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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천도교 자료실 스크랩 전봉준 장군 처형터에 가톨릭 성당을 세워 동학의 역사를 지운다?
야무 추천 0 조회 729 14.10.20 16: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봉준 장군이  처형당한 서소문

       - 동학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의 하나입니다



서소문에 카톨릭 지하성당을 세운다?고 하는 사실에 분개한  어느 분이 보낸 트윗입니다. 

@ekfmak5 Oct 16  
"서소문공원에 나라돈 500 억 들여 지하성당 만들고 가톨릭 성지화. 


나라땅을 가톨릭이 공짜로 가져가 버리는건가? 


거기에 얽힌 조선 역사는 지워지고? 

녹두장군은? 

동학은?"

저도 오늘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았는데요. 벌써 일은 많이 진행되었네요. 어찌해야 할까요?

http://www.tagstory.com/100618312    
<---관련뉴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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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120주년을 맞아

동학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 가운데 하나 

전봉준 처형터를  사라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래글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게시판에 올라있는 것을 옮긴것입니다

http://www.1894.or.kr/main_kor/m_5_1_1.php?mode=view&no=53&start=0\

글쓴이는 다빈이란 분인데 제게도 트윗글을 보내준신 분입니다.

    

서소문 공원은 전봉준등 조선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인데

거기 전체에 성당을 지어 버리면 모든 조선 역사가 사라집니다.


건설 주체는 중구청장이며

서울시의원인 김태희란 분이 가톨릭인인데

서소문고원 역사 기념공원 조성사업 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만일 서소문 공원 전체가 가톨릭으로 넘어가게 되면 동학의 순교 역사도 함께 지워집니다.


설계도면은 이미 선택되었고, 가을부터 공사에 들어갑니다.

설계 도면은 아래 사이트에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leekwanyong/220081049189


보시면 알겠지만 지하에 성당, 그리고 소성당, 또 제의실도 만듭니다.

공원 전체의 땅값은 천억이 넘을 것이고

공사비 500 억도 나라 돈으로 한다고 합니다.

동학기념재단이라면 전봉준 관련 서소문 공원을 가톨릭에게 영원히 넘겨 줄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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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 보니 벌써 서소문 지하성당 반대하는 글이 많더군요. 

불교 기독교 등에서 ...참 둔하고 무심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학혁명 120년을 맞아 전봉준장군 처형터가 사라질 판이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제가 보낸 문자를 보고 동학유족회 김석태 님은


 " 분하고 치가 떨립니다" 


이런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장 나서야 겠지요.   

지금도 늦지 않았겟지요.  반대해야지요. 

반대라기 보다는 동학의 역사를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겠지요 ...




서소문성당 건립에 대한 불교측 입장을 엿볼수 있는 글 /법보신문 김형규 kimh@beopbo.com

교황 방문과 서소문 공원 2014.06.24. 

http://cafe.daum.net/mujuseonwon/2lvx/3746?q=%BC%AD%BC%D2%B9%AE%20%C0%FC%BA%C0%C1%D8&re=1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4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번 방한을 둘러싸고 가톨릭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교황 방한의 초청 주체가 모호하다. 초청 주체가 한국가톨릭이라지만 정부가 오히려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교황청에 친서를 보내 방한을 요청했다. 방한이 무르익자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교황방한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해 의전과 행사, 경호안전 3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준비해 왔다. 최근에는 방한하는 교황을 위해 대통령 전용헬기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교황의 방한 목적은 명확하다. 대전에서 열리는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참여와 가톨릭의 한국전래 과정에서 죽은 순교자의 시복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가톨릭 순교자 시복식행사 장소로 나라의 심장과 같은 광화문을 내주었다. 국민의 동의는 물론 다른 종교계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약자를 위한다는 교황의 첫 번째 방문지가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라는 점도 납득하기는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앞두고 정부 향한 가톨릭 비판 사라져

서소문공원 순교성지화 추진은 국민정서 반한 가톨릭의 독선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휘말렸다. 검찰 조사결과 국가기관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런 박근혜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성토한 곳이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시국미사를 열어 철저한 조사는 물론 대통령 퇴진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교황 방한이 무르익자 정부에 대한 가톨릭의 비판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세월호 참사에도, 친일을 찬양하고 논문을 표절하는 등 함량미달의 총리 및 장관 후보들로 나라전체가 들끓어도 유독 가톨릭은 잠잠하다.


