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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산치마을 | 1995년 | 서해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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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불신[火神]으로, 부엌에서 모셔지는 신령.
유래
조왕의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되어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불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집안의 흥망성쇠, 가족의 안녕, 가정의 길흉화복 등과 동일시하여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주부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불씨가 담긴 화로를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집을 새로 지었을 때 맏아들이 불씨가 담긴 화로나 솥을 제일 먼저 들고 새집에 들어갔다. 이사할 때도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거나 택일한 길일 길시에 남이 먼저 들어가 불을 붙인 뒤에 짐을 옮겼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 변진조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은 다르나 문의 서쪽에 모두들 부엌신[조신(竈神)]을 모신다.’라고 하여 기원전부터 조왕을 모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왕을 모시는 방법은 근래처럼 집집마다 다르지만 조왕을 모시는 장소는 동일하게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신이 중국 『전국책(戰國策)』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인 기원전 5∼3세기에 조왕이 알려지게 되었고, 신앙은 한대 이후에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서에서는 조왕을 염제, 황제, 오, 축융, 괄, 별신, 송무기, 소길리, 선, 장단, 외, 장자곽 등으로 보고 있다. 염제는 태양신이자 조왕신, 염제와 축융은 반인반금(伴人半禽), 축융과 소길리는 같은 인물로 각각 묘사되어 서로 연관성이 있다. 조신은 노부인 또는 적의를 입은 미녀 등 여신, 부인과 여섯 딸이 있는 남신 또는 부부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조왕신, 조왕보살, 조군, 동주사명, 취사명, 사명조군, 호택천존, 정복신군 등으로 불리면서 천존․신․왕․군 등 최고의 신명에서 사명과 같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명을 행하는 신령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신의 생일은 8월 3일이고 부인의 생일은 8월 24일이라 하며, 섣달그믐날에 하늘에 올라가 인간들의 선악을 옥황상제께 고하는 사명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도록 아궁이에 술, 엿, 탕원보(쌀과 설탕을 반죽하여 만듦), 사조단 등을 붙인다. 일본의 오키나와 등지에서는 조왕신을 ‘가마도[竈, 부뚜막]신’이라 하며, 집을 수호하는 신으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왕의 기원이 단군의 신시, 임동권은 중국에서 각각 유래되었다고 보았다. 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조왕의 명칭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조왕이 기원전 6∼5세기에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기원 전후의 기록은 있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화(發火)가 어려운 전통사회에서는 불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여 부뚜막 옆에 불씨 보호장치를 두었다. 강원도의 화투, 제주도의 봉덕과 화로 등이 그것이다. 부여 송국리 청동기 유적에서도 불씨 저장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단양 수양개의 주거지인 초기철기 유적지에서는 발화석과 발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발화법,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잡방(雜方)」에서 불씨의 보관방법을 각각 소개하였다. 이처럼 한 가정에서의 불씨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오면 새 며느리는 목숨을 걸고 불을 지켜야 할 책임을 맡았다. 이는 불씨가 꺼지면 집안이 망한다는 관념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지키려 하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주부(며느리)가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불씨를 간수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동원하였다. 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돌고개 전설>, <며느리의 혼불>, <불씨의 복>, <불씨와 동삼> 등이 그것이다.
불씨는 집안 계승의 상징이어서 주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 전승된다. 또한 불씨를 잘 관리하면 상(은항아리, 동삼)을 받지만 잘 관리하지 못하면 시댁에서 쫓겨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엄청난 체벌을 감당해야 했다. 전통사회에서 불이 꺼져 이웃에 불씨를 얻으러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남 영광군의 영월 신씨 종가에서는 500여 년 동안 불씨를 이어왔다고 한다.
제주도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에 의하면 남선비를 중심으로 조왕신과 측신(변소신)의 처첩관계, 주목지신과 오방토신 등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조왕신의 내력담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남선비와 여산고을 여산부인이 일곱 형제를 낳고 살았는데 살림이 어려워 남선비가 무곡(貿穀)장사를 하러 갔다가 간악한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만나 돈도 탕진하고 봉사가 되었다. 이때 여산부인은 남편을 찾으러 왔다가 귀일의 딸의 꾐에 빠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귀일의 딸이 본부인 행세를 하며 본가로 돌아와 재물을 다 빼앗기 위해 일곱 형제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 흉계가 드러나자 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가 측간신인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에 목이 걸려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화를 얻어다가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모시고, 일곱 형제는 사방(四方)신과 뒷문전, 일문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들의 이름은 심방(무당)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여신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경기도 화성지역의 <성주굿 무가>에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로 나타난다. 경북 안동지역 무가의 ‘성주드리는 말문’에서는 조왕이 성주의 아내가 되는 신화가 전한다. 성주가 하늘에서 죄를 지어 땅에 내려와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온갖 치장을 다하고 장가를 들어 양위분이 될 수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옥녀 세 명이 지상으로 유배되어 성주를 찾아온다. 성주는 한 분은 삼신할머니, 한 분은 제석님, 나머지 한 분은 조왕님으로 모셨다. 조왕은 베를 짜서 성주님의 도포를 짓는 등 부지런히 살림을 하는 현모양처로 묘사되기도 하고 성주 부모의 의례 대상인 ‘조왕세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도의 <차사본풀이>에서는 차사인 강님이 염라대왕을 잡으러 갈 때 길을 안내해 주는 신령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조왕은 불신앙과 더불어 오랜 역사, 신화, 전설, 무가 등을 통해 내력을 지닌 신령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
부엌은 주부가 관할하는 곳이므로 조왕은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모시는 신령이다. 민간에서는 이 신령을 조왕각시, 조왕할매, 조왕대신, 정지각시, 삼덕할망과 같이 여성 신격으로 모신다. 그러나 무가나 불교계에서는 부부 또는 남성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신령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신 중에서 성주, 조상과 함께 상위에 위치한다.
