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트랙 돌기
나는 내가 못생겼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알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원양어선을 타고 있어서, 엄마는 내 사진을 찍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동봉했다. 동료들이 둘째 딸 얼굴 좀 보자고 했지만, 아빠는 사진을 슬며시 바지 뒤춤에 넣곤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인데도 독보적으로 못생긴 얼굴 때문이었단다.
아빠를 본 건 서너 살 때쯤인데, 나를 보자마자 별명을 지어주었다. 옥떨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덩어리’란 뜻이다. 당시 못생긴 사람을 ‘메주’라고 부르는 건 흔했는데, 아빠는 그것으론 부족했던 것 같다. 친척을 만나는 자리에서 아빠는 “야는 진짜 못생기서 내가 옥떨메라 부른다 아입니까.” 했고, 다들 나를 보며 “맞네, 맞네.”, “우째 엄마 아빠를 한 개도 안 닮았노.”하며 깔깔 웃었다. 아빠는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도 가끔 나를 데려갔다. 아빠 따라 다방에 가서 따끈하게 데운 우유도 처음 먹어봤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막내딸이지만 데리고 다니고 싶은 딸이었나 보다.
못생겼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놀려도 나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거울로 보는 나는 꽤 귀염상이었고, 얼굴로 울고불고 하기에는 내겐 너무나 많은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밌고 활달하고 적극적이어서 친구도 많았고, 나에게 못생겼다고 놀리는 남학생들을 흠씬 패줄 수 있는 완력도 있었다.
중학생이 돼서는 여학생들에게 연애편지도 꽤 받았다. 반마다 짧은 머리에 운동 잘하는 보이시한 애들이 한둘 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학예회나 소풍 때는 잔뜩 차려입고, 무스로 앞머리를 넘겼다.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냐고 수줍게 말을 거는 아이에게 멋있게 어깨동무를 척 하고 함께 찍어주기도 했다. 나는 못생기긴 했지만, 꽤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리 왜 그렇게 굵어? 황소 다리네.”
“가슴 진짜 크다. 교복 조끼 터질라.”
“야. 니 교복 안 입으면 임산부인 줄 알겠다.”
불안한 집안 문제 때문에 괴로웠던 열여섯 살, 매일 구구크러스터 아이스크림 한 통과 초콜릿, 과자를 먹었다. 그 때문인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계속 살이 쪘다. 좋아하던 운동도 더는 하지 않게 됐다. 가슴이 흔들리는 게 부끄러워 체력장을 하는 날엔 결석했다. 앞머리를 길게 길러 얼굴엔 커튼을 치고 덩치를 작게 보이려고 등을 굽히고 다녔다. 내가 움츠리면 움츠릴수록 사람들은 내 몸에 대해 더 쉽게 말을 얹었다. 친한 남학생들은 나를 돼지 새끼라고 불렀는데, 어릴 적 아빠가 옥떨메라고 부를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되곤 했다. 어릴 땐 못생겼다는 말속에 귀엽다는 의미가 담긴 줄 알았다. 그런데 열일곱의 나는 진짜 돼지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어떻게 굴어야 다시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지 내내 거울을 봤다. 여전히 거울 속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뚱뚱하지만, 눈은 동그랗고 컸다. 뚱뚱하지만, 얼굴은 작다. 뚱뚱하지만, 재밌고 말을 잘한다. 뚱뚱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편지도 잘 써준다. 뚱뚱하지만, 가슴이 크면 남자들이 좋아한다던데. 하지만 ‘뚱뚱하지만’을 떼버리지 않는 이상 내 매력은 거대한 지방 덩이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배꼽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 내가 좀 예뻐 보이거나,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거나, 국어시간에 시를 잘 해석해 칭찬을 받거나 하는 날엔 예전처럼 자신감 넘치는 내가 잠깐 밖으로 나왔지만, 이내 뚱뚱함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곤 했다. 뚱뚱함 아래에서 기어 나오려면 뭔가 다른 매력을 만들어야 했다. 술을 마시며 먼저 어른이 된 척 하기도 했고, 반항을 하며 고독한 체제 저항자인 척도 했으며, 남자친구를 여러 명 사귀면서 연애에 능숙한 여자인 척도 했다. 그래봤자 교실에 들어설 때 “돼지 새끼 왔어!”하는 말에 다 무너졌다. 그 말은 내게 긴고아의 주문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무너지는 것만 들키지 말자며 버텼다.
