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첫 이동장터입니다. 지난주와 이번주가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해가 바뀌는 그 시점은 늘 새롭습니다.
콩나물 한 시루, 막걸리 8병, 코다리, 동태 한 가방, 마른 멸치, 북어포 등 한 가방, 요구르트, 우유 등 한 박스...
오늘 장터에서 팔 물건들을 챙겨 준비합니다. 전날 핫도그 갖다달라던 신흥마을 어머님 말씀 잊지 않고 치즈 핫도그 2개도 추가로 넣습니다.
돈 통에는 장사돈 215,000원을 챙기고, 카드 단말기, 볼펜, 종이, 각 장부등을 챙깁니다. 모든 거래는 수기 기록 합니다.
입도 자주 마르니, 텀블러에 물도 한 가득 넣습니다.
9시 15분, 출발할 때가 됬습니다.
9시 30분, 신흥마을 단골손님,
첫마을 신흥마을, 우리 단골 손님은 첫해 첫 주문부터 해주십니다. 그것도 차에 갖고 다니지 않은 핫도그, 미리 전화해서 갖고 와달라고 하십니다. 이거저거 보시더니 화장지도 하나 달라십니다. 얼마전 동네에 개소한 노인회관에 아들이 선사하고자 하신다며, 좋은 놈 하나 달라십니다. 이동장터 할 때마다 늘 많이 사주시는 큰 손 고객입니다 요근래는 추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묵혀두고 있습니다. 어서 다시 농번기가 오길 바래봅니다.
그 와중에 원불교 교무님, 지난번 비누 물건 값 안받았다며 물건으로 바꿔달랍니다. 락스, 돌자반 등을 챙기니 기존보다 2천원 더 나온 상황. 옆애 있던 어머님이 부족한 부분을 내어주십니다. 교무님은 연신 고맙다며 돌자반 절반을 내놓겠다고 신신당부하십니다.
9시 45분, 연촌마을 사이다 단골
만나시자마자 작년 외상부터 해결하려고 하십니다. 작년 말 지인에게 주신다며 막걸리와 두부를 외상으로 구매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은 외상을 내어드려도 먼저 알아서 갚으시려고 합니다. 부끄러운것이지요. 나머지 큰 사이다 하나, 작은 사이다 하나 사시며 지워진 장부를 보시고는 흐뭇해하십니다.
10시, 진천마을
오르막길에 있는 어르신 댁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무엇인가 싶었더니 마당 큰 대야에 붕어가 100마리가 넘게 있네요. 어제 불갑저수지 가서 어르신께서 잡아오신거랍니다. "우리 오빠야가 이만치나 잡았어~"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께서 연신 자랑하십니다. 주변에 얼마나 자랑을 하셨는지, 어떤분은 큰 대야에서 붕어를 양동이에 꽉 채워 2번이나 담아갔다고 하십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건 빨간 대야에 담긴 60센치는 넘어보이는 엄청큰 잉어 2마리. 이것도 같이 잡았다고하시며 오늘 읍에가서 엑기스 내린다고 합니다. 옆집 동생이 그렇게 자랑하고 있으니 부끄러우면서도 흐뭇해하고 있는 어르신의 알수 없는 오묘한 표정. 80넘은 어르신의 마음이 겉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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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 신성마을 아내바라기 어르신
매일 사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이동장터 올 때마다 배달을 해달라고 하십니다. 만날 때마다 하시는 이야기는 "내가 뭘 살지 몰러~ 물어봐야지~" 라고 하십니다. 집안에 살림과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내에게 허락받는 남자. 80이 가까워지도록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저 먼벌치서 오고 계시는 안사람. 부탄가스도 필요하시다고 하셔서 어르신은 2개를 이야기하셨지만, 말씀하시자마자 "아 뭘 2개나 사요~ 다쓰고 1개 사면 되지~" 라며 바로 한 소리 들으십니다. 필요한 것들 다 체크하시고 결제만 하시는 어르신. 아내를 향한 마음은 이런것인가 봅니다.
11시 20분, 삼산마을 콩나물 단골
차를 잠시 대고 이 집으로 가면 4마리가 넘는 강아지가 짖으면서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나중에가면 갈수록 반겨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강아지들. 암컷 한마리와 친해지니 나머지 숫컷들의 경계가 사그라 듭니다. 그렇게 지낸지 3개월이 넘다보니 이젠 암컷은 반가워 오는것이지만, 숫컷들은 아직도 경계합니다. 그런 와중 오늘은 숫컷 한마리도 제 품에 오게 됬으니 이제 이집안 강아지는 모두 내 편이 되겠다 싶습니다. 그렇게 콩나물 놓고 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 새끼 한마리 보입니다. 올해 태어난듯 싶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한 번 만져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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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30분, 청산마을, WWF 즐겨보는 어르신
헐크호건, 스팅 등 제 어릴적 추억의 스타입니다. 청산 회관 도착하니 어르신 자전거 한대 놓여져있습니다. 안에 가보니 어르신 홀로 WWF 보고 계십니다. 지난번도 보시더니, 이런것 좋아하세요? 라고 여쭤보니 재밌다고 하십니다. 다른 분들 오시나 싶나 여쭤보니 오겠지~ 하며 강냉이 쥐어주십니다.
14시 00분, 사동마을
항상 물건 살 때마다 가격을 물어보는 분 입니다. 그리고 골랐다가도 다시 내려놓고 다시 또 고르고를 반복합니다. 떄론 귀찮고, 때론 참 피곤합니다. 그녀가 고르는 그 순간의 값어치들이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도 그녀 입장에선 다르겠지요. 오늘도 주전부리 할 것들로 몇가지 고르고 갑니다.
