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2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아무런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붙잡아 주옵소서.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에 매몰되지 않도록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수를 허락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의로 점철된 옛 사람은 못 박사오니 새 생명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소서.
아내의 수술이 잘 마쳐졌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베풀어주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회복을 위하여 쉬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잘 회복될 수 있도록 긍휼을 더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46:8-27
제목 :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들, 영적인 무덤에 들어간 나.
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9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10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11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13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14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15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33명이며
16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17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18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16명이라.
19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20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21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22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14명이요
23 단의 아들 후삼이요
24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25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7명이라.
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명이었더라.
* 나의 묵상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마주한 야곱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다.
오늘 본문은 그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자손들의 명단이다.
그 수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 르우벤을 비롯한 아들 6명과 딸 디나 그리고 손자들 모두 33명.
레아의 여종 실바에게서 낳은 아들과 손자들 모두 16명.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과 베냐민과 그의 아들들 모두 14명.
라헬의 여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들과 손자들 모두 7명이다.
이 모든 사람 곧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들이 70명이다.
물론 실제로 애굽으로 내려간 사람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 수에는 야곱의 직계 자손들만 포함되어 있다.
야곱의 아내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그의 종들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의 수가 70명인데 이들이 400년 후에 출애굽 할 때의 숫자가 장정만 60만 명이 된다.
(출 12: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요
이들이 400년 후에 나올 때는 이처럼 한 국가를 이룰 정도로 거대한 숫자가 되었지만 사실, 이들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는 작은 숫자요 미미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애굽에 들어갈 때 상당한 희망을 가지고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주하는 가나안은 기근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그대로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요셉이 있는 애굽은 여전히 기근과 흉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풍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덜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곳에서의 희망찬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들은 죽기 위해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야곱의 가족이 들어간 애굽이 상징하는 것은 세상이요 세상은 무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굽에 들어와서 요셉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나마 누리면서 살 수 있었지만, 요셉도 죽고 요셉이 알던 바로가 죽은 후부터는 야곱의 자손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고통에 신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들어간 애굽은 다름 아닌 무덤이다.
하지만 그 무덤에 언제까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입애굽과 출애굽을 언약하셨다.
따라서 입애굽을 완성한 후에는 출애굽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시는 것이다.
비록 적은 무리에 지나지 않지만 이들이 애굽에 들어가 그 수가 점점 많아진다.
이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에 겁을 먹은 바로(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는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괴롭히는 고통은 다름 아닌 성을 건축하는 일이다.
성을 건축하려면 벽돌이 필요한데 그 벽돌을 이스라엘이 직접 만들어서 성을 건축해야 하는 것이다.
짚도 주지 않으면서 짚을 직접 구해서 벽돌을 구우라고 한다.
게다가 하루에 구워야 하는 벽돌의 수를 정해 놓고 그 수를 줄여주지도 않으니 죽을 맛이다.
그 숫자를 채우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채찍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항상 긴장하며 일을 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기야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한다.
(출 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이렇게 해서 그들은 무덤과 같은 애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그들이 무덤을 통해서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출애굽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애굽이라는 무덤에 들어간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상징한다.
그 무덤이 아니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덤 뒤에 새 생명이 있다.
무덤을 통과한 자만 새 생명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나는 입애굽과 출애굽의 이야기를 그저 단순한 하나의 역사적 서술로만 이해하였었다.
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곧 복음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아니 구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찾고 발견해야 하는지는 알지도 못하였고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구약 어디서든지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구약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입애굽과 출애굽 사건은 단순한 한 민족인 이스라엘의 이동 경로가 아니다.
이들의 입애굽과 출애굽 사건은 그 자체로 심판과 무덤을 통과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통하여 세례를 받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하심 아래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에 입성을 하는 구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고전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처럼 그들은 영적 무덤인 애굽에 들어가는 죽음과 영적 출애굽인 부활, 또한 홍해바다가 상징하는 영적 무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세에게 속한 자들이 구름과 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고 예수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마시는데 그들이 마신 신령한 음료는 반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신령한 음료를 낸 반석이 곧 그리스도시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점일획도 틀림없다.
그것은 구원사로서 범죄하여 죽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내 안에는 살 수 있는 어떠한 자원도 없다.
나는 헛됨이요 없음 곧 Nothing일 뿐이다.
티끌과 먼지인 나에게서는 어떤 의의 부스러기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런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면 할수록 허무함만이 나를 채운다.
그것이 땅의 흙(아파르, 티끌, dust)으로 만들어진 나의 실체이다.
나는 결국 그것으로 돌아가야 할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그리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죄가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친히 죄가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 곧 나무에 달렸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며 이는 곧 죄인이라는 말이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 자이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은 자로서 내가 저주 받은 자요 또한 내가 죽어야 할 자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십자가에 다신 것이다.
이 어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나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요 하나님의 행동하심이다.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갈 당시는 핑크빛 미래가 그들 앞에 놓인 것처럼 새로운 희망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던 바로가 죽은 이후에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그들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결국 고난의 무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무덤은 그들을 죽이기 위한 무덤이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구원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행동하심이다.
이는 또한 나에게 있는 영적인 무덤이다.
나의 삶에 이런저런 고난의 무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무덤은 나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행동하심이다.
지금도 나는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을 받고 싶어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받으면 그것을 만사형통이라 하지만 기실 그것은 만사형통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에 다름 아니다.
어제 아내가 수술을 하였다.
이 일을 위하여 주변의 많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심을 믿는다.
이 실수는 수술을 잘못하는 실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회복이 잘 되는 것도, 아니면 그 반대일지라도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믿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님의 하시는 일에 온전히 나 자신을 드리며 수용하는 아내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 찬양을 입술로는 곧잘 한다.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스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짙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기리.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그런데 정작 심장이 울렁이고 희망이 스러지는 그런 순간 앞에서는 제발 나에게는 이런 고난이 오지 않기를 밤새워 기도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모형과 그림자로 사는 이 땅에서 어떻게든 잘 되고자 하는 거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나 아내, 그리고 주를 믿는 주의 모든 자녀들이 아들의 생명을 얻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한시적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에 붙들려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어 참된 영생을 누리는 이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를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생명도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깝죽댔고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프리패스를 받았다고 즐거워하던 자였나이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이제 나의 실체를 보았고 아나이다.
나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그 생명으로 살다가 그 생명으로 죽어야 할 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우리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그냥 저주의 지옥으로 던져 넣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온 몸으로 나를 받으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죄인됨임을 이 죄인은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그 사실, 아니 생명의 복음을 알기에 내 안에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도 아나이다.
오늘 이 하루도 말씀으로 우리 주님과 함께 생명의 교제를 나누며 이 자리가 바로 카이로스로 오신 하나님 나라임을 믿습니다.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감출 수 없나이다.
주의 구원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오니 그 안에 나를 받아주소서.
수술을 받은 아내가 잘 회복되게 하시되 주의 뜻을 이루시어 참 믿음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