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 임금 시대 어느 집 사랑채에서 촛불을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얘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예 아버지 칼이 아니 옵니까. 어찌 ...?"
"맞다. 이 칼은 누대에 걸쳐 백정 일을 할 때 사용한 물건이니라. 내일, 네가 양반가에 시집을 가서 조금이라도 행실을 제대로 못한다면 필시 사람들은 너를 천한 백정의 딸이라며 손가락질할 것이고, 부드러운 세치 혀들은 비수가 되어 너의 마음을 난도질할 것이다."
"아가, 이 칼날 위에 선 듯 일체 행동에 그릇됨이 없게 자신을 잘 살피고 지혜롭게 대처하거라."
"예, 아버지 평생 명심하겠습니다. "
자신 있게 답하는 영민한 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어느 순간 아버지 손 씨는 지난날 억울함과 울분이 마음에 가득 쌓였던 딸 또래의 자신을 떠올렸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조상 대대로 소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은 백정 집안에 태어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손 씨 총각이 있었다.
당시에는 제인 광대와 소나 가축을 잡는 백성을 아주 천한 직업이라 여겨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천대 시 하였다.
손 촌각은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이 망건도 못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아도 제대로 항변 한 번 하지 못하고 꾹 참고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때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 손 촌각은 이 업으로부터 벗어날 묘책이 없나 궁리를 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출구도 보이지 않았으며 답답함에 상념만 쌓여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장에 갔다 오는 도중에 엽전 닷 냥을 잃어버렸다.
이 사실을 알고 손 촌각의 아버지는 잔뜩 화가 나서 아들을 책망하였다.
"이놈아 지금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세상이거늘 그래 닷 냥이라는 큰돈을 잃어버리고도 빈손으로 집에 들어올 생각이 나더냐? 이 불효막심한 놈아!"
하지만 총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호통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득해지며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된 듯했다.
'옳지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우선 오늘부터 돈을 모으자.
돈이란 것이 달아나길 좋아한다지! 절대 붙잡고 놓지 않을 테다.'
손 총각은 이리 결심을 하고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이고 부지런한데 복이 온다'라는 각오로 남이 한 가지 일을 하면 두세 가지 일을 하고, 남이 한 몫을 하면 두 세 몫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한두 해가 흘러가자 조금씩 돈이 모이기 시작했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자 드디어 만석꾼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리 부자가 된들 채워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손 부자의 돈 앞에서는 쫄쫄 매다가도 돌아서면 '촌 것 주제에 돈 좀 있다고 퉤퉤'하고 침을 뱉는 것이다.
손 부자가 이 사정을 모를 리 없으니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몇 날 며칠 곰곰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다.
바로 자신도 양반이 되어보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여러 차례 변란을 당하여 양반이 될 수 있는 공명첩이 거래되는 판국이었던지라 손 부자 역시 양반 되는 것이 가능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손 부자는 어찌어찌하여 공명첩을 손에 넣어 양반 모양새는 갖추었으나 하나 남은 딸의 혼사를 어찌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슬하에 위로는 아들 하나와 아래로는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일찍이 소작농들을 관리하는 마름 집안의 참한 여식을 며느리로 들였었다.
천한 취급을 받는 백성이 양인 신분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했으니 당시로는 이미 파격적인 혼인이었으나, 이제는 양반이 되기 위한 모양새도 갖춘 이상 혼기에 이른 딸을 일반 양민에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 부자 자신은 백정으로 모진 천시를 받았으나 딸자식만큼은 자신과 같은 천대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양반의 법도를 익히게 하고 살림과 글을 가르치며 어느 양반가의 규수 못지않게 각별히 신경을 써서 훈육하였던 터라 더더욱 손분이 낮은 집안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부자는 딸을 양반가에 시집보내기 위해 양반 사위를 얻으려 한다는 소문을 냈다.
소문은 발을 달고 충청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주근 거렸다.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더니 천인 부자 손 모가 양반 행세를 하다못해 양반 사위를 얻는다네. 돈이 재갈량일세 그려.'
