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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산행 이야기 스크랩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서울성곽` 돌기-제1구간-
왕마구리 추천 0 조회 126 09.10.20 09: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서울성곽 돌기 ▶

 

▲ 청운대에서 바라본 서울성곽 전경

 

【 서울성곽의 역사 】

*사적 제10호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되어 한양 천도를 명하고, 태조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자(약 18.20k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엿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축성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렸다. 세종4년(1422)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고, 이 공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서울성곽의 골격이다.

이후 서울겅곽을 재정비했던 숙종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성곽 자체는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철이 부설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0km 중 산지 성곽 10.50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서울성곽을 가능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서울성곽 돌기코스 】

(제1구간)자하문고개/버스정류장→창의문/창의문안내소→전망대→백악마루갈림길↔백악산(북악산, 백악마루 342m)→청운대(293m)/쉼터→곡장갈림길↔곡장→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안내소→말바위/화룡공원갈림길→와룡공원→서울과학고 후문/도로→경신고담장→경신중,고--→한성대입구역/4호선

 

▲ 서울성곽 안내도

 

(제2구간)한성대입구역/4호선--→경신고→혜화문(동소문)→암문→낙산(125m)→암문-(창신성곽길)→흥인지문(동대문)→동대문운동장→광희문(남소문)→신당동성당-(서울성곽'장충지구')→팔각정쉼터/전망대→남소문터→국립극장(해오름극장)/남산공원입구→목멱산(남산 262m)/서울타워+남산봉수대→남산관리사무소+안중근기념관→숭례문(남대문)→서소문(소의문)/멸실→이화여고→강북삼성병원/돈의문(서대문)터:멸실-(서울성곽'청운지구')→인왕산(338.2m)→창의문 

 

▲ 서울성곽 개념도

 

【 산행거리 】총 18.2km

 

◀ 제1구간(창의문~백악산~경신고) 성곽 돌기 ▶

▲ 북악산 전 전망대에서 뒤돌아본 인왕산 일대의 전경

 

【 서울성곽 제1구간 코스 】창의문/창의문안내소-(300m)→돌고래쉼터/공사중-(1290m)→백악마루/백악산(북악산 342m)-(430m)→청운대(293m)-(550m)→곡장-(240m)→촛대바위-(450m)→숙정문-(400m)→말머리전망대/쉼터-(630m)→와룡고개(창의문~와룡고개:총 4290m)→서울과학고후문/도로-(경신고 담 축대따라 진행)→경신고/삼거리-(탈출)→한성대입구역/4호선

【 산행일자 】2009년 3월 7일(토)

【 산행시간 】총 3시간 52분 소요(휴식 및 관광시간 포함)

【 참 가 자 】천 영면(단독산행)

【 교 통 편 】대중교통 이용

<< 갈 때 >> 부천시청앞(11:00)→부천역/1호선(11:31~11:40)→종로3가역-(환승/3호선)→경복궁역 #3번출구(12:46~12:52)-(버스환승:#1020번 시내버스)→자하문고개(12:58)

** 시내버스 노선(경복궁역→자하문고개) : #212번, #1020번, #7022번 시내버스

<< 올 때 >> 한성대입구역/4호선 #5번출구(17:00)→동대문역-(환승/1호선)→부천역

【 산 행 기 】

 경기지맥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여유있게 오전 11시 집을 나서 서울성곽 구간 중 입장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며,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탐방이 가능한 창의문안내소~말바위안내소 구간을 먼저 돌아보기로 하였다.

적당한 날을 잡아 총 거리 약 18.2km의 서울성곽을 하루에 소화할 계획이었으나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서며 서울 근교 마땅히 산행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서울성곽 종주를 2구간으로 나누어 산행을 하기로 하고 첫 출발지를 자하문고개에 위치한 창의문으로 정하고 산행을 하였다.