교황은 과거에도 두 번이나 한국을 다녀갔다. 군사정권이던 전두환과 노태우 때였다. 당시를 군부독재의 정당성 홍보에 종교가 이용된 사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교황 방한이 박근혜 정부의 부정선거 의혹을 잠재우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이는 이유다. 가톨릭에 대해서도 침묵의 대가로 정부지원을 등에 업고 교세확장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교황 방한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서소문 역사공원의 가톨릭 순교성지 추진은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총사업비 513억 원 규모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설계공모까지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의 주장처럼 서소문 공원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처형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 동안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처형된 장소다. 홍경래와 전봉준 같은 백성과 나라를 위해 숨진 숱한 의인들이 유명을 달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인 곳에 단순히 가톨릭 신자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나서서 가톨릭 순교성지 조성에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이곳에서 처형된 대표적인 인물 황사영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아니면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가톨릭에선 순교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국민들 입장에서 일본에 나라를 바친 친일매국노와 전혀 다를바 없다. 한국 가톨릭은 권력과 불의에 항의해 온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그 기억들이 퇴색되고 있다. 가톨릭이 점차 정치 권력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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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소문 단독 성지 추진은 무리 /김근수 (신학자,평신도)  2014-08-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252043545&code=990304

서소문(소의문)은 서울성곽에 있는 사소문 중 하나다. 서소문은 사대문 및 사소문 사업의 일부로 태조 5년(1396년)에 건립됐다. 원래 이름은 소덕문인데 보통 서소문이라고 불린다. 강화군 또는 인천군을 향하는 관문으로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됐다. 한양 도성의 장례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사소문 중 서소문과 광희문밖에 없었다.


나는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드는 데 반대한다. 서소문이 천주교 성지인 것은 맞지만 천주교 단독 성지인 것은 아니다.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보다는 서소문에 관계된 여러 종교의 공동 성지로 만들면 어떨까. 일종의 평화공원 말이다.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서도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난날의 순교자를 공경하는 것보다 지금 순교하는 일이 천주교에 더 중요하다. 성지 개발이 교회의 주된 임무는 또한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편드는 데 우선 더 신경 써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며칠 전 한국주교회의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서소문에서 천주교 순교자들만 처형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형이 서소문에서 집행됐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도 여기서처형됐다. 황사영 같은 천주교 신자도 여기서 처형됐다. 황사영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이다. 서소문은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처형된 곳이다. 천주교가 이곳을 독점 소유할 권리나 명분은 없다.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묻고 싶다. 이곳을 단독 성지로 추진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가. 국민들과 이웃 종교에 양해를 구하고 상의했는가. 똑같은 질문을 정부에 하고 싶다. 서소문에서 가톨릭 순교자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가톨릭 단독 순교성지 조성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벌써 정부와 서울시가 총사업비 513억원 규모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설계공모까지 들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당시 서소문공원을 방문했다. 교황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정확하게 보고받고 있을까. 만일 교황이 그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된다면 과연 찬성할까. 교황의 서소문공원 방문 사실 자체를 마치 교황이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찬성하는 신호로 해석하거나 선전하는 것은 지나치다.

천주교는 서소문에 큰 의미를 둘 만하다. 그러나 서소문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들려는 생각은 무리다. 천주교는 정부의 호의를 얻어 특혜를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천주교의 환심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천주교는 정부에 기대지 말고, 정부는 천주교를 이용하지 마라. 

한국천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은 서소문 성지를 위해 노심초사할 것이 아니라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천주교가 돌아가신 순교자를 존중하자고 외치면서, 지금 살아 있는 순교자를 외면하면 되겠는가. 서소문성지 문제에서 한국천주교의 정신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와 정부가 어떻게 처신하는지 국민들과 이웃 종교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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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신부님 글인데 좋습니다.  