"그래서 오늘 구입한거요 각각 얼마죠?" 저녁에 전화 온 이모님..
14시 20분, 초포마을 두부 단골 어르신
항상 두부 2모를 주문하시는 어르신, 오늘도 2모를 들고 약속의 장소로 갑니다. 세탁실. 세탁실 바닥에는 쇠밥그릇이 놓여져있고 그 위에 지폐 3장과 종이 하나가 있습니다. "중멸치 한나"
새롭게 구매를 하시고자 할 때는 늘 이렇게 메모를 추가로 남겨주십니다. 그리곤 기가막히게 돈을 딱딱 맞춰 놔주시지요. 얼굴 보지 않아도 이렇게 거래가 잘 될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14시 35분, 초포마을 베지밀 단골,
항상 갈 때마다 베지밀 1박스 사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오늘도 여전히 한박스. 요 몇주전부터는 주문건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알고보니 마을 안쪽에 사는 어르신의 주문을 함께 받아 사십니다. 어르신 댁으로 가기에는 너무나도 안쪽에 있어서 평상시에 물건을 사기어렵다고 하십니다. 위치를 보니, 어딜로 들어가야하는지도, 그리고 너무나도 멀리있는 집의 모습도, 어떻게 사시는지 걱정이 되곤 합니다. 지도로 확인해보니 주변 산과 논밭에 외딴집으로 덜렁 한채가 있어보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내부에 말씀드려 주간보호팀이 가보니 엄청 걱정할정도는 아니라고 이야기하시는 선생님. 그래도 언젠간 주간보호로 오셔야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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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50분, 문례마을 뉴페이스
문례마을은 외부사람들이 많이 와서 거주하고 있는 동네입니다. 그래서 주로 지역에서 잘 보지못하곤합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간혹 놀라곤합니다. 오늘도 우사가 있는 조합원 어르신 집 앞에 잠시 서있었는데, 저 앞에서 와달라고 손짓합니다. 지난번에 첫 거래 이후 3달만에 2번째 거래입니다. 이동점빵차가 신기한지 이거저거 보시더니 고등어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십니다. 더불어 우유까지. 지역 어르신들과는 다르게 날짜를 곰곰히 따져서 물건을 사십니다. 또 냉동 고등어는 일본산인지 아닌지도 여쭤보십니다.
"노르웨이에서 넘어왔어요."
사실 이제 태평양 바다는 원전으로 가득한 바다인데, 일본 앞바다던 노르웨이던 다 그 물을 먹고 자란 고등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해양수산물은 어떻게 먹어야할지 저도 막막합니다. 그 마음 공감하며 냉동 고등어 2손 넘겨드립니다. 주전부리 할것들도 여쭤보셔서 보리과자 추천해드리고, 우유 2팩 드리며 거래 끝납니다. 종종 이시간에 오니 시간 봐달라고 말씀드립니다.
15시 00분, 왕촌마을, 방문요양의 공백
항상 이 때가면 방문요양보호사와 함께 계시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오늘은 보이시지 않길래 신년 맞아 인사드리러 들어갔습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어르신, 뭔가 느낌이 묘해서 들어가니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시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집안에 온도는 16도. 온돌모드. 바닥에는 빨래 해야할 것들이 너저분하게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요양보호사가 3일동안은 오지 않는다고합니다. 어르신은 추워서 몸을 벌벌떨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답니다. 티비는 코드가 뽑혀져있어 뭔지 여쭤보니 티비가 안꺼져서 뽑아두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셋톱 전원 기능 버튼이 고장이 나서 꺼지지 않았습니다. 홀로 그 몇일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탁을 보니 오늘 방문한 면사무소 직원이 팥칼국수를 놓고갔다고 합니다.
침대에서 움직이기도 힘든 어르신, 요양보호사 없이 어떻게 생활을 하셨는지 깜깜합니다. 어르신은 오른쪽이 마비가 되어 눈도 잘 안보이고, 팔다리도 잘 못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할 수 있다며 괜찮다고 합니다. 누군가 새롭게 오는것도 불편하고 그저 빨리 죽기만을 바란다고 합니다. 그런 어르신이 몇달전까지만해도 집 뒤에 있는 나무를 자르고 가지치기를 하고 계시니... 어르신의 삶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르신께는 다음번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바로 신고를 해야한다고 말씀드리며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 회관에 들려 어르신 상황 말씀드리며 주말동안 집안을 살펴봐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5시 20분, 고스톱, 신천리 회관
한동안 열지 않았던 신천리 회관이 이제 계속 열고 있습니다. 온동네 분들 함께 모여 식사하고 고스톱치고 같이 모이는 모습이 좋습니다. 치매 예방에는 고스톱 만한것이 없으시다며. 고스톱에서 딴 돈으로 콩나물도 사십니다. 그리고 계신 어르신들은 각자 집에 들려 물건 놔달라는 부탁과 더불어 공병수거요청까지 한 번에 다 이야기해주십니다. 집으로 동행을 하지 않아도, 문이 열려있으니 믿고 알아서 주문하고 부탁해주십니다.
15시 30분, 고양이와 권사님.
항상 집 마당에가면 고양이가 4마리 넘게 있는집이 있습니다. 늘 들여다보는 집입니다. 교회 권사님이지만 신체적으로 괜찮은지도 걱정되는 집입니다. 오늘도 가니 집안에 누워계십니다. 안부를 확인하고 그러고 돌아옵니다. 어르신은 빈손으로 보내는 길이 미안하셨는지 마루까지 나와 손인사하고 보내주십니다. 오늘도 어르신이 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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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첫 이동장터,
오늘도 마을에 별 일이 없음을 확인하며 돌아옵니다. 물건 구매해주시는 어르신들 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잘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