하지만, 손 부자의 재산이 만석지기에 이르니 이러한 험담 속을 비집고 스멀스멀 욕심 어린 생각들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부자 손 가가 엄청난 부자는 맞는가 보이 설마 이 양반 사위를 얻는다 하는데 돈 좀 쓸 요량을 하고는 있겠지'
'사실인즉 천인이 돈으로 양반을 사는 것이나 양반이 양반으로 돈을 사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이러한 마음이 양반가의 널리 퍼지고 보니 손 부자에게 통혼하는 양반가가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인근 대부분의 양반가에서 매파를 보내왔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손 부자가 그들의 마음을 읽지 못할 리 만무하니 모든 혼담을 거절하였다.
민 참판이 길을 나서 손 부잣집 앞에 당도하니 소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사립문을 달았으나 사립문 안쪽은 여느 양반가의 집안과 다름이 없었으며, 하인들도 적잖이 있었다.
민 참판이 시비를 통해 연통을 하니 사랑채에서 급히 손 부자가 뜰 아래로 내려와 민 참판을 맞으면서 대청에 오르도록 하고 자신은 뜰 아래에 머물며 공손히 섰다.
"귀하신 영감마님께옵서 이리 누추한 좋은 곳의 집을 왕림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허허! 어찌 주인이 뜰아래 서 있는가! 그러지 말고 이리 오르시게."
민 참판은 손 부자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은근한 시선으로 대청에 오를 것을 수차 권하였으나 손 부자가 거절하자 직접 소매를 끌어당기며 대청에 올라 마주 앉았다.
평소 같으면 지체 높은 민 참판과 천한 손 부자가 마주 앉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나, 그날은 상황이 그리 흐르니 손 부자는 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민 참판은 시절 이야기며 이런저런 말을 빙빙 돌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여보게 자네에게 참한 여식이 있다지?"
"아유! 참하다니요 그저 못난 딸자식이 하나 있습니다."
"여보게! 내 오늘 자네를 찾은 것은 자네에게 통혼을 하고자함일세. 우리 사돈을 맺는 것이 어떠한가. 자네 딸을 내 며느리로 삼고 싶네만..."
이 말을 듣고 손 부자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벌쩍 뛰어 대청 아래 뜰에 엎드려 과장되게 외쳤다.
"영감마님 소인을 죽여 주십시오. 무슨 처분을 내리시려고 이런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을 하십니까요 그저 죽여주십시오."
손 부자의 반응이 이러하니 민 참판은 황당하여 차마 아무 말도 못 하고 혀를 차며 손 부자의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근동에서 제일가는 양반인 민 참판도 이리 허무하게 혼담을 거절당하니 사람들은 손 부자의 꿍꿍이를 몰라 한동안 혼담이 끊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름한 행색의 한 양반이 손 부자의 집을 찾았다.
이 양반은 이 생원이라는 사람인데 집 한 칸 없이 인근에서 글방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었다.
누대 문벌 있는 집안이었으나 아버지 때에 당파 싸움에 휘말려 폐가하고 아내마저 아들 하나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들도 10살이 넘어서는 매 끼니를 남에게 의탁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 남의 집 더부살이를 보내고 홀로 지내고 있었다.
"훈장 어른 이 누추한 곳에 어찌 오셨습니까? 어서 이리 들어오시지요."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아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었고, 이어서 주안상이 들어오자 약주와 따뜻한 장국을 함께 들었다.
이 생원은 오랜만에 따뜻한 국물과 약주가 들어가니 아들 생각이 났으나 손 부자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참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손 부자가 아들의 근황을 물었고, 이 생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끄럽게도 아직도 남의 집 살이를 한다네. 그나저나 여보게 혹여 내 아들을 좀 자네 사이로 삼을 수는 없겠는가?"
이 말을 듣고 손 부자는 놀라는 기색 없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으며 초조해하는 이 생원에게 말했다.
"훈장 어른! 그러시다면 이 천한 놈과 사돈이 되시는 것이 진심으로 좋으십니까?"
