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7(수)
H: 시애틀 일주일간 다녀왔어. 1589km인데 34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2시간 30분) 돌아왔지. 긴 기차여행은 처음인데 자고 먹고 경치를 구경하는 시간이 지루하지않고 나이에 맞는 편안한 여행이였지. 시애틀에서는 투어가이드를 고용해서 레이니어마운틴, 올림픽국립공원, 시애틀 다운타운 등을 재미있게 구경했고. 미국을 기차로 도는 여행 패키지가 좋아서 한군데씩 돌아보려해. 여기는 아직도 38도를 넘나드는 더위 계속이고, 애들은 15일 개학을 했어. 다시 바쁜 스케즐 따라 뛰어다니게 됐어. 하긴 한가한 적이 없는 삶이였지만~ 작품의 열매인 책이 출간되어 흐믓하겠네? 이제 더위가 지나면 삼현이 손길이 더 바빠지리라 생각하며 의미있는 작품들 기다릴께. 항상 건강하고 가족이 늘어나기를 기도할께요 . 사진보면 친구는 늙지도 않아, 나는 시든 할미꽃이 되어서 사진 피해다녀. 꽃가꿀 시간은 있어도 나 가꿀 시간은 없거든. 곧 추석이니 보름달 보며 환한 웃음 뭇쳐서 이 곳에 보내면 16시간 후에 내가 받아 볼 수 있을거야~ 가족모두 건강하게 잘 있기를 빌께!
Y: 예쁜 나의 첫사랑 소녀, 시애틀 무사히 보람있게 잘 다녀온 그 기분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어. 나 또한 즐겁고 희열을 느끼다는 얘기. ^ ^기차 여행이 기억에 특히 남겠어. 난 그런 긴 기차를 타본 일이 없으니~언제 연초에 해맞이 겸 광주에서 강릉까지 심야 기차여행을 꿈꾸고 있는데, 고작 7,8시간 걸리지 않을까?^ ^ 38도라는데, 우리나라 38도 개념과는 다르겠지? 거긴 지중해성 기후라서. 어떻든 넘 멋져! 래이니어 국립공원 갈매빛 진록의 숲이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지닌 동화의 나라를 품은 것 같아~나니아연대기 같은~바닷가 빛바랜 고목 무더기는 뭐지? 숲이었나? 강이 멋져! 어린애처럼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린린 먼로의 The river of no return 영화의 강이 연상되었어. 맑고 푸르른~ 시애틀! 내가 형이랑 시애틀 들어가 구경하는 기분이었어. 생생해~ 잠 못이루는 시애틀의 밤 영화도 떠오르고~와! 시애틀의 야경, 환상적이야. 자기가 찍었어? 첫사랑 소녀의 카메라 솜씨가 빛나보여! 이 시대 최고의 카메라 위먼!^ ^ 그래도 여행 중에 찰칵한 형이 사진 한 장 보고 싶어~내 마음이 원해~한 장만 ~ 김자경 오페라 구경하던 그 밤의 두근거림으로 형이 곁에 서 있는 나를 느껴~행복해~첫사랑 소녀,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할게~ 홧팅!
2022. 8.18(목)
Y: 시애틀
윤삼현
깊은 잠의 은하를 뜷고 대륙횡단 열차를 탄
그녀에게 환호를 보낸다
삽십 여 시간 차창 밖으로 억겁의 인연을 시늉하는
별똥별 군무가 펼쳐지고
뼈와 근육은 하나하나 해체되고 별이 되어
푸드득 깨어난 날갯짓으로
잠 못이루는 그녀의 꿈 길은
시애틀의 밤 불빛이 되었다
길고 긴 은빛 은하는
태평양을 거슬러 오르는 고랫심 같은 힘줄로 뻗어
깊고 푸른 밤
한반도 남쪽 도시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그녀에게 날아가
문득문득 이국의 살가운 향내를 핥고 온다
시애틀 38도 따가운 밤
세상은 오직 두 사람
왜 그토록 밤 야경이 눈부셨는지
왜 반짝이는 불빛들이 그토록 고독했는지
잠 못이루는 도시는 알고 있다
스무 살 추억의 바다 한 장
아련한 기억의 통로 속에 숨 쉬며 흐르고 흘러
은빛 파도롤 불러 꿈틀대는 온 밤
시애틀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2022. 8.19(금)
H: 순간순간의 생각을 언어라는 몸에 담그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시'인 것 같아.
