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보다 情이 더 무섭다 💖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情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난다.
사랑은
좋은걸 함께 할 때 더 쌓이지만
情은
어려움을 함께 할 때 더 쌓인다.
사랑 때문에
서로를 미워할수도 있지만
情 때문에
미웠던 마음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
사랑은 꽂히면
뚫고 지나간 상처라 곧 아물지만
情이 꽂히면
빼낼수도 없어 계속 아프다.
사랑엔
유통기한이 있지만
情은
숙성기간이 있다.
사랑은
상큼하고 달콤하지만
情은
구수하고 은근하다.
사랑은
돌아서면 남이지만
情은
돌아서도 우리다.
사랑이 깊어지면
언제 끝이 보일지 몰라 불안하지만,
情이 깊어지면
마음대로 뗄 수 없어 더 무섭다.
그럼 情이란 무엇인가?
情을 파자하면 心과 靑인데, 마음 心이 의미부고 푸를 靑이 소리부로 깨끗하고 순수한(靑) 마음속(心)에서 우러나오는 ‘정’을 말하며, 이로부터 愛情, 情緖, 情況 등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心은 원래 사람의 심장을 그린 글자로 심장이나 마음을 지칭하거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행위인 정서 등을 뜻한다. 그리고 靑은 독음도 나타내지만 의미의 결정에도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럼 靑은 무엇을 그린 글자이며, 무엇을 상징할까?
靑은 금문에서 붉을丹 위에 날生이 있는 문자로 기록되어있다.
즉 生
丹
로 써, 붉을 丹이 의미부이고 날 生이 소리부인 구조였는데, 자형이 약간 변해 지금처럼 됐다.
날 生은 싹(屮, 철)이 흙(土, 토)을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이고, 붉을 丹은 광정(井, 정)에서 캐낸 염료(丶, 주), 즉 색깔을 상징한다.
그런데, 나는 이를 달리본다.
즉 靑은 날 生과 붉은 丹이 아니라 '주인 主'와 '붉은 丹'이다.
또한 丹은 "광정(井)에서 캐낸 염료(丶, 주)로 색깔을 상징" 하는게 아니라 '대지 위로 솟구쳐 떠오르는 동녁 아침의 붉은 해'이기에 小宇宙인 사람의 중심 즉 '인체의 중심인 丹田'이다.
해서 靑은 '붉은 단전이 主人'이라는 뜻이다. 해서 오행상 해가 뜨는 곳 즉 동쪽을 상징한다.
이렇게 풀어야만 情의 정확한 뜻과 의미가 드러나고 그 色도 막연히 붉은 색이 아니라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붉은 색이다. 그래서 忠節을 丹心이라 한다.
이점에서 金文은 靑을 잘못 해석하는 愚를 犯했고,
이 금문을 근거해서 청을 해석한 후대의 學說들도 다 잘못되었다고 본다.
靑은 '설문해자'의 解釋처럼 陰陽五行 상 東方의 色을 말하는데, 동방은 초木이 生長하기 시작할 때의 상징이다. 그래서 靑은 보통 ‘파랗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바다나 하늘처럼 ‘파란색(blue)’이 아닌 봄날 피어나는 초목의 어린 싹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초록색(green)’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막 피어나는 새싹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그래서 靑은 막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자연의 純色을 말한다. 이 때문에 ‘純粹’와 ‘純正’의 뜻이 담겼다. 그런 순수함은 ‘깨끗함’과 ‘빛남’의 상징이며, 이로부터 젊음·청춘·청년을 지칭하게 됐다. 그래서 靑은 피어나는 식물의 싹의 색깔을 지칭하기에 Blue가 아닌 Green이다.
靑으로 구성된 글자들은 대부분 ‘순수함’과 연관돼 있다. 그것은 단순한 ‘초록색’도 아니라 연한 초록색·연두색을 말한다. 초목이 처음 피어날 때의 색깔, 연두색은 순수함과 깨끗함과 처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맑음’을 뜻하는 淸은 물水가 의미부고
푸를 靑이 소리부로, 물(水)이 깨끗해(靑) 맑고 명징함을 말한다. 이로부터 다른 불순물이 들지 않은 순수하고 정결함을 뜻하게 됐고, '분명하다, 조용하다, 깨끗하다, 청렴하다'의 뜻도 나왔다.
또 ‘간청하다’는 뜻의 請은 말씀 言이 의미부고 靑이 소리부로 '찾아뵙다, 청하다, 모셔오다' 등의 뜻인데, 순수한(靑) 상태에서의 말(言)이 무엇보다 간곡한 ‘청’임을 웅변해 주기에 '說文解字'에서는 '찾아뵙다(謁, 알)'라는 뜻이라고 했다. 간청이나 부탁의 기본적인 정신이 무엇인지, 이때 가져야 할 진정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또한, 특별히 주목할 文字는 정숙할 靜으로, 靜이 왜 靜肅에서처럼 ‘조용하다’는 뜻이 됐을까? 靜은 靑이 의미부이고 다툴 爭이 소리부인데, 원래는 화장의 농염을 표현할 때 쓰던 단어로 그런 순색(靑)을 다퉈(爭) 취함을 말해 자연색에 가까운 화장 색깔을 이르렀다.
화려한 화장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욕정을 움직이게 하지만, 그런 자연색에 가까운 화장은 안정되고 ‘靜肅됨’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靜에 '맑고 고요하다, 정지하다, 안정되다' 등의 뜻이 있다. 靑으로 구성된 이러한 글자들은 모두 靑의 어원이 갖는 순수함을 기본적 의미로 갖는다.