22살 때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고, 48kg이라는 꿈의 몸무게가 되었다. 날씬해지면 세상이 날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조용했다. 가슴과 하체가 큰 체형이라 별로 날씬해 보이지 않았다. 나 같은 체형이면 45kg 아래까지 빼야 날씬해 보일 거란 충고도 들었다. 그 뒤론 쪘다 뺐다를 반복했다. 다이어트(라 말하고 굶기와 폭식이라 읽는다)는 일상이었고, 음식 앞에서 늘 죄책감을 발동시켜야 했다. 그래서 얻은 것은 날씬한 몸이 아닌 과민한 대장이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내일 입을 바지허리를 걱정하고 싶지 않다. 가슴이 커 보일까 하도 웅크리고 다녀서 굽은 내 등과 어깨를 곧게 펴주고 싶다. 아는 사람이랑 마주칠까 봐 가지 못하는 동네 수영장도 가고 싶다. 여름에는 종아리가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고 싶다. 뛰어도 덜렁거리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외모에 대해 말을 할까 긴장하고 싶지 않다. 외모 평가를 들었을 때 웃으면서 다른 화제로 돌리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싶지 않다. 내 몸을 마음 편히 예뻐하고 싶다.
마흔이 넘으면 이런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몸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만 간다. 이제는 살이 문제가 아니라 근육이다. 시대는 날씬함만 요구하지 않는다. 날씬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 70살이 넘은 할머니가 헬스로 20대의 몸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며 나는 이제 내 몸뿐 아니라 게으른 정신도 타박해야 한다. 25년 동안 해 온 다이어트 때문에 근육이 다 빠져버린 내 몸은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너무 벅차다.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계속 미워해야 하는 이 원형의 트랙 위에서 도저히 내 힘으로 내려올 수가 없다.
얼마 전 요가를 등록했다. 아침엔 사과 한 알, 점심은 밥, 저녁엔 토마토와 달걀을 먹고 있다. 요가 강사는 내게 몸에 근육이 하나도 없다고 혀를 찬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더니 예뻐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몸을 잘 보려고 하는 거니까 딱 붙는 옷을 입고 오라고 한다. ‘너는 날씬하니까 그런 말 쉽게 하지.’하고 불퉁한 마음이 솟는다. 내일 붙는 티셔츠를 입기 위해 오늘 저녁은 굶고 러닝머신을 한 시간 뛴다. 나는 아마 아주 오랫동안 변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책도 어떤 조언도 내 안에 깊이 박힌 몸에 대한 애증을 완전히 해독해주지 못하고 있다.
저는 왜 이런 게 웃길까요...?
첫댓글 고쌤. 옥떨메 정말 오랜만에 들어봐요. 마지막에 덧으로 붙여주신 지식인, 네이버 업체 조회 덕분에 고쌤 안아주러 다가가다가 풉 웃음이 터져버린 느낌입니다. 오늘도 웃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우선, 고쌤이 욕구에 대해, 몸에 대해 써주셔서 정말 반가웠어요. 글에서 공감되는 내용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도 달리기로 체점을 하는 체육시간, 운동회, 체력장이 참 무서웠어요. 글의 마무리가 현실적으로 끝나는 글이라 더 좋았어요. 와닿았고요. 괜찮아지기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만큼을 지나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외모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를 좋아했던 화자가 '살'이라는 변수를 맞게 되면서 납작해지는 과정이 그려지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단순하게 '살' -> 자존감이 떨어진다. 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았습니다. 살은 누군가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기 위해 많이 이용되는 것 같아요. 말싸움 중 살을 이용해 공격받으면 공격의지를 잃게 되는 것처럼요. 외모의 경우는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공격하기 어렵지만요. 계속 읽고 쓰면 살찌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날이 올까요? 적어도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은 줄어들겠지요?
