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만큼 고요하다. 자신의 말을 내려놓은 산이 아니면 우리는 어디서 침묵을 보는가. 저 맑은 침묵, 참으로 고요하기도 해라. 산은 저리 무엇을 강요하거나 종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무들은 안다. 알아서 구순금족(九旬禁足)에 들어간다. 이제 당분간 바람이 와도 내줄 말은 없다. 비가 찾아와도 함께 나눌 말이 없다. 나무들은 이미 제 말의 혀를 모두 떼어 버렸다.
- ▲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암 170x125cm, 한지에 수묵채색
- ▲ 북한산 형제봉과 북악 123x68cm, 한지에 수묵
- 전심사 길목 비를 먹은 향기로운 나무들
산으로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만큼 산의 침묵이 환해졌다. 북한산둘레길 ‘평창마을길’이 지나는 구기동 산자락 입구로 들어선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간밤에 단비가 내렸다. 여전히 전국적으로 가뭄이 극심하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와 댐들을 볼 때마다 가슴도 함께 졸아들고, 빈난해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밥을 먹고 살기보다는 비를 먹고 산다. 흙도 물도 비를 먹고 산다. 비가 만물의 밥이다.
참나무가 서있는 비탈길을 오른다. 풍기는 향미가 구수하다. 골목길을 돌아 오르면 전심사다. 고즈넉하다. 풍경마저도 고요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길로 들어선다. 탕춘대능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족두리봉이 단아하다. 곧장 능선에 올라붙는다. 인왕산과 안산이 이룬 풍치가 환하다. 비에 젖은 소나무는 검고, 떨어진 솔잎은 붉다. 이어 유령바위가 나온다. 무섭기보다는 웃고 있는 모습이어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남서쪽 북한산의 정경이 그윽하다. 이따금씩 오가는 구름 사이로 향로봉이 열리고, 비봉이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훤칠한 구기능선 암봉들은 한 폭의 산수화 중심에 들었다. 사자능선은 현재 비법정탐방로다. 사람의 발길 대신 간밤에 내린 비로 산을 내려간 빗물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언제나 맨발인 물의 발자국은 부드럽고 둥글다. 흘러간 물의 뒤꿈치가 보인다.
전망이 좋은 첫 번째 바위봉우리에 오른다. 건너편 백석동천(白石洞天) 백사실계곡에도 구름이 소요하고 있다. 세상에 물들지 않는 서울의 별서(別墅)다. 힘들고 지쳤을 때 문득 찾아가는 곳이다. 팔각정으로 이어진 북악스카이웨이가 서울 하늘에 길게 마루금을 그었다.
- ▲ 초겨울 산길 47x60cm, 한지에 수묵채색
- ▲ 북한산 사자봉 123x68cm, 한지에 수묵채색
- 사자봉에서 보는 보현봉과 문수봉의 위용
널찍한 마당바위에 닿는다. 사자능선의 수려한 전경을 감상하는 자리다. 산은 속도를 내는 곳이 아니라 늦추는 곳이다. 기록을 재며 시합하듯 빨리 걷기만 하면 산은 아무 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 산과 하나를 꿈꾸는 진정한 자연인, 본원적 산인이 되고자 하는 인식 없이는 산 따로 사람 따로 일뿐이다.
이어지는 숲길 솔향기가 맑다. 산등성이를 넘기 전 쉬어가기 좋은 너럭바위에 두 소나무가 정겹게 마주보고 있다. 하나는 곧은 솔이고, 다른 하나는 굽은 솔이다. 곧음과 굽음을 보며 서로의 성정을 다스려 나가는 부부소나무다. 사는 것이란 저와 같은 것이 아니냐며 비봉이 흐뭇한 표정이다. 이윽고 좌선대에 도착한다. 꼭 한 사람 앉을 만한 바위가 솔숲에 단처럼 놓여 있다. 앉아보면 안다. 눈이 열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숲길은 깊어지고 전망은 높아진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면 암사자봉과 숫사자봉이 조망되는 위치에 이른다. 봉우리에 도열한 소나무들이 영락없는 사자의 갈기 모양이다. 구름이 시시각각 몰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좀처럼 모습을 다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사자봉의 위용을 숨기지 못한다. 오른쪽으로는 형제봉능선과 그 뒤쪽으로 칼바위능선이 중첩해 있다. 미끄럽고 거친 암릉을 우회하여 사자봉으로 향한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서 산이 구름을 벗고 있다. 거대한 바위 요새를 연상케 하는 천험의 보현봉이 당황스러울 만큼 너무 가까이 와 있다. 가만히 보면 동(動)이요, 다시 보면 부동(不動)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形)과 상(象)이 유에서 무로, 다시 무에서 유로 변주되는 모습이 현현묘묘(玄玄妙妙)할 뿐이다.