척척 내면을 끄집어 내어 글씨로 줄기와 뼈대를 만들어가는 솜씨. 모든 이의 공감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며, 나의 친구 현에게 박수를 보내. 드디어 숙제 하나 해결한 것 축하하고. 식구가
늘어나는 큰 축복 많이많이 갖기를~^ ^
Y: 고마워~^ ^ 이 달 말 큰 애가 식사자리에서 여친 소개하겠다고~^ ^고정선 (학보사 기자)친구,
나 보고 아들 여친 소개자리에서 말 많이 하지 말라고 주문 하네~ 이것 저것 주문해서 부담 주지 말라는 의미.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가묵한 시아빠상 보여주어야 할 듯~^ ^형이 며늘 아이는 어떤 성격? 어떤 스타일?^ ^
광주문학상 수상자 대펴작 집필 잠시 밀치고 축구 경기 보는 중. 퇴임 후에도 워드 작업이 꾸준히 생겨.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운동 부족한 듯. 첫사랑 소녀. 우리 건강간리에 무엇보다 만전을. 긍정
이 힘으로, 화이팅!!
2022. 8. 21(일)
H: 길은 그 어감이 입에 착 감긴다. 긴 세월 참 친구처럼 다정하게 긴 여운을 준다.
'에움길',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 둘레를 빙 둘싸다는 동사 '에우다'에서 나왔다.
'지름길', 질러가서 가까운 치단거리 길이다. 그런데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
길에 붙은 이름이 훨씬 많다. 우리 인생사처럼.
집 뒤편의 뒤안 길, 좁은 골목길의 고샅길. 거칠고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잡풀 무성한 푸서릿길.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벼랑의 험한 벼룻길. 눈이 소복히 내린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숫눈길. 바다를 끼고 바위언덕으로 난 위
험한 배랑길. 길이란 단어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사유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이 없다거나 내 갈 길을 가
야겠단 표현에서보듯 길은 삶에서의 방식이거나 삶 그 자체다. 영어 Way도 Street와 달리 같은 중위적 의미를 갖는
다. 서양 사람들도 길에서 인생을 연상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다. 누군가는 헤매이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을 가고, 누구는 한 길을 묵묵히 간다. 오르막길
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탄탄대로가 있는가 하면 막다른 골목도 있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나 만의 길이 있을 뿐
이다. 프랭크 시나트라에게는 'yes, It was mt way. I did it my way'였다. 흑백 영화 길(La Strada, 1954년)을 기억할 것
이다. 야수 같은 차력사 잠파노(안소니퀸)아 순진무구한 영혼을 가진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는 평생 서커스 동반
자로 길을 떠돈다. 영화 마지막 장면, 자기가 버린 젤소미나의 족음을 알고 잠파노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길이 끝나
는 바닷가에서이다. 애절하게 울려퍼지는 연주 테마곡~ 영화와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로버트 푸르스트는 명시 '가지 않은 길'에서 술회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글을 간다'라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는 말은 웬
지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결연하다. 결국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살아가는 거다. 지름길인가, 에움길인가.
인생길은 속도와 빙향의 문제다. 지름길로 가면 일찍 이루겠지만 그만큼 삶에서 누락되고 생략되는 게 많을 것이다. 에
움길은 늦지만 많이 볼 것이다. 꽃구경, 새소리 바람소리, 동반자와 깊은 대화도 가능하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모든 사랑은 차효 한 장으로 쉽게 가는 지름길이 아니고, 수만 갈래의 에움길을 돌고 돌아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중략)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Y: 그 숱한 길에서 지름길, 에움길, 자드락길, 고샅길, 오솔길, 배랑길~~~ 형이랑 걸었던 스무 살 두근거림의 길이 가
장 눈부시고 빛나 보이는 까닭은 뭘까? 아마도 가장 순수했던 시간 속에서 마그마처럼 뜨거운 감정을 몰래 품었던 사
랑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그 길이 내게 오지 않는대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어깨를 맞대고 대지에 찍어
놓은 발자국이 그걸 증명해내리. 그 길을 갔기에 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고,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주어진 생의 모습이 그
어떠하든 난 후회하지 않으리. 지나간 추억은 모두가 아름답게 채색되는 법이니. 오늘도 첫사랑 소녀를 그리며. 그대 건
강과 회복과 치유를 원하며. 우리 다만 멈추고 바라보는 여유를~~~ ♡♡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