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비 오는 지난 일요일 오후 또 다시 서울 행. 이화동 홍대 대학로아트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이날은 소위 ‘파티하는 날’이라고, 그동안 번갈아 주연을 맡은 출연자들이 함께 무대를 꾸미고
관객들과 같이 즐기는 그런 공연이랍니다. 나는 뮤지컬공연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 많은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통째로 외울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기에 가능한 것일까?
게다가 격렬한 안무가 많은 공연을 볼 때는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뛰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음정과 표정,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그간 흘린 땀을 생각하며,
그 열정을 응원하곤 해요. 무대 뒤에서 얼마나 가쁜 숨을 몰아쉴까…
밤 10시 반. 막내딸을 태우고 충주 집으로 귀가하는 길은, 전 주 상경할 때처럼 폭우 속에서
벌벌 떨어가며 야간 운전하느라 이명이 들리고 나중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험난했습니다^^
내친 김에 나의 음악실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려고요. 이번에는 내가 어떤 경험을 하면서
Phillippe Jarousky 필립 자루스키에 도달했는지, 몇몇 테너 가수들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내 아버지는 생전에 Luciano Pavarotti 파바로티를 포함한 소위 3대 테너 The Three Tenors를
매우 좋아하셨지만 그보다 앞선 Mario Lanza ‘마리오 란자’야 말로 최고의 테너라 극찬하셨고
특히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을 이 정도로 강렬하게
부를 수 있는 가수는 없다 하시며 기분이 좋은 날이면 목청껏 따라 부르시던 기억이 납니다.
https://youtu.be/8CLLtXJxwkk
중딩이었나, 텔레비전으로도 상영되었던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에서 남자주인공이 탁자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Drinking Song 축배의 노래’를 부르던 장면에서는 나도 그 무리 속에
같이 끼어 흥을 느끼고 싶었어요. 참 아련합니다~
https://youtu.be/VASI5S1PJuc
그 외에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 흐르는 눈물’ ‘Che gelida manina 그대의 찬 손’ ‘Celeste
aida 청아한 아이다’ ‘Vesti la giubba 옷을 입어라’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건만’… 특히
모든 테너들의 애창곡이라 할 ‘Nessun Dorma’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눈을 지그시 감고
마리오 란자의 노래를 감상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은 팝과 국내 가수들 노래를 즐겼습니다. 20대 중반 가톨릭 세례명을
받으며 접한 가톨릭성가는 이런 배경 덕에 가깝게 느껴졌어요. 서울 혜화동성당 청년성가대로
활동하던 시절, 파바로티를 좋아했던 안드레아(후에 카운터테너로 활동합니다) 소개로 알게 된
테너 ‘Peter Schreier 피터 슈라이어’, 그리고 베를리오즈 레퀴엠 중 ‘Sanctus’를 듣게 됩니다.
https://youtu.be/XSmTU634Ovk
세기의 테너라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감미로운 도밍고 그 외 대부분의 테너와 차별되는
맑고 청아한 음색이랄까? 비브라토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발성으로 미사곡을 부르는 목소리가,
톤은 좀 더 굵지만 단번에 모든 음을 내지르는 듯 깔끔하고 힘찬 고음을 내는 마리오 란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나는 가톨릭 미사곡은 피터 슈라이어처럼 맑고 깨끗한
음색이 훨씬 더 경건하게 들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마도 피터 슈라이어가 다른 분들에게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https://youtu.be/dKNBv0tIJ3k
이후 10여 년은 클래식음악을 가까이 두지 못한 시기였어요. 그리고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예의 그 안드레아가 폴리포니앙상블이라는 무반주 남성 다성음악을 하는 합창활동을 하던 중
아들과 함께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들 요한은 그때 보이 소프라노로 촉망되던
어린 소년. 아버지와 함께 부르는 Veni Sancte Spiritus 베니 쌍테 스피리투스
https://youtu.be/pasVIs2RdWo
사실 이 무렵 ‘Andreas Scholl 안드레아스 숄’이 부르는 ‘나무그늘 아래서’를 들을 때만 해도
처음에는 그가 카운터테너라는 걸 알지 못하고 그냥 아름답게 감미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특히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는 사람의
목소리로 낼 수 없는 고음이어서 기계로 다듬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죠? 그 즈음
국내에서는 임형주 정세훈이 등장했지만 (나에게)카운터테너로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대중적인 ‘할렐루야’보다 다른 삽입곡들을 훨씬 좋아하게 된 Handel의 오라토리오
Messiah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Michael Chance 마이클 챈스’가 여성 독창곡으로 알고 있던
‘who may abide’를 부르는 모습에 매료되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알아보다가… 독보적인
카운터테너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https://youtu.be/fpPyN5t7uyo
그리고 다시 10년 후인 50대 중반부터 아내와 가톨릭성가대 활동을 재개. 유튜브를 통해
많은 가톨릭합창곡을 즐겼으며, 클래식음악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클래식방송 ORFEO에서 ‘Phillippe Jarousky 필립 자루스키’를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로서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나날이 발견하며 또 경험하고 있습니다.
원통하고 아쉽기는… 이토록 자루스키 찐팬임에도 년초에 내한 공연했다는 걸 최근에 와서야
알았다는. OTL 앞으로 수년 안에… 내 생전에 다시 한 번 더 와 줄거죠? ㅎㅎ
https://youtu.be/exAxdWs-hKk
그런 과정에서 Jakub Józef Orliński 야곱 요제프 오를린스키의 노래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루스키에 푹 잠겨 있기 때문에 여전히 눈에 들어오진 않더라고요. 그 역시
꽤 잘하는, 탑 클래스 수준임에도 말이예요.
https://youtu.be/Yj4pkERsSWU
Countertenors Franco Fagioli, Andreas Scholl, Phillippe Jaroussky, Michael Chance and James Bowman sing the allegro
from Vivaldi's Nisi Dominus, RV608 앞에서부터 프랑코 파지올리 / 안드레아스 숄 / 필립 자루스키 / 마이클 챈스 / 제임스 바우먼
최근에는 “baroque and beyond”라는 유튜브 채널을 창구로 같은 노래를 비교 시청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절로 이전보다 더 다양한 카운터테너를 알게 되고요.
참 좋은 시절, 경이로운 세상입니다.
덧붙여… 국내 팬들에게 카운터테너의 매력을 널리 알려 준 팬텀싱어3의 최성훈과 해외파로
알려진 팬텀싱어4의 이동규를 응원합니다~!
만일 내가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음악공부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확실한
발성을 할 수 있고 더 다듬어진 목소리로 가톨릭성가대와 지구 남성중창 혹은 합창단에서
가톨릭성가를 마음껏 부르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물론 직업은 월급과 퇴직금이 있는
직장생활을 꾹 견디며 잘 할 거고요… 노래활동은 아마추어로만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