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학당] 윤홍식의 성령과 구원 강의 29강 : 성령을 통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라!(49:10)
좀 나가보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잘 성찰하여,
양심성찰입니다.
아까 보세요.
그 전 에페소서 5장 8절에서 10절의 얘기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찾으십시오.”
어떻게 찾아야 되나요? 어디다 가서 물어볼 거예요?
양심성찰이에요. 내 양심에서,
자, 보세요 내 양심에서~
우리 에고의 마음이 있으면,
이 양심에서 이렇게 에고의 마음으로 자명, 찜찜의 신호가 와요.
이 양심이 지금 뭐냐? 성령이에요.
양심이 성령입니다.
그러니 이런 거예요.
이렇게 터져 나온 것을 뭐라고 하냐?
양심의 소리라고 해요.
그러니까 성령에서 양심의 소리가 나온다, 이 말도 맞아요.
그런데 양심의 소리의 본체는 뭐겠어요? 양심이죠.
그러니까 우리 에고 마음에 나온 양심,
시공간 안에 표현된 양심을 아까 뭐라고 했죠, 바오로는?
성령의 9가지 열매,
그 열매도 양심이지만 그 열매의 뿌리, 씨앗도 그럼 양심 아니겠어요?
양심에서 양심이 나오지, 욕심에서 양심이 나올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기는 본체로써의 양심이고,
우리가 말한 양심의 소리, 양심의 열매는 작용으로써의 양심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양심이 성령이에요.
성령의 시공을 초월한 그런 그 본체가 양심의 본체이기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계속 건드리면 양심만 나옵니다, 성령은.
그래서 뭐라고 나오느냐?
이건 자명해! 아니면 이건 찜찜해! 이 양심의 신호를 계속 들어야
하느님이 뭘 원하는지 다 알아낼 수 있어요, 우리는.
오늘 하루, 일어났어요.
하느님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해야 될 텐데 어떻게 찾아요?
어디 가서 물어 봐요?
주님을 기쁘게 할 일이 뭔지 어디 가서 물어보실 거예요?
내면에서 소리를 들으세요.
빛 안에 살면서 그 빛에서 나오는 신호를 들어보세요.
부모님한테 내가 오늘 이렇게 해불까? ‘자명’, ‘찜찜’
전화라도 드려 볼까? ‘자명’
이 말을 해볼까? ‘찜찜’
그러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뭐예요?
요 말은 안 하고, 요 말은 하는 거죠.
자명하다는 건 하고 찜찜하다는 건 안 하는 삶을 계속 사는 게
성화입니다, 성화!
그게 하느님의 진리를 따르는 삶이에요.
빛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그 빛을 가지고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파악한 다음에 진리는 해버리고,
선은 해버리고 악은 안 하는 거 그게 성화입니다.
실제로 이건 행위예요, 실천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지만, 실천으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요거를 이해 못하시고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거다, 라고 우기신다면
성경적이지가 않아서 문제예요.
사도 바오로도 죽자고 실천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에요.
요한묵시록에 끝없이 강조되죠.
예수님의 말씀,
나는 실천한 걸 가지고 너희들을 상도 주고 벌하겠다.
나는 그 실적, 너희가 그 실천한 걸 가지고 판단하겠다.
계속 실천 얘기가 나오는데 계속 저는 믿음만 얘기할래요.
“아버지! 그냥 넘어가죠, 실천은. 믿음만 봐주시죠.”
안될 소리입니다. 우리끼리 정할 내용이 아니에요.
성경에 나온 대로 해야죠.
자, 그러니까 끝없이 실천해야 됩니다.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뭐가 주님을 기쁘게 할지.
그게 양심 성찰이에요.
가톨릭에서는 양심 성찰 시간이 있습니다, 따로.
양심 성찰하는 양식도 있구요.
저희 양심 성찰 노트랑 유사하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성찰하여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아가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살아가십시오.
시간을 잘 활용하십시오.”
여러분한테 주어진 시간을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 쓰지 마십시오, 이거예요.
시절이 악합니다, 지금 시대가.
이 얘긴 뭐냐면요, 지금 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다 원한다고 해서
그것 따라가지 마십시오. 시절이 악합니다.
그것 따라가면 마귀의 종노릇 하기 딱 좋습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금 이 시대의 유행 따라 살지 말고,
세속의 논리대로 살지 말고,
주님의 뜻, 성령의 논리대로 살으라는...
주님의 뜻, 양심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이게 양심 성찰을 주문하는 겁니다. 이게 성화의 핵심이에요.
성화는요, 그냥 여러분이,
이제 이런 식 성화론 주장하는 분들, 지금 교회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음, 인정해. 의화 줗아, 이제 성화만 잘하면 돼.”
그냥 의화도 안 돼 있어요, 사실 그분들은.
“우리 교회 다니잖아~
그러면 의로워진 거야, 하느님 자녀 된 거야!”
우리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아, 성화, 성화 좋지!”
성화까지 인정한다고 치죠.
그런데 그분들이 성화로 하는 일이 뭘까요?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방식이 뭘까요?
성경 죽어라 외워서 성경 그대로 사는 거예요.
그러면 딱 바리사이파 되기 좋은 상태입니다.
바리사이파도 구약성경 죽어라 외워서 죽어라 실천했어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와서
‘니네들은 천국 갈 일이 없어! 마귀의 자식들아!’ 이랬단 말이에요.
그럼 지금 교회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뭐라고 할까요?
‘어? 성령의 세례도 안 받았는데,
성령의 현존도 모르면서 나는 이미 빛 안에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어둠 속에 있는 자녀들이 빛 속에서 산다고 착각까지 한 상태에서
성경 말을 곧이곧대로 실천만 하고 있다.’
최악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실천으로 구원 못 받아.’ 이런 말도 맞아요.
지금 그런 식으로 실천해서는 구원 못 받습니다.
뭔가 지금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이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면,
예수님이 다녀가신 게 하나도 지금 득이 안 되고 있다는 거예요.
2000년 전의 바리사이파들의 행태를 그대로 하고 있다, 지금 교회가.
오히려 더 못 해요. 바리사이파들은 훨씬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정결 운동이라고 해서
훨씬 청교도 운동처럼 이 율법 지키는 것에 사활을 걸고 했어요.
그런데도 예수님한테 다 지적받았어요.
‘여기 천국 갈 놈 없다.’ 하는 소리 들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이런 것도, 이런 노력도 안 해요.
‘그냥 믿으면 된다. 교회만 나가면 된다.’라고 착각을 하고 있어요.
더 상황은 심각합니다. 바리사이파들도 이러진 않았어요.
실제로 믿음을 통해 성령을 만나버리면 구원이 시작되는 것 맞다니까요.
제 얘기는 맞아요. 그런데 누가 그런 믿음을 지금 갖고 있냐는 거죠.
하느님의 현존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런 믿음이어야 돼요.
이제 이 순간순간 하느님과 나 사이에 어떤 가림도 없고,
의심도 없이 하나 된 느낌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아닌 믿음은 나의 그냥 주관적인 착각이에요.
그냥 하느님을 짝사랑하고 계신 거예요.
그쪽은 나를 몰라요, 문제는. 그런 상태의 외사랑은.
그런 상태에 빠졌나 안 빠졌나를 정확히 체크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그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로 성경 그대로 한다! 그러면 말 돼요, 실제로는.
왜냐,
지금 여기서 ‘믿어’라고 할 때 믿고, ‘성령 받아라.’ 할 때 성령 받고,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면 꺼지지 않게 하고 좋은데,
성령을 모르면서 성경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실천한다!
이게 문제라는 거죠, 저는. 대부분 이럽니다.
성경 그대로 실천하자!
그래서 이걸 가지고 주로 어디 써요? 남 지적할 때 써요.
유명한 선교사가 설교를 하는데, 커억! 충격이 왔어요.
아파 죽겠는 사람한테 찾아가서
‘네가 병 나으려면 갖고 있는 너의 전 재산,
그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네가 지금 이 병이 온 거다.
그 돈을 교회에 다 바치면 네가 나을 거다.’
그러면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혹독하게 지적하는 거예요.
‘그 돈을 쥐고 천국을 못 가다니, 내놔라! 내놔라!’ 이거죠.
미친놈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미친놈이에요, 이게~!
이게 성경에 입각한 그 말로 여러분한테 이렇게 전해지면 여러분이,
‘아~ 그러게, 내가 그 돈 몇 푼 땜에 천국을 버릴 뻔했구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돈을 내고 나면, 또 그분의 차가 바뀌고 뭐 다른 게 바뀌겠죠.
이게 지금 정신 안 차리면요, 이게 천국이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지금!
여러분, 천국은 여러분 안에 생생하게 일어나야 돼요.
그러니까 남이, 제가 만약에 ‘그거 천국 아닙니다.’ 해도 소용없어야 돼요.
여러분 안에 이미 하느님의 빛이 임하고,
그 빛에서 진리가 설해지고 내가 그 진리를 따르고 산다면,
여긴 이미 천국이 내 영혼에 구현된 것이기 때문에
남이, 어둠이 와서 뭐라고 해도 여러분을 어둡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강력한 그 빛 속에 여러분이 살아가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게 포인트예요.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더 볼게요.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어떻게 새롭게 합니까? 성령 만나는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의지적으로 ‘나 새로워질 거야!’ 그거는 육정의 마음이에요.