혼인이나 분가 등으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면 조왕을 모시게 된다. 이때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며느리가 물려받는다. 이 신령은 성주나 삼신처럼 잘못 모신 경우, 집안이 불안한 경우, 집을 떠난 경우 등에 다시 받아서 모시는 성격의 신이 아니다.
조왕은 부엌에 좌정하여 집안의 길흉화복과 자손들의 안녕과 건강 등을 기원하는 신령이다. 조왕은 ‘竈’자와 ‘王’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유사어로는 조신(竈神), 조군(竈君) 등이 있다. ‘조(竈)’자는 ‘구멍 혈(穴)’자에 ‘맹꽁이 맹(黽)’자를 합쳐서 이루어진 글자로, 집 또는 구멍 속에 맹꽁이가 있는 형상이다. ‘조(竈)’는 아궁이, 부뚜막, 부엌, 부엌귀신을 의미한다. 즉 한자 자체가 부엌에서 모시는 신령을 의미한다. 여기에 ‘왕(王)’이 결합된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를 의미하는 용어로, 여러 중의 으뜸을 나타낸다.
조왕은 조왕, 지앙, 조왕공, 조왕(주왕)각시, 조왕할매, 정지조왕, 정지각시, 삼덕할망, 조왕중발, 조왕보시기, 조왕단지 등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조왕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다. 강원도와 경남지역에서 성주와 조왕을 함께 부엌에서 모시면서 ‘성주조왕’이라고 한다. 경남지역에서는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접고 그 위에 ‘성주조왕’이라는 신명을 기입하기도 한다. 전남지역에서는 조왕을 대조왕과 소조왕으로 구분하여 대조왕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소조왕은 부뚜막 벽에 각각 모신다. 조왕은 인격화로 정지각시, 조왕님네, 조왕할매, 주왕(조왕)각시, 삼덕할망 등과 같이 여성으로 나타난다. 또한 조왕은 각시와 할매(할망), 즉 젊고 아리따운 새색시와 늙은 여자로 동시에 불린다. 반면에 남성 신격으로 인식되어 조왕(주왕)대감, 조상대감 등으로 불리는 지역도 있지만 소수이다. 경기도 화성지역의 <성주무가>에도 조왕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조왕할아버지 또는 조왕할아버지와 조왕할머니 부부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왕의 신체(神體)는 지역 또는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물을 담은 종지․주발․중발․보시기․뚝배기․옹기그릇․항아리․바가지․상자 등 용기 형태, 문종이에 ‘나무조왕 삼왕대신’이라 쓴 종이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헝겊이나 백지를 붙이거나 창호지와 마른 명태를 걸어 놓는 부적 형태, 방석 모양으로 접은 부적과 명태와 독을 동시에 모시는 복합 형태도 나타난다. 이외에 부뚜막의 솥과 솥뚜껑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신체가 없는 것을 건궁조왕이라 한다. 평상시에는 치성을 드리지 않지만 조왕 자리는 항상 조심한다. 제일에는 떡과 제물을 준비하여 제의를 올린다.
조왕의 용기에는 정화수, 쌀, 삼베 등을 넣는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물(정화수)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내리는 비(물)와 타고 있는 불 그 자체 모양에서 경외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파괴성, 엄청나게 불어나는 풍요성, 더러움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정화력 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과 물이 생활상의 필수품이라는 점과 생활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위압감을 느끼는 한편 이것들의 전화, 신성, 풍요, 제액초복 등을 신의 상징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벼(쌀)는 다산을 의미하는 식물이다. 다산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업에도 관계되는 것이며, 다산 소망이 곡식을 통해 조왕의 신체로 모셔진 것이다. 쌀을 제물로 쓴 곳은 서울, 강원, 충북, 경남지역이다. 쌀은 20세기 중반까지 조왕의 신체로 사용하였지만 근래에는 정화수나 건궁으로 모신다.
