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시간의 가치에서 탐색하는 서정적 자아
--연선화 시집 『머물 듯 머물지 않는 시간』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그리움의 실체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시간과 동행하지 않는 삶을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수용하면서 다채로운 인생행로를 지나왔다. 이 과정에서 피치 못하는 동반자의 애증(愛憎)으로 영위했던 시간(세월)에서 겪었던 삶의 흔적들이 재생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투영하는 것이 시적인 발원지가 되는 것은 우리들 시인에게서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시인들은 지나온 체험들을 중시한다. 삶에 대한 경험이 바로 작품의 원류로써 시작(詩作)의 동기가 되고 시심(詩心)의 충동이 되는 것으로써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시적인 진실의 실체는 바로 그 시인의 자존(自尊)과 가치관으로 정립하여 작품의 주제로 명징(明澄)하게 현현되는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플라톤은 “시간은 미래영겁이 환영(幻影)”으로서 인간들이 소비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시간은 우리 인간들에게 얼마나 많은 체험을 제공하면서 시인들의 향기를 북돋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 연선화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머물 듯 머물지 않는 시간』을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상념에 먼저 흡인(吸引)하는 것은 그가 천착(穿鑿)하는 시간에 대한 무한한 메타퍼는 그의 인생과 직접 상관성이 있는 그리움이나 외로움 등 인간의 애환이 깊게 잠재해 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엔 그리움이 베어 있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엔 향기만 그득하다
떠나간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림자는
목을 뺀 사슴처럼 외롭고
떠나보낸 모든 것들은 외로움을 안고 산다
내가 선 그 자리가 누군가의 자리였듯
누군가의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어가는
머물듯 머물지 않는 시간
걸어가는 그 길 위로 사람과 사람은 인연을 만들고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생의 이름으로 짧은 입맞춤을 하는 그 순간까지
--「머물듯 머물지 않는 시간」 전문
우선 이 시집이 표제시인 이 작품은 “시간=그리움”이라는 등식을 성립하면서 그 시간 안에는 “떠나간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림자는/ 목을 뺀 사슴처럼 외롭고/ 떠나보낸 모든 것들은 외로움을 안고 산다”는 그리움의 원형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이처럼 그리움과 외로움은 시간의 매체에서 괴리(乖離)될 수 없는 형태의 시법으로 현현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사유(思惟)가 멈춰진 “머물듯 머물지 않는 시간”에서 창출한 이미지는 “사람과 사람은 인연을 만들고” 또한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형상의 시간은 연선화 시인에게서 작품의 중심을 지탱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연선화 시인은 작품 「욕망」 중에서도 “욕망의 붉은 덩어리/ 시간의 형벌 속 방황하는 고뇌/ 타협에 등지고/ 잿빛 하늘 맞닿은 수평선 넘어/ 깊은 심연의 바닷속/ 허깨비 욕망을 수장시킨다”는 어조와 같이 삶의 진행과정에서 생성하는 다양한 심리적인 지향점은 바로 이 시간성에서 욕망이나 형벌이나 고뇌 그리고 타협 등으로 그의 심연에서 수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평온의 침묵
때론 두려움의 시간이다
여유를 즐길 빈 마음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조차
경쟁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여백의 미
채우려 하지 말자
미완성 그림처럼
무얼 그릴까 하는 설렌 마음
채워지지 않아 아름다운
순백의 그 느낌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여백이다
--「여백의 미」 전문
연선화 시인의 뇌리에는 이와 같이 두려움의 시간 혹은 경쟁의 시간에서 비로소 감지한 것은 바로 “여백의 미”이다. 그는 이처럼 시간의 여백에서 창조하려거나 구현하려는 미학적인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결론으로 적시한 “미완성 그림처럼/ 무얼 그릴까 하는 설렌 마음/ 채워지지 않아 아름다운/ 순백의 그 느낌 /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여백”이라는 지적인 가치관을 엿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가 심취하는 시간의 형상은 대체로 “애태운 침묵의 시간(「미로」 중에서)”이거나 “사색의 시간을 어루만지는 아침 햇살(「아침 풍경」 중에서)”, “시간의 여행자가 되었다(「아침을 여는 소리」 중에서)” 그리고 “시간의 밑바닥에 묻어두고/ 세월의 약을 바르는구나(「흔적」 중에서)” 등등에서 그가 적시하고자 하는 시간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에 몰입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연선화 시인이 시간성(혹은 세월)에서 구현하려는 내밀한 주제의식은 그가 살아온 인생 체험에서 획득한 추억에서 탐색하고 있는데 그 추억은 시간과 동행하면서 칠정(七情-喜怒哀樂 愛五慾)에서 추출한 이미지가 바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람이 울면 그리운 것들은/ 가슴속에 둥지를 튼다(「그리움」 전문)”거나 “아 세월의 약을 덧발라도 치유될 수 없는/ 사랑의 흔적, 지독한 그리움/ 가끔씩 찢긴 살갗에 소금기처럼 아리다(「살다가 오늘처럼 그리운 날이 또 오겠지」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그리움의 추억”이 그의 시간성에서는 절대적인 시적인 모티프가 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할 것이다.