육정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겠다고 노력해 봤자
날로 새로워지는 마귀의 종이 될 뿐이죠.
그래서 성령 안에서 새롭게 돼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장 2절, 여기서도 역시 양심 성찰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양심 성찰 보세요, 지금~
제가 아까 저희 학당에서 양심 제시하는 양심 노트는
육바라밀로 분석하죠? 똑같아요, 지금.
아까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제가 육바라밀이라고 비교해 드렸죠?
여러분, '나는 육바라밀은 불교적이라 싫어!’ 그러시면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날마다 분석하세요.
내가 지금 하려는 그 일, 내가 먹고 있는 그 생각이
하느님 뜻에 성실하냐? 사랑에서 나온 거냐? 자비심에서 나온 거냐?
상대방을 진짜 온유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 거냐? 선량한 마음이냐?
기쁨과 평화 속에서
내가 지금 이 일을 실천하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꾀하고 있는 거냐?
욕심을 절제하면서 꾀하고 있는 거냐? 추진하고 있는 거냐?
요게 지금 그럼 9가지 분석 사항을 가지고 분석을 하셔야 된다니까요.
그럼 그게 성령의 열매인지 육정에서 나온 육정의 열매인지가
판가름이 난다니까요. 매 순간 매 순간 그것도 성령 안에서요.
성령 안에서 기쁘냐에요, 성령 안에서 평화롭냐구요.
성령 안에서 평안이 오느냐부터 체크하고 나머지 항목들을 다 체크해서
‘자명하다!’라는 확신이 들 때 하시면 그게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내 역량이 부족해서 좀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죄를, 고의로 죄를 한 거랑은 완전히 다른 열매를 얻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내가 살아간 거니까.
그래서 지금 그렇게 살아라는 애기를 사도 바오로가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뭐겠어요?
황금률 실천하라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면.
펼치면 9가지가 되겠지만 성경적으로, 한마디로 하면 뭐예요?
‘너가 받고 싶은 대로 남한테 대접해주라는 거!’
이것만 생각하시면 여러분, 다 성자처럼 살 수 있습니다.
자, 그러니까 결국 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요,
지금 방금 사도 바오로처럼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그 선하고 온전하신 뜻을
늘 자나 깨나, 자나 깨나 그것을 분별해가지고 실천하는 게 핵심 아닙니까?
그게 뭘까요? 사랑이요.
요 하느님의 진리가 뭡니까? 사랑이요, 사랑하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라!
사랑에 대해서 예수님이 정확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황금률!
그러면 뭐만 하면 되나요?
죽으나 사나 황금률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황금률에 맞는 것을 구현하려고
살다 가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게 하느님의 사도의 삶이에요.
사명이 뭐예요? 황금률 실천!
그러니까 자나 깨나 빛 안에서, 성령을 만나서 뭘 계속해야 돼요?
황금률을 실천해야죠.
빛은 황금률의 본체요,
우리의 그런 삶은 황금률의 작용이 돼야죠. 그게 답니다.
왜? 성령은 진리의 영이거든요.
성령 안에 어떤 진리가 들어있어요? 황금률의 진리가요.
성령을 따르는 삶이라는 건 뭐예요?
황금률을 실천하는 삶이요. 이게 답니다.
이게 4대 성인들이 다 똑같아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부처님의 *숫타니파타의 자비경에 부처님이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숫타니파타(수타니파타, Sutta Nipāta, 經集, Sn)는 최초 성립한 불교 경전이다.
초기경전이며 시기적으로 상당히 고층에 속한다.
남방불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불경이다.
이 경전은 누구 한 사람의 의지로 쓴 게 아니고, 부처 설법을 부처 사후에
제자들이 모여 운문 형식으로 모음집을 구성한 이후 전래했다고 한다.」-위키백과-
이게 사도의 삶 아닙니까?
‘서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챙겨라.’
그럼 누워 있을 때는 자비심을 안 챙겨도 되나요?
누워서 잠들 때는 우리가 이 열반 안으로, 불성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챙긴다 만다가 없죠.
잠이 깊이 들었을 때는 그 자비심의 본체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이 작동하는,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뭐 해야 돼요, 그 생각이?
자비심을 계속 붙잡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마음을 쓰는 한에는 항상
서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항상 자비심을 굳게 챙겨라.
세상에서는 이러한 경지를 신성한 경지라고 한다. 이게 최고의 경지다.
자비심을, 매 순간 매 순간 자비심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이게 다릅니까? 사도의 삶과 다릅니까? 똑같죠.
논어 보실래요? 공자님의 가르침, 논어 이인편(里仁篇).
이인(里仁)이라는 게요,
벌써 이 말에 다 했어요. 마을 이(里) 자, 어질 인(仁) 자죠.
논어 이인편은 인을 마을로 삼고 살으라는,
인에서 살아라, 사랑에 거주하라, 사랑에서 살아라!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내용에 사랑에서 거주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요.
근데 이게 대표적입니다.
군자는 식사를 마칠 시간 동안에도 사랑을 어기면 안 되며,
짧은 순간에도 반드시 사랑의 마음을 두어야 하고,
엎어지고 자빠질 때도 반드시 사랑의 마음을 두어야 된다.
뭐겠어요, 공자의 인 이라는 게 뭐겠습니까?
공자의 인은 ‘내가 당해서 싫은 거 남한테 하지 말라’ 입니다.
그러니까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에도 내가 당해서 싫은 건
남한테 하지 않아야 돼요.
밥 먹을 때도 내가 당해서 싫은 건 남한테 안 해야 돼요.
자, 이걸 가지고 기독교 사도의 삶을 볼까요?
식사할 때도 황금률을 어기면 안 됩니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한테 해줘야 되고,
자빠질 때도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한테 해줘야 되고,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은 남한테 하면 안 됩니다.
동전의 앞뒤와 똑같아요, 황금률과 인은. 사랑이에요, 사랑.
내가 상대방이라면 원할 거 해 주고,
내가 상대방이라면 싫을 거 안 하는 게 사랑, 이게 다예요.
감정적인 사랑은요, 그건 타올랐다 꺼지면 더 무서워요.
애증이 교차됩니다.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사랑은 내가 당하기 싫은 거 내가 남한테 안 하는 사랑이고,
내가 받고 싶은 거 해주는 사랑.
이런 사랑을 하고 있나 매 순간 여러분 점검해 보셔야 돼요.
가족한테도 우리 그렇게 못해요.
감정적으로 그 사람을 보면 내가 너무 행복해지니까,
내 옆에 두고는 ‘사랑한다’라고 계속하는 거예요. ‘난 널 사랑한다.’
사실은 내가 계속 행복해진다는 게 포인트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 육정의 사랑은 그게 핵심입니다.
근데 이성적인 사랑, 성령적인 사랑은 달라요.
나와 상대방 모두가 행복해져야 사랑한다는, 좀 다르죠.
육정의 사랑은 내가 행복해져야 된다는 게 더 포인트가 가 있습니다.
그래서 황금률을 얘기하는 거예요.
‘네가 행복해지고 싶듯이, 남도 행복하게 해줘야 사랑이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자나 깨나 매 순간, 잠이 들어서 내가 생각을 할 수 없는 한에는,
항상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하라!
이게 지금 사도들의 말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시지 않으면 요게 막연한 얘기예요.
절박한 얘기로 안 들리실 수도 있어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늘 분별하라.’
‘주님을 기뻐하게 하는,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찾아라.’
뭔데요? 사랑이요, 끝없는 사랑의 실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라!’
사도 바오로는 계속 이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 좀 느낌 오시죠?
‘진짜 저렇게 사람이 살 수 있나?’ 안 그래요.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거 자체가 이런 거예요. 보세요.
‘나는 매사에 내 욕심의 소리보다
내 양심에서 자명하다는 거 하고, 찜찜하다는 거 안 하는 걸 더 좋아해!‘
이 말 안에 지금 이게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매사에 사랑을 실천하려고 살아간다는 건.
왜? 뭘 자명하다 그래요, 양심이? 황금률에 맞는 걸 자명하다 그래요.
뭘 찜찜하다 그래요? 황금률에 어긋나는 걸 찜찜하다 그래요.
내가 내 욕심을 좀 더 내면은,
저 칠죄종을 가지고 내 마음을 내 사익의 추구로 좀 더 내면,
피해자가 나옵니다, 반드시. 그러면 내 마음에서 신호가 와요.
‘너는 남을 너처럼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신호가 와요.
그게 양심의 찜찜함입니다. 양심의 가책이에요.
그게 오면 양심이 증인이 되어가지고 얘기를 해줘요, 지금.
‘너는 어떻다!’라고 해서 증인 역할을 해줘요.
증인 역할이 지금, 양심의 소리, 양심의 열매입니다.
요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뜻을 빨리 짐작을 해야 돼요.
사람들은 내 양심에서 내는 소리인 줄 알고
양심을, 가책을 덮어 버리려고 합니다. 죄의식을 덮어 버리려고 해요.
여기만 덮으면 해결될 줄 알아요.
그 죄의식이 어디에서 나왔어요? 그 양심의 가책이 어디에서 나왔어요?
하느님으로부터요.
