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 武王이 싫어 별별 거짓으로 죽을 힘을다해 조선으로 피신한 기자에게 무왕이 그를 조선왕으로 봉한다는 이상한 중국사. 현 역사 기술대로라면 주무왕은 섬서 함양 인근에 존재하여 하남에 있던 기자가 하북의 고조선에서 조선왕을 하고 안휘의 몽성에서 죽었다는게 논리적인지...현재 전체적으로 중국인들의 속좁은 행동을 보면 DNA가 바뀌지 않은 이상 전혀 그럴일이 없을터인데 그 당시엔 주나라사람들이 전부 聖人 혹은 道人?
1.商나라 출신 箕子에 대한 기록
기자의 언행을 기록한 중국 원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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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구이넷 발췌
2.기자가 살았던 서화와 죽을때의 몽성 (청,대청광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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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자의 사서기록
서여(胥餘)가 살던 기(箕)가 하남 서화(西華) 죽은곳은 안휘 몽성(蒙城)
기자는
조선(고조선)과 주의 경계에 있던 동이조선땅 기(箕)에 살던 서여(胥餘)를 이르는 말인데
존칭하여 자(子)를 붙여 기자(箕子)라고 하고 있고
그가 살던 곳과 묻힌곳을 밝혀야 조선(고조선)의 범위를 알 수 있으며
삼국의 활동강역을 규명할 수 있다.
아직까지 기자를 우리역사에서 삽입 삭제를 반복하는 것은
그가 남북한 지역에 왔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논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나
사서에서는 중국하남성 기(箕)땅에서 에서 살다가
중국 안휘성 "몽성"에 묻혀 있다고만 되어 있다.
기자가 활동하던 곳까지 밝히지 못하면 우리민족의 강역을 밝힐 수 없다.
바로 기자가 살던 땅의 이름이 기(箕)인데 변경되어 서화가 되었으니
이곳을 찾고 이곳까지 연결되는 우리역사무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지명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땅에 붙여 준 이름이다.
유명인의 이름을 따기도 하고 자연의 특징을 살펴서 짓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통치를 하는 사람들의 의향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고
의미를 심어 주기 위해서도 바뀌는 경우가 있다.
남북한 지역에도 그러한 곳이 있으나 정확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서 우리민족의 활동무대 중에서 바뀐 것이 있다.
『구당서, 당서』에 의하면
고구려시대 고구려 국민에게 기자신(箕子神)이라고까지 존경의 대상이 된 분이 있었으니 바로 기자(箕子)이다.
단군세기의 기록엔 조선 25대 단군 솔나때 기록
<丁亥二十七年 箕子徒居西華 謝絶人事>
정해27년 기자가 서화에 옮겨 살았다 인사를 사절하였다.
『사기』에 기자의 묘는 안휘성 몽성(蒙城)에 있다고 하였고
(梁國蒙縣有箕子塚 - 史記 권30),
양국몽현유기자총
(杜預曰梁國蒙縣北有薄伐城城內有城湯塚其西有箕子塚 - 수경주 권23)
두예왈양국몽현북유박벌성성내유성탕총기서유기자총
기자가 살았던 땅은 하남성 서화(西華)라고 하였다
(西華故箕地在開封府西九十里初聖師食宋箕故稱箕子今邑中有箕子台 - 『大淸一統志』172)
서화고기지재개봉부서구십리초성사식송기고칭기자금읍중유기자태
그러나 서화는 처음부터 그 지방의 이름이 아니라
기자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기(箕)라 불렀다고 한다.
언제 어느때 기라는 명칭이 서화로 왜 바꾸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사기』에서 『대청일통지』까지 살펴보기로 하자.
"서화의 옛이름은 기였는데 개봉부 서쪽 90리 지역에 있다."
서화는 현재 하남성에 있는데 그 이전의 이름이 기였는데 어떻게 서화로 바뀌었는가?
기자는 조선땅에 살았다.
