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홍콩에 체류할 때, 홍콩에 처음 온 손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웬만하면 반드시 주문하는 요리의 하나가 바로 비둘기구이였다. 음식점에 따라서는 조리법을 조금 달리하여 취피소합(脆皮燒 , 췌이피사오꺼) 또는 시유황유합( 油 皇油 , 츠우여우후앙여우꺼)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기도 한다.
앞의 것은 구은 것이고 뒤의 것은 양념을 발라 찐 것이다.
비둘기 요리는 값도 비교적 쌀 뿐만아니라 별미이므로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음식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익숙치 않은 음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먹기 전까지는 구태여 밝힐 필요가 없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괜시리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발전한 것이 생초유합(生炒乳 , 성츠아오르우꺼)인데 이것은 비둘기 고기를 잘게 썰어서 밥과 같이 볶은 것으로, 양상치에 싸서 먹으면 상큼 한 맛이 한데 어우러져 그 맛이 훌륭하다.
홍콩에는 비둘기 전문 음식점도 많아 필자도 홍콩에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따이와이(大圍)의 신강끼(新强記)를 가족과 같이 찾아간 일이 있는데,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보니 역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맞은 편에 있었다. 걸어서도 2,3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능청맞은 택시 운전사가 아무 소리 안하고 모셨던 것이다. 그러고 얼마후의 일이다.
홍콩에 사는 한국인 한분이 필자와 이야기끝에, 자신의 아파트에 비둘기가 자꾸 날라와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오물도 생기고 개미떼까지 모여 들어서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며 무슨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 온 적이 있었다.
필자는 같이 근무하는 홍콩 현지인 근무자들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홍콩 사람들 나름의 해결 방안을 물어 보았다. 그중에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직원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걱정이죠? 한마리씩 잡아 먹으면 될텐데 ---" 이번 중국에 간길에 북경에서 비둘기요리를 주문하였다.
필자가 좋아하는 요리의 하나이지만 오랫동안 먹질 못해서 한번 먹고 싶었던 차에동행한 분에게 맛을 보이고 싶은 욕심도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북경에서의 비둘기요리는 제맛이 아니었다. 홍콩이나 광동의 싸구려 길가집음식점만도 못한 비둘기에 필자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같이 간 분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그렇게 맛있다더니 별것도 아니군---"하고 생각하지나 않았을런지.
<거위구이(燒鵝, 사오어)>
중국사람들에게 癩蛤 想吃天鵝肉(나합마상흘천아육)이란 말이 있다.
두꺼비(癩蛤 , 나병이 걸린 개구리라하여 두꺼비를 가르킴)가 백조고기를 먹으려 한다해서 자기 분수를 모르는 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여기서 백조(天鵝)는 고니라 부르기도 하며 거위(鵝鳥)는 야생 기러기를 길 들인 것으로 둘다 오리과에 속한다.
거위는 아무 먹이나 잘 먹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모르는 사람이 집안에 들어 오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질 않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과수원같은 곳 에서 많이 길렀다. 다만 식용으로 생각하지 않은 점이 그들과 다르다 하겠다. 거위를 굽는 방법은 돼지나 오리나 기본적으로 같다.
다만 광동이외의 곳에서는 소아(燒鵝)라고 해도 오리를 내놓는 일이 많은데 거위에 오리발 내놓는 격이라 하겠다.
청나라 초기 상해부근에 엽(葉)씨 성을 가진 관리가 있어 거위발 요리를 몹시 즐겼다고 한다. 그는 먹는데 그치지않고 스스로 조리법을 개발해 냈는데 그 방법이 실로 잔인하기 그지없다.
먼저 거위를 산채로 철판위에 올려놓고 아래에 불을 지피면 바닥이 뜨거워져 거위는 쉴사이 없이 발을 깡충거리지만 에워싸인 울타리 때문에 도망은 하지 못하고 다급한 나머지 울타리 밖에 놓아둔 간장과 식초를 섞은 양념을 찍어 먹게 된다. 마침내 거위가 죽게 될 쯤이 되면 거위의 발은 피가 몰리고 화상을 입은 탓으로 커다란 덩어리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의 거위발 맛이 각별하다고 하니 미각을 추구하는 인간의 지혜와 잔인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유쾌한 이야기로 돌려보자.