하느님이 알고 나한테 질책을 했는데 고 질책만 덮어 버리려고 그래요.
하느님이 우리한테 메일을 보낸 거예요, 양심의 소리는.
‘너 당장 멈춰라~!’ 하고.
근데 우리는 그 메일을 삭제해 버리고 죄의식만 날려버리면
하느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게 핵심입니다.
자, 더 나가 볼게요.
성숙한 사람은,
히브리서에 나오는데요, 이게 사도 바오로의 저작이라고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작자 미상으로 봅니다.
근데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과 유사해요.
그래서 분명히 그 사도 바오로 계통의 어떤 사도나
그 제자가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러니까 성숙하다는 건요,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 살아간 사람이구요,
성숙하지 못 한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냐면요, 히브리서에서,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교인들 급의,
그냥 목사님이 제시하는, 신부님이 제시하는 교리를
그냥 믿고 있는 사람은 유치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히브리서에서 얘기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어,
이것만 믿으면 구원받아!’
이거를, 십자가와 부활을 그냥 믿는 사람을 유치한 신앙이라고 하구요,
히브리서와 사도 바오로는 똑같은 입장이에요.
성숙한 사람은요, 자기 내면에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지혜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치한 교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 영적 식별 능력이죠. 자명 찜찜의 감각을 말합니다.
‘성령의 지혜’라고 사도 바오로는 불렀어요.-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아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눈으로 선악을 분별 못하는 사람은요,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냥 교회 가가지고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아~”
십자가, 피, 부활 이런 교리만 듣고요, 동정녀 이런 교리만 듣고, 믿고,
“나는 믿었으니까 구원받을거야!” 하면서
성경에 적힌 대로 살아가는 사람을요, 유치한 신앙을 하는 사람,
히브리서에 정확히 그렇게 규정하고,
사도 바오로가 당시 로마까지 돌아다니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십자가와 예수님의 그 가르침 말씀만 전한 그 사도 바오로마저도
유치한 사람들끼리는 십자가의 도를 얘기하지만
신령한 사람, 즉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는
지혜를 원한다고 해서 정확히 구별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 보면 성숙한 사람, 신령한 사람의 경지가 안 보여요, 잘.
계시겠지만 잘 안 보여요.
주류는요, 그냥 유치한 신앙 단계에 매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기 절에 가서 땅 밟기하고,
어떤 선교 단체는 저기 인도 힌두교 사원 가서 찬송가 부르고,
그리고 막 당당하죠. 진짜 당당하면 그래 놓고 자기들이 했다고 할 거예요.
했냐니까 절대 안 했다고 하다가,
소시오들의 전형적인 그거 있죠? 증거 나오면 인정합니다.
신기하게도 증거 나오기 전까진 깜짝 놀래요. “그럴 리가?”
그러니까 선량한 사람들이 속아요. '저 정도 놀래는 거 보면~',
잘못된 역지사지예요. 일반적인 사람들인 줄 알고, '음~ 아니겠구나!'
증거 딱 내밀면 말 딱 바꿉니다. 어디까지 바꾸느냐?
증거 나온 데까지만 딱 인정해요. 증거 없는 건 또 발뺌합니다.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래 몇 년간 시청해 보다가 느낀 결론이
한결같아요, 요 소시오 범인들은.
딱 발로 차고 억울하다고 울고, 막 책상에 머리를 박고 다 합니다.
근데 증거 딱 내밀잖아요? “어~” 하다가 “여기까지는 맞다.”
증거 없는 것은, 눈치가 겁나 빨라요.
수사관이 증거 없는 것 같잖아요? 말 바로 바꿉니다.
증거 있는 줄 알고 뱉었다가도 증거 없는 것 같으면,
눈치가 빨라서 증거 없는 것 같으면 말 다시 바꿉니다.
이런 존재들하고,
이런 마귀의 자녀들하고 여러분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시는데
지금 성령의 빛도 못 받으시면서 가서 싸우겠다고요?
100% 당합니다.
그런 분들 여러분 못 당해요. 왜?
여러분들은 차마 못 할 일을 그 사람들은 해버리거든요.
차마 못 하는 짓을 막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그쵸? 이기기 힘들어요.
여러분들은 그래도 법을 지켜가면서 사는데
법을 어겨가며 사는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현상계에서 그런 사람들이 강자같이 보이는 이유가 그거예요.
무도한 사람들이, 무법한 사람들이 오히려 힘을 더 쓰죠, 당장에는.
근데 결과적으로 성령의 빛이 강해서 이 사회 전체도
선이 승리하게 도와줘야 되거든요. 그게 천국이에요.
요한묵시록에서 마지막에 천국 온다는 건 별 게 아니에요.
하늘에서 천국이 내려오는 환상을 요한이 봤지만,
예수님 말씀하고 안 맞아요.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건 환영이에요, 환영(幻影). 영적으로 환영은 볼 수 있죠.
영적으로 우리도 하느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왜? 하느님은 영이시거든요.
그리고 천국을 볼 수 없습니다.
왜? 그건 영혼의 왕국이거든요.
이것은 분명히 하셔야 돼요.
환영으로는 우리가 얼마든지 상을 만들어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도 뭐 여러분 취향 따라 하느님 다 만들어서 볼 수 있어요.
머리는 금발이 좋으냐, 뭐 흑발이 좋으냐, 수염은 있는 게 좋으냐,
목소리는 어떤 느낌이 좋으냐, 중후한 느낌이 좋으냐,
이거 다 만들어요.
복장은 어느 시대 복장으로 입히실래요, 하느님한테?
동양의 하느님은 갑옷 입고 있을 수도 있고,
옥황상제 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죠.
이게 그냥 문화권 따라 자기 무의식에서 채색해 버립니다.
여러분 꿈에서 만들듯이 환영은 그냥 만들어버려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 여러분도 놀래요.
꿈도 여러분이 만든 게 아닌데 여러분 마음에서 나온 건데 놀랍죠.
마찬가지로 환영도요, 이런 성령 체험을 통해 얻는 환영도
하느님이 나타나 버릴 수도 있어요. 거기에 속지 마시라.
왜? 그건 꿈같은 거예요.
진짜는 하는님은 영이시고,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시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계시고,
예수님 말씀이 '천국은 눈에 보이는 왕국으로 오지 않는다'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게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우리 마음에서 천국을 이렇게 갖고 가는 게
엄청 중요한 이유가 이거예요.
영을 이해하고 우리 혼을 닦아가는 게
의화, 성화가 결국 우리가 천국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감의 세계로 천국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영혼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길로 공부를 하시려면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되고,
그러려면 양심의 소리에 엄청나게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자, 또 이건 히브리서 5장 14절이고요.
사도 바오로의 얘기로 다시 갈게요.
에페소서 3장 16절,
“하느님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즉 성도들이죠.)
여러분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게 뭐예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하느님은요,
영광이 어마어마한 분이시니까 그런 분이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의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의 속사람을,
영혼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속사람이 뭐라구요?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 양심적인 혼, 거룩한 열매!
여러분이 거두셔야 할 거룩한 열매가 속사람입니다.
성화의 열매가 뭐예요? 속사람이요.
여러분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해졌느냐가 여러분 성화의 열매입니다.
즉, 거룩함의 열매. 아시겠죠?
거룩함의 열매를 여러분이 아주 잘 익게, 그런 열매를 맺게 하셔야 돼요.
여러분 영혼이 거룩해져야 끝나요, 실제로. 그게 열매입니다.
의화는 씨알이에요. 의화는 거룩함의 씨알을 얻은 거구요, 사실은.
성화는 거룩함의 열매를 얻은 겁니다.
아니면 다른 식으로 비유하면,
의화는 거룩함에 열매가 막 맺힌 거고, 성화는 그 열매가 온전히 익은 거예요.
설익은 거예요, 의화 단계에서는 아직.
씨알 단계거나 열매라 하더라도 설익은 열매이고 단계입니다.
왜 제가 여러 가지 비유를 드리냐 하면,
성경에서 다양한 비유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알아 두셔야
나중에 성경을 읽으시다가 바로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자, 코린토2서 볼까요? 4장 16절,
“우리는 낙심하지 않으니 겉사람, 육체를 따른 혼, 욕심의 혼은 시들어가나
우리의 속사람, 성령을 따르는 혼, 양심의 혼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낙심 안 합니다. 성령 안에서 겉사람은, 즉 인심(人心)이죠.
욕심은 날로, 이 인심은 욕심이에요. 욕심은 날로 시들어가고,
우리 안에서 도심(道心), 요거 양심입니다.
양심은 날로날로 열매를 거두어 간다. 새로워져야 간다. 요게 성화예요.
성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시지 못하면 성화를 여러분, 착각해요.
하느님 뜻을 기쁘게 한다고? 그러면 성경 그대로만 살면 되겠네?!
그래서 뭐 지금 시대에 맞지도 않은 성경 구절을요, 지금 시대에 실천합니다.
그러면서 뿌듯해해요. 안타깝죠. 본인은 대게 뭐 한 거 같거든요.
뿌듯~해 합니다.
그건 아버지를 기쁘게 한 게 아니라 본인을 기쁘게 한 거예요.
아버지가 그걸로 기뻐하시나요?
저 내면에서 양심이 뿌듯해하고 자명해 하나요? 그걸 보셔야 돼요.