서울성곽이 위치해 있는 이 구간은 청화대를 끼고 있어 보안상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가, 최근에 국민들에게 개방이 되었으나, 입장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신청서를 작성하여야 입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정된 장소이외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약간은 불편을 느끼지만 전망대나 쉼터가 설치된 전망이 뛰어난 곳이나, 백악산(북악산) 정상 등에서는 자유롭게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사진촬영이 허용되어 있어 주변의 경관을 즐기며 산책하듯 산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성벽을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계단이나 돌길로 이어져 있거나, 포장도로로 이루어져 산길을 걷는 운치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처음 성곽돌기를 시작하며 제1구간 코스를 창의문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로 계획을 하였으나, 저녁 7시부터 WBC 한일전 경기 TV 중계가 계획되어 있어 경신고 후문에서 성벽돌기를 중단하고 한성대입구역으로 이동하여 전철을 이용, 귀가하여 제1구간 코스를 계획보다 축소하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 자하문고개 창의문 입구의 '창의문 서울성곽 관람안내' 표지판

▲ 자하문고개 창의문 입구의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

▲ 창의문

♧ ♧ 창의문(彰義門)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태종13년(14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17년(1741)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어져 비로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목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 성밖에서 바라본 창의문 

 

▲ 창의문 우측 창의문안내소로 가는 계단길 

 

12:58=>자하문고개 버스정류장/창의문안내소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면 '북악산 서울성곽 관람안내판'과 '청계산발원지' 표석이 보이고, 그 옆으로 계단길이 보이는데 이 계단길을 따르면 창의문으로 향하게 된다. 약 100여m 떨어진 곳으로 창의문이 보이고, 우측으로 나무계단길이 있는데 이 계단길을 오르면 '창의문안내소'가 있다.

출입신고서를 작성하여 함께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고 가파른 성벽 옆 돌계단을 따르면 된다. 좌측 성벽 너머로는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과 구기동에서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사자능선 그리고 상명대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탕춘대능선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 안내

◈ 개방구간

    *코스1 : 말바위안내소→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안내소(3.7km)

    *코스2 : 숙정문안내소→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안내소(3.8km)

    *코스3 : 창의문안내소→백악마루→숙정문→말머리안내소(3.7km)

    ※ 코스3인 창의문안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창의문~백악마루' 구간의 경사가 급하므로, 노약자나 어린이 및 산행에 자신없으신 분들은 역코스인 말머리나 숙정문안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입장시간

    *하절기(4~10월) : 09:00 ~ 15:00

    *동절기(11~3월) : 10:00 ~ 15: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 신청방법

    *현지 개별신청 : 신분증 지참 후 현지에서 출입신청서 작성 후 제출

    *사전 단체신청 : 30명이상 단체일 경우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홈페이지(www.cha.go.kr)에서 신청서 작성 후 e-mail 접수

    *외국인 신청 : 여권 및 외국인등록증 지참 후 현지에서 출입신청서 작성 후 제출

 

 

▲ 백악산으로 이어지는 성벽

▲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벽

▲ 전망대에서 바라본 종로구 북쪽 시가지(부암동, 신영동, 홍지동 일대) 전경

▲ 전망대에서 조망된 북한산

 

13:45~14:00=>전망대/쉼터

     가파른 계단길을 극복하면 정자 쉼터인 전망대에 이르게 되는데 성벽을 따라 오르며 좌측으로 조망된 북한산의 암봉들이 이어지는 장엄하고 호쾌한 능선이, 그리고 뒤돌아보면 창의문에서 이어지는 서울성곽이 지나는 인왕산과 그 주변 경관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이곳은 사진촬영이 허용된 지역이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계속되는 계단길을 이어가 언덕마루에 오르면 이정표(↑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가 설치된 백악마루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우측으로 약 50여m 떨어진 곳에 백악산 정상인 백악마루가 위치해 있다.

