인구가 2000여명이며 그중 거의 절반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인구가 감소하니 마을마다 대여섯채 이상 빈집이 생기고 아이들이 없다보니 초등학교는 언제 문을 닫을지 아슬아슬하다. 대개 70대 중반이면 농사일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는데, 그러다보니 노동력이 부족해 한계농지는 아예 버려지고 있다. 손님이 없으니 철도역은 폐쇄되고 의료원과 약방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나마 5일장은 형식적으로 남아 있으나 사람을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몸이 아프면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하지만 대중교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의 경우 하루 한두차례 다니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을 살리자는 말은 지역의 특화산업을 육성해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의료·문화 등 생활환경을 개선해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 지역 개발은 중앙정부가 부처별로 추진하는 개별사업을 수주하거나 공모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들이 써주는 용역보고서와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지역 개발사업이 의도했던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지역정책의 문제로 지적돼온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추진방식 개선과 지방자치단체의 취약한 기획·조정·관리 능력의 보강, 그리고 선심성·과시적 단기정책을 통제하는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지역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 604조4000억원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52조6000억원의 지역균형발전 및 혁신을 위한 예산이 포함돼 있는데 인구지진에 대비한 별도 예산을 마련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지역을 살리는 것은 단지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지역의 여건과 부존자원 그리고 주민들의 개발 수요를 바탕으로 지역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를 강화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시·군 단위로 조사·발표하는 공공서비스 기준을 읍·면 단위로 바꿔 지역 발전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구체화하고 이때 필요한 마을과 읍·면 단위 기초 통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부족한 인력과 재정을 보충할 수 있는 귀농·귀촌 정책 연계 및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 도입을 서두르고, 지방공무원과 마을 이장까지 인구지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역량을 기르는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近者悅 遠者來(근자열 원자래,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온다)’는 공자의 말처럼 주민들이 이웃과 어울려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면 자연스레 객지 사람들이 찾아오고 농촌이 다시 살아나지 않겠는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