이 밖에 조왕의 신체처럼 모셔지는 것들로 솥과 솥뚜껑, 부뚜막과 아궁이가 있다. 솥은 단순히 음식물을 조리하는 용기만이 아닌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로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종교적 의기, 사자(死者)의 식량 용기 등 고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부뚜막과 아궁이는 단순히 취사와 난방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늘, 사계절, 십이시(十二時), 태양과 달과 바람 등을 나타내는 우주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부뚜막과 아궁이의 설치 위치, 방향, 설치일, 수리일 등도 음행오행설에 의해 정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민속상 혼례, 상례, 민간용법 등에서도 의미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혼례를 마치고 신행을 갔을 때 신랑이 부엌에 들어가 부뚜막에 다리를 올려놓고 국수를 먹거나 어린아이의 아명을 ‘부뚜막’으로 붙이는 것 등은 오래 살라는 의미로 보인다. 장례 때 관이 나가면 곧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관습은 시신이 있던 자리의 습기를 제거하고 소독할 뿐만 아니라 시신의 부정을 정화하기 위해 행해졌다. 그리고 민간에서 두드러기 등을 부뚜막 위에서 치료하였다. 이는 부뚜막이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잣집 흙을 파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그 복이 전해져 잘 살게 된다고 하여 ‘복토 훔치기’라는 민속이 있었다. 이는 부뚜막과 아궁이가 불을 조절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에 조왕이 내재해 있다는 인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조왕을 모시는 공간은 부엌이다.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신령이 내재한 신성공간이며 부정을 씻는 정화의 장소이다. 『민택삼요(民宅三要)』에 의하면 부엌의 방향은 대문, 안방 다음으로 고려되었다. 일반적으로 동향이나 동남향을 길향으로 쳤고, 동북향이나 서남향은 귀문사상에 의해 흉하다고 하였다. 또 우물 앞이나 대청 뒤 또는 대문의 정면에 위치하는 것을 꺼렸다. 흙도 우물을 판 흙을 사용하지 않았다. 부엌을 만들거나 수리할 때에도 음양오행설에 의해 택일하였으며, 만통화성흉일(萬通火星凶日)을 피하였다. 만통화성흉일에 부엌을 비롯하여 방이나 대청 등 건물을 건조 및 수리를 하거나 이엉을 올리면 화재를 당한다고 한다.
부엌에는 조왕을 비롯하여 성주, 업, 조상, 제석, 구눙, 걸립, 영등할머니 등 거의 모든 가택신령이 모셔진다. 아키바 다카시에 따르면 서부지방과 북부지방에서는 고방 또는 부엌 선반에 신단지와 신고리를 설치해 놓고 제석단지, 칠성행리(七星行李), 조상단지, 조상마을, 원귀를 모시고 있다. 또한 그 집의 주부는 부엌에 모셔진 신령들의 각 제일에 맞추어 정성을 들인다. 정성 들이는 날 이외에 오월 진일에 돼지머리로 부엌에서 제를 지내면 재산이 만 배, 사월 정사일에 제를 지내면 재산이 백 배 늘어난다고 한다. 정월 기축일에 백계(白鷄)로 제를 지내면 누에가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개로 제사를 지내면 흉패(凶敗)하고, 여자가 부엌에 제사를 지내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엌에서 거의 모든 가택신령을 모시는 것은 민간에서 특히 신성한 장소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통과의례, 즉 혼례․상례․출산 의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엌은 중요한 장소로 이용된다. 혼례를 마친 후 신행 때 신랑이 신부보다 앞서 집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린 뒤 부엌에 들어가서 바가지에 국수를 담아 주걱으로 떠먹고(경기도), 신행 온 지 사흘 만에 ‘입주(入廚)’라 하여 신부가 처음 부엌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신부는 먼저 부엌에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시작한다. 신부의 입주는 새 삶을 시작하는 뜻이며, 따라서 부엌의 주신인 조왕께 먼저 아뢴다는 의미로 보인다. 예전에 상가(喪家)에 갔다 오거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우선 부엌부터 먼저 들렀다가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이는 상가나 긴 여행에서 묻어 왔을지도 모르는 잡귀나 부정스러운 것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부엌에는 부정을 씻는 정화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 외출 때에도 부엌을 먼저 거쳐 가야 길하다고 한다.
또한 신축한 집에서는 방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부엌(정지)에서 짚을 깔고 낳는다. 집안에 임부가 있으면 부엌이나 변소를 치우지 않고, 산중(産中)에 부엌이나 굴뚝을 고치면 나쁘며, 산달에 문을 바르면 난산을 한다고 한다. 이는 부엌이나 굴뚝, 문 등을 산도(産道)와 동일시하여 산도에 상처를 내거나 막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왕은 특정일이나 굿의 과정에서 모셔지는 여느 가신들과 달리 특정일뿐만 아니라 매일 모셔진다. 주부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남들이 먼저 물을 떠가기 전에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물을 떠와 정화수를 올렸다. 그러나 근래에는 수도를 사용함으로써 새벽 또는 밥짓기 전에 수돗물을 깨끗하게 받아서 싱크대(예전에는 부뚜막)에 올려놓고 빈다. 매월 삭망(초하루, 보름)과 유두, 백중, 추석, 섣달그믐, 칠석, 양날, 범날, 소날, 부모 제삿날, 가족 생일, 집 신축일, 가족 중에 출타한 사람이 있을 때 조왕에 정화를 올리고 빈다. 이는 집집마다 다르다. 이 밖에도 안택이나 집안에서 고사를 지내는 경우에 다른 신령들과 같이 모신다.
조왕은 집안마다 차이가 있지만 집안의 길흉화복을 빌고, 가장(家長)과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신다. 특히 가족 중에 객지에 출타하거나 군대 간 아들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매우 지성으로 모신다. 이 밖에 기자(祈子), 해산, 육아 등을 위해서도 모신다.