당나라때 정여경(鄭餘慶)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매우 검소하고 근엄한 청 백리로 유명하였다.
하루는 친구 몇사람을 불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하였다. 친구들은 짜기로 소문나 좀처럼 초청하는 일이 없던 그가 모처럼 큰맘먹고 초청하였으니, 이번에는 그래도 뭔가 별미를 준비하였을 것으로 믿고 큰 기대와 함께 정여경의 집으로 향하였다.
반나절을 기다려도 음식은 나올 기색이 없고, 배에서는 쫄쫄거리는 소리가 날 즈음에 정여경이 하인을 불러,
"털은 깨끗이 뽑고, 잘 쪄서 내오되 모가지는 끊어지지 않도록 해라"하고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에 손님들은 준비하는 요리가 틀림없이 거위찜일 것으로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앞에 놓여진 것은 옥수수를 찐 것이었다.
홍콩에서는 신계(新界)의 심정(深井)에 가면 진기소아(陳記燒鵝) 등 많은 전문점이 있는데 한마리에 2만원 정도면 세사람 정도가 즐길 수 있다. 살집이 많고 맛이 좋아 볶은 야채 한접시만 함께 곁들여도 충분한 한끼의
식사가 된다.
다음은 내친김에 해물요리까지 맛보자.
우리는 보통 온갖 먹거리가 총동원된 것을 산해진미라 하나 중국사람들은 산진해미라 한다.
산진해미(山珍海味)에서 해미(海味)는 물론 바다에서 나는 해물을 가지고 만든 요리를 뜻하나, 보통은 조금 별난 먹거리를 가르킨다.
몇가지를 소개해 본다.
<상어지느라미(魚翅)>
중국요리중에서도 상어지느라미 스프는 고귀한 음식이기 때문에 "어시석 (魚翅席)"이라 하면 고급 요릿상을 뜻하고 있다. 상어 지느라미는 상어의 등에 하나, 가슴에 둘, 꼬리에 하나가 달려 있는 데, 등쪽의 것이 크고 질이 좋으며 가슴 지느라미가 그 다음, 그리고 꼬리 지느라미는 가장 낮은 급으로 취급한다. 등쪽의 지느라미를 통째로 잘 말린 것은 포시(鮑翅)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덩어리째 나오는 지느라미는 배시(排翅)라고 한 다.
이 상어지느라미는 그 자체로서는 별다른 맛이 없으며, 지느라미의 8할은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 성분중의 젤라틴은 노쇠현상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어는 과거 중국의 해안선을 따라 인근 바다에서도 잡혔으나 어획량이 줄 어들면서 미국과 멕시코에서도 수입해 오지만 워낙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기 때 문에, 일본과 한국에서 인공 젤라틴으로 제조한 인조 지느라미가 많이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제조 기법의 향상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가짜를 구별해 낼 수가 없어 덩어리 째 들어 있으면 무조건 진짜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만, 이것도 비싼 돈을 주고 먹는데 대한 심리적인 위로는 될 망정 신빙성은 그다지 없다.
지느라미요리는 지역과 조리방법에 따라 그 종류도 많지만, 황민어시(黃 魚翅, 후앙먼위츠)를 최고로 친다.
황민어시의 재료는 필리핀산의 여송황(呂宋黃, 지느라미 품종의 하나)으로서 지느라미의 가닥이 흩어지지 않게 요리를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한다. 그릇의 뚜껑을 닫고 약한 불에 술과 생강 따위를 넣고 여섯시간 이상을 고으면 원래의 질기고 단단한 지느라미도 부드러워 지는데 황민어시란 바로 이 여송황(呂宋黃) 을 고았다(민)하여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