2. 삶의 가치와 인생의 함수는 성찰에서부터
연선화 시인은 시간성에서 체득한 삶의 가치나 인생문제를 이제는 “나”라는 실체에서 탐구하는 존재의 인식에서부터 다망(多忙)했던 분망(奔忙) 중에서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선 작품 「그림자」 중에서 “늘씬한 실루엣의 그녀가/ 등 뒤에 서성일 때/ 나는 뒤돌아보았다/ 나처럼 누군가를 찾고 있는 그녀의 시선/ 어쩌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할 눈 맞춤 ”이라는 자아의 발견에서 인생을 인식하게 되고 「잡초」 중에서는 “나는 강하다/ 거센 바람의 길을 순응하며/ 등줄기를 굽히어 유연하게 따르는 진리/ 내가 꺾이지 않고 살아남는 이유다”라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잡초”를 의인화해서 자신의 진정한 내적인 화법(話法)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한편 「바람이라면」 중에서는 “내가 바람이라면/ 하얀 드레스 갈아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삶의 가지마다 향기로운/ 그대 모습 알알이 걸어놓고/ 삼백예순날 노래하고 싶다”라는 간절한 어조로 기원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서 그는 자아의 존재를 명학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뭐가 그리 바빠 돌아치느냐
구름도 쉬어가라 산허리를 내어주고
바람도 쉬어가라 산골짜기 내어주는
높은 산 품에 안겨
발아래 세상 굽어보니
덧없는 세상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군상들의
모습이 처연하구나
세상살이 다 그렇지
하지만 누구나
인생은 살만한 것이며
삶의 가치는 저마다의 인생이다
숭고한 삶의 뜨락에 희망과 기쁨이
꽃처럼 피어나 아름다운 색깔로
아름다운 향기로 머무르게 하소서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
꽃처럼 쉬어가라
--「쉬어가라」 전문
그러나 보라. 그는 저마다 구가하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함수(函數) 관계는 상대성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동질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 꽃처럼 쉬어가라”를 외치면서도 시의 상황설정에서 “높은 산 품에 안겨/ 발아래 세상 굽어보니/ 덧없는 세상 /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군상들의 / 모습이 처연하구나”라는 어조로 삶에 대한 현실을 처연하다는 자괴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작품의 기승전결 과정에서 세상살이는 다 그렇다는 긍정의 의지로 전환하고 있으며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처연한 군상들에게 위무의 어조를 보내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가치는 인생과 불가분의 상관관계에서 동류의 지향점을 전개하면서 삶이 영위되고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정립되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결론부분에서 “숭고한 삶의 뜨락에 희망과 기쁨이/ 꽃처럼 피어나 아름다운 색깔로/ 아름다운 향기로 머무르게 하소서”라는 기원의 어조로 삶의 무게를 스스로 해소하고 숭고한 삶의 뜨락에서 꽃처럼 쉬었다가라고 다짐하면서 모든이들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박목월 시인도 그의 글 「행복의 얼굴」에서 “삶도 시와 같다. 왜 사느냐? 즐겁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 삶의 본질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삶의 속성을 어느 일면에서 풀이한 것이”라는 말로 삶의 행보에는 고락(苦樂)이 동반하지만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을 외면하지 못한다.