욕심이 뿌듯해하고 자명해 합니다.
‘이 정도면 천국 가겠지? 아버지가 날 이 정도면 기특하다고 하겠지?’
그래서 여러분, 순교를 하셔도 그건 헛죽음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도 안 기쁘시거든요.
아버지를 기쁘게 하겠다고 갑자기 오지에 가서 선교를 한다고해서
독화살 맞고 죽고 이런 분도 있어요. 뿌듯해합니다, 그 주변에서는.
한 분이 그렇게 죽죠, 간 사람도 뿌듯할 거예요.
아버지가 ‘내가 기특한 효자지?’ 아버지는 안 기뻐요, 문제는.
또 그 옆에 있는 선교 단체들 흥분해요.
오, 선교 붐이 일어날 수 있다니! 이 사건을 팔아가지고 선교 또 자금 마련,
후원 받고 선교 붐을 일으키고, 자기들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기쁜 사람은 누구예요? 이 사람들이요. 아버지는 하나도 안 기뻐요.
아버지는 성령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보고 싶은 건데,
도대체가 그건 감을 못 잡고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면서
‘이 정도면 아버지가 기쁘실 거야!’라는 자기만족에 자꾸 빠집니다.
계속 자위를 하고 계신 겁니다. 심각한 겁니다, 이거
자, 또 볼까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자, 이런 게 대단한 겁니다.
우리가 영을 모르고 살 때는 육정,
육정에 따라 살 때는 혈육의 자녀일 뿐이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혈육을 낳아 주셔서 우리, 그러니까,
육신의 아버지가 낳아 주셔서, 육신의 부모님, 어머니가 낳아 주셔서
그냥 또 혈육의 자녀로서만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육체가 중요합니다. 육체에서 육체를 계속 낳아줘요.
육체에서 육체로 계속 DNA가 이어지면서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육체의 욕구에 충실하게. 그런데 이거 놀라운 얘기 아닙니까?
고등 침팬지로서 육체의 자녀로서 충실하게 살고 있는데
예수님 같은 분이 와서 ‘사실은 너희는 하느님 자녀야!’
그러면 황당한 얘기잖아요.
‘성령의 자녀야~
이 육체니, 영혼이니 다 성령에서 나오는 거야~
아버지가 주신 거야~ 아버지를 만나라~’라고 해서
‘성령 받아라~’, 이렇게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돼버려요.
이제 혈육의 자녀라고 못 불러요.
분명히 혈육은 있지만 이제 혈육의 자녀,
내 욕신을 낳아 준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라 단순히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낳아준 성령 아버지의 자녀가 돼버립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됐죠.
그러면 그전에는 육신의 욕구만 따르면 됐죠.
이제는요, 육신의 욕구도 따라 주는 건 따라 줘야 됩니다.
그 또한 하느님의 뜻이니까.
근데 우리는 이제 더 큰 뜻으로 뭘 추구해야 돼요?
아버지가 살으라는 대로 살아야 돼요, 진짜 아버지를 만났으니까.
고아로 살다가 진짜 아버지를 만났으니 그 아버지 뜻대로 살아야겠죠.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 즉 새사람이 되고,
새사람이라는 건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이죠.
의화와 성화를 통해서 계속 새로워지는 사람.
‘그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것이 됐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느님 자녀예요, 혈육의 자녀 아니에요.’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자, 그럼 내 혈육이 사라지느냐? 아닙니다.
제가 블로그 돌다가 충격적인 글을 봤어요.
‘윤홍식 강의 너무 좋다. 좋다.
근데 부활체의 전망, 그건 좀 아직 찜찜하다. 내가 동감을 못 하겠다.’
‘부활체적 전망은 뭐야!’ 그래서 저도 궁금해서 읽었어요.
‘내가 뭐라고 한 거야?’ 그래서 어, 강의를 잘못 들으셨더라구요.
앞으로 인류가 다 죽고 부활체만으로 살게 된대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윤홍식, 이거 빼고 다 좋은데 그러는데
‘어, 어떻게 해야 되지?’ 강의로라도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다 죽고 부활체로 살자고 제가 얘기한 거 아니에요.
성경에서 써진 걸 설명하다가 혹시 그렇게 느끼실 수 있어요.
성경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다가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순 있는데,
제 주장은 아닙니다.
제 주장은 뭐예요? 이 육신을 더 온전히 하자는 거죠.
내 안에서 살아서 부활체까지 얻고
영혼육을 온전하게 해서 살아서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때
그 사회가 천국이 된다는 거예요.
다 죽고 부활체로 살자는 게 아니라, 그런 뜻입니다.
「*헤게모니: 명사
어원: < 영어 hegemony < 고대그리스어 ἡγεμονία
1. 무리 가운데서 우두머리를 차지하여 나머지를 지배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나 힘. 유의어: 주도권, 패권」-위키낱말사전-
그래서 지금 그 새로운 것이 됐다는 것도 혈육을 다 부정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혈육의 자녀이기도 해요.
혈육의 자녀이기도 한데,
내가 혈육의 자녀로만 살다가 더 본질적으로 나는 성령의 자녀,
하느님의 자녀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 혈육 또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써야 되겠구나! 이걸 깨달았다는 거지,
이제 이 혈육이 뭐가 돼 버려요, 이 혈육이 하느님의 자녀한테는?
하느님의 성전이 돼 버려요, 이 혈육이. 이상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게 중요한 거지,
혈육을 버리자는 것도 아니고 육정대로 살지 말자는 얘기지
육정을 아예 무시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인 이상 그걸 어떻게 부정해요.
간단하게 여러분, 성경에 되게 모순적인 모습이 있어요.
예수님은 혈육의 자녀입니까, 하느님 자녀입니까?
하느님 자녀, 성령의 자녀로 얘기하고 싶어요, 성경의 저자들이.
근데 혈육의 자녀란 걸 무시할 수 있어요, 구약부터?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올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혈육도 중요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순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걸 강조하려다가
마리아는 동정녀라는 얘길 강조하게 되고,
그런데 그러면 요셉 집안 하고 아무 관계가 없죠? 핏줄상!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는
요셉 집안의 족보를 두 복음에서 계속 족보를 읊어댔죠,
다윗부터 어떻게 요셉까지 왔는지.
모순 아닙니까? 요셉 집안하고 상관이 없어요, 지금.
이 얘기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들으시면 안 돼요. 동정녀 얘기도.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성령의 자녀고 육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건데,
그게 써 놓고 보니까 둘이 충돌이 나버리는 거예요, 지금.
동정녀면, 성령으로 잉태됐으면 요셉의 족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입양된 거잖아요, 사실상. 그러니 의미가 없죠.
근데 왜 예수님의 족보를 그렇게 강조하냔 말이에요, 말이 안 되는 소리죠.
하다 하다 뭔 얘기가 나왔냐 하면,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도 봤어요.
그러지 마시고, 그런 데다 왜 정력을 쓰세요.
그런 정력 있으면 하느님 기쁘게 하는 일에다 쓰세요.
그건 성경의 저자들이 혈육과 영적인 그걸 다 강조하려다 보니까
모순이 생긴 것뿐입니다. 동정녀의 자녀일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그래서 동정녀의 자녀로 몰고 가고 마리아를 성스러운 존재로
계속 몰고 가려니까 가톨릭에서 자기들끼리 결의 해가지고
마리아를 승천하신 분으로 결정해 버리고, 인간들이 결정한 겁니다.
성령의 뜻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인간들이 결정했어요.
그리고 뭐라고 하냐?
마리아는 죄를 안 지어야 되니까, 예수님만 죄 안 지은 존재인데
마리아까지 죄 안 지은 존재로 만들어야 되니까,
마리아는 출산도 하면 안 되는 거죠. 출산이 죄입니까?
자꾸, 성경에도 등장한 예수님 형제들을 자꾸 돌려요. 사촌 형제일 것이다.
마리아는 출산하면, 여성이 출산하는 게 그게 얼마나 성스러운 행위인데
그걸 가지고 여성들이 월경한다고, 저기 막 그 뭐죠?
불결하다고 가둬놓고 하다가 한 명 죽었죠, 이번에.
자녀들이랑 죽었죠. 네팔에선가 그런 일 있었어요.
월경한다고 불결하다고 오두막 산속 오두막에다 가뒀는데
자녀 둘이랑 셋 다 추우니까 불 피울려다가 죽었어요, 연기 때문인지.
그래서 이게 뭐가 다릅니까?
옛날 고대의 그런 좀 못된 그런 전통들이 있어요, 문명마다.
약육강식의 전통들.
그게 종교랑 교묘하게 이렇게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유교도 그랬고 다 그래요.
모든 종교가 다 그래요, 이슬람도 그렇고.
그런 거 구분해서 보셔야 돼요.
이게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진리인지 아닌지 여러분 눈으로 판단하셔야 되지
그게 성숙한 사람은 할 수 있고 유치한 신앙의 단계에선 그게 안되니까
성경 그대로 믿는 거예요. 믿습니다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여러분에 임해 있는,
여러분 내면에 임해 있는 성령의 빛으로 보고 알 수 있어요.