"여보게 자네가 내 처지를 잘 알고 있는데, 어찌 다른 마음을 갖겠는가? 그저 내 아들이 참한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리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뿐일세."
이 말을 듣고 손 부자는 혼담에 응했으며, 그 자리에서 신랑의 사주를 받고 혼삿날을 정했다.
시간은 흘러 혼삿날 아침이 되었으며, 이 생원은 남들에게 말하기도 남사스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당일 아들을 불러 혼삿날 임을 알렸다.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으니, 아버지 이 생원은 평소 입던 옷 그대로 아들의 상투만 틀어주었다.
손 부자 역시 신랑 집을 배려한 듯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당일 아침 아내에게 딸의 혼삿날 임을 알렸다.
청천병력 같은 통보를 받은 듯 부자의 아내는 펄쩍 뛰었다.
"여보, 아니, 하나밖에 없는 딸의 혼인을 이리 허술하게 하는 것이 어디 있어요! 게다가 남의 집 머슴살이하는 총각이라니요?"
"어허, 신랑감이 똑똑하게 생겼고, 명색이 그래도 뼈대 있는 양반 아니오. 딸아이 세수나 시키면 혼례 준비로 충분할 것이오."
손 부자는 이리 말하며 자기 새옷 두 벌을 사랑채로 내오도록 일렀다.
마침 허름한 차림새에 상투만 튼 신랑과 이 생원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 부자가 사랑채로 들이면서 미리 준비한 자신의 새 옷 두 벌을 주며 갈아입도록 했다.
이어서 대청에 자리를 깔고 정화수를 상위에 올리고 신랑 신부 맞절을 시킴으로써 초례를 지냈다.
그야말로 최대한 약식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초례를 지낸 것이다.
조례를 마치고 손 부자는 사돈이 된 이 생원을 불러 마주 앉았다.
"훈장 어른! 이제 혼례를 치르시었으니 며느리를 댁에 들이셔야 하는데, 어찌하시렵니까?"
이 말에 이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못하고 있자, 손 부자가 근동에 500석지기 논과 살림집을 마련해 놓았으니 아들 내외와 함께 들어가도록 일렀다.
"내, 훈장 어른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 부디 사양치 마시고 제 여식을 어여삐 보시고 평안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며칠 후 이 생원은 살림살이가 완비되고 하인들도 적지 않은 널따란 저택에 들어가니 손 부자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고, 아들과 더불어 새 며느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 더욱 아끼는 마음이 들었다.
"새 아가 우리 같이 보잘것없는 집 안으로 시집와 이렇게 집까지 마련해 주니 고맙구나."
"아버님! 아니어요. 그나저나 글방 아이들에게만 그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서방님께도 글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새 며느리는 이렇게 남편 내조에 망설이지 않는 한편 집안 안팎의 살림을 한 치의 어김없이 살뜰히 챙겼다.
이 생원과 아들은 그동안 맺힌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이 그를 가르치고 배우는 데 열심이었고, 한두 해가 지나자 아들은 그를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이 생원은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안온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고, 아들도 글을 깨치게 되어 만족하게 되었으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근심이 있었다.
이 생원의 새 집은 본디 이 씨 일가친척들이 거주하는 집성촌에 자리 잡았던 것인데, 과거에는 집 한 칸 없더라도 이 생원과 내왕이 있었지만 백정 출신 며느리를 드리고 새 집으로 이사 온 뒤로는 일가친척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었다.
"아유 창피한 줄 알아야지 명색이 생원이 되어서 백정의 딸을 돈 보고 들이다니 백정 딸이 오죽이나 하겠어? 예의 범절이나 제대로 배웠을라구?"
일가 친족들은 저마다 이리 손가락질하며 양반의 체통을 버렸다고 발길을 끊은 것이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이 친족들과 서운해진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뽕 밭에 어떤 아낙네가 몰려와서 뽕잎을 따고 있는 것을 며느리가 보았다.
며느리가 여종에게 묻자 오촌 아주머니라는 말을 듣고 여종에게 일렀다.
"예, 가서 뽕잎 따시는 것을 도와드리고 집으로 모시고 오너라."
