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K-라면에 빠져들다
(전 선 재)
한류의 인기가 다방면에 걸쳐서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영화, 드라마, K-POP, 한복 등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맛을 통해서 한국음식의 진면모와 그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라멘의 본 고장’인 일본 현지에서 한국라면의 맛을 선보이고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예능프로 ‘형제라면’이 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을 왜 굳이 일본에 가서 알리겠다는 건지 에노시마 현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프로그램은 세 명의 연예인들이 진행하였다. 왕년에 씨름계를 제패하고 연예계로 전환한 50대의 K, 가수 겸 연기자인 30대의 L, 20대의 젊은 연기자 B 등 각기 상이한 세대를 대표하는 특이한 조합이다. 예능프로이기 때문에 요리 전문가나 유명 세프가 아니라 연예인들을 대거 등장시킨 것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선정된 메뉴는 동해물라면, 진국황태라면, 맛있제육라면의 세 가지로 시작했다. 손님들이 식사 후에 맛에 대한 평가를 해서 그 결과에 따라 한 표라도 ‘아쉽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 메뉴는 하차하고 다음날은 새 레시피의 라면을 준비해야 한다. 예능프로의 재미와 진행자들의 열성을 위해 좀 가혹한 운영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극적인 긴장감을 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날 손님은 대략 30여명으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었다. 그중에는 식당이 바뀐 줄도 모르고 예전부터 오셨던 분들이 있고, 라멘을 좋아하는 어르신들, 서퍼를 즐기던 젊은 청년들, K-POP을 좋아하는 여대생 그리고 한국 관광객과 가족들도 있었다. 예능프로라 연예인들이 진행하긴 하지만 일본어 수준이 미천하였다. 스탶 중 한 사람만이 겨우 생활화화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메모노트나 번역기를 동원하고 제스처와 눈치로 위기를 넘기는 상황이 불안함마저 들었다.
메뉴에 대한 조리는 어느 정도 연습이 된 것 같으나 한꺼번에 다수의 주문이 몰릴 경우 대처능력이 미숙하였다. 일행이면서 처음과 나중의 식사간격이 너무 커서 기다리다 가면 어쩌나 보는 사람이 오히려 좌불안석이었다.
라면은 완전히 국산만을 사용하였다. 분식점 수준의 라면이 아니라 명칭에 비견대는 상당히 고급라면이다. 동해물라면은 새우 문어 조개 등 해물이 추가되고, 진국황태라면은 황태 외에 콩나물 부추 양파가, 맛있제육라면은 고기볶음 외에 밥, 계란물이 추가되었다. 고명으로 파채 부추 홍고추 볶은깨를 올려 예쁘고 정갈하게 보일 수 있게 하였다. 고객 대부분이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국물까지도 삭삭 비워서 보여주었다.
첫날의 평가결과는 30표 중에 27표가 ‘맛있다‘고 하였으나 2메뉴에 3표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진국황태라면’’과 ‘맛있제육라면’이 하차하고 ‘동해물라면’ 하나만 살아남았다. 고객들의 평가는 의외로 냉정하였다. 더불어 예능본부의 평가도 비정하리만큼 가혹하였다.
둘째 날은 전일 살아남은 ‘동해물라면’과 새로 추가한 ‘전주비빔라면’과 창작 레시피인 ‘갈비카레라면’이 후속 메뉴로 등장하였다.
‘전주비빔라면’은 대표적인 K-Food인 전주비빔밥을 오마주하였다. 삶은 라면발 위에 고기와 버섯, 나물 등 비빔밥에 들어가는 6가지를 고명으로 올리고 가운데 계란 노른자를 살포시 얹어 눈으로 보는 재미까지 잡았다. 고추장과 매실, 참기름으로 한국 고유의 매콤 새콤 구수함을 냈다. ‘갈비카레라면’은 카레의 진한 풍미와 소고기 육즙을 품은 라면으로 덤으로 공기밥까지 제공하였다.
고객 중에는 어제 오셨던 분이 장모님을 모시고 단골 고객으로 등극하였고, 전 가게의 단골이던 여자 분이 찾아와 이전 식당에서도 라멘을 좋아 했는데 한국라면은 처음이라며 은근히 긴장을 고조시켰다.
“한국 드라마에서 냄비 뚜껑에 음식을 덜어먹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즉석에서 냄비뚜껑을 건네 실제로 체험케 하였다. “한국에 여행 온 것 같아요” 옆 테이블의 손님들도 “이곳은 진짜 한국이에요. 한국말이 아름답고 한국 사람들의 마음씨가 착하고 훈훈한 정이 있다”고 거들었다.
일본 라멘 명장들이 찾아오면서 순간적으로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이분들은 에노시마의 대표적인 라멘 장인으로 시장조사를 할 때 만나 라멘에 대해서 조언을 주셨던 분들이다. 주문한 동해물라면과 갈비카레라면을 만들어 드리면서 라면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부탁하였다. 명장들은 “인스턴트라면으로 이렇게 깊은 맛을 낼 수 있는가?”라며 “놀랍다, 맛이 훌륭하다“고 극찬을 하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형제팀은 일본 현지, 라멘의 명장들 앞에서도 K-라면의 깊은 맛을 알리며 안도의 숨과 함께 흐뭇한 시간이 되었다.
여자 손님 한분이 3메뉴에 이어 2메뉴를 추가 주문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K-스탶의 캐릭터인 ‘6봉’(한꺼번에 라면 6그릇을 먹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자 바로 1그릇을 더 추가하여 ‘6봉’에 도전하는 의욕을 보였다. 여자 분은 라면이 나오는 대로 6그릇을 모두 먹어치우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사실은 더 먹고 싶은데, 오늘은 옷이 너무 타이트해서 그만 둔 거예요”
일본하면 떠오르는 말은 ‘가깝지만 먼 나라’로 상징되어 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 조금씩은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민간차원이나 문화적인 차원에서만이라도 상호 호혜적으로 발전하려는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우선 상호와 메뉴의 명칭이 한국적인 취향과 자주성을 보여주었다. 일본 땅이지만 일본어나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한글로 표기된 상호를 걸어놓았고, 메뉴도 동해물, 진국황태, 맛있제육이라는 접두어(?)를 사용, 명칭을 통해 한국의 주체성을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함이나 톡톡 튀는 모습은 두 나라 모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면을 먹을 때 면치기하는 모습과 소리가 흡사하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핸폰으로 바로 확인하고 현장을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저장하는 등 MZ세대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일본인들은 본래 국물 음식을 먹을 때 한손으로 그릇을 들어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긁어 넣듯이 먹고 숟가락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숟가락을 사용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일본인들도 이제는 수저를 같이 사용함으로써 식습관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증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3년 일본으로부터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과 시설을 들여와 굶주렸던 서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60여년이 지난 현재 연간 약 10억 달러를 수출하는 효자식품이 되었다. 라멘의 본고장인 일본현지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한국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잡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다. 한국과 일본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기는 하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애증의 관계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동북아, 나아가서는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상생하면서 협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형제라면’이라는 예능프로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같이 섞여 있으니 누가 한국인이고 누가 일본인인지 거의 구별할 수가 없다. 일본인들 중에 일부 혐한 세력이 있기는 하나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도 있음은 고무적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서로 상대국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이미 상당한 분야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