말 없는 세월 흔적으로 남겼다
질펀한 세상 아귀처럼 뒹굴며
살아온 세월의 훈장
깊게 파인 주름살이 말한다
둘러보니 잰걸음 모두가 바쁘다
느린 걸음 마지막 갈 곳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나 보다
쓸쓸한 어깨너머 휑하니 부는 바람
뼛속까지 시리구나
쉬어가는 바람조차 어깨는 무겁다
못내 아쉬워 불사르는 석양처럼
마지막 열정을 붉게 토해내어도
서산의 해는 말없이 기운다
--「인생의 뒤안길」 전문
연선화 시인은 다시 인생은 세월의 흔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뒤안길에는 고난과 아픔이 공존하면서 한생을 살아가지만 “질펀한 세상 아귀처럼 뒹굴며/ 살아온 세월의 훈장 깊게 파인 주름살이” 인생의 애환의 훈장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삶들은 “느린 걸음 마지막 갈 곳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나 보다”라는 이해와 성찰의 관념은 삶과 인생의 마지막 도달할 곳을 예측하면서 깊게 자성(自省)의 어조로 스스로 위무(慰撫)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연선화 시인은 세월이라는 시간성에서 인식하는 인생은 결론적으로 마지막 갈 곳을 예견하지만 쓸쓸한 바람은 뼛속까지 시리는 형상으로 덧없는 인생길에 대한 절망과 우주의 섭리에 대한 근엄한 수긍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라. 그는 마지막 연에서 어깨가 무거운 바람이나 “못내 아쉬워 불사르는 석양처럼” 마지막으로 열정을 절규해도 “서산의 해는 말없이 기운다”는 체념의 어조는 더욱 체감(體感)하는 인생론의 결말이라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3. 재생하는 생명의 발원지, 사모곡
연선화 시인은 자신의 체험 중에서 영원히 불망(不忘)으로 각인되어 있는 작품의 테마가 있다. 생명의 발원지 모태(母胎)인 어머니이다. 우리 시인들은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시 한 편을 써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생전에 받았던 사랑, 모정(母情)이나 사후에 어머니를 회상하는 사모곡(思母曲)의 아련한 정감적인 언어가 많은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남조 시인은 그의 글 「그 먼길의 길벗」 중에서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는 말로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정감을 들려주고 있다.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나의 생명을 탄생시킨 모태(母胎)로서의 위대한 존경과 효성을 발휘할 대상이며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사모(思慕)의 존재로서 나의 영육(靈肉)이 동반하는 숭엄(崇嚴)한 위치에서 항상 효도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기 모든 시인들은 은혜의 보답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어미야 자꾸 키가 줄어든다
세월이 갉아 먹은 연골이 한 뼘은 삭아 들어
낫자루처럼 휘어진 등엔
지금도, 살그랑 호미질 소리를 자장가로 듣던
아가의 베넷 웃음이 업혀져 있었다
뾰족한 새순이 단풍이 들기를 여러 차례
그 세월에 강산마저 변하였거늘
영원불변 화석처럼 변하지 않는
고향이며 향수이고, 그리움인 나의 어머니
삶의 풍상을 받쳐 든 굽은 등은
어머니의 숨소리와 내 심장 소리가 교통하던 곳
그곳에서 울음을 멈췄고
그곳에서 잠을 잤으며
그곳에서 꿈을 꾸었다
--「어머니의 등」 전문
그는 모정을 진솔한 심경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세월이 갉아먹은 어머니의 등 연골은 “지금도, 살그랑 호미질 소리를 자장가로 듣던/ 아가의 베넷 웃음이 업혀져 있었다”는 그의 수사법(rhetoric)이 우선 어머니와의 정적인 현장이 비교적 잘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은 “영원불변 화석처럼 변하지 않는/ 고향이며 향수이고, 그리움인 나의 어머니”일 수 밖에 다른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공감을 확대하고 있어서 그의 결론은 “삶의 풍상을 받쳐 든 굽은 등은/ 어머니의 숨소리와 내 심장 소리가 교통하던 곳”이라는 심연(深淵)의 진실을 토로(吐露)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비단꽃」 중에서도 “조바위 색동저고리 돌쟁이 옷/ 날마다 꽃을 피우던 어머니// 어느 날/ 바늘을 쥐고 곤히 잠든 어머니를 보았다 / 바늘에 찔려 굳은살 박인 손을 보았다”는 효심이 넘치는 정황(情況-situation)에서 우리들은 그의 사모곡은 극치(極致)를 이룬다.