의의
조왕의 연원은 알 수 없지만 불의 사용과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에게 불씨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등 불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인격화되면서 조왕이라는 가정 신령으로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조왕은 불신으로 모셔지다가 중국의 체계화된 조신이 전래됨으로써 조왕의 불신으로서의 순수한 형태는 사라지고 중국 계통의 조왕신인 부엌신, 부뚜막신으로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것으로 추측된다. 근래에 와서 발화법의 간편화, 수도의 보급, 난방과 음식 조리의 장소 분리, 화장실 위치의 이동 등 집안 구조의 변화, 입식부엌 사용(부뚜막에서 싱크대 사용)으로 인하여 조왕의 중요성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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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위도면 진리 | 황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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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옥의 부엌에 자리한 조왕신에게 지내는 가신의례. 조왕은 조신(竈神)·조왕각시·조왕할망·조왕대신·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신체(神體)로는 조왕중발 또는 조왕보시기라 하여 사기종지에 정화수를 떠 올리기도 하지만 신체가 없는 ‘건궁조왕’도 흔하다.
유래
조왕신앙은 일찍이 중국 고대에 나타나 5~6세기에 신앙으로서 성립되었다고 하며, 일본 특히 오키나와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왕신을 ‘가마도(竈, 부뚜막) 신’이라 하여 집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서의 기능을 믿고, 중국에서는 조왕신이 재복신(財福神)의 으뜸신으로 여기며 축귀의례인 나례(儺禮)에도 조왕이 등장한다. 흔히 조왕신은 섣달그믐 무렵에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를 찾아가서 지난 일년의 일을 고한다는 말이 있다. 이때 각별히 말조심을 하고 때로 부뚜막에 엿을 붙여두기도 한다. 이는 입을 막기 위함인데, 중국에서 전래된 설화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염제(炎帝)를 조왕신으로 보고 부인과 여섯 딸이 있다고 하며, 또 8월 3일이 생일이라고 하는 등 인격을 가진 신으로 간주하였으며, 불교에서는 황신(荒神)을 조왕신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에서 대문신(大門神)인 남선비의 본처가 조왕신이고, 첩이 변소신이다. 그래서 본처인 부엌신과 첩인 변소신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서로 내왕하면 탈이 난다고 하는 신화적 설명이 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왕신앙을 단군(檀君)의 신시(神市)에서부터 유전(流傳)된 것이라 했고, 임동권(任東權)은 중국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으며,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조왕의 명칭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의 화신성(火神性)에 대해서는 인류 공통의 인식체계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른 신앙의례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상호 영향관계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 상징적 의미는 범세계적이고 원초 이래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용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조왕제를 지내기도 하고, 안택굿이나 시루고사·집고사, 지신밟기 때에도 다른 가신과 함께 조왕에게 의례를 행하지만 평상시에도 조왕중발의 물을 매일 아침 갈아 올리고 별식이 생기면 조왕에게 먼저 올리는 것으로 신앙의례를 표현한다. 가옥의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에게 지내는 가신의례로 조왕은 조신·조왕각시·조왕할망·조왕대신·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신체의 형태는 조왕중발 또는 조왕보시기라고 하는 사기종지를 부뚜막 위에 올려놓거나, 부뚜막 벽에 제비집 모양의 대(臺)를 흙으로 붙여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기도 하며 벽에 백지를 붙여 신체를 표시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조왕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부뚜막 위에 시루떡이나 백편, 나물, 물 등의 제물을 차리고 주부가 직접 하거나 경문쟁이를 불러 축원을 하기도 한다. 문경에서는 이것을 ‘불쓴다.’고 한다. 주부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샘에 가서 깨끗한 물을 길어다 조왕물을 중발에 떠 올리고, 가운(家運)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며 절을 하는 등 적극적인 기원을 하기도 하고, 정월 열나흗날 밤에 조왕제를 올리거나 정초나 7월, 10월 등에 올리는 가정고사·안택굿·지신밟기 등에서 다른 가신과 함께 위하기도 한다. 집안의 치성(致誠)굿을 할 때는 성주에게 하듯이 조왕신에게도 조왕상을 차려놓는데 대개 목판에 간단히 차려서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특히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평소 조왕을 모시지 않는 가정에서도 아들이 군대에 가는 등 변화가 생기면 조왕을 모시고 정화수를 올린다. 이러한 조왕은 부엌의 불씨를 관장하는 화신(火神)으로 간주되어 재복신으로 인식하거나 조상신, 여신으로 보아 삼신과 더불어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역사례
경북 봉화에서는 부뚜막의 일정 부분에 조왕이 깃들어 있어 집안의 화목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여 건궁조왕을 모신다. 정월 열나흗날 조왕에게 간단한 의례를 행하는데, 시루떡이나 백편을 정성껏 만들어 부뚜막의 일정 부분에 놓고 집안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빈다. 울릉도 울릉읍 도동1리에서는 정월 대보름 저녁 때 경문쟁이를 불러 부엌에서 조왕제를 지낸다. 밥을 한 솥 해서 숟가락을 꽂고 부뚜막 위에는 간단하게 볶은 나물과 물을 갖다 놓는다. 그 다음 경문쟁이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기도 하고,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기도 한다. 또 울릉도 북면에서는 보름을 전후하여 달이 밝을 때 주로 부엌의 솥단지 앞에서 조왕제를 지낸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생쌀·찬물·건포 등의 간단한 제물을 올려놓지만, 술은 쓰지 않는다. 절을 한 다음에 끓어 앉아서 자식들의 이름을 모두 부르면서 올해도 건강하게 잘 지내 달라고 소원을 빈다. 조왕제를 지내기 전에는 마을에 흉사가 나더라도 참여하지 않는다.