 "서소문과 새남터 성지를 단장할 때 우리가 사육신을 기념하는 비석 하나라도 세우고, 전봉준 장군의 동상 하나 정도는 함께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http://well.hani.co.kr/410149

순교자 기념은 잘 하는데, 순교는 언제 하려는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 축일에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는 서소문 유적지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작년 이래 주교님의 강론에는 순교의 신심과 더불어 서소문 성지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만이 아니고 각 교구마다 순교자 유적지 개발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성 문제에 있어서 유적지라고 말하기는 검증이 더 필요한 장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순교의 사실과 약간의 인연을 근거로 해서 성지라고 강조하면서 신자들의 순례코스가 되기를 원하는 의도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순교자의 신앙과 은거, 피신 생활이나 체포되어 이송되고 처형되고 시신을 옮기고 묻히고 이장하는 과정에 연루된 추측 내용들이 있겠지요. 그러면 먼저 관심있는 신부를 지명해 교회사 자료 뒤지는 작업을 맡게 할 것이고 관련 순교 사화록을 정리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곳의 성인 묘소를 이장해 와서 성지대열을 만든 곳도 있지요.

이런 식의 정리에는 뻥튀기도 많이 들어가겠지요. 만약에  순교사를 뻥튀기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자신의 신심이나 성화를 위한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신자들에게 픽션을 팩트처럼 전하고 성지화 욕구를 관철하려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토목 작업 하고 조경하고 조형물을 세우고, 주차장과 센타를 세우고 홍보하고... 등의 순서로 가겠지요. 암튼 이런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김대건 신부님과 전봉준 장군과 조선조의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한 분은 생각 안남-)들이 모였습니다. 저기 하늘나라에. 

“그대가 처형 당한 이유는 무엇인고?”

충신 성삼문: 단종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하려고 수양대군 옹위를 반대했습니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그대의 정파가 정쟁에서 숙청을 당한 거로군! 인간의 욕망과 야망과 탐욕은 합법적 살상도 서슴치 않아. 내가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렇게 강조했는데... 참 마음 아픈 일이네.” 

전봉준 녹두장군: 저는 동학도로써 농민들을 수탈하여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와 일본 약탈자들로부터 백성들의 사람됨을 확보하고자 농민봉기를 일으킨 죄로 처형당했습니다. 우금치 전투에서 1천 여 명 이상이 죽었어요.  

“내 알고 있네, 정의로운 세상이 내 뜻이라서 관심이 많네, 어쩌겠는가. 통치자와 국가란 늘 폭력에 의지한다네.  그래도 세상은 진보해 가려는 힘이 있으니 산 자들에게 맡기고 너무 상심하지 말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저는 이 땅에도 그리스도 교회를 도입하고자 했는데 조선조의 성리학과 유교적 관습과 신념에 어긋난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했습니다. 2만명이 넘는 당신의 양떼들이 죽어갔습니다. 

“지배욕이란 게 그런 거라니까!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의 고수를  위해서 타종교를 박해하면서 그것을 진리로 알고 있어. 왜 사람들은 신들에게 서열이 있고 서로 싸운다고 생각할까?  우리 신의 세계에는 그런 다툼 자체가 없거등... 서로가 한 몸이니까. 참 답답하네,” 
"그대들은 모두가 정의와 진리와 상식을 위해 살았고, 그 신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된 것이오. 그대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목숨 바친 충절과 가치는 크고 작을 수도 없고 귀하고 덜 귀하고가 없느니, 그대들의 희생을 역사에 길이 남겨 후학들이 배우고 따르게 할 것이오.“ 

순교편집.jpg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봉준 장군, 김대건 신부, KBS 드라마 <사육신>의 성삼문과 신숙주 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축일에 생각합니다. 김대건 사제가 망나니 칼날에 목이 잘려 처형되었던 새남터 용산 뱃머리는 이미 그보다 250여 년 전, 사육신들이 능지처참을 당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남종삼 요한 등 44명의 순교자가 처형당했던 서소문은 녹두 전봉준 장군이 역도죄로 처형되었던 바로 그 곳입니다. 

