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평사리.,최참판댁
평사리는 상평과 하평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지금은 상령과 외둔을 합쳐서 평사리라 하고,
하평과 대촌을 합쳐서 봉대리로 행정지명 개편.
평사리는 박경리 대하소설『토지』의 배경무대.
상평마을은 악양들판을 바라보는 산자락에 위치.
돌담길과 어우러진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정겹다.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이 우러나는 상평마을.
구한말엔 악양 들판의 섬진강까지 배가 들어왔다.
상평마을 가는 길목에 높이가 약 27m 되는 팽나무.
이조시대 부사 전천상이 위민정(慰民亭)이라 명명
아직도 마을사람 쉼터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토지는 구한말에서부터 시작해 8·15광복까지,
민족의 일대 혼란기를 담아 내고 있는 대하소설
평사리를 배경무대로 하고 있는 사연은 따로 있다.
박경리의 딸이 탱화 수집차 동행했다가 발견한 평사리
'토지'의 배경무대로 점찍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평사리는 토지 소설의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먼발치에서 평사리를 스쳐나갔을 뿐
정작 평사리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당시 큰 부잣집 최참판댁이 인근에 있었는데,
역병으로 식솔들을 잃어 추수하지도 못한 채
넓은 들판의 곡식을 버려 두었다는 말을 듣고
토지 소설의 작품 구상에 도움이 되었다 한다.
작가가 당시 전해들은 부잣집은
악양 면소재지에서 2km쯤 떨어진
상신마을의 조부잣집이라고 한다.
150년 전에 지은 집이지만,
네모 돌담 안 대지가 천 평
뒷곁의 대나무 숲, 앞뜰 연못
토지속의 최참판댁과 흡사하다.
평사리가 작품의 무대라 하지만
정작 소설속 평사리와 다른 정감
토지 소설에 등장하는 평사리는 꾸며낸 공간.
그러나, 실화인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많은 사람을이 문학기행 삼아 그곳을 찾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