문경시 산양면 현리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성주·삼신·용단지·터주단지·조왕·샘에 촛불을 밝혀 두었는데 그것을 불쓴다고 한다. 조왕은 신체가 없고 단지 정월 열나흗날 밤에 불을 쓸 뿐이다.
부엌신이 본처인 조왕으로 등장하는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가 전하는 제주도에서는 거의 대부분 문전제를 지내면서 조왕제도 함께 지낸다. 조왕은 늘 깨끗이 하여야 살림과 가정의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기제사에서도 문전제, 차례, 조왕제 등의 순서로 지낸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정월에 포제 이후 집안에서 토신제·칠성제·조왕제를 지내며, 불교 신자는 스님을 모셔서 지낸다. 이러한 의례는 주로 정초에 이루어진다.
의의
조왕신을 모시는 조왕고사는 불과 관련되는데, 인류는 보편적으로 원시시대 이래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하고 있다. 불씨를 신성시하며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이나, 이사 간 집에 성냥을 가지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왕신이 자리잡고 있는 부엌은 정화(淨化)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물과 불이 공존하는 곳으로 정화력이 있어 신성한 제의공간으로 삼기에도 적합하다. 초상집에 다녀오는 길에는 먼저 부엌에 들르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온다고 하겠다. 또한 부엌은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들의 공간이다. 주부들은 이 곳에서 조왕신에게 정화수를 떠 올리고 가족의 건강과 재복을 기원하며, 특히 집을 떠나 객지에 있는 가족을 위해 밥을 떠놓고 안녕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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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 2002년 1월 | 코리아루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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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엌에 좌정하고 있는 조왕신에게 지내는 가정신앙 제의. 모시는 제일, 제물, 목적 등이 집안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제의는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지낸다. 평소에는 새벽에 목욕재계 또는 세수를 하고 정화수를 떠다가 바치고 빈다. 특정일에는 다른 집안의 신령들과 함께 모셔지거나 단독으로 모신다. 단독제의는 제주도, 울릉도, 경남 함양․밀양 등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다.
유래
조왕신앙의 연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변진 조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방법은 다르나 문의 서쪽에서 모두들 부엌신[조신(竈神)]을 모신다(祠祭鬼神有異,施灶皆在戶西)”라고 하였고, 『책부원귀(册府元龜)』 권 959 외신부(外臣部) 변진국(弁辰國)에 따르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조왕을 모실 때에 공손함이 있으며 모두 문의 서쪽에 있다(祠祭鬼神 有巽施竈 皆在戶西)”고 하여 기원전부터 조왕을 모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왕을 모시는 방법이 근래처럼 집집마다 다르지만 제를 지내는 장소는 동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를 지내는 주체가 누구이고, 언제 어떠한 형태로 모셔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고려사(高麗史)』 「지(志)」에 따르면 “조왕은 7사 신위 중 한 신위로 모셔진다. 사명신(司命神), 호신(戶神), 조왕신(竈王神), 중류신(中霤神), 문신(門神), 여신(厲神), 행신(行神)이 그것이다. 봄철에는 사명신과 호신, 여름에는 조왕신, 6월에는 중류신, 가을에는 문신과 여신, 겨울에는 행신에게 제를 지낸다. 납일[臘享]에는 전부 제를 지낸다.(春祀司命戶夏祀竈季夏祀中霤秋祀門厲冬祀行臘享遍祭)”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128 오례, 길계 서례, 신위조에 의하면 ‘칠사(七祀)는 봄에 사명(司命)과 호(戶)에 제사지내고, 여름에 조(竈)에 제사지내고, 가을에 문(門)과 여(厲)에 제사지내고, 겨울에 행(行)에 제사지내고, 계하(季夏)의 토왕일(土旺日)에는 별도로 중류에 제사지낸다. 협사의 제향과 납일(臘日)의 제향에는 두루 제사지내는데, 신위를 묘정(廟庭)의 서쪽에 동향(東向)하여 설치하고, 북쪽을 상(上)으로 하며, 자리[席]는 모두 왕골자리로 한다(七祀 : 春祀司命戶, 夏祀竈, 秋祀門厲, 冬祀行, 季夏土旺日別祀中霤, 祫享臘享則遍祭。設位於廟庭之西東向北上, 席皆以莞).라고 하였다.『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의 속주(續註)에 “사명(司命)은 궁중(宮中)의 소신문(小神門)이요, 호는 출입(出入)을 주관한 것이요, 행은 도로의 행작(行作)을 주관한 것이요, 여(厲)는 공려(公厲)를 이름[謂]이니, 옛날 제후(諸侯)들의 무후(無後)한 사람이요, 조(竈)는 음식(飮食)의 일을 주관한 것이요, 중류는 당실(堂室)의 거처(居處)를 주관한 것이라(司命, 宮中小神。門戶, 主出入。行主道路行作。厲謂公厲, 古諸侯之無後者。竈主飮食之事, 中主堂室居處).” 하였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보다 조선에서 조왕의 성격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중국 『예기(禮記)』 제법(祭法)에는 “왕에게 여러 명의 왕비[女神]가 있어 7사(祀)로 모신다. 사명(司命), 중류(中霤), 국문(國門), 국행(國行), 태력(泰曆), 호(戶), 조(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려 및 조선시대에 모신 7사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한다.