햇볕이 쨍쨍 뜨거운 날엔
바지랑대 높이 올리고
어머니는 하얀 이불 홑청을 널어놓으신다
아이들이 하얀 지붕 속을 헤집으며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해맑은 웃음소리가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허공에 햇살처럼 흩어진다
보송보송 마른 이불에서 나는
햇살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바스락거리는 이불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 장난꾸러기들의 벙글거리는 얼굴을
떠올리시는 어머니 얼굴엔 미소가 흐믓하다
햇살이 안 겨다 주는 포근함에
세상 가득 행복이 번져간다
--「어머니 얼굴엔 미소」 전문
연선화 사인은 다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머니 얼굴에 가득 번지는 미소이다. 햇볕 쨍쨍한 날 바지랑대에 늘어놓은 하얀 이불 호청과 파란 하늘 가로질러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어머니의 미소는 계속된다. 그리고 “보송보송 마른 이불에서 나는/ 햇살이 익어가는 냄새”와 “바스락거리는 이불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 장난꾸러기들의 벙글거리는 얼굴”이라는 표현의 절묘함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이미지를 어머니의 얼굴과 미소에 투영했다는 시법(詩法)은 과히 상찬(賞讚)할만 작품이다.
그는 이제 현실적인 모정에서 어머니와의 별리(別離)가 작품으로 나타난다. “일 년의 농사를 갈무리하며/ 하늘과 땅 천지신명님께 추수의 감사함을 전하며/ 장독대 부뚜막 외양간 대문 밖 할 것 없이/ 집 안 구석구석 의식을 치르시던 어머니(「어머니와 시루떡」 중에서)”가 어느 날 “간밤 바람 소리 요란하더니/ 후박나무 아래 무덤가엔 하얀 서리꽃이 피었고/ 어머니 머리 위엔 하얀 서릿발이 내려앉았다/ 가슴에 묻을 무심한 사람(「기약없는 이별」 중에서)”으로 그의 시적인 전개는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현실과 이상이 교감하는 시적 변화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저 왔어요, 어머니!/ 불러도 대답 없네, 이제 가면 언제 오시려나/ 열아홉 새색시 꽃가마 길을/ 구순의 노모가 꽃상여를 타고 가네 (「저 왔어요 어머니」 중에서)”는 애틋한 효성의 사모곡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작품 「구름꽃이 피는 날」 「어머니 밥상」 「어머니 돈줄」 「가을걷이」 「오일장」 등등에서 그가 회상하는 관념을 여과(濾過)해서 창출하는 모정과 사모곡의 진수(眞髓)를 이해하게 된다.
4. 자연 친화와 안온한 서정적 몰입
연선화 시인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추적(追跡)하거나 회상된 체험에서 획득한 이미지들에서 이제는 외적(外的)인 자연 세계로 시선을 넓히고 있다. 그는 잡다한 일상적인 생활 범주에서 벗어나 “숨죽인 물고기들/ 등을 반짝이며/ 수초 속에 아른거리고// 물오리 떼/ 파문을 일으키는 날갯짓에/ 고요한 정적이/ 어둠을 가로지른다(「강물의 심장을 찌르다」 중에서)”라는 등의 자연 서정에 몰입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는데 그는 자연 사랑의 서정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만유(萬有)의 자연계에서 생성하는 복합적인 양상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없이 지천으로 산재한 자연에 대하여 시각적으로 흡인한 사물에게 자신의 안온한 서정성이 화합하고 화해하면서 자연 친화와의 안정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응시하는 대상 사물에는 산과 강 그리고 꽃들과 함께 구름과 달 등등 그가 착목(着目)하는 많은 사물에서 자신의 정서와 사유의 지향점이 동시에 발현하는 서정시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는 완연한 서정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정립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벚나무 아래
꽃눈이 내린다
강으로 뛰어드는 저 꽃잎들
봄은 맨발로 사뿐거리고
강에도 하얗게 꽃이 핀다
바람에 뒤척이던 강
햇살에 여물어
은갈치처럼 파닥이고
저 눈부신 물비늘을 밟고
봄이 온다
--「강둑을 거닐며」 전문
