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잃어버린 꿈을 꾸고
나서
새삼 살아오면서 닳아
없앤 신들과
습관처럼 자주 잃어버린
신들을 생각한다
불깡통 돌리며 쥐불 놓던
날의 먹고무신
철길 걸으며 휘파람
가다듬던 날의 운동화
최루탄 맞고 도망가다
잃어버린 구두를
떠올린다
이미 걸어 온 길 때문에
계속 걸어온 길을
되새긴다
또한 어떻게 신발끈을
조이고
부끄럽지 않게 앞길을
가나 생각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이없이 신을 잃고
헤매다가
어디서 남녀로 짝짝인
흰고무신 얻어 신고
어기적거리다가 꿈을 깬
날 아침에.
- 최두석, [신발] -
새벽 미사에 참례하리라 마음 먹었으면서도 그만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바람에 부득이 11시 교중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 사이 위의 詩 한 수를 골라 주변 지인들과 공유하느라 긴 시간 할애하다 보니 보통으로 바쁘고 분주한 일이 아니었다.
주임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교중 미사에는 마침 앞자리가 비어 있다고 가서 앉으라는 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그리 좌정을 하고 나니 차라리 제대도 잘 보이고, 신부님 말씀도 선명히 잘 들려 좋았지 싶다.
미사 후, 아일랜드의 둘째 짤 정아 아녜스가 보내 준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신 성 요셉상 성물을 신부님께 축성받고, 사무실에 들러 한 달치 교무금과 추석 합동 위령미사 봉헌금을 신립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늦은 아점을 든 후 양치질을 마친 후, 곧 침대에 스러져 4시가 다 될 때 까지 숙면을 취하는 오수를 즐겼다.
ㅁ모이 개운해진 느낌이다.
그 사이 구남매 단체 카톡방에서는 큰형님께서 1982년 음력 팔월 초열흘 즈음 어머님의 화갑 기념 유럽 성지 순례 떠나시던 날 아침에 조반을 든 후 응암동 큰집 계단에서 부모님 모시고 찍은 가족 단체 사진을 올리셔서 답글을 남겼더니 야고보와 요안나도 사진을 골아 게시.
나도 당달아 2003년 4월 27일(토) 부산 부곡성당에서 거행되었던 오촌 조카 원용군의 혼인 예식에 참석하고, 해운대 바닷가로 나가 어머님 모시고, 신암둥 숙모님과 마리아 고모님을 위시하여 장국명 자형님과 명애, 익준 부부 등 사촌 아우들, 그리고 누님과 베드로 형님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단체로 찍은 사진을 스테파나이가 찾아 주길래 게시하며, 얼마 전 어머님과 함께 어디선가 예수성심상 앞에서 찍은 사진의 출처를 찾게 되었다는 메시지도 남길 수 있었다.
같은 기억, 같은 추억을 막고 사는 우리들은 한 마음 한 형제요, 혈육임을 새삼 확인하는 듯 하여 반가웠다.
우리는 지금 추억 여행중이다.
6시 조금 넘어 지난 19일(금)에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고 닷새간의 격리에 들어 가 있다는 야고보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할 겸 하여 전화를 걸어 신부님과도 소통할 수 있어서 감사하였다.
신부님께서도 내일쯤 코로나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시니 좋은 결과아 있으시기를 기도 바친다.
아내가 저녁 미사에 가기 직전에 만들어 준 국수를 아주 맛있고 포만감 넘치게 잘 먹고 났더니 배가 얼마나 불러 오던지 그대로 있읋 수 없어 묵주 들고 발바닥공원을 한 바퀴 걷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낮시간대 보다야 한결 시원한 감을 안겨 주고 있지만, 그래도 늦더위라고 땀을 연신 흘려야만 했었다.
묵주 기도 30단을 바치고 나니 우리집 바로 옆 소공원에 도착.
허리 돌리기 200회를 한 다음, 카톡 메시지를 확인해 봤더니, 어제 헤어질 무렵 ㄷ아구 한 게임을 더 하기로 구두 약속을 했었으나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지하철 타고 도망(?)가다시피 했던 장위동 사는 L 전 국장이 엉터리 같이 사실 관계 조차도 전면 부인하고 나서면서 오히려 내가 적어 보낸 메시지의 단어들을 고스란히 인용해 가며 원색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 왔길래, 조목조목 반박해 주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언행을 일삼는 그에게 일단 일갈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 관계란 것이 이리 종지부(?)를 찍어서는 아니 될 터여서, 마지막에는 조금 달래(?)주는 멘트도 남긴 후 우정 안 받을 줄 알면서도 전화를 걸었더니 숫제 수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소인배적인가 싶기도 하다 싶긴 하다.
집에 와 샤워부터 한 다음 이렇게 일지를 적고 있다.
정아가 아일랜드와 낙 성지에 대한 장문의 글, 명문 속에 마지막 기도문을 여기 옮겨 실으며 일지 작성을 마치려 한다.
[하느님과 멀어진 아일랜드가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낙성모님 빌어주소서.
신앙심이 약해진 카톨릭 신자들의 가슴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질 수 있도록, 낙성모님 빌어주소서.
아기 예수님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항상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우리의 영적 아버지 요셉 성인이시여!
우리를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에수님의 말씀을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새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을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사도 요한 성인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낙성모님, 우리 모두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기근과 아사자가 넘쳐 나던 1879년 8월 21일에 아일랜드의 서쪽 마요지방(County Mayo)의 낙(Knock)이라는 작은 마을의 성당 건물 뒷쪽으로 착하신 우리의 천상 어머니,마리아께서 발현을 하신 지 오늘로써 143주년이 되는 날 밤이 이렇게 깊어 가고 있다.
천주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