혜원의 댓글 때문에 얼굴보다 살에 대한 공격에 내가 더 작아지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또 얼굴은 수술이라는 방법 아니면 답이 없는데 살은 의지로 가능하다는 식의 생각들이 많으니까 살찌는 건 그 사람의 인성까지 폄훼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깨달음을 글 안에 포함해 퇴고를 해야 겠네요.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계속 미워해야 하는 이 원형의 트랙 위에서 도저히 내 힘으로 내려올 수가 없다.
이 문장이 너무 와닿습니다. 나를 그냥 두면 내 몸이 맘에 안들고 내가 원하는 몸을 만들려면 나를 괴롭혀야하는 무한트랙.
저는 한창 강박의 시기를 지나다 요즘에는 휴지기를 보내고 있어요. 몸도 일종의 자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때 그때 먹고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고 운동 하고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좀 쉬고 이렇게 살아 볼려고요.
요즘 제 고민이랑 같아서 더 재밌게 읽었어요.
고쌤 개그포인트도 제 취향입니다.
은유쌤이 수업 때 수영장에서 50-60대 분들도 몸 얘길 한다는 말에 좀 절망했어요. 자유로워질 수 없겠구나 무섭네요. 그래도 요즘 트렌드는 좋은 쪽으로 가고 있는 것도 같아요. 무조건 날씬하기보다는 건강한 몸이 각광 받고 또 여성들이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요. 요가하니까 허리가 안 아파서 계속 하려고요. 개그 포인트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ㅎㅎ
내 안에 깊이 박힌 몸에 대한 애증을 말하기 위한 가 긴 여정을 지루함 없이 빨려들어가며 읽었습니다. 정말 책을 읽어도 답이 없다는 솔직한 마음이 드러나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란 것도 고쌤글을 읽으며 느꼈어요.
자기가 좋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이 기분을 다들 알 것 같아요. 애증이라는 말 흔해서 쓰기 싫었는데 그것 말고 표현할 단어를 모르겠더라고요. 사랑눈 글 읽었는데 사랑눈은 그래도 저보다는 많이 벗어나신 것 같아 안심입니다.
글쓴이의 엄청난 자기긍정력에서 감탄하다가, 뒤로 갈 수록 작아지는 듯한 과정에 제 모습도 겹치고, 그렇게 점점 스스로를 작게 인식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서 마음이 서글퍼졌어요. 게다가 중간중간에 와.. 어쩜 그렇게 말을 하죠?ㅠㅠㅠ 이런 걸 기억해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분노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동시에 저런 말을 품고 사는 사람의 마음이 걱정되고 그런 것이죠.. 마지막에 분노하고 불만족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마무리하는 게 무척 자연스럽다고 느껴졌어요. 우린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높여 외치는 거 통쾌해요
저한테 그런 빻은 말 하던 애들이 당시 저랑 친하던 애들이라 더 상처 받았던 것 같아요.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기 싫으니까 제가 계속 웃고 받아주니까 잘못인지도 모르고 친근감으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돌아간다면 진지하게 화내고 다시는 못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점점 극복하고 있다는 식으로 거짓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예전보다 평가를 덜 받는 상황과 위치가 됐을 뿐이라서 제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어릴적 그 말엔 괜찮았는데 청소년기부터 외모평가에 무너지는 이야기 무척 아프고 공감되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족뿐 아니라 친구, 환경, 사회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렇게 쌓이고 쌓인 독소같은 것들을 빼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마지막 이야기가 너무도 현실적이라 아프고 또 곁에서 등을 토닥이고 싶어졌어요. 저도 요가하면서 옷차림이 장벽이었어요. 몸에 붙는 옷은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데 민소매는 편하지도 않고 불편하게 느껴져 피하게 되네요. 그 정도가 누군가에겐 이정도이구나 싶어서 쓸씁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내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요즘엔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게 실례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저도 잘생긴 연예인에 대해 말할 때가 많았는데 좀 조심하게 됐고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짓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 그걸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진 말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