그는 먼저 강둑을 거닐면서 봄이라는 계절적인 자연 현상을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놓았다. 우리 시법에는 대상물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기(showing)로 그림 속에 내포(內包)한 시적인 의미(주제)를 암묵적(暗黙的)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어떤 담론처럼 들려주기(telling)의 두 가지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향을 중시하고 있는데 연선화 시인은 이 강둑을 거닐면서 시야에 클로즈업되는 형상들을 잘 현현하고 있어서 상황을 보여주면서 서정적인 시혼(詩魂)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벚나무나 꽃눈, 강둑, 꽃잎, 햇살 그리고 물비늘 등의 풍경을 스케치로 작품을 완성하고 거기에 포괄하는 자연 서정의 잔잔한 풍경을 보여준다. 시중유화(詩中有畵)의 경지이다. 그는 강둑에서 봄의 이미지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는데 작품 「봄 마중」 중에서도 “고운 임 오시려나/ 너울 바람에 꽃비 내려/ 향긋한 꽃내음 길섶에 앉고/ 사뭇 그리운 임의 얼굴/ 아지랑이 언덕 넘어/ 살며시 피어난다”는 봄의 정경(情景)에서 친자연적인 어조로 계절의 이미지를 명민(明敏)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봄에 대한 연민이 바로 자연 현장에서 생성하는 꽃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작품 「며느리밥풀꽃」 「달개비꽃」 「봉숭아」 「유원의 장미」 「상상화」 「달 바라기」 등등에서 그가 심취하는 서정성에 우리들 모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강물은 늘 산을 비춰주는 명경이 되어주었다
꽃이 피고 낙엽이 물들고 눈 덮인 억겁의 세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며 수만 년을 망부석처럼
부동하여 넋두리를 담아내는 산 그림자
물이 일어난다
연풍에 도포 자락 휘날리듯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 위를 내딛는 몽환의 발자취
물의 경계를 초록의 능선을 홀연히 넘나들며
하얗게 피어나는 운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하늘에 맞닿는 입맞춤
한 줄기 빛이 물가에 어린다
--「숲 물에 어리다」 전문
연선화 시인은 다시 강물과 산(“숲”)의 대칭으로 그려진 명경(明鏡)에 도취한다. 꽃과 낙엽이 억겁의 세월동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면서 무언(無言)으로 자리를 지키는 망부석, 그러나 그 망부석은 “넋두리를 담아내는 산 그림자”로 그의 내면에서 균질화(均質化)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광폭(廣幅)으로 흡인(吸引)하는 것은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 위를 내딛는 몽환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외적 사물에서 몰입하는 관념의 순수성이 발현하여 결국 “물의 경계를 초록의 능선을 홀연히 넘나들며/ 하얗게 피어나는 운무”라는 실재(實在)의 상황으로 바뀌면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하늘에 맞닿는 입맞춤”이라는 암유(暗喩-recitaion)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어서 그의 시법에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가게 한고 있다.
그는 작품 「물」 전문에서도 “물은/ 흐르는 대로/ 담기는 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리의 길로 흘러가는 겸손의 미학/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그의 신념인 “겸손의 미학”, 어쩌면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비견(比肩) 되는 철학적인 어조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자연과 교감하는 작품들은 「순천만 갈대숲」 「잡초」 「춘설」 「수종사」 「풍경소리」 「보름」 등에서 적나라하게 접근하면서 그의 서정적 시 정신을 발흥(發興)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살펴본 연선화의 시 세계는 표제시 「머물듯 머물지 않는 시간」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듯이 시간에 대한 집념이 그의 사유에서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시간적인 체험에서 생성한 보편적인 관념의 형태인 그리움과 외로움 등에서 다시 삶의 가치와 인생문제에 골몰하다가 이제는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불망의 모정과 사모곡에 심취하고 결국에는 인간 본연의 심리적인 현상인 친자연적인 교감을 통해서 섭리와 순리에 동화(同化)하는 서정적 자아(自我)의 탐색으로 귀결하는 순수하고 순정적인 시법으로 환원하는 시의 본령(本領)과 위의(威儀)에서 삶의 해법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는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읽는 독자들이 영혼을 맘대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인본주의(humanism)의 초석(礎石) 아래 언어의 조화에 더욱 지적인 감성으로 시 세계의 범주(範疇)를 꾸준히 넓혀나가기를 기대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