『여지승람(與地勝覽)』에 “부엌의 가마솥 뒤에 놓인 조왕신부적, 알아볼 수 없는 문자나 부호를 종이에 써서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붙인다. 붉은색으로 쓴다.”를 통해 조선시대 전기의 민가(民家)에서도 조왕이 부엌의 가마솥, 즉 조왕솥 뒤에 모셔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범지능제조사(范至能祭竈祠)에서 “남자들이 조왕제를 지낸다. 조신(竈神)은 그믐날 하늘에 올라가 사람의 죄상을 아뢴다. 기축일(己丑日) 묘시(卯時)에 제사(祭祀) 지내면 복(福)을 얻는다고 하였다. 또한 주자(朱子)가 부엌신께 제사 지낸 글이 가례에 기록되어 있어 그것을 모방하여 행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이능화(李能和)는 “이지봉은 모든 신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모두 배척하여 좋지 않은 일로 삼았다. 조왕신만은 조선중기 때 사람들이 제사 지내고 주자도 제사(祭) 지내니 고로 당연히 모방하여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중기에는 일반 백성들과 양반계층에서 조왕제를 지내고, 조왕이 사명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00년대의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 실학자들의 세시류를 통해 민간에서도 조왕을 신앙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조왕은 새집이나 이사 후 부뚜막에 솥을 거는 것으로 살림살이가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살림살이의 시작과 함께 모셔진다. 전남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현재는 비룡리)에는 “너도 부뚜막에 조왕 갈 만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장가를 들어서 새로 가정을 꾸릴 만하다 할 때 하는 덕담이다. 이처럼 혼인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 시어머니에게 물려받든 새로 모시든 모시기 시작한 것이 조왕이다.
조왕에 대한 제의는 평상시에 모시는 제의와 특별한 날에 모시는 고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신들은 특정일이나 굿의 과정에서만 모셔진다. 그러나 조왕은 주부가 매일 새벽에 남들이 물을 떠가기 전에 일어나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깨끗이 물을 떠다가 조왕중발에 정화수를 올리면서 마음속으로 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제의는 다른 어떠한 제의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성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수도의 보급과 부엌 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밥을 하기 전에 중발에 물을 떠서 정화수를 올린다.
특정한 날에 모시는 제의는 집집마다 다르다. 매달 초하루, 초사흘과 보름, 유두, 백중, 추석, 섣달그믐의 명절과 24절기, 부모의 제삿날, 가족의 생일, 집 신축일, 가족 중에 군대나 타지 등에 출타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 조왕께 제를 올린다. 이 밖에 정초와 조왕 부정, 곧 집안에 사고 또는 병자가 있는 등 집안에 우환이나 급한 일 또는 재앙 등이 있을 경우에는 수시로 제의를 올린다. 진도지역에서는 단골이나 신도의 가정에 햇머리, 생일, 명절, 매달 초하루, 천액(天厄)이 들었을 때 조왕굿을 한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서는 아이가 단명(短命)을 한다고 해서 무당이 시키는 대로 새벽에 일어나 조왕공에 정화수를 올리고 저녁에도 정화수를 올리며 하루에 두 번 조왕에 비손을 했더니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다고 한다.
제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주부나 며느리가 지낸다. 평소에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목욕재계나 세수를 하고 정화수를 길으러 간다. 목욕재계 등은 여름에 찬물로, 겨울에 물을 데워서 한다. 옷은 평상시에 입는 옷을 입는다. 특정일에 고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음식을 진설하고, 밤새도록 절을 하며 기원하기도 한다. 특히 명절과 매월 초하룻날에는 남편과 동침도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제물로 새벽에 떠온 깨끗한 정화수를 올린다. 올린 정화수는 주부가 먹거나 부뚜막, 솥뚜껑, 아궁이, 물 항아리 등 깨끗한 곳에 버린다. 반면에 아주 더러운 시궁창에 버리기도 한다. 특정한 날인 정월대보름, 유두, 백중, 추석, 섣달그믐의 명절 및 24절기와 부모 제삿날 등에는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제물을 준비한다. 굿을 하는 경우에는 무당이나 심방이 미리 일러준 대로 준비한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메(밥솥), 나물류, 떡, 과자 등을 올린다. 이뿐만 아니라 절기나 명절에는 그 절기에 차리는 음식을 올린다. 정월대보름날에는 찰밥, 동짓날에는 팥죽 등이다.