진리 앞에서 동학 서학이 무슨 이유가 되겠습니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건 이 땅은 하느님의 진리와 민중의 삶을 위한 정의의 투쟁으로 피를 흘린 거룩한 성지임을 순교의 역사임을 각성합니다. 이 땅에는 진리와 자유, 정의를 따르는 이들의 우뚝 선 산맥이 있고 그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희생의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생각합니다. 

삼별초, 사육신, 지조와 절개를 생명처럼 여겼던 선비들, 항일 독립군, 그리고 노동자를 위해 분신한 전태일 열사와 박종철 이한열 등 끝없는 죽음의 행렬... 

우리가 순교자 신심을 앙양하면서 이들을 두루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들이 목숨을 바쳤던 이유를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순교 신심은 절름발이 반쪽짜리 신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소문과 새남터 성지를 단장할 때 우리가 사육신을 기념하는 비석 하나라도 세우고, 전봉준 장군의 동상 하나 정도는 함께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안맞지요? (2013. 7.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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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 120년을 맞이하여전봉준 동상하나 서소문에 세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동상하나면 가톨릭측이 서소문에 세워놓은 것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규모일텐데... 단성사옆 해월신사 순도터에 들어서 있는 표지석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참고로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거창한 서소문 가톨릭 성지를 링크해봅니다.  

http://fr.catholic.or.kr/jhs/holyplace/seosomun.htm 한국 최대의 성인 탄생지

지금도 서소문에는 카톨릭 성지가 잘 조성되어있는데요 . 또 거창하게 무얼 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서소문 밖 - 최대의 순교 성지

서소문 밖은 바로 임금의 궁성이 있는 한양의 공식 처형지였다. 창업 이래 조선에서는 갖가지 모반 사건과 범죄, 정변 등으로 수많은 죄인들과 억울한 사람들을 처형하였다. 사형수는 크게 모반죄와 일반 범죄로 나뉘어졌는데, 그중 모반죄의 경우는 형장이 일정치 않았지만 나머지 사형수들은 주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서경"에서 말한 "형장은 사직단 우측에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서소문 밖 형장은 현재 서소문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서소문 공원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경복궁에서 바라볼 때는 이곳이 바로 사직단(지금의 사직 공원에 위치) 우측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양의 성문 밖이란 점도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었으므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는 효과도 있었으며, 최종 판결을 내리는 형조나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형장으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이래 서소문 밖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가 되었다. 그들은 포도청으로 끌려가 1차로 문초를 당하거나 형벌을 받고 형조나 의금부로 이송되어 판결을 받았다. 그런 다음 형조의 옥인 전옥서(지금의 광화문 사거리 동쪽 서린동 소재)에 갇혀 있다가 사령들에 의해 끌려 나와 형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처형이 결정된 신자들은 옥에서 끌려 나와 수레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렸다. 십자가의 높이는 여섯 자 정도로, 신자들은 양팔과 머리칼만 잡아 매인 채 발은 발판 위에 놓여지게 된다. 수레가 광화문통을 옆으로 지나 서소문에 이르면 그 다음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이 때 사령들은 신자의 발이 놓여져 있는 발판을 빼내고 소를 채찍질하여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게 하였다. 수레는 무섭게 흔들리고 신자의 몸은 머리칼과 팔만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통을 받게 된다. 현장에 이르면 옷을 벗기고 꿇어 앉힌 뒤 턱 밑에 나무 토막을 받쳐 놓고 목을 잘랐다."(달래, [한국 천주교회사], 서설)

옛제대와 감실

성요셉과 아기 예수님

성모자상

십자가의 길

우리의 순교자들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이렇듯 잔인한 대우와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첫 순교자들로부터 80여 년 뒤인 1887년에 블랑 주교는 이곳 순화동의 수렛골에 교리 강습소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공소가 되고 4년 뒤에는 약현 본당(현 중림동 본당)으로 발전하였으며, 1893년에는 약현 성당(사적 제 252호)이 완공되었다.
 
