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당기는 변화
금요일날 '팬덤싱어' 토요일날 '불후의 명곡' 일요일에 복면가왕, 기타 이름을 다 외지도 못할
프로그램이 양쪽 경쟁 대결 구도이다. 그러다보니 분위기가 자유롭지 못하고 다소 경직되고
과장되고 크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해 편곡을 하여 노래가 엇비슷해져 간다.
전신에 노래가 담겼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같지가 않아서 어느 시간부터 식상하고
슬슬 재미가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심야에 텔레비젼을 틀었다가 나는 놀랐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악프로가
진행 중인거다. 프로그램 제목 중에 파티란 단어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피디의 시도도 빛난다. 일단 시작하면 어느새 앗차 하고 조금 더 진화하거나 유사하게
변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것을 보거나 부르는 것을 듣는 시개다 아니다. 흥이 담기면
프로만 하지는 못해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예능에서는 놀랍게도 출연진들이 일반주택으로 나가서 한 끼 먹여달라거나 어린이들과 퀴즈
맞히기를 하는 프로도 등장하였다.
남의 변화를 베끼며 뒷북치는 것은 모방이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어느새 시청자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느끼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은 감각이다.
예술이나 패션이나 세상 모든 것은 유행을 탄다. 심지어는 삼시세끼 먹고사는 집밥도 유행을 탄다.
한참 유행의 한 복판에서 무르익어갈 무렵에 이미 변화를 꿈꾸지 않고 언제까지 이어질듯
누리고 있으면 때는 늦다. 돌고돌다가보면 인가느이 머리에서 나올 수 잇는 것에한계가오고 그럴
즈음이면 복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로운 듯 옛것을 가지고 나온다.
중창단에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박자 끝까지 소리를 끌고 있으면 다음 소리로 들어가기가
어려우니까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정확히 치고 들어가라고 한다. 변화할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넋 놓고 소리 지르다가 보면 첫 음정을 놓치기 십상이다.
수필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찍 1990년대부터 짧은 잠언 수필쓰기를 시도하여
두 번이나 독자를 확보해보았고, 그 다음에는 명화에 수필을 입혀 변화를 불러들였다.
'귀띔'이라는 책은 주로 짧은 구어체로 소근거리듯 조용하게 들리도록 써보았다.
이제 나는 랩을 하고 지나가듯 글을 써보고 싶다. 김완선이나 김건모, 박진영이나 거미란
가수가 자기 노래 남의 노래 영역을 가르지 않고 가창력과 자연스러운 춤을 곁들여 노는 속으로
들어가 동화되듯 생각과 느낌이 자연스럽게 유로되는대로 써서 글 파티를 열어보고 싶다.
과격하게 분위기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진행자가 유쾌하게 조율한다.
이 경우에는 장 봐 와서 풀어 놓은 자리에서 아직 요리하기도 전에 오이 하나 씻어서 베어물고
치즈 한 장 꺼내서 혓바닥에 얹어보는 맛일 것같다.
흥미가 동하고 신이 난다. 닥치는대로 느끼는대로 글로 드러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잘려다가 다시 나와 이 글을 쓴다.
잠이 오면 자고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나 지면 그런대로 따라가 보고 싶어진다.
이게 가을 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