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는 창덕궁을 관람하러 오신 분들이 웬만하면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입니다. 좁게는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만을 말하지만 넓게는 건물들 뒤편의 화계(花階)와, 그 위 너머로 있는 상량정 · 한정당 · 취운정 의 별채 건물들까지 통틀어 일컫기도 합니다.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인 경빈(慶嬪) 김씨를 위해 1847년 지은 건물로 알려지고 있지요,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의 건청궁 등 국왕이나 왕비가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대부 저택처럼 꾸며놓았기에, 잡상도 놓지 않고 단청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1962년 덕혜옹주가, 1963년엔 영친왕과 이방자여사가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순정효황후와 함께 살았습니다. 낙선재 본채는 영친왕 부부가, 석복헌은 순정효황후가, 그리고 수강재는 덕혜옹주가 사용했습니다. 그리고는 순정효황후는 1966년, 영친왕은 1970년, 덕혜옹주와 이방자여사는 1989년에 각각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구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 상당부분을 국고로 귀속시켰고, 한국전쟁 이후 구 황실의 사유 재산이라곤 사동궁(인사동 소재), 창덕궁 낙선재 등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낙선재는 대한제국 황실 가족들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 낙선재를 즐겨 찾는 마음은 이곳이 궁궐 전각임에도 무언가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금방이라도 방에서, 마루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내밀고 반겨줄 것만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곳입니다.
2백 년 전 왕실 살림집의 아기자기한 면모는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조선과 청나라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쓴 현판과 주련, 갖가지 창살무늬들과 기와무늬들, 담벼락과 굴뚝을 장식하는 문양들은 뒤뜰의 화계, 별채 건물들과 더불어 확실히 격(格)이 다른 왕실 살림집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덕궁을 방문하시게 되면 반드시 낙선재를 둘러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