서소문 밖에서의 순교사는 대략 세 단계로 나뉘어지는데, 첫 단계는 신유박해 초기부터 지도층 신자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1801년 2월 26일에는 첫 순교자가 서소문 밖에서 탄생하였다. 한국 교회의 반석인 이승훈(베드로)과 명도회의 초대 회장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등 6명이 순교한 것이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는 여회장 강완숙(골롬바) 등 남녀 신자 9명이 순교하였고, 10월과 11월에는 황사영(알렉산델)의 '백서' 사건과 관련하여 황사영, 현계흠, 황심(토마스) 등 5명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서소문 밖의 작은 개천가에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뒤에야 박해는 막을 내렸다.
 
두 번째 단계는 기해박해 때로, 1839년 4월 12일에 성 남명혁(다미아노) 등 5명과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던 성 김아기(아가다) 등 4명이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이어 6월 이후에도 계속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며, 8월 15일에는 성 정하상(바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이 다시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이때 조선 교회의 지도자요 밀사 역할을 하던 정하상은 미리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상제상서"(上帝相書)를 작성하여 품안에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조정 관리들이 발견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진교(眞敎)'라는 호교론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박해로 눈이 먼 그들은 이를 묵살해 버리고 말았다. 기해박해 때의 처형은 11월 24일에 성 정정혜(바르바라) 등 7명이 순교의 화관을 받은 뒤에야 끝나게 되었다.

순교 기념탑

순교자 기념관

순교자 기념관

기념관 성당 내부

세 번째의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사람은 남종삼 성인 등 3명으로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가해진 대박해임에도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가 적은 이유는,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신자들을 체포하거나 투옥하고 처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기록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름 모를 은화(隱花, 숨은 꽃)들이 서소문 밖이 형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순교의 영광을 바쳤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소문 밖은 분명 한국 교회 최대의 순교 성지였다. 103위 성인 중 44명이 이곳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교회 측에서는 시성식이 이루어지던 1984년에 순교 기념탑을 서소문 공원 안에 건립하였으니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훼손된 상태이다.[편집자 주 : 1999년 성령강림 대축일에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졌다.]
 
역사는 우연일 수 없다. 우리의 복음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의 섭리를 말하곤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체포, 투옥, 포도청과 형조에서의 형벌, 서소문 밖에서의 죽음, 이들은 모두 복음의 고리를 이루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주님의 섭리요 한국 순교사의 맥이다. 따라서 형리들이 채찍질하는 수레의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수만은 순교자들이 '착하게 살고 영생의 복락을 얻기 위해 올바른 길을 걷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삶을 살아왔다면, 순교 성지 서소문 밖 형장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결코 초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 차기진, 사목 242호(1999년 3월), pp.93-95]

기념관 성당 내부

기념관 성당 제대

유물 전시실

형구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설계당선작  [당선작]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공모

“역사를 음각한 공원, 반전의 도시”

한국건설신문l기사입력2014-07-13

 


침묵광장(Silence Plaza). 가로 세로 각 33m, 깊이 20m의 상부로 열린 대공간으로 하늘과 맞닿아 하나가 된다. 이 프로젝트의 클라이맥스 공간이다.

 

“EN-CITY, ENGRAVING the PARK”… 어떤 의미일까? 이 계획안이 메인 콘셉트로 내세운 강력한 단면에 비추어 볼 때, 사전적으로만 해석해보아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다. 인그레이빙(engraving)이란 조각도로 홈을 파 넣어 요판(凹版)을 만드는 판화기법이다.

 

이 작품은 마치 판화처럼 주요공간(city)을 조각도로 판 듯이(en-) 땅 속에 새겨 넣었다. 지상과 지하에 각각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 동선을 통해 시퀀스를 형성하면서 연결하고 있다. 건축물을 정물로 다루지 않고 동적 움직임을 통해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Pilgrimage(순례길)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 침묵광장과 순교성당의 관계. 뒤로 약현성당이 보인다.  

 


△ 개념 다이어그램.