요건 잘못된 얘기고, 이건 찜찜한 얘기, 요거는 자명한 얘기고,
다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왜? 여러분 안에 하느님이 임해 있고 성령은,
하느님 속사정을 아는 건 성령 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분도 다 아실 수 있어요.
하느님의 속사정까지 다 알 수 있어요. 이게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에요.
성경 그대로 지금 해석해 나가는 거예요, 제가.
그러면 이런 모순들을 다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여러분 내면에 다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누구의 권위에 의지할 필요도 없어요.
뭐 신학 박사님이다,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빛으로 보지 않는 한에는 세속의 철학자일 뿐이에요.
사도 바오로가 강조해요.
‘나는 세속의 철학적 지혜로 말하는 게 아니다.
성령의 지혜로 얘기하는 거다. 성령의 지혜를 얻은 자가 신령한 존재다.’
이게 계속 강조되는 얘깁니다, 사도 바오로를 통하여.
요런 것 좀 깊이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얘기는 다 성경에 근거한 겁니다.
저는 근거 구절을 다 갖고있어요.
누가 뭐라고 저한테 얘기하셔도 저는 근거 구절이 있습니다.
세속의 어떤 해석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고,
전 어떤 공부를 하던지 원전 위주로 합니다. 원전만 파요.
왜? 뒷사람들 해석은 대개 별 볼 일 없는 경우가 많아요.
뒷사람들의 해석을 읽으면 그 사람의 개똥철학을 들어야 돼요.
전 예수님의 얘길 듣고 싶지, 뒷 사람들의 개똥철학 듣고 싶진 않거든요.
전 예수님의 얘기 듣고 싶으면 예수님의 글 보고,
사도 바오로의 글을, 뜻을 알고 싶으면 사도 바오로의 글을 바로 봅니다.
언어적으로는 학자들의 도움을 받지만 그 깊은 뜻은요,
제 안에 있는 그 성령의 체험으로 보는 거지 남의 말을 가지고 보지 않아요.
그러면 자명해요. 참 자명해요. 군더더기 없이 자명해요.
이분들 글로 이미 완벽해요.
누가 이걸 가지고 논문을 쓰잖아요, 그 논문이 정말 군더더기 덩어리입니다.
왜? 책을 써야 되니까, 논문을 써야 되니까 억지로 썼구나~ 하는 게 느껴져요.
사도 바오로는 필요한 말만 한단 말이에요. 그게 다릅니다.
그 메시지가 자명한 정도가 엄청나게 달라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의 글을 읽으면, 자명한 분들의 글을 읽으면
제가 환희심이 일어서 너무 좋아합니다.
이런 분들의 글을 읽고 이해하고 따라 해 보는 걸 제 취미로 알고 있습니다.
생애 최고의 취미죠.
자, 에페소서 4장 22절, 24절 볼까요.
“여러분은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구습에 젖은 옛사람을 버리고
여러분은 혼과 영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자, 여기까지, 너무 가지 말고요.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구습에 젖은 사람을 뭐라고요? ‘옛사람’.
그러면 ‘겉사람’은 이제 어떻게 표현돼요? 옛사람으로 불립니다.
다 같아요, 지금. 여러분 욕심은 옛사람이에요.
왜 옛사람이라고 하느냐?
우리가 성령을 만나기 전까지는 육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전부인지 알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옛사람이죠.
근데 이제 새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하느님 자녀잖아요.
그럼 이 혼이 영의 진리를 자신의 진리로 삼습니다.
혼이 육체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알다가
성령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알게 된 거예요.
성령의 진리를 자신의 진리로 삼게 된 거예요. 그게 뭐냐 이거죠.
그러면, 이 혼은 새 사람이 돼버렸잖아요.
똑같은 생각, 감정, 오감의 혼이었는데 새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왜?
하느님의 형상, 사랑하라는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진정한 정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진리가 이제 내 혼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가 날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진리와 정의가 뭔데요?
진리는요, 황금률!
정의는요,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그거를 내 삶의 정의와 진리로 삼았기 때문에 새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새사람.
완전히 새사람이에요, 법칙이 달라졌기 때문에.
작동되는 법칙이 달라요.
자, 옛사람은 욕심나는 거를 따라가고
손해나는 거를 피하는 걸 자신의 사명, 자신의 법칙으로 삼았어요.
삶의 법칙으로.
새사람은요, 양심적인 거 따르고 양심에 찜찜한 걸 안 하는걸
자신의 법칙,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어요.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새사람이 되니.
돌아가는 공식이 다르잖아요.
작동되는 원리가 달라졌다구요.
그런데 내 마음이 욕심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걸 그대로 그 마음,
옛 마음인데, 옛사람 마음인데, 그 마음 가지고
성경만 죽어라 실천하면 새사람이 될 수 있냐는 거죠.
그게 안 된다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니까요.
‘바리사이파들 니네 그렇게 열심히 해도 안 돼.
왜? 하느님의 형상을 담은 성령이 너희 안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 힘으로, 자력으로 새사람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라고 한 겁니다.
하느님의 마음만이 너희를 진리로 인도할 수 있어.
너희 안에 하느님 마음이 임했느냐? 이거죠.
오죽하면 3년간 자신을 따르고, 예수님의 행적을 따르고,
예수님의 언행을 다 듣고 보고 배운 제자들한테,
돌아가셔서 다시 부활하신 뒤 하신 말씀이 오셔서,
‘니네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만 하고 있어’라 그랬어요.
성령이 임하면 그때야 내가 한 말들을 이해하게 될꺼야.
성령으로 이해를 못 하는 한, 너네들은 진리를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니까
어디 가서 떠들지 말고 돌아다니지 마라 그랬어요.
예수님을 3년간 지켜봐 온 사람들한테도
함부로 니네가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구요?
성령의 도움 안 받고? 그게 교만이고 무지입니다. 만용이고.
그게 칠죄종이에요. 지옥 갈 죄를 짓는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제 말이 쎄죠. 쎄게 안 할려고 노력하는데...
남 지적 신랄하게 하는 사람들이 결국 무너지더라구요, 요즘보니까.
그래서 안 하자, 안 하자 해서 하는데,
저는 죽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 빨리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서 함께 이 천국을 만드는 사업을
같이하는 동지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왕에 성경 읽는 분들이라면,
제가 성경 읽는 방식을 공개함으로써 같이 나눠가지고
제 말이 혹시 자명하다면 같이 가고,
부분적으로 자명하다면 꼭 참고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좀 매정한 말씀도 같이 드립니다.
왜? 이 정도 안 하면 좀 자극이 안 돼요.
제가 수많은 분들한테 지적해 봤거든요,
돌려서 얘기해서 알아듣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이런 사람들이 문제예요.
이 사람이 심각해서 얘기한 거예요, 본인이라고 얘기하긴 애매하니까.
“참 이러면 안 되는데요, 그쵸?”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그런 사람이 참 싫어요.” 그러면,
‘어떡하지? 본인이라고 얘기해야 돼, 말아야 돼?’ 못합니다, 잘.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신이 그래요!” 해야 알아듣지 전혀 안 받아들여요.
그래서 제가 쎈 얘기 드리는 거는요,
이렇게라도 얘기하면 조금 반응이 있을까 해서 하는 겁니다.
*어그로(aggro) 끌고 싶거나 그래서 그런 게 아니고,
저도 이제 남한테 싫은 소리 하면 저도 욕먹어야 되기 때문에 안 좋아요.
스트레스입니다.
「*어그로(aggro):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일.」-네이버국어사전-
왜냐면 이런 얘기 나가면 악플 달리잖아요. 그러면 안 좋죠.
제가 악플을 즐기는 그런 사이코가 아니에요. 저도 싫어요.
다 스트레스인데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거예요.
이런 말 안 하면 과연 이게 자극이라도 갈까?
그래서 제가 예수님 마음이 조금 이해돼요.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게 애정에서 나온 말이라니까요, 제가 볼 때는.
‘야, 이 자식들아, 이렇게 얘기해도 못 알아듣냐?’
오죽 깝깝하시니까, 저는 예수님 정도까지는 말 못하겠어요, 욕을.
예수님은 정말 살벌하십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얘기거든요.
뭔 얘기까지 한 줄 아세요?
이렇게 해도 못 알아들으면 ‘너는 내 양 떼가 아니니라’ 이래요.
‘너는 내 양 떼가 아니라서,
내 양 떼라면 내가 부르는 소리 들으면 바로 모였을 텐데, 넌 내 양 떼가 아니다.
넌 예수 나랑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비방하십니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는 사탄이야! 이 독사의 자식아!
계속 이렇세 쎈 얘기를 하십니다, 바리사이파들한테.
당시 그 율법만 강조하는 사람들한테.
근데 저는 그게 다 애정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사랑해서 나온 거죠.
그렇게 살지 마라고 계속...
뭔 얘기를 해도 안 들으니까 자극적인, 센 요법을 쓰는 거죠.
이게 전기충격까지 주는 거예요. 전기충격 급이죠. 그럼 깜짝 놀랠까 봐!
‘내가 혹시 사탄의 자식으로 살고 있나?’ 이렇게라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죠.
저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좀 자극적인 말씀을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의 열매 이제 본격적으로 나오네요.
갈라디아서, 아까 우린 다 했죠.
갈라디아서 5장 22절, 25절 보실래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량, 성실, 온유, 절제이니
어떠한 법도 이것들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이 얘긴 뭔지 아세요?
