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질주
김진주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친척 집 허드렛일을 하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며칠에 한 번 학교에 갔기에 이름 석 자만 겨우 배우고 졸업장을 받았다. 고단하기도 했지만, 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책도 사 년이 지난 헌책이었다.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책 페이지도 맞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책도 연필도 없었다. 자연히 공부와 멀어졌다. 기성회비까지 내지 못해 선생님께 야단만 맞으니 학교 가는 게 싫었다.
친척 집은 잘살았다. 하지만 일만 시켰지 내게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공부를 시켜준다던 말은 허울뿐인 약속이었다. 악몽 같은 칠 년을 보냈다. 동창생들은 중학교에 들어갔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소녀들을 보면 부러웠다. 혹시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일부러 다른 길로 다니기도 했다. 어쩌다 만나면 친구도 나를 피해 갔고, 나도 얼른 친구의 눈을 피해 외딴 골목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었다. 동창회에 가서는 말실수라도 할까 봐 스스로 주눅이 들어 슬쩍 그 자리를 피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그러나 점점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자신이 싫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거리의 영어 간판이 낯설어 보였다. 식당 차림표에도 옷에 붙은 상표에도 꼬부랑글씨가 빠지지 않았다. 추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간판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잊고 있던 향학열의 불씨가 살아났다. 학교에 진학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종이에만 ABC를 끄적거리며 세월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배우지 못한 한을 아이들에겐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대학을 졸업시키고 며느리에 손주까지 보았다. 어미의 책임을 다하고 나니 공부를 하고 싶었다. 늦었지만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큰아들에게 중학교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속내를 비췄다. 무슨 공부를 이제 하느냐고 핀잔을 주면 어쩌나 했는데, 흔쾌히 해보라고 위로를 건넸다. 큰아들 손을 잡고 학원에 등록했다. 중학교 책을 가슴에 안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졸업장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책 안에 어떤 내용이 들었는지 궁금했다. 집에 오자마자 책을 펼쳤다. 국어는 한글이라 읽을 만 했다. 영어와 수학은 그야말로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였다.
사십 년째 미용사 일을 하는 나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국어책부터 꺼내 들었다. 저녁 7시에 학원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는 인터넷에 매달렸다. 밤이 깊어져 가도 모르는 것은 알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하느라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 앞머리가 쑤시고 열이 났다. 그 나이에 뭘 하려고 골치 아픈 공부를 하느냐고 손님들이 물었다. 이승에서 못쓰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의 서기가 되려고 그런다고 웃으며 답했다. 미용사로서는 능숙한 가위질로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잘 다듬어 주었지만, 공부를 익히는 기술은 따라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검정고시는 일 년에 두 번 있었다. 등록이 늦은 관계로 4개월 만에 시험을 치게 됐다. 육 개월 다 공부해도 될까 말까 한데 이번엔 시범 삼아 쳐보리라 생각했다. 시험 날 아침, 수험표를 챙겨 집을 나섰다. 마음은 벌써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교문 앞은 각 학원에서 나와 커피와 물을 나눠주며 격려하느라 북새통이다. 따뜻한 응원을 받으니 감개무량이었다. 시험지를 받았다. 가슴이 마구 떨렸다. 이 나이가 되도록 배운 것이라고는 용기와 배짱뿐이다.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자라도 놓칠세라 돋보기를 끼고 자세히 훑어보았다. 아는 대로 답안지를 메워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답안지를 맞춰보느라 야단들이다. 나도 마음을 가라앉히며 살펴보았다. 합격 점수에 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큰아들이 시험 잘 쳤냐고 물었다. 글쎄 하고 말끝을 흐렸다. 기대는 하지 말고 다음에 또 치면 된다고 달래준다. 발표 날만 기다렸다. 가슴에서 방망이질이 그치지 않았다. 명단을 보았다. 합격이었다. 잘못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확인 전화를 부탁했다. 합격이 아니면 부끄러워서 말을 아꼈다. 몇 초가 길기만 하다. 전화기에 아들의 번호가 떴다. 엄마를 재차 부르며 들뜬 목소리로 합격이라는 말과 함께 축하도 해주었다. 드디어 내게도 중학교 졸업장이 생겼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엉엉 울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목이 쉬도록 혼자서 울었다.
