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와 친합니다
김륭
놀러 가기 좋은 어느 날
캥거루가 주머니를 잃어버렸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캥거루는
언젠가는 잃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아무도 캥거루를 캥거루라고 부르지 않았고
그런 사실을 안 캥거루는 숲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도시로 나온 캥거루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주머니보다 더 크고 멋진 가방을 샀습니다.
저기 좀 보세요. 멋진 가죽 가방을 메고 으쓱대는
캥거루 보이시죠? 캥거루는 진즉에 주머니를
잃어버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캥거루가 주머니를 잃어버렸을 때까진 캥거루였지만
캥거루가 주머니보다 더 크고 멋진 가죽 가방을 사는 순간
캥거루는 캥거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사실을
캥거루만 모릅니다.
캥거루를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요?
나는 지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캥거루를 잃어버린 캥거루에게 캥거루를 데려가
소개해 주면 권투 글러브를 끼고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김륭 동시집, 《햇볕 11페이지》(창비 2023)
첫댓글 캥거루야 일부러 주머니를 잃어버린 건 아니니?.
캥거루와 친하고 싶은데
권투글러브를 끼고 달려들면 곤란해 ㅠ
주머니보다 더 크고 멋진 가죽가방을 메고
으쓱 대는 기분이 얼마나 갈까 ㅠ
정신 차려 캥거루야
숲이 얼마나 좋은지 곧 알게 될거야 ㅠ
내일은 캥거루를 만나러 숲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반야 시인님 댓글 읽다
'정신 차려 캥거루야'
여기서 문득 김수철 노래가 들리네요.
"아 여보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정신이 빡 차려집니당ㅎㅎ
캥거루는 제 이름도 '모른다'라는 뜻이라니
모르는 게 약이라고 짐짓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