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재능과 지위를 기부하는 성악가 김인혜 교수
기부는 '크레센도' '포르테시모'
[아름다운 동행, 100호]
그는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를 택한다. 그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난받고, 설령 교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성격을 어떻게 바꾸냐”며 대범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변에서 “수준 떨어진다”며 만류했던 스타킹에 출연했고, 구청에서 하는 10주짜리 문화센터 강사를 자원하고, 낙도 및 도서지역을 찾아다니며 자선음악회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본업인 성악가, 오페라 가수보다 여자 강호동, 음치잡는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김인혜 교수(서울대 성악가)이다.
최근 김인혜 교수 팬카페에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 교수님답지 않게 너무 푸근하세요, 엄마보다 아줌마한테 고민을 털어놓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저에게도 희망을 주세요 등의 글이 부쩍 늘었다.
동양인최초로 줄리어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에서는 “최고의 소프라노”라며 <뉴욕타임즈>지가 호평을 하는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은 우리와는 다른 레벨의 사람일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이력 때문에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를 택한다. 그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난받고, 설령 교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성격을 어떻게 바꾸냐”며 대범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변에서 “수준 떨어진다”며 만류했던 스타킹에 출연했고, 구청에서 하는 10주짜리 문화센터 강사를 자원하고, 낙도 및 도서지역을 찾아다니며 자선음악회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줄리아드에 전도하러 왔니?
김 교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좋단다. 그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고민거리였다. 별 것 아닌 고민에서부터 가슴시리고 절절한 사연까지, 김 교수는 그들과 함께 울어 주었다. 또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그것들을 마음에 품고 흐느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김 교수를 의지하고, 자연스럽게 전도까지 이루어졌다.
이에 성악가들의 ‘드림하이’인 줄리아드에서는 김 교수 덕분에 CCC 동아리가 활기차게 운영될 정도였다. 당시 김 교수와 함께 줄리아드에서 공부했던 신영옥(소프라노) 씨는 “넌 줄리아드에 공부하러 왔니, 전도하러 왔니”라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김 교수는 줄리아드에서 보낸 10년이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기였다고 했다. 또 이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성악가 김인혜’가 있을 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하여 핏덩어리 아이를 시댁에 맡겨 놓고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생활을 했어요. 아이가 눈에 밟혀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10개월을 오매불망하다가 다시 만난 딸아이는 저를 보자마자 울어대는데, ‘내 인생이 이게 뭔가, 자식조차 제대로 품지 못하고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회한이 밀려오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임신을 했어요. 학업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저만 바라보는 후배들을 버릴 수 없었어요. 제 슬픔을 알고 남몰래 기도해주는 후배들을 보면서, ‘내가 선배로서, 신앙의 자매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면 안되겠다’라는 결심을 했지요.”
김 교수는 더욱 후배들을 섬겼다. 밤낮 가리지 않고 “언니, 간사님”하며 김 교수를 찾던 후배들은 줄리아드에서 적응하여 어느새 유명 성악가의 위치에 올랐고, 김 교수 역시 동양인 최초로 줄리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자신을 멀리하던 딸은 지금은 엄마를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며 줄리아드에 입학했는데, 엄마의 삶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곳에서 공부보다 자원봉사에 열심이다.
사실 김 교수는 고인이 된 부친의 영향을 받은 면도 없지 않다. 고향을 북에 둔 부친은 생전에 북한 선교를 위해 빚을 들여가며 중국을 30번 이상 왕래하고, 소천한 뒤에도 연구에 써달라며 모든 장기를 서울대에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어린 시절이라 김 교수가 부친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줄리아드 이후로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하게 된 게다. 부친의 인생관은 3대째 계승되는 복을 얻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동역의 진리인 것을 그때 이해했지요. 제 상황만 바라봤다면 지금의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덕분에 저는 진리와 가치를 따를 때만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됐지요. 앞으로도 저는 크레센도(점점 크게), 포르테시모(아주 세게)로 진리와 가치를 따를 거예요.”
제 2, 제 3의 김승일을 찾기 위해
김 교수의 다이어리를 보니 다 헤져서 군데군데 기운 자국도 보였다. 안은 더 가관이다. 매일 한 두 차례 이상의 스케줄이 기록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생명, 자선, 구민을 위한 등 음악회 앞에 붙어있는 명칭이었다.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그녀의 말을 더욱 실감나게 들렸다.
특히 김 교수는 오는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할 오페라 ‘라보엠’(인씨엠예술단 주최)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그녀가 추천한 야식배달부 김승일 씨(아름다운동행 99호 기사 참조)가 상대역으로 출연하기에 한결 설레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또 SBS스타킹의 ‘음치탈출 목청킹프로젝트’에 선정된 9명의 사람들의 클리닉을 진행하고 있고, 김승일 씨나 꽃게잡이 폴포츠 남현봉 씨처럼 재능을 가졌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를 추진하려고 서울대와 협의하고 있다. 과거 주위의 싸늘한 시선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던 도서지역 자선음악회도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하고 싶다고 한다.
“제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때론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 능력이 되는 한 그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요.”
사진제공= 김인혜 교수 홈페이지
글= 편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