우리가 성령을, 성령 안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성령의 열매를 거둬 버리면 어떠한 제약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겁니다.
어떤 법도, 어떤 법이라는 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이죠.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마귀의 법이, 마귀의 논리가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직 역량이 부족해서 내 안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내가 욕심이 51% 넘을 때가 있고, 지금 이렇게 힘에 부치지만,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환희를 얻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딱 보니까 성령의 열매를 욕심이 제압할 수가 없더라는 걸 안 거예요.
그러니까 환희죠. 나는 구원 받았구나~!
이미 구원받았구나! 라는 환희가 일어나는 거죠.
즉 뭔 얘기냐면,
성령만 따라가면 분명히 제압될 게 확실하다는 것에서 환희심을 얻는 거예요.
아직 제압된 건 아니지만. 이해되세요? 그게 환희죠.
여러분, 아니 이만한 몸에 암이 있대요. 충격이죠!
그런데 날마다 1mm씩 준대요. 그러면 ‘살았구나!’ 할 거 아닙니까?
아직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살았구나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성령 안에서만 살아가면,
반드시 이 죄악은 극복될 게 확실하니까 ‘살았구나!’ 하는 환희가 나오는 거예요,
지금 그게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입니다.
“어떤 법도 이것들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그것의 욕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그리고 욕정을 못 박아 버렸다,
이건 이제 그 성령으로 제압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가니 성령을 따라갑시다.”
근데 실제로는 완전히 제압됐냐? 아니죠.
성도들 간에 제압이 안 돼서, 성도들도 지금 문제를 많이 일으켜 가지고
사도 바오로의 심사가 복잡했어요.
그런데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요,
우리 이미 근본적으로는 이미 하느님 자녀 됐잖아!
그러니까 남은 죄악들 내가 짓는 죄악들을 앞으로 줄여 나가기만 하면 되잖아!
그것도 성령의 힘으로 하면 되잖아!
이미 우리는 육체의 욕정을 못 박았잖아!
이 얘기는 그냥 그 성화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니고,
우린 이미 의화는 얻었잖아! 하느님의 자녀는 확실하잖아!
그 얘기는 이미 혈육의 자녀는 아닌 거잖아!
혈육을 못 박았잖아! 이 얘기입니다.
이제 제압은 시간 문제잖아!
그러니까 우리 힘내자! 이겁니다.
이 구절을 곧이곧대로 읽고요, 우린 이미 욕심을 다 못 박았잖아!
그러면 예수님 경지여야 돼요, 이미.
아닙니다. 이 교회들 문제 많았어요.
심란해서 보내는 편지에 힘내라고 쓰는 말,
우리 이미 혈육의 자녀 아니잖아! 요 얘기를 이렇게 쓴 것뿐입니다.
보시면 다 읽히세요, 여러분.
성경의 전문가 아니어도 이 글을 읽으시면 뭔 말 하고 싶은지 다 느껴지십니다.
특히 성령의 안목으로 보시면 무슨 말 하고 있구나!
하는 게 다 느껴지실 거예요. 공감도 되고.
그 사도 바오로의 에고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사도 바오로 내면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뜻도 이해가 되고 이래야 돼요.
그럼 이해가 잘 되신 겁니다.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녹취>
<거내영 사도>
1. 시작~5분 ㅡ 지혜
2. 5분1초~10분 ㅡ 그냥
3. 10분1초~15분 ㅡ 사랑의빛
4. 15분1초~20분 ㅡ 진리의빛
5. 20분1초~25분 ㅡ 완전한사랑
6. 25분1초~30분 ㅡ 모든것
7. 30분1초~35분 ㅡ 초연
8. 35분1초~40분 ㅡ 온리아바
9. 40분1초~45분 ㅡ 무소
10. 45분1초~끝 ㅡ 베네딕따
함께 수고해 주신 사도님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도님들과
함께 녹취의 은혜를 누림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런 믿음이어야 돼요.
이제 이 순간순간 하느님과 나 사이에 어떤 가림도 없고,
의심도 없이 하나 된 느낌이 믿음입니다.
천국은 여러분 안에 생생하게 일어나야 돼요.
여러분 안에 이미 하느님의 빛이 임하고,
그 빛에서 진리가 설해지고 내가 그 진리를 따르고 산다면,
여긴 이미 천국이 내 영혼에 구현된 것이기 때문에
남이, 어둠이 와서 뭐라고 해도 여러분을 어둡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강력한 그 빛 속에 여러분이 살아가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게 포인트예요.
결국 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요,
지금 방금 사도 바오로처럼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그 선하고 온전하신 뜻을
늘 자나 깨나, 자나 깨나 그것을 분별해가지고 실천하는 게 핵심 아닙니까?
그게 뭘까요? 사랑이요.
여러분이 거두셔야 할 거룩한 열매가 속사람입니다.
성화의 열매가 뭐예요? 속사람이요.
여러분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해졌느냐가 여러분 성화의 열매입니다.
즉, 거룩함의 열매. 아시겠죠?
새사람이라는 건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이죠.
의화와 성화를 통해서 계속 새로워지는 사람.>-윤홍식강사-
[ moowee 2017.09.27 14:52
거내영의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마지막이요 결론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여 '참아버지'로 깨닫게 만드는
★아버지 호칭 화살기도 ★ 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참아버지>로 깨닫는 모든 이는 저절로
하느님을 자신의 <참주인>으로 섬기게 될 것이며,
하느님을 자신의 <참주인>으로 섬기는 모든 이는 저절로
하느님께 <진실된 '감사'와 ♥목숨을 내놓는 '뜨거운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완전히 내맡기는 삶>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림으로써 마침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뜻 안의 삶 ★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신앙에 대한 마지막 頂点(정점)은
三位一體 하느님이신 하느님아버지입니다.
아버지 하느님만은 여러분을 알아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알아볼(들을) 수 있도록
다같이 끊임없이 그분을 불러봅시다!]
아멘!아멘!
밤낮없이 새기겠습니다!
@초연.보조.회장단
[ moowee 18.06.17 21:55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실 하내영의 길은>
그동안 우리가 그토록 댓글마다 외쳐온
★ 사랑하는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이 세상에 사랑하는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일 ★,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는 하내영의 길>입니다.
또한 그것이 곧 ★ 아버지의 뜻 ★입니다!
<하내영에게 일어났던 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의미> 또한,
하내영의 통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 아버지의 섭리(뜻) ★ 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내영의 과거와 현재>는 아버지의 섭리이며,
하내영은 ★ 그 섭리에 내맡긴 삶 ★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 저를 이끌어 주실 그 길을 너무 명확히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 저에게 일어났던 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의미도 너무 명확히 잘 알고 있습니다! ★
철부지 똥싸개에 불과한 제가 그러할진데,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더 분명 명확하셨을까요,
당신에게 주어진 길(삶)의 이유와 의미를요???
저에게 주어진 거내영의 길,
그것은
@초연.보조.회장단
★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이 세상에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것 ★
오직 그것뿐입니다!!! ]
아멘아멘아멘~!
신부님 따라쟁이!
성모님 따라쟁이!
예수님 따라쟁이!
하내영의 분명한 길을 더더욱 죽도록 새기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고아로 살다가 참 아버지를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혈육을 아버지의 뜻에 맞게 써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
혈육은 더 이상 세상적 혈육의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아버지께서 거쳐하시는 성전이 되었다는 완전한 이상이
내맡김의 봉헌과 무소유 고백,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더욱 더더욱 하느님의 현존으로 오롯이
마음과 정신과 육신에 다져지며 생생한 천국으로 일어났습니다.
남이 뭐라 해도, 어둠이 와도,
더 이상 저를 해 할 수도, 어둡게 될 수도 없음은
하느님아버지의 자녀, 참 자녀라는 인식이 가슴에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
자나 깨나 이 생각에 가슴 설레며 눈물이 나고,
더 이상 그 사랑을 받을 자격 같은 것은 생각도 사라져버린,
오직 아버지의 사랑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초연.보조.회장단
제 속사람은 그렇게 강건해지고 더욱 새로워지며
조금씩 아버지의 모상을 닮아감을 느끼며
거룩한 무형의 성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안으로 쏙 들어간 구원의 방주!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정성된 댓글로
그 안에 영원히 살면서 육신의 영화를 완성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빠!
성모 엄마의 발현과 엄마에 대한 교의를 받아들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모 엄마를 모르는 모든 이들도 아버지께 내맡겨드리며
부족한 저의 모든 것 또한 아버지께 내맡겨드립니다.
죽도록 죽도록 아버지만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늘 분별하라.’
‘주님을 기뻐하게 하는,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찾아라.’
뭔데요? 사랑이요, 끝없는 사랑의 실천.>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
사랑실천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란것을 알게 일깨워 주신 아버지, 감사와 찬미영광 드립니다.
부족한 무지랭이를 하나 하나 깨닫게 이끌어 주시며 실천하라고 일깨워 주십니다.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고 미친듯이 영혼들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황금률을 실천하며 아버지의 기쁨이 되도록 살아 보겠습니다.
너무나 부족한걸 아시는 우리 아버지, 저의 모든것을 아시오니 아버지 뜻대로 살게 이끌어 주소서.