“EN-CITY, ENGRAVING the PARK”는 근린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서소문공원의 장소적 의미와 시민의 일상을 최대한 살리고, 주차장 등이 산재한 1만여평의 지하에는 ‘순교성지의 기념성’을 음각해 넣었다. 지하공간은 ▷진입광장 ▷순교성당 ▷침묵광장의 3단계 핵심 공간으로 구성하고, 지상공원은 중림동 약현성당(사적 252호)으로 열린 순례타워와 최소의 구조물로 절제시켰다.

 

이 프로젝트의 힘은 지하공간에 응집돼 있다. 공원에서부터 침묵광장까지 설계자가 계획한 동선에 따라 시퀀스를 모두 경험하면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 것처럼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동선 다이어그램.


공간을 극단적으로 압축 하고 이어 최대한 터트리는 강약의 조절, 시나리오, 디테일 등이 세심하게 연출되어 느슨하게 펼쳐진 지상 공원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을 예고한다.

 

공개발표가 있던 날 당선 팀은 “신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장소이기에 어느 때보다 ‘건축가가 우월한 태도를 가지지 않고 조작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자세가 건축적인 언어로 번안되어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받은 것 같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에 대해 “느슨하고 산만한 기존의 도시조직에서 공원과 역사유적지를 적절히 분리해 두 세계가 성공적으로 만나게 했다”며, “전체 공원의 배치와 실내 공간의 크기 등에서 그 유기적인 흐름이 매우 아름다운 호흡을 가지고 있다”고 총평했다.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설계공모 당선작
“EN-CITY_ ENGRAVING the PARK”

 


    
▲ 조감도. 지상 공원은 느슨한 주변의 도시구조를 받아들이고 건축적 조작을 최소화했다. 

 


▲ 서소문공원 주변의 도시 조직.


STEP 1
Loose Urban Fabric vs Overlapping Programmed Park= 대상지는 주변 환경과 연계성이 부족해 강렬하고 상징적인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 느슨하게 분할되고 중첩된 공원공간은 다양한 도시 활동의 수용을 통해 수렴된다. 

 

STEP 2
Overground vs Underground= 현시성에 근거한 지상의 공원은 근린공원이자 역사공원으로서 역할한다. 통시적 지하의 공원은 종교적으로 숭고한 상징적 공간으로 발휘되며 침묵광장과 광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하늘로 상승된다.      

 

 

▲ 지상부 공원 시퀀스의 예.  

 

STEP 3
Engraved Square Void= 9개의 음각된 보이드 공간은 각각의 깊이와 넓이를 가진다. 이에 따라 다른 공 간감을 가 지고 하늘을 지하로 연결시켜 투영된다. 동시에 공원 영역에서는 다양한 스케일의 경관구조로 활용된다.

 


▲ 지하부 통로. 순례길을 모티브로 한다. 

STEP 4
 Way of Pilgrimage= 지상에서 출발해 다양한 깊이의 하늘을 향한 광정과 함께 성당을 에둘러 돌아, 공간의 정점이 되는 ‘침묵광장’까지 이끄는 선적인 경로는 지하공간에 만들어진 하나의 ‘순례의 길’이다.

 



▲ 주 단면도. 왼쪽부터 지하부 침묵광장, 순교성당, 진입광장과 지상부 중앙 순례타워가 보인다.

 



▲ 지상부 시퀀스. 현재 서소문공원 내에 자리한 “순교자 현양탑”(조광호 신부, 임근배 건축사, 1999년 작)은 그대로 보존된다.

 


▲ 침묵광장 기도공간.  


 
▲ 침묵광장에서 바라본 순교성당.  

 


▲ 지하 3층 순교성당 내부. 

 

     
▲ B1 연못에 반사된 자연광이 성당 천정에 만든 물그림자.

 

설계 참여자 ◇(주)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 윤승현 서준혁 이지선 장병수 송민준 신병철 ◇(주)보이드아키텍트 건축사사무소= 이규상 장기욱 박찬호 방누리 ◇레스건축= 우준승 한상정 이창현. (자료제공= 공모 운영위원회, 당선팀)

http://www.conslo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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