 

▲ 백악산 갈림길

▲ 백악산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 백악산 정상에서 조망된 인왕산

▲ 백악산 정상에서 조망된 북한산

▲ 백악산 정상에서 조망된 남산

 

▲ 백악산 정상표지석 

 

▲ 백악산 정상의 집채만한 바위 

 

14:05~14:20=>백악산(북악산, 백악마루 342m)

     넓은 공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북한군의 공중위험으로 부터 청화대를 방호하기 위해 1979년 10월 15일부터 발칸진지를 설치한 자리이며, 2000년 9월 9일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라는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이란 표석이 있다.

우측으로는 집채만한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옆 소나무숲 밑으로는 벤치가 설치된 쉼터가 있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시계가 확보되는데 북한산과 인왕산뿐만 아니라 동쪽 방향으로 남산일대가 조망이 된다. 이곳에서도 사진촬영이 허용된다.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가 내리막 계단길을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표지석이 설치된 청운대에 이르게 된다.

 

▲ 청운대 표지석을 배경으로...

▲ 청운대전망대에서 뒤돌아본 백악산과 서울성곽

 

14:25~14:30=>청운대(293m)

     목책이 설치된 울타리 안으로는 사슴 서너마리가 노닐고 있는 청운대에 서면 북동방향으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조망이 되고, 성벽 위에 설치된 목조구조물인 전망대에 서면 가야할 성벽길과 곡장, 그리고 우뚝 솟아있는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 일대의 암봉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목조구조물을 올라 성벽을 넘어 내려서 성밖길을 잠시 따르면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란 안내문이 있고, 시대를 달리하여 축조된 성벽이 나타난다.

 

▲ 시대를 달리하여 쌓은 성벽

 

'청풍암문'을 통하여 다시 성안으로 들어서 성벽을 좌측에 두고 진행을 하면 이정표(↑숙정문/←곡장/↓백악마루)가 설치된 곡장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좌측으로 잠시 오르면 북악터널 방향인 형제봉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분기봉에 위치한 곡장에 오르게 된다.

14:40~15:00=>곡장

     성벽의 일부가 돌출된 곳인 곡장에는 '치와 여장'에 관한 설명문과 벤치가 설치된 쉼터이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으로 분기되는 능선과 주변을 조망해 보고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성벽을 따라 내려가면 우측으로 전망대 나무구조물이 있는 촛대바위가 있다.

 

 

▲ 곡장갈림길의 이정표 

 

▲ 촛대바위 이정표 

 

▲ 촛대바위

▲ 촛대바위 옆 전망대

▲ 촛대바위에서 조망된 남산

 

15:04~15:10=>촛대바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정기를 뿌리 뽑으려 쇠말뚝을 박았다는 바위이다. 좌측 소나무숲으로 전망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나무 사이로 서울성곽이 지나는 목면산(남산)이 조망이 된다.

소나무숲을 이루는 성벽을 따라 내려서면 서울성곽 4대문의 하나인 북대문인 숙정문에 이르게 된다.

 

▲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숲

▲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

▲ 숙정문

♧ ♧ 숙정문(肅靖門)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5년(1396) 처음 서울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의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어 숙정문을 통하는 큰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가뭄이 심할 때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태종16년(1416) 기우절목(기우제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북쪽은 음, 남쪽은 양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 성안에서 바라본 숙정문 

 

▲ 숙정문 옆 소나무숲 

 

15:15~15:20=>숙정문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쉼터 공터를 지나면 말바위안내소(15:25~15:35)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창의문안내소에서 받았던 출입증을 반납하면 된다. 출입증을 반납하고 잠시 성벽 따라 내려서면 이정표(↑삼청공원<말바위조망명소> 100m/→삼청공원 650m/↓북악산서울성곽탐방로<말바위쉼터>)가 설치된 삼청공원갈림길(15:40)에 이르게 된다.

 

▲ 숙정문에서 말머리안내소로 이어지는 성벽 계단 오르막길

▲ 말머리안내소

▲ 말머리 바위로 이어지는 성벽

▲ 삼청공원갈림길의 이정표

 

우측의 삼청공원 방향의 내리막 산길을 버리고 직진의 성벽 옆 계단길을 오르면 성벽을 타고 넘는 나무계단 구조물이 설치된 와룡공원갈림길이 있고, 직진 방향으로 잠시 더 따르면 안내판이 설치된 '말바위'와 전망대가 있다.