여종은 놀라서 도망가려던 아낙네를 안심시킨 뒤 안낙네를 도와 뽕잎을 한 바구니 가득 채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를, 마침 이 생원이 보고 '형수님 어쩐 일이시냐?'고 반겨 맞이하며, 아낙네를 안채로 모시고 가서 며느리를 소개시켰다.
며느리는 시당 숙모를 반갑게 맞으며 안방 아랫목에 모시고 큰절을 올려 인사드리고, 미리 정성스럽게 찬을 마련해서 점심상을 내와 대접했다.
아낙네는 뜻밖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며느리의 살가운 말씨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백정 집안에서 맞은 며느리라고 오해했는데? 예의범절이 양가 며느리보다 똑바르고 마음 씀씀이도 곱고 따뜻하니 이 생원이 며느리 하나는 잘 드렸어."
윗 동네 아낙네들 사이에 이리 소문이 나니 아랫 동네에 가난하지만 깐깐하기로 소문이 난 이 생원의 사촌 큰형님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을 찾아왔다.
꼬장꼬장한 성격에 사촌 큰형님이 방문한 터라 이 생원은 일순간 긴장했고, 마침 점심상을 차려 며느리가 들어오자 마저 인사를 드리도록 했다.
사촌 큰형님은 여느 양반가의 상 차림보다 더 정갈하고 예를 갖추었기에 놀란 눈치였다.
곰국에다 고기반찬에 좋은 반주를 곁들이니 난생처음 받아보는 환대에 흐뭇하였다.
하지만, 점심을 물리고 며느리를 시험할 요령으로 이것저것 요모조모 집요하게 질문을 하자 며느리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당숙 어른! 봄에 거둘 것이 없는데 근자에 지내시기 곤란한 것은 없으신지요?"
"어찌 곤란이 없을 수 있겠느냐? 맥령(보릿고개)이라 양도(양식)가 곤란한 지경이구나."
이리 대화하며 마음을 써주고 예를 다해 대하니 시당숙은 과연 며느리를 잘 들였다고 하며 이 생원에게 치사하고 집으로 갔다.
이튿날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고하고 벼를 넉넉히 황소에 실어 시당숙내로 보내, 양식에 보태도록 정중하게 전갈을 전했다.
이렇듯 며느리가 남녀노소 일가 친족을 대하니 칭찬이 입에 마르지 않았으며, 금세 이상원 집에 많은 일가 친족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 생원의 마지막 남은 시름도 며느리 덕에 말끔히 사라졌다.
이렇듯 며느리의 행동과 마음 씀씀이는 아버지 손 부자의 오랜 훈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혼례가 있기 전날 밤, 손 부자는 딸과 마주앉아 500석 지기 전담 문서와 집문서를 내놓으며 시댁 살림에 대해 말한 후 품에서 오래된 칼 한 자루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예, 아버지 칼이 아니 옵니까? 어찌..."
"맞다. 이 칼은 누대에 걸쳐 백정 일을 할 때 사용한 물건이니라.내일, 네가 양반가에 시집을 가서 조금이라도 행실을 제대로 못한다면 필시 사람들은 너를 천한 백정의 딸이라며 손가락질 할 것이고, 부드러운 세치 혀들은 비수가 되어 너의 마음을 난도질할 것이다."
"아가, 이 칼날 위에 선 듯 일체 행동에 그릇됨이 없게 자신을 잘 살피고 지혜롭게 대처하거라."
"예, 아버지 평생 명심하겠습니다. "
이렇듯 며느리는 아버지 손 부자의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여 바르고 지혜롭게 시댁을 일으켜 세웠으며, 어엿한 양반가에 덕망 있고 지혜로운 며느리로 칭송받으며 자손 번창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첫댓글 마음이 흐믓해지는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지금도 3D가 있고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하는건 어쩔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뿌리양반 벼슬양반 돈양반이 있었지요
저의 조부님도 서당훈장님을 하셨지요
지기님 재미있게 잘읽고 감사드립니다.
더욱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