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수도권은 오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한파특보까지 내려졌다.
겨울은 땅의 온기만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의 수온도 급격히 떨어져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우리 연안을 떠난다.
봄에 우리 바다를 찾았던 꽃게와 대하, 고등어, 갈치, 방어와 같은 난류성 어종들이 그렇다.
우리의 제철밥상과 친근한 이런 해산물들은
난류성인 동시에 먹이활동과 산란을 위해 근해와 외해를 오가는 회유성 어종이기도 하다.
봄에 따뜻한 해류를 따라 우리 바다를 찾았다가 겨울에 다시 먼바다로 나가는 회유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이 무렵이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줬던 난류성 어종들이 거의 자취를 감춘다.
어부들의 그물에도 먼바다로 이동하다가 드물게 잡힐 뿐이다.
하지만 이 시기가 난류성 어종들의 맛과 영양이 절정인 때다.
대개 봄부터 가을까지 산란을 마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왕성한 먹이활동을 통해 살과 지방이 잔뜩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바다를 찾는 난류성 어류 가운데 지금 제철의 정점인 물고기가 바로 방어다.
방어는 대형 회유성 물고기로 다 자라면 1.2m까지 이른다.
방어와 생김새와 생태가 유사한 어종으로 부시리와 잿방어가 있는데 모두 우리 바다의 진귀한 대형 생선들이다.
방어의 산란은 보통 2월~6월까지 이루어지는데 산란성기는 4,5월이다.
따라서 봄에 산란을 마친 방어는 여름 무렵 살이 물러지고 맛도 한없이 떨어진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면 다시 추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산란을 위해 살이 통통히 오른다.
그래서 늦가을부터 산란 직전인 한겨울까지가 방어의 제철이다.
►겨울을 나고 봄 산란을 위해 통통하게 제 몸을 살찌운 제철 대방어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바다의 생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해류가 하나 있는데
일명 쿠로시오 난류라는 바닷물의 흐름이다.
쿠로시오 난류는 봄부터 제주 남쪽 바다로부터 우리 동해로 올라와 한여름에는 함경도까지 치닫는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 차가운 한류의 기세에 눌러 제주 남쪽 바다를 거쳐 남태평양으로 빠진다.
방어는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이동한다.
한창 맛이 들어가는 11월 무렵에는 울진과 포항 등 경북 앞바다와 제주의 모슬포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남쪽 바다로 이동하는 도중에 동해 남부에서 일부 어획되기도 하고 모슬포 앞바다에서 주로 잡힌다.
►동도 트기 전부터 하루 종일 마라도 앞바다를 돌며 방어잡이에 한창인 어선들
모슬포항에서 어선을 타고 한 시간쯤 나가면 우리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가 있다.
이 마라도 가파도 앞바다가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방어가 머물며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해저 동굴도 많고 깊은 여가 잘 발달해 있어
상어 등의 천적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고 자리돔 등의 먹이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방어는 두세 달 이곳에 머물다가 겨울이 깊어가면 남태평양으로 흩어진다.
►모슬포 남자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선사하는 대물 방어
그래서 모슬포 남자들은 방어철이 되기를 가슴 설레며 기다린다.
대물방어가 선사하는 짜릿한 손맛을 잊을 수 없어서다.
거기다 겨울이면 붉은살생선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이
제철 방어를 먹으려 제주를 찾을 만큼 귀한 취급을 받아 돈이 제법 된다.
방어가 겨울 한철 모슬포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던 사람들도 겨울이면 방어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다.
►대물 방어와의 한판 승부 끝에 뜰채를 이용해 끌어올렸다
방어는 그물로도 잡지만 모슬포에서는 방어를 살려오기 위해 낚시를 이용해 잡는다.
방어는 고등어 오징어 자리돔 등의 소형 어류를 잘 먹어 낚시 미끼로도 이들 생선을 이용한다.
덩치가 작은 자리돔 미끼에는 6,7십cm급의 중형 방어가, 오징어 미끼에는 80cm 이상의 대방어가 주로 낚인다.
자리돔을 미끼로 쓰는 어선은 동이 트기 전부터 바다로 나가 자리돔을 잡고, 오징어 미끼는 미리 산오징어를 구입해 쓴다.
남태평양의 거센 파도와 싸우며 자리돔과 오징어를 미끼로 방어를 낚아 올리는 것이다.
►일본인뿐 아니라 우리 미식가들도 매료된 대표적 붉은살생선 방어를 부위별로 썰었다
세계적으로 생선회를 제일 많이 먹기로 유명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회를 먹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정착성 어종인 넙치, 조피볼락, 농어, 돔 등 흰살생선을 좋아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회유성 어종인 참치나 방어 등 붉은살생선의 회를 즐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펄떡펄떡 뛰는 활어를 바로 잡은 활어회를 즐기는 반면
일본인들은 즉살하여 일정기간 숙성시킨 선어회를 좋아한다.
흰살생선의 활어회는 맛이 담백하고 씹는 맛이 뛰어나고
붉은살생선의 선어회는 살이 물러 씹는 맛은 떨어지지만 감칠맛이 농후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씹는 맛으로 회를 먹고, 일본인들은 혀에 느껴지는 생선살의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제철을 맞아 기름이 잔뜩 올라 고소한 풍미에 식감도 좋은 대방어회
하지만 제철 방어는 활어회가 아닌 선어회라도 육질의 탄력이 좋아 탱글탱글 씹는 맛도 아주 좋다.
지방이 잔뜩 올라 고소한 맛에 붉은살생선 특유의 감칠맛도 좋고
거기다 탱탱한 살을 씹는 맛도 좋으니 회를 먹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식 활어회와 일본식 선어회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제철 방어회다.
►눈처럼 하얗고 곱게 지방이 퍼진 대방어 배꼽살 부위
방어와 삼치, 대구 같은 생선은 클수록 맛이 좋다.
그리고 커야만 다양한 부위별 맛을 볼 수 있다.
보통 10kg 이상의 특대 방어는 참치처럼 눈밑살도 도려내고
등살과 꼬릿살, 아가미 근처의 가맛살, 배꼽살 등 여러 부위로 썰어낸다.
등살과 꼬리살은 근육이 많아 탱글탱글 담백하고, 가맛살과 배꼽살은 지방이 많아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처음은 담백한 부위부터 시작해서 기름진 부위로 넘어가야 제철 대방어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대방어 맛의 절정이라는 가맛살 부위
꼭 현지에 가지 않더라도 제철 대방어 맛을 볼 수 있다.
대도시의 수산시장에 가면 대방어를 분할하여 인원에 맞게 회를 떠주는 집들이 있다.
그리고 모슬포 방어 중매인 사무실에서는 택배로도 방어를 판매하기도 한다.
전화주문을 하면 회로 썰거나 포만 떠서, 혹은 피만 빼서 원하는 방식대로 보내준다.
다만 대방어는 워낙 사이즈가 크고, 그런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요즘 모슬포 현지에서 방어 1키로당 대략 2~3만 원 선이다.
따라서 식구가 단출한 가정에서 대방어를 한 마리 통째로 주문하기는 어렵다.
몇몇 지인들, 혹은 이웃들과 어울려 방어철이 지나기 전에 방어 파티를 한 번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