밥은 솥에 지은 채로 솥뚜껑을 반쯤 열고 밥 위에 열십자를 그어 가운데에 밥주걱이나 식구 수대로 숟가락을 꽂고, 솥뚜껑 위에는 광목을 걸쳐 놓는다. 이렇게 하면 조왕이 흠향을 한다고 한다. 이때 조왕이 비린내 나는 음식을 꺼리기 때문에 부엌에서 육류나 생선류 등은 일절 만질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생것도 일절 올리지 않는다.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비리지 않은 맑은 것을 올린다. 강원도 강릉지역에서는 어물이나 고기를 올리지 않고, 전남 영암지역에서는 개고기같이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꺼린다. 이는 제주도 문전본풀이에 따르면 조왕이 시앗인 측신의 해침을 당해 물속에 빠져서 고생할 때 물고기들이 육신을 뜯어먹히는 곤욕을 치러 조왕의 잡식에는 물고기 등을 올리지 않는다는 기록에서 원인을 엿볼 수 있다. 나물은 미나리, 고사리, 콩나물, 무우채, 시금치 등을 쓴다. 이 가운데에서 미나리 무침을 가장 중시한다. 떡은 흰무리를 올린다. 제주도지역에서는 돌레떡과 보시떡을 쓰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삼덕자 조왕을 모시기 때문에 음식을 세 개씩을 올린다. 제물은 상없이 솥과 솥 사이 또는 바닥에 차린다.
조왕에 대한 제의는 지역 및 집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의 방식이나 금기는 대동소이하다. 매월 초사흗날과 명절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나물이나 떡을 진설한 다음 밤새도록 절을 하며 빈다. 안택을 할 때는 성주나 삼신보다 먼저 조왕께 빈다.
지역사례
일상적인 조왕에 대한 정성드리기 외에 명절이나 그 밖의 특정 기일(期日)에 정기 도는 비정기적으로 올리는 조왕제도 있었다. 1938년 조선총독부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조왕제는 충남(대덕군), 충북(청주군), 경북(영덕군), 평북(철산군), 전남(장성군) 등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조사한 『한국민속종합보고서』에서는 제주도에서 조왕고사를 지내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2005~2008년에 조사한 『한국의 가정신앙』에서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울릉도, 경남 함양․밀양 등지에서도 조왕고사가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에 조왕제를 지냈다. 이때에는 “유제차 경술 정월 병오 13일 무오 집주인 참봉 ○○○은 감히 조왕대성신님께 고하나이다. 새로 정월을 맞이하여 복길일(卜吉日)에 여러 음식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목욕재계하여 이같이 잘 차려놓고 우리 집이 편안하기를 정성 다해 머리 조아려 공손히 절을 올리고 돌아보니, 엄숙하게 지신(地神)이 삼가고 두려워하니 오셔서 음향하소서”라고 축문도 읽었다.
경북 봉화지역에서는 부뚜막에 조왕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조왕은 집안의 화목을 담당하며, 일반적으로 건궁조왕으로 모셔진다. 의례는 정월 열나흗날에 간단하게 행해진다. 시루떡이나 백편을 정성껏 만들어 부뚜막의 솥과 솥 사이에 놓고 집안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빈다. 울릉군 도동리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경문쟁이를 불러 조왕제를 지낸다. 밥을 한 솥 해서 솥뚜껑만 열고 숟가락을 꽂은 뒤 부뚜막 위에 간단하게 나물과 물을 갖다 놓고 절을 한다. 절은 경문쟁이가 시키는 대로 한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조왕을 정지(부엌) 솥덕에 좌정한 신으로 여겨서 솥할망, 조왕토신이라고도 한다. 제의는 사제가 누가되느냐에 따라 무식(巫式), 불교식(佛敎式), 독경식(讀經式) 조왕제로 분류된다. 무교식은 심방, 불교식은 스님이나 보살, 독경식은 독경쟁이가 된다. 독경쟁이는 도포를 차려입고 한다. 독경식은 조왕에게 부정이 있는 경우에만 제를 행한다. 조왕에 대한 제의는 정초, 조왕에게 부정이 있거나 집에 우환이 있고 가족이 아플 때 지낸다. 근래에는 큰굿을 할 때 조왕제를 지낸다. 조왕제만을 위해서 심방을 부르는 경우는 없다. 토신제와 함께 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토신제는 제관, 조왕제는 심방이 각각 주관한다. 조왕에게 동티가 나면 조왕에 불을 밝혀 놓기도 한다.
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우선 택일을 한다. 정월대보름날부터 삼월 사이에 좋은 날을 택하여 지낸다. 이월은 썩은 달이라고 해서 지내지 않고, 사월부터는 제를 지내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 때문에 제지내는 시기를 놓치면 대개 이듬해에 지낸다. 택일은 가장을 중심으로 집안 식구들의 생기에 맞추어 정해진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를 행하기 일주일 전 또는 사흘 전부터 정성을 들인다. 이때는 집안을 청결히 한다. 특히 부엌에서는 육류나 어류 등을 일절 만질 수 없다. 그리고 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과 부정인이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 이 기간에는 고기음식도 일절 먹지 않는다. 제를 지내기 전에 짐승의 시체를 본다든지 주부가 월경중일 때 또는 상을 당하거나 해산하는 일 등 마을 전체적으로 비린(부정한) 일이 생기면 새로 택일하여 지낸다.