 

▲ 와룡공원갈림길의 이정표

▲ 말머리에서 와룡공원으로 가기 위해 성벽을 넘는 나무계단 구조물

▲ 말바위 전망대에서 뒤돌아본 서울성곽 능선

 

15:42~15:48=>말바위/전망대

     '삼청공원 말바위 유래'란 안내판이 설치된 말바위 우측에는 서울 시가지가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으며, 계단길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삼청공원으로 내려가는 탐방로가 이어진다.

 

▲ 말머리

♧ ♧ 삼청공원 말머리 유래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하여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는 설도 있다.

 

직진의 서울성곽은 삼청공원갈림길부터 군부대 시설물이 자리를 잡고 있어 출입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왔던 길로 되돌아가 와룡공원갈림길 푯말이 부착된 나무계단 구조물을 이용 성벽을 넘어서 서울성곽 밖으로 나가 높게 형성된 서울성곽을 우측에 두고 진행하여야 한다.

높게 형성된 성벽을 따르면 좌측으로 조성된 북악산 도시자연공원 곳곳에 산책로와 체육시설 등이 보이며 이정표도 보인다. 계속 셩벽을 따라 진행하면 성벽이 터진 곳이 나타나고 이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면 와룡공원 푯말이 있는 와룡공원에 이르게 된다.

 

▲ 와룡공원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 와룡공원가는 길목의 이정표

▲ 와룡공원 입구의 터진 성벽

 

16:05~16:15=>와룡공원

     입구에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로 안내도'가 있는 터진 성벽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서면 도로가 지나고 건너에는 이정표(←서울과학고등학교 0.8km/→성라암 0.5km)가 있다. 주변에는 쉼터와 체육시설들이 보이고 그 아래로 '와룡공원' 대형 글자 표지판이 보인다.

 

 

▲ 와룡공원의 이정표 

 

▲ 와룡공원 표지판 

 

▲ 서울과학고로 이어지는 성벽 옆 와룡공원 산책로

▲ 와룡공원의 쉼터

 

성벽을 좌측으로 두고 산책로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우측으로 서울과학고 건물이 보이고 성곽이 끝나면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도로를 따라 서울과학고 담장을 따르면 인도에 설치된 '종로구경계점' 표석을 지나 서울과학고 후문에 이르게 된다.

 

 

 

 

 

▲ 서울과학고 방향의 와룡공원 산책로

 ▲ 서울고 후문 직전 도로와 만나는 성벽 끝 지점

 ▲ 도로가에 설치된 '종로구 경계점' 표석

 ▲ 서울과학고 후문

 

16:30~16:37=>서울과학고후문

      후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높다란 경신고 담 축대를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혜화문길'이란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경신고 담 축대 하단부에는 성벽을 이용한 관계로 성벽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는 상태이다. 골목길을 따르면 성벽 흔적은 사라지고 학교 담장은 팬스 형태로 학교 교문까지 이어진다.

 

▲ 서울과학고 후문 길 건너 서울성곽이 이어지는 경신고 담 축대가 시작되는 골목 입구

▲ 담 축대에 일부 남아있는 성벽 흔적

▲ 서울성곽이 지나는 축대와 나란히 진행되는 '혜화문길'인 골목길

 

16:42=>경신중,고 교문/삼거리

     경신고 교문에서 오늘의 서울성벽 돌기를 마감하고 직진의 옛 성벽길을 버리고 좌측의 골목길 따라 내려서면 도로삼거리(16:45~16:48)에 이르고 우측으로 도로를 잠시 따르면 한성대입구사거리에 도착을 하게 된다.

16:50=>한성대입구역

 

▲ 성벽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팬스형태의 경신고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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