감사와 사랑만이 저를 차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사랑.
감사, 사랑.
감사, 사랑만이 저를 차지하게 하시어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게 이끌어 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어,
이것만 믿으면 구원받아!’
이거를, 십자가와 부활을 그냥 믿는 사람을 유치한 신앙이라고 하구요,
히브리서와 사도 바오로는 똑같은 입장이에요.
성숙한 사람은요, 자기 내면에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지혜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치한 교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 영적 식별 능력이죠.
자명 찜찜의 감각을 말합니다.
‘성령의 지혜’라고 사도 바오로는 불렀어요.-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아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눈으로 선악을 분별 못하는 사람은요,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2천년의 시대적 교리를
뛰어 넘은
하느님아버지,
당신 자신을 주셔서 <거내영>으로 오신 성령하느님,
이 사회 전체도 선이 승리하게 하실 아버지의 계획과 선하심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지금 여기 천국을 살게 하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오심을 믿게 하신 선지자 같은 이 부르심을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아버지,
거룩하신 뜻대로 성숙한 사람으로 기르시고 양육하실 당신 우리 안에 불러 주시니 아버지를 향하고
아버지를 찾는 원의를 제 안에 허락하심이 특은이라 여겨집니다.
아버지께서 세상과 다르게 구별 해 주신 사랑입니다.
저를 사랑해 주신 아버지,
제 안에 오신 거룩하신 아버지 어인 은혜입니까.
집나간 둘째 아들처럼
엉켜진 삶에서 돌아온 탕자를
제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로 하셨다는 아버지의 사랑에
부족하고 부족한 저를 내맡겨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초연님, 녹취해 주신 사도단 여러분,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성령 안에서만 살아가면,
반드시 이 죄악은 극복될 게 확실하니까 ‘살았구나!’ 하는 환희가 나오는 거예요,
지금 그게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입니다.>
아멘아멘아멘!
{[강의록]강의록(5)
moowee 10.09.07 11:55
...
다섯번째로,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면,
★자연히 죄로부터 멀어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죄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모든 것이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이 직접 나서셔서
내맡긴 이를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정화시켜 주시고
죄로부터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내맡긴 이를 서서히 당신의 거룩함 속으로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순간,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의 영혼 안에 착상되어 나날이 조금씩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인간의 씨"는 나날이 조금씩 9달 반을 자라날뿐인데 비해
"하느님의 씨"는 나날이 조금씩 자라다가도 하느님의 뜻에 의해
"때로는 왕창" 자라나게 되고,
시간도 "언제까지 자라나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며
오직 하느님만이 그 시간을 알고 계실뿐이다.
하여튼 내맡긴 영혼 안에 착상된 하느님의 씨가 그 영혼 안에서 다 자라나
그 영혼을 다 채우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처럼"되어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나게 되며,
예수님과 만나는 그 순간이 바로 육(몸)의 죽음의 때인 것이다.
심판주 예수님께서 당신과 똑같은 모습의 작은 예수를 보시며,
"야아, 어쩜 그렇게도 나를 닮았는가!" 하시면서
그 영혼을 꽉 끌어 안아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어
당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
아멘아메아멘!
거룩한 내맡김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비록 지금 죄스럽고 부족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내맡김의 결심이 '하느님의 씨'가 되어 제 안에 착상되었고,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성전에서의 댓글을 통하여 성령에 접속하여
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양분과 물을 받기에
@옴니아.보조
하느님의 씨는 무럭무럭 제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의 생활 속에서도 하느님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제 영과 혼과 육이 모두 느끼고 있으니,
더욱더 구원의 확신, 성화, 영화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의 확신, 바오로 사도의 환희심에
부족한 저도 온전히 이심전심 할 수 있습니다.
공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것이 참으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이며 완전한 영광이 아니옵니까!
너무나도 비참하고 죄스러운 제가
사도 바오로의 확신과 환희심과 같은 그것을 가지고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저의 이 기쁨, 저의 이 환희심과 자유함을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이끄시는대로 전심 전력을 다해 달려가겠나이다!
거내영과 모든 사제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빛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그 빛을 가지고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파악한 다음에 진리는 해버리고,
선은 해버리고 악은 안 하는 거 그게 성화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뜻안에서 제 귀를 기울이면
제 양심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주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 때
거, 머시기로 즉시 순명합니다.
화살기도에 초집중하면 언제나 당신 빛으로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를
오늘도 느끼고 함께 합니다.
아버지 뜻대로 실천하도록 이끄시는 당신의 굳센 손길에
성화의 체험과 구원의 실감이 파도처럼 저를 사로잡습니다.
<요 하느님의 진리가 뭡니까? 사랑이요, 사랑하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라!
사랑에 대해서 예수님이 정확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황금률!
그러면 뭐만 하면 되나요?
죽으나 사나 황금률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황금률에 맞는 것을 구현하려고
살다 가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게 하느님의 사도의 삶이에요.
사명이 뭐예요? 황금률 실천!>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것, 황금률을 실천하려니 부족한 저는 제 뜻을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슬이 퍼런 제 뜻에 쇄기를
박고 오직 아버지 뜻만이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모두가 행복하겠다는 분별만 되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거, 머시기로 순명합니다.
실행 후에 느끼는 기쁨은 가히 상상을 불가합니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가만히, 은밀하게 차오르는 내적인 환희는
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부족하고 유혹에 약한 저를 거내영의 사도로 불러주시고
모든 일상 안에서 아버지의 하심과 살으심에 동참하는 횟수가 거듭되게 하시니
무한 감사와 찬미, 영광과 흠숭을 드립니다.
<속사람이 뭐라구요?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 양심적인 혼, 거룩한 열매!
여러분이 거두셔야 할 거룩한 열매가 속사람입니다.
성화의 열매가 뭐예요? 속사람이요.
여러분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해졌느냐가 여러분 성화의 열매입니다.
즉, 거룩함의 열매. 아시겠죠?
거룩함의 열매를 여러분이 아주 잘 익게, 그런 열매를 맺게 하셔야 돼요.
여러분 영혼이 거룩해져야 끝나요, 실제로. 그게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기로 헌모가지 내바치고
오직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며
아버지 뜻만을 추구하는 영의 식구들이야말로
거룩함의 열매, 속사람이네요.
@무뇌어린양.보조
끊임없는 내맡김의 화살기도에 초집중하며 아버지 세탁기 안에서
나날이 조금씩 때론 왕창 강건해지고 정화되어지는
저와 영의 식구들의 모든 것을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손에 다 위탁드립니다.
의화로 씨알을 얻고 능구와 봉헌, 무소유의 고백과 직천당의 확신으로
옛사람이 새사람 되어 성령의 열매로 향기롭게 익어갑니다.
아버지께 100%의 내맡긴 영혼이고자 하는 지향과 의지로
아버지의 참 자녀가 되었고 참 자유와 참 평화와 참 생명을
지금 여기서 누리게 하셨으니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만을 소유하여 온전히 무르익은 참 열매의 완성으로 이끌어 주시어
아버지의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게 하소서.
<여러분, 그래서 동정녀의 자녀로 몰고 가고 마리아를 성스러운 존재로
계속 몰고 가려니까 가톨릭에서 자기들끼리 결의 해가지고
마리아를 승천하신 분으로 결정해 버리고, 인간들이 결정한 겁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강사의 무지를 용서하소서.
이 사람은 어머니의 온전한 내맡김의 삶을,
그 안에 심겨진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니
참 종교의 진리를 폄하하고 그야말로 자기 말로 엄마를 감히 결정합니다.
@무뇌어린양.보조
어머니의 승천을 교의로 결정한 인간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허구의 소설을 쓴 것입니까?
지극한 아버지의 이끄심과 성령의 뜨거운 감도로
성경 기록 이후의 아버지의 섭리에 거, 머시기로 순명한 것을
아버지께서 지음해 주신 입으로 불경스럽게도 마구 쏟아내는 저 오만과 독설을
지혜의 원천이신 아버지께 다 내맡겨드립니다.
세상 곳곳에서 모욕받으시고 온갖 인간의 말로 창과 칼에 찔리시어
피 흘리시는 사랑하는 예수님과 성모님,
미약하온 이 딸이 오직 당신들의 가신 길을 따라걸으며
아버지만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오니
위로되시고 기쁨되소서.ㅜㅜㅜ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기오니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페 4,22-24)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가 날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새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진리는요, 황금률!
정의는요,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완전히 새사람이에요, 법칙이 달라졌기 때문에.
작동되는 법칙이 달라요.
자, 옛사람은
욕심나는 거를 따라가고 손해 나는 거를 피하는 걸
자신의 사명, 자신의 법칙으로 삼았어요.
삶의 법칙으로.
새사람은요,
양심적인 거 따르고 양심에 찜찜한 걸 안 하는 걸
자신의 법칙,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어요.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새사람이 되니.
돌아가는 공식이 다르잖아요.
작동되는 원리가 달라졌다구요.
그런데
내 마음이 욕심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걸 그대로 그 마음,
옛 마음인데, 옛사람 마음인데,
그 마음 가지고 성경만 죽어라 실천하면 새사람이 될 수 있냐는 거죠.
그게 안 된다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니까요.
‘바리사이파들 니네 그렇게 열심히 해도 안 돼.
