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개혁 정치와 신진 사대부의 성장
원 간섭기 동안 권문세족이라는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왕의 측근 세력과 함께 권력을 잡아, 농장을 확대하고 양민을 억압하여 노비로 삼는 등 사회 모순을 격화시켰다. 이에 대하여 신진 관리들을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관료의 인사와 농장 문제와 같은 여러 가지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개혁의 노력은 충선왕 때부터 시도되었으나,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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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의 개혁정치
고려 사회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정치는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기 전에도 시도되었으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충렬왕 때에 민생 문제와 국가 재정의 확충을 위해 홍자번의 편민 18사(便民十八事: 관리의 작폐방지, 공부(貢賦)의 균정(均定)과 정액 이외의 공부수납 억제, 의창(義倉) 등을 통한 백성의 구휼) 상소를 통해 처음 개혁에 나섰고,
1298년에 충렬왕으로부터 선위를 받은 충선왕은 즉위 교서를 통해 인사 행정 및 토지 겸병의 문제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정방을 폐지하고 사림원(詞林院)을 설치하여 개혁정치를 추진하는 한편 전반적인 관제도 개정하였다. 그러나 부원 세력이 중심이 된 기득권 세력의 책동과 원나라의 간섭에 따라 그가 폐위되고 충렬왕이 다시 즉위함으로써 개혁 정치는 실패하고 관제 개혁도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충숙왕 때에는 찰리변위도감(拶理辨違都監: 공민왕 때의 전민변정도감과 유사)을 통하여,
충목왕(忠穆王) 즉위(1344년) 후에는 개혁 전담부서인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어 개혁이 추진되었으나(1347년), 역시 부원 세력의 방해와 원나라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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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공민왕은 원·명 교체기를 이용하여 개혁을 추진하였다. 공민왕 때의 개혁은 대외적으로 반원 자주를 실현하고,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은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였다. 이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고,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하였으며, 몽골 풍속을 금지하였다. 또, 무력으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으며(이성계의 부 이자춘의 조력), 더 나아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하여 요동 지방을 공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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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철: 기철은 누이동생이 원 순제의 황후가 되어 태자를 낳자, 기 황후와 원을 등에 업고 친원파 세력을 결집하여 남의 토지를 빼앗는 등의 권세를 부렸다.
요동 정벌: 1차 - 최영, 인당
2차 - 이성계, 지용수. 동녕부 요양을 점령하고 우리 영토라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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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은 친원파 권세가들의 반발로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공민왕은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권문세족을 억누르면서 꾸준히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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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 종래의 문벌 귀족 가문, 무신 정권기에 새로 등장한 가문, 원과의 관계를 통하여 성장한 가문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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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왕권을 제약하고 신진 사대부의 등장을 억제하고 있던 정방을 폐지하였다. 아울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권문세족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양민으로 해방시켰다. 이를 통하여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 수입의 기반을 확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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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변정도감: 고려 후기에 권문세족들이 토지와 노비를 늘려 국가 기반이 크게 약화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설치한 특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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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때의 개혁은 권문세족의 강력한 반발로 신돈이 제거되고, 개혁 추진의 핵심인 공민왕까지 시해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한편, 공민왕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의 정계 진출이 확대되었다(이색 -> 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 이들은 대부분 지방의 향리 자제들로, 무신 집권기 이래 과거를 통하여 중앙 관리로 진출하였다. 이들 중 일부가 측근 세력으로 성장하여 권문세족이 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공민왕 때의 개혁 정치에 힘입어 지배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성리학을 수용하여 학문적 기반으로 삼고, 불교의 폐단을 시정하려 하였다.
신진 사대부는, 자신들의 기반을 침해하면서 농장을 확대하는 권문세족과 충돌하게 되자, 국가의 공적인 힘을 강화하여 그들의 비리와 불법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권문세족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서 관직으로의 진출이 제한되었고, 과전과 녹봉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처지를 해결하기 위해 왕권과 연결하여 고려 후기의 각종 개혁 정치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아직 역부족이었다.
첫댓글 무슨말이징!,@,@ ㅠㅠㅠㅠㅠㅋㅋㅋㅋ
전민변정도감!
공민왕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