또 다른 한 그룹은 ‘푸른색’을 말한다. 예컨대 맑을 晴은 날 日이 의미부고 靑이 소리부이지만, '해(日)가 맑게(靑) 비추다'는 의미를 그렸다. 그리고 청어 鯖은 고기 魚가 의미부고 靑이 소리부로 청어를 말하는데, 푸른색(靑)을 띠는 물고기(魚)
라는 뜻이다. 우거질 菁은 풀 艸가 의미부고 靑이 소리부로 푸른색(靑)을 내품는 풀(艸, 초)이 ‘우거짐’이나 '부추의 꽃'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푸름에서 파생된 푸른색을 뜻하는 글자들이다.
동양에서 情은 性과 자주 결합한다. 바로 性情이 그것이다. 성정은 ‘타고난 성질과 성품으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本性’을 말한다.” 그러나 性과 情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연결돼 있다.
性은 마음 心이 의미부고 날 生이 소리부로 사람의 본성을 말하는데, '마음이 생긴 곳' 즉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천성적인(生) 마음(心)이 바로 ‘性品’임을 보여준다. 이후 天性이나 사물의 本性·生命·性情 등의 뜻이 나왔고, 명사 뒤에 놓여 사상·감정이나 생활 태도, 일정한 범주 등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쓰인다.
그렇게 본다면 性은 ‘나면서부터 타고나는 성품’으로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속성을, 또 항구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비해 情은 靑의 어원에서 봤듯 초목이 처음 자라날 때처럼 순간적이며, 임시적인 속성을 지향하고 있다.
원래 主와 丹으로 이루어진 靑이기에 해가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듯이 사람의 마음도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어떻게 변화던 붉은 해라는 사실은 변치 않기에 겉으로는 변한듯 하나 그 내심 속성은 붉은 丹心이기에 情이 사랑보다 더 깊고 무서운 것이다.
통상 주희의 性理學에서 性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四端, 즉 仁에서 우러나는 惻隱之心, 義에서 우러나는 羞惡之心, 禮에서 우러나는 辭讓之心, 智에서 우러나는 是非之心의 네 가지를 말하는데, 이는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 즉 仁·義·禮·智라는 인간의 본성의 端緖가 되는 네 가지 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본성은 외물의 자극에 다양한 모습으로 현실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보통 7가지로 정의하여 七情이라고 했는 바, 儒家에서는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철학서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정의가 보이기도 하는데 '禮記'에서는 樂이 앞의 喜와 중복된다는 점에서 懼(두려움)로 바뀌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性과 情은 서구의 에토스와 파토스와도 연계된다. 에토스(ēth)는 어원적으로 “ethnic” 즉 “민족적·종족적”인 것에서 근원해 종족 집단(Ethnic group)의 관습이나 행위, 행동거지 등을 지칭하게 됐으며, 이후 행위를 구속하는 도덕관이나 도덕 평가 기준 등의 의미로 확장됐다.
일반적으로 민족적·사회적인 관습을 말하는 에토스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 부여됐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갖는 가능성이나 능력은 항상 상반하는 방향을 내포하고 있으나 동일한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한 방향으로만 지향하는 습관이 양성된다. 이 습관이 에토스이며 이에 의해 영혼의 善惡 성격도 자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토스는 지속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일시적인 특성을 가진 파토스(path, 情意 또는 激情)와 대립된다.
에토스와 대립을 이루는 파토스(path)는 어원적으로 ‘-path-’(고통스럽다)에 ‘os’가 더해진 모습으로 ‘고통스러운 것’을 뜻한다. 그리스어에서 ‘path’는 (고통을) 참다·질병 등을 뜻하며, PIE에서 ‘pei’(상처를 입히다, 해치다)에서 왔으며, 이후 '고통스럽다·동정하다·감염되다' 등의 뜻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pathetic’이나 ‘patient’ 등과 동일한 어원을 가진다.
파토스는 철학적 의미에서 情念·충동 ·정열 등으로 번역되며 Logos와 상대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 등의 어원에 근거해 볼 때 파토스의 지향점은 외물로부터 ‘받은’ 상처와 이로부터 생겨난 고통에 있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어떤 사물이 ‘받은 변화 상태’를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특별히 ‘인간의 마음이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대상의 자극을 받아서 생기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또 파토스는 수동성과 가변성이 내포되며 그때그때 내외의 상황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받는 기분이나 정서를 총괄해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성의 판단과는 다른 원천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종종 이성의 명령에 반항하기 때문에 스토아학파에서는 이것을 '病'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에토스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가지는 본성인 性에, 파토스는 인간이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환경의 자극에 의해 생겨나는 情에 가깝다. 다만 동양에서는 이러한 情을 보통 7가지로 설정해 7情 즉 喜·怒·哀·樂·愛·惡·欲 등으로
다양하게 설정했고, 이들 다양한 감정이 인간적인 모습이지만, 언제나 ‘순수한 마음’을 지향하도록 설정한 것이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한자에서 性은 날 때부터 갖는 본성이고, 이것이 밖으로 체현된, 드러난 모습이 情이다. 그래서 性은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요소이지만, 情은 언제나 당시의 환경과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비본질적이고 가변적이다. 비본질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 그것이 情을 구성하는 心과 靑의 본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이같은 연유로 사랑보다 정이 더 변화스럽고, 더 깊고 무서운 것이다.
YouTube에서 '정이란 - 나훈아' 보기
https://youtu.be/xW3P4zEq790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그놈의정
정 정말 떼기힘들어요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