암사자봉에서는 형제봉능선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북악스카이웨이를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고, 승가사가 잘 보인다. 숫사자봉에서는 비봉에서 사모바위를 거쳐 문수봉과 대남문으로 이어진 유려한 능선을 조망할 수 있으며, 문수사를 건너다볼 수 있다. 암사자봉 정상 부근에 반원형의 커다란 ‘할렐루야바위’가 있다. 보현봉은 북한산의 기가 가장 센 곳이라 하여 과거에 무속인과 일부 종교단체의 기도처로 몸살을 앓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흔적이라 하겠다.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보현봉에 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지리를 살피는 데는 이만 한 곳이 없다. 서울의 사대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남쪽으로는 보현봉의 맥이 북악으로 곧장 흘러들어간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경복궁이 명당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면 근정전 너머로 보현봉이 우뚝 솟아 있다. 보현봉과 일직선으로 근정전을 배치한 것을 보아도 보현봉은 경복궁의 조산이자 서울의 주봉 격이다.
하지만 이 보현봉의 산줄기가 도성으로 이어지는 도읍 터의 입수목인 구준봉 뒤쪽의 고개가 허약하여 흙으로 보충해야 했다. 하여 보토현(補土峴)이라 했다. 현재의 북악터널이 지나는 산마루다. 도성의 지기(地氣)를 위해 금장(禁葬)과 더불어 벌목과 벌석(伐石) 등을 금하는 경계를 정한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그린벨트의 효시인 셈이다. 여하튼 도심은 물론 장엄한 북한산의 풍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산줄기가 도봉산 너머까지 준마로 뻗쳤다. 다시 보아도 이만 한 전망이 드물다. 잠시 산 정상부를 살펴본다. 누군가 바위에 새겨놓은 글씨가 있다. 무엇인지는 비밀로 남겨둔다. 언젠가 개방되는 날 그때 확인해 보시라. 사람이 그토록 열망하고, 아파하면서도 다시 꿈꾸는 그것이 있다.
- ▲ 팥배나무 열매 47x60cm, 한지에 수묵채색
- ▲ 무상(無常) 51x67cm, 한지에 수묵채색
- 산을 내려가는 청담약수와 동령폭포
일선사(一禪寺)를 거쳐 산을 내려간다. 일선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보현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렇다 할 문헌이나 자료가 없어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한때 고은 시인이 승려로 있었다는 사실 정도다. 돌계단을 따라 청담약수터로 향한다. 구절초도 쑥부쟁이도 모두 떠난 숲이 한가하다. 약수는 북한산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물맛이 좋다. 약수터 지킴이인 큰 왕버들이 이 물을 먹고 장수하고 있다. 물을 따라 산 아래로 향한다.
동령폭포를 지난다. 평창계곡에 있는 동령폭포는 북한산 4대 폭포의 하나다. 지독한 가뭄과 갈수기가 겹쳐 물은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저 폭포가 시원스런 폭음(瀑音)을 낼 때 이 땅의 근심은 사라지고 들판에 풍요와 기쁨이 일렁일 것이다. 지금은 회색빛 적요의 시간, 내내 적조하다. 적막하다. 이 적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그래도 사계절은 운행되고 만물은 자라지 않느냐.”
산은 성인의 말을 안다. 천명(天命)을 안다. 그렇지 않고야 이 산이 그리도 웅장할 수 없다. 고요가 이리도 깊을 수 없다. 산은 천명을 알아서 묵묵하고, 묵묵하여 견딘다. 견뎌서 보여 주고, 견뎌서 들려 준다. 그걸 듣고 보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분투하고 노력했던 폭포가 지금 저리 낮게 흐르는 것도 그 천명을 듣기 위함이다. 깊은 침묵만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폭포는 안다. 이제 겨울이 깊어질 것이다. 빗방울도 깊어지면 눈발이 된다. 새로 시작된 이 계절 우리 또한 깊어질 때 모두가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예상을 뒤엎고 첫눈이 폴폴 내릴 것이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우리를 덮치며 이별 끝에 찾아오는 눈물 같은 사랑처럼.
첫댓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수 있다.
좋은 글 그림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