두 달이 지났다. 더 이상 욕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책을 만져보고 싶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단박에 고등학교 시험은 어렵다고 했다. 괜히 부끄러웠다. 겨우 중학교 졸업장 하나 따놓고 고등학교까지 넘보나 하는 것 같아서였다. 대입 검정고시 시험이 두 달 남았다. 졸업장보다도 정말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풀이 죽어 있는 내게 아들이 해보라고 건성으로 말하는 듯했다.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또 아들 손을 잡고 갔다. 등록을 하고 와서 책을 폈다. 중학교 책만큼은 생소하지 않았지만 두 달 만에 시험 보기에는 무리였다. 느긋하게 지냈다. 시험일이 다가오니 신경이 쓰였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주일을 남겨놓고 책과 씨름했다.
대입 검정 시험 날이다. 제일 먼저 도착했다. 합격을 포기하고 와서 그런지 지난번과는 달리 차분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수험생이 속속 들어왔다. 앳된 소녀와 아주머니, 청소년과 군인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저들은 무슨 사연으로 공부 시기를 놓쳤을까. 나처럼 가난하고 고생스러웠을까. 중학교 검정 시험 때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마음이 느긋하니 보이는 것도 많았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답을 적어 나갔다. 낯설지가 않았지만, 입 안이 말랐다. 시험을 다 치르고 나니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내렸다. 고작 두 달 공부해서 시험에 붙는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바람에 떨어진 답지를 주워 교실 뒤쪽으로 갔다. 답을 살펴보았다. 자신 있게 쓴 것도 있었지만, 아리송해서 찍은 답도 제법 맞았다. 설마하니 또 그때처럼….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기는 싫었다. 답지도 내 마음처럼 빗물에 젖었다. 찢어진 답지를 들고 걸었다. 우산이 없어 쏟아지는 비를 함빡 맞았다. 서너 문제만 더 맞아준다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아들에게 마을을 전했다. 두 달도 안 배우고 합격을 바라냐며 영 안 믿는 눈치다. 그래,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누구나 다 합격하겠지 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한마디가 자꾸만 서운하게 밀려왔다.
시험 발표가 있는 날이다. 마음을 접고 확인했다. 눈이 이상한 것일까. ‘김진주’라는 내 이름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또다시 아들에게 부탁했다. 기다리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전화벨이 이내 울렸다. 합격이라고 한다. 침착한 아인데 이번에는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육 개월 만에 마치다니 기적이었다. 좀 더 젊은 나이에 시작했더라면 고생을 덜 하며 살았을 텐데…. 속울음을 울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믿기지 않아서 한동안 자랑도 못했다. 어떤 초등 친구는 문자메시지에 뻥이라고 보내왔다.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손님들이 대학을 가라고 부추기며 축하했다. 갈 수만 있다면 가야겠다고 내뱉고 보니, 도전해 보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다. 사람들이 대학교도 가라고 한다며 아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두말 않고 등을 떠민다. 망설이지 않고 전문대학 미용학과에 도전장을 냈다.
늦깎이 대학생인 만큼 앞만 보고 달렸다. 공부에만 전념했기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며느리, 손자, 아들이 보는 앞에서 학사모를 썼다. 육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뒤늦게 쓴 학사모지만 나 자신이 대견해 스스로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학사모와 가운을 벗어서 아들에게 입혀주었다. 이곳에 서 있기까지 도와준 아들이야말로 이 자리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긴 세월 동안 마음 한구석을 덮고 있던 꼴찌의 허물을 오늘에서야 모두 벗었다. 인생의 완주패를 받은 느낌이었다.
아이들도 잘 컸다. 소박한 가정을 꾸려 잘살아가고 있다. 곧 칠십이 되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다. 어쩌면 그 눈물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수필 공부를 경험했다. 나를 뒤돌아보는 글을 쓰기 위해 어설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나를 쓰고 나를 읽는,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위해 뒤늦은 질주를 또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