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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통기타동호회martin(1:1눈높이강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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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듣기,가사,동영상 스크랩 주현미 - 기타반주 옛날노래 메들리 1, 2집 40곡
martin 추천 0 조회 239 14.10.24 11: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주현미는 1961년,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서 대만(= 타이완 또는 중화민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한국 화교 3세 출신이다.

중학교 2학년때인 1975년에 처음으로 기념음반 《고향의 품에》를 취입했으며 1981년, 중

앙대학교에 다닐 무렵 MBC 강변가요제에 약대 음악그룹 [진생라딕스]의 보컬로 출전하여

입상하였다.

1984년, 주현미는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서울 중구 남산 주위에 한울

약국을 개업하여 약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약사로 활동하던 당시 작곡가 정종택의 권유로 김준규와 함께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를

취입하고 쌍쌍파티의 히트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1985년에 정규 1집 앨범 《비내리는 영동교》를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수에 데뷔

를 하며 국내 최초 약사 가수로 화제를 모았다.

첫 앨범의 타이틀 곡 〈비내리는 영동교〉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신인상

까지 받았지만 주현미는 가수의 길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986년, 〈눈물의 부르스〉1988년, 〈신사동 그 사람〉이 연달아 히트하

면서 10대 가수상과 최우수 가수상을 차지하며 정통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발짝 더나아가 주현미는 198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등극하여 김수희,

심수봉과 함께 당시 여성 트로트계 빅3로 불리면서 그녀들과 함께 무대와 공연을 펼쳤으며

여러 앨범을 제작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1988년 2월 14일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락그룹 엑시트의 보컬이었던

임동신과 결혼하였고 1989년에야 비로소 대만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취득하였다.

결혼 후 더욱 승승장구하여 결혼식을 올린 1988년에 「KBS 가요대상」을 비롯한 주요 가요

부문상들을 휩쓸으며 1990년, 아시아 가수로서 처음으로 국제가요제연맹(FIDOF)에서 시상

하는「디스턴트어코스」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에는 본격적으로 일본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잠시 활동이 주춤하던 1994년, '에이즈에 걸렸다, 사망했다.'는 소문이 언론에 퍼졌다.

그 사건에 대해서 "둘째 아이를 낳고 7년 동안 음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청계산 쪽 전원주택에서 생활로, 그런 소문이 돈 것 같았다"고 해명했다.

 

긴 공백기를 거쳐 2000년 8월, 《러브레터》를 발표하고 가요계에 복귀하여 다시금 트로트

가수로 각광받았으며 2003년에 〈정말 좋았네〉를 히트시켰다.

또한 이듬해 8월에는 KBS가 평양 모란봉에서 녹화한 전국노래자랑 평양편에 남측 가수 대표

로 가수 송대관과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

주현미는 대한민국에서 이미자, 김연자, 문희옥 등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몇 안되는 가수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하는 후배들과의 음악적인 교류로 활발히

하고 있다.

2008년에 조PD,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발표한 힙합과 트로트의 조합을 이룬 〈사랑한다〉가

인기를 얻었으며 2009년에는 소녀시대 서현과 함께 〈짜라자짜〉라는 세미 트로트곡을 발표

하기도 해 화제가 되었다.

2010년부터 자신의 단독 라디오 [주현미의 러브레터] 의 MC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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