이 제에 남자는 관여하지 않는다. 제물은 심방이 미리 일러준다. 종류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메(밥솥), 나물, 과일을 올린다. 나물은 미나리, 고사리, 콩나물, 무채, 미역채, 시금치 등이다. 미나리 무침을 가장 중시한다. 과일은 사과, 배, 귤 등 삼종 또는 오종․칠종을 쓴다. 복숭아는 쓰지 않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배나 유자 한 가지만 올리기도 한다. 떡(돌레떡과 보시떡), 감주(음료수면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 지전 한 권, 명태(또는 동태), 실, 양초, 백지 등이 함께 진설된다. 주부에 따라서는 과자를 준비하기도 한다. 제숙은 솔라니를 쓴다. 돼지고기, 소고기와 생것은 일절 올리지 않는다. 한편 몸이 아프거나 동티가 났을 때에는 흰쌀 한 그릇, 찬물, 사과 등을 올린다. 다른 가택신과 함께 제의를 치를 때는 문전신의 음식 제의가 끝난 뒤에 부엌의 조왕 앞에 가서 지낸다(북제주군). 제물은 막은 방(막힌 방위)을 피해 부엌 바닥에 차렸으나 근래에는 싱크대 위에 차린다. 조왕제는 삼덕자 조왕을 모시기 때문에 음식은 모두 세 개씩 올린다.
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초저녁에 행해진다. 제물 진설에 있어서 메는 가마솥에 밥을 해서 뚜껑을 반쯤 열어 밥 위에 열십자를 그은 다음 가운데에 밥자(주걱 또는 숟가락)를 꽂아 놓는다. 솥뚜껑 위에는 광목을 걸쳐 놓는다. 심방은 흰색의 한복을 입는다. 이때 악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제를 진행할 때는 부뚜막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은 심방이 오늘을 택하여 제를 지내는 이유를 구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다음 오늘 제를 지내는 집이 어느 나라 어느 고을 누구네 집이라는 것을 알린다. 이를 국섬긴다(국가른다)고 한다. 심방은 간곡한 축원을 하고, 상에 올린 정화수 그릇을 들고는 마당과 부엌 구석구석에 조금씩 뿌린다. 이는 지금까지 불러들인 신들 가운데 부정한 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부정갠다’고 한다. 이렇게 하고 난 뒤에 심방은 제자리로 돌아와 단정히 앉아서 문전본풀이를 구통한다. 문전본풀이의 구통이 끝나면 상위에 올린 소지를 불사른다. 이는 귀신의 노자(路資)가 된다고 한다. 스님이 할 경우에는 북쪽으로 앉아서 조왕경을 읽는다.
이와 같이 조왕제에 참석한 모든 신에게는 충분히 대접을 한다. 이때 심방은 신에 의탁하여 점을 친다. 이 점은 상 위에 올린 쌀그릇에서 심방의 임의대로 쌀알을 집어 50㎝ 정도의 높이로 올린 다음 다시 받고, 손에 잡힌 쌀알의 수를 보아 앞으로 있을 길흉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에 잡힌 쌀알의 수가 길(吉)을 나타내면 쌀알을 주부에게 주어 꼭꼭 씹어 삼키게 한다. 흉(凶)을 나타내는 쌀 점인 경우 심방은 주부에게 그 예방책을 일러 준다. 또는 심방이 멩두칼을 가지고 와서 날선ㄷ̖리를 놓고 운수를 점친다. 이때 노단ㄷ̖리가 가장 좋고 왼ㄷ̖리가 다음으로 좋다고 한다. 합친ㄷ̖리나 칼선ㄷ̖리는 아주 나쁘다. 이렇게 해서 제가 끝난다. 소요되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이다.
심방이 상 위에 올린 제물을 내리면 주부는 이 음식들을 심방과 식구들이 모여 앉아 먹도록 한다. 조왕제에 쓰인 제물은 일절 다른 집 사람에게 주면 안 된다. 심방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이 제에 쓰인 쌀, 실, 돈, 광목 등은 사흘 또는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반 제사 때에는 문전신과 똑같이 조왕할망상을 린다. 이를 ‘안내상’이라고 한다. 조왕할망에 불을 밝히고 부엌에서 ㅋ̖ㅅ̖[고사]를 한 뒤 버린다. 옛날에는 고팡에 차렸다. 그러나 지금은 방이나 부엌에 안내상을 차린다. 방에 차리는 경우에는 신의 입장에서 지방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차린다. 조왕할망상에 불을 밝혀서 제를 지낸 뒤에 잡식을 하고, 잡식이 끝나면 부엌에 버린다. 요즘은 모두 싱크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잡식한 음식을 버릴 때가 없어 따로 ‘잡식버리는 곳’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여 확인할 수가 없었다. 또는 지붕 위에 뿌린다. 닭이나 고양이가 올라가서 먹으면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은 현대식 주택이어서 지붕 위에 뿌릴 수 없어 비닐봉지에 담아 옆에 놔둔다. 근래에는 신과세제(新過歲祭, 문전제)에서 문전신과 함께 위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문전에 잡순 것을 잡식해서 조왕에 두기도 한다.
조왕제를 지내면 어머니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족의 안녕을 믿게 된다. 이런 제의는 집안에 우환이 닥쳐서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의의
조왕은 특정일이나 일상적인 날에도 주부에 의해 모셔질 뿐만 아니라 단독 제의로 모셔진다. 조선총독부의 보고에 따르면, 조왕, 터주, 성주 등 가택신들도 단독의 제의로 모셔졌다. 그러나 근래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제주도, 울릉도, 경남 함양, 밀양에 조왕제가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는 조왕이 가택신령들 가운데에 비중이 높은 신령으로 모셔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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