왜? 하느님의 형상을 담은 성령이 너희 안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 힘으로, 자력으로 새사람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
하느님의 마음만이 너희를 진리로 인도할 수 있어.
너희 안에 하느님 마음이 임했느냐? 이거죠. >
< 우리가
성령 안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성령의 열매를 거둬 버리면
어떠한 죄악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떤 법도, 어떤 법이라는 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이죠.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마귀의 법이, 마귀의 논리가
대항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갈라 5,22-25) >
거내영의 봉헌으로 죄스런 제가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법칙이 저를 지배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강사님 말씀대로 하면
돌아가는 공식과 작동되는 원리가 달라져
황금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갑니다.
한계인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임하신 아버지께서 그렇게 이끌어 가십니다.
저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 따라쟁이가 되어
영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어떠한 세상의 법이
절대로 저를 흔들어 놓을 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지혜를 받아 속사람이 강건해졌다는 겸손한 자부심을 갖습니다.
아빠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 성숙한 사람은요, 자기 내면에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지혜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치한 교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 영적 식별 능력이죠. 자명 찜찜의 감각을 말합니다.
‘성령의 지혜’라고 사도 바오로는 불렀어요.-
성숙한 사람은 양심의 감각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아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
[ moowee 17.06.13. 10:26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 분별력 >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매우 타당한 현상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느님께서 그사람의 영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분별(식별)력이 있어서 어둠(악마마귀)을 발견할 수 있고,
어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욱 더 하느님만 죽~또록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로 감사합니다!
<성령 안에서 새롭게 돼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장 2절, 여기서도 역시 양심 성찰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아버지
부족하고 죄스런 제가 이 거내영에 이끌림 받지 않았다면
지금 얼마나 고통속에서 아버지를 찾고 있을까요?
이 구원의길 거내영에서 아직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할수 없는
똥싸개가 아버지만 부르며 똥샀다고 노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다고 선을 행하고 제가 안하려고 한다고 악을
행하지 않는것이 아닌 너무나 나약한 저를 알고서 더
아버지를 부를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할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임을 더욱
깨우치면서 매순간 아버지 없이는 한걸음도 움직일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하느님
부족한 저를 모두 맡기오니 이끌어 주시어 아버지만 더 더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사제와 수도자들과 거내영식구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 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숙한 신앙은 여러분에 임해 있는,
여러분 내면에 임해 있는 성령의 빛으로 보고 알 수 있어요.
요건 잘못된 얘기고, 이건 찜찜한 얘기, 요거는 자명한 얘기고,
다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왜? 여러분 안에 하느님이 임해 있고 성령은,
하느님 속사정을 아는 건 성령 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분도 다 아실 수 있어요.
하느님의 속사정까지 다 알 수 있어요. 이게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딱 보니까 성령의 열매를 욕심이 제압할 수가 없더라는 걸 안 거예요.
그러니까 환희죠. 나는 구원 받았구나~!
이미 구원받았구나! 라는 환희가 일어나는 거죠.
즉 뭔 얘기냐면,
성령만 따라가면 분명히 제압될 게 확실하다는 것에서 환희심을 얻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으로 구원의 환희 속에 살 것입니다. 감사와 찬미 드리며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이끄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으로 떠오르는 모든 불순물을 다 녹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당신을 뜨겁게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도님들,
녹취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강의에서
속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과 단계들이
거내영을 살고 있는 저희와 비슷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지만, 실천으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어떻게 새롭게 합니까? 성령 만나는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의지적으로 ‘나 새로워질 거야!’ 그거는 육정의 마음이에요.
육정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겠다고 노력해 봤자
날로 새로워지는 마귀의 종이 될 뿐이죠.>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돼버려요.>
<“우리는 낙심하지 않으니 겉사람, 육체를 따른 혼, 욕심의 혼은 시들어가나
우리의 속사람, 성령을 따르는 혼, 양심의 혼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낙심 안 합니다. 성령 안에서 겉사람은, 즉 인심(人心)이죠.
욕심은 날로, 이 인심은 욕심이에요. 욕심은 날로 시들어가고,
우리 안에서 도심(道心), 요거 양심입니다.
양심은 날로날로 열매를 거두어 간다. 새로워져야 간다. 요게 성화예요.>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이 아니었다면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나 있었을까요?
기껏해야 일부 사람들이나 그런 은총을 얻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 뻔 합니다.
마처예함을 통하여 처음 홍익학당의 강의를 들은 몇년전만 해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참나'에 대한 강의에서 조차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상태로 지나쳤습니다.
몇년이 지나는 사이에 이제 홍익학당의 많은 내용을
참 편하게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거내영을 통하여
머리(지식)로가 아닌 몸으로, 삶으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의에서 저는 <낙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한없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아버지 안에서 저는 낙심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지금 저의 부족함이 내 탓이 아님을 더 더 알게 되고
그 부족함을 통하여 제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아버지가 가르쳐주기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저의 부족함은 영원한 죄가 되지 못합니다.
성화에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무사.보조.회장단
그리고 입으로만 떠들었던 거룩한 말이
저의 행동으로 드러나기 위한 제물일 뿐입니다.
낙심으로 절망하지 않고
다시 힘을 얻어 희망을 향해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와 저희들을 한결같이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죽기까지 아버지만을 사랑하며 가겠나이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145)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62) - 수장(首長), 베드로
진리의빛 19.04.06 05:47
‘의리의 사나이’로서 베드로의 자의식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단 한건의 배반으로 여지없이 무너진다.
시험의 시간이 엄습했을 때,
그의 입술에선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 26,72)라는 말이 지체 없이 튀어나왔다.
어차피 의리에 관한 베드로의 자긍심은 허물어져야 했다.
그가 밖으로 뛰쳐나가 자괴감에 쓰러져 울고 있을 때,
잠깐 마주친 예수님의 눈빛에서 베드로는 그분의 결정적 가르침을 읽었다.
@무사.보조.회장단
“좋다. 베드로! 너 인간성 좋고, 너 의리 있고, 다 좋다.
그러나 네가 나중에 교회를 이끌어가려면,
인간성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되느니라.
아무리 자기가 제 인간성을 믿어도,
목 앞에 칼 들어와 봐라. 얘기가 달라질 거다.
그러니 꼭 필요한 것은 너 자신의 의리가 아니라,
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너는 앞으로 네 이름을 버려라.
필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이니라.”
예수님의 부활 직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배반은 극적으로 용서받는다.
이는 세 번에 걸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시는 물음에 뒤이은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16.17)라는 선언으로
‘초대 교황’으로서 재신임을 받은 사실에서 확인된다.
면목없는 배반과 극적인 재신임!
그 이후 그는 말도, 행동도, 믿음도 180도 바뀐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위무위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아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남은 "위로부터 태어남" 이요,
"아래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새로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태어남"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남입니다.
@무사.보조.회장단
"내맡김"은 靈으로 다시 태어나는 가장 탁월한 길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어 나(我)는 없어지고
마침내 내 안엔 하느님만이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 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 영" 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영육의 합일체" 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그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5)>
<"내맡김"은 내 뜻을 짜르는 날카로운 영적인 칼입니다.
내맡김의 칼로 단번에 영적 악순환의 고리를 짤라드리리라.
내맡기면 영혼의 냉온탕이 사라집니다.
늘 하느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진 온탕에서
그동안 죄로 인해 차거웠던 여러분의 영혼을 따끈하게 뎁힐 수 있습니다.>-moowee 2010.08.18
[ moowee 17.03.05. 08:04
우리가 입으로는 아무리 거룩한 말을 지향으로 삼고 산다해도,
분명 < 입은 가벼운 것이며 몸은 무거운 것 >입니다.
' 입 '의 증거는 ' 몸 '이 해야 합니다.
' 몸 없는 입 '은 바람결에 흩어지는 한순간의 향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무사.보조.회장단
<야고 2>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
하내영들은 저의 지도에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 무조건 ★ 머~거.시.기.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성장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바로 잡아주실 겁니다.
또한 그 잘못된 일을 통하여(오시범)
우리를 더욱 성장하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100%를 완전 내맡긴 영혼이라면,
저의 지도나 안내가 제 욕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영감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해졌느냐가 여러분 성화의 열매입니다.
즉, 거룩함의 열매. 아시겠죠?
거룩함의 열매를 여러분이 아주 잘 익게, 그런 열매를 맺게 하셔야 돼요.
여러분 영혼이 거룩해져야 끝나요, 실제로. 그게 열매입니다.>
<진리는요, 황금률!
정의는요,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그거를 내 삶의 정의와 진리로 삼았기 때문에 새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새사람.
완전히 새사람이에요, 법칙이 달라졌기 때문에.
작동되는 법칙이 달라요.>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는 아버지께 드리는 열매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구절을 읽으니 희망이 생깁니다.
제가 저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겨드리고
끊임없이 화살기도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네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황금률 실천도 잘 못하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은 아버지를 향하여 굳건히 걸어갑니다.
아버지의 이끄심에 깨어 물바람처럼 저를 거슬러
오직 아버지께 순명합니다.
아버지만이 제 존재의 전부이심을 고백하며
아버지께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립니다.
.
자격도 모자라고 나약하지만 아버지께 탐스런 성화의 열매를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제가 성화의 길로 걸어가도록 해주는
거내영과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