-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 (史記 권38)
- 어시무왕내봉기자어조선
- 殷道衰箕子去之朝鮮 (漢書권28)
- 은도쇠기자거지조선
- 武王封箕子於朝鮮 (後漢書 권85)
- 무왕봉기자어조선
- 箕子旣適朝鮮 (三國志 권30)
- 기자기적조선
기자가 살던 땅은 기이다.
- 箕子者箕國名也子爵也紂親戚也箕子名胥餘, 梁國蒙縣有箕子塚 (史記권30)
- 기자자기국명야자작야주친척야기자명서여, 양국몽현유기자총
- 杜預曰梁國蒙縣北有薄伐城城內有城湯塚其西有箕子塚(수경주 권23)
- 두예왈양국몽현북유박벌성성내유성탕총기서유기자총
기(箕)는 조선 땅이다.
기라는 지명을 존재시킬 때 후인들이 조선땅이 시각적으로 노출이 되는 것이
중화민에게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를 서화로 바꾸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변경시켰을까 ?
기자의 본명은 서여(胥餘)이었는데
기(箕) 땅에 살았던 대사상가이기 때문에 기자라고 불렀다고 보여지는데
살던 땅 명칭이 변경되어 있다.
지나족(한부족)으로 역사를 정립하기 시작한 것은
장안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웠던 한(漢)이었다.
한은 장안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였던 주, 진에 이어 한이 되었기 때문에
장안 중심의 역사를 정립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사서를 편찬하게 되었다.
한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당은 한이 분리된 역사를 기록한 이후
당에 이르는 국가를 포함하여 장안 중심의 지나족(한부족)역사를 재정립했다.
장안 중심의 역사가 정립되면서 요동(요의 동쪽)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동이 또는 북이로 기록하다가 동이로 통일하여 부르게 되었다.
기자가 살았던 기땅이 동이의 조선 땅이었는데
기 남쪽 항성(項城)이 사로신라와 당의 경계였다. (coo2.net 인용)
4. 기후방정에 대한 진실.
중국고대사중 중국고대사를 전공한 이형구 교수도 요녕성 客座縣에서 발굴된 청동기를 가지고 기후방정이며 주나라의 청동기가 기자의 진물로 말미암아 이곳까지 진출한것으로 이야기하나 하나의 중국사가들과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쇼맨쉽이거나 제대로 고조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 일수도 있다.
북경유역과 객좌현등에서 발굴된 소위 기후방정이란것은 고조선의 청동기유물로 후대에 기자의 고조선지배를 합리화시키기위해 만들어낸 중국사가의 덮어씌우기 장난이라는것이 이를 전공한 학자의 주장이다.
기자의 자(子)란 작위와 기후의 후(侯)란 작위가 엄연히 다르고, 한나라 때 실제로 유문(劉文)을 산동성 기주 부근에 기원후로 봉한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동성, 요녕성 일대에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기후로 되어 있음) 모두를 애매한 은나라 기자하고만 연결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며, 이동설 성립을 위한 근거 마련에 집착한 측면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한편 기자는 특정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기국(箕國)의 제후'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ㅁ춘추좌씨전》에는 주나라 초기의 제후국으로서 '기국'이 보이며, 《국어(國語)》에는 기국을 정복한 진(晋)나라 고대의 성씨에 기씨(箕氏)가 있다는 사실이 전한다. 또한 기후(箕侯)를 중심으로 한 기씨 일족이 주(周) 초기에 북방의 정복활동에 종사하다가 뒤에 산시(山西)에서 산둥(山東)으로 이봉(移封)되었다는 기록들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기국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후(箕侯)' '기(箕)' '기후방정(箕侯方鼎)' 등의 명문이 새겨진 은나라, 주나라의 청동기가 중국 각지에서 출토되는 것도 그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다만 이 견해는 기국(箕國)이 기자조선을 말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기자조선과 고조선은 어떠한 관계였는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형구와 중국학자들이 기자로 보는 객좌출토 청동기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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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명문은 "우리는 箕候族이다" 라고 해석된다고 한다.
아래 북경유리하 부근 묘역에서 발굴된 서주시대라고 하는 청동기와 명문들은 고조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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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진은 김종서의 <고조선 연구>에서 스캔하였다..
운영자 심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