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꽃
학생들이 한 주간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이유를 나눴어요. <새로운 길>과 <내일은 없다> 두 시를 골랐어요.
<새로운 길>
환 : 이 길은 단순히 '길'일지 몰라도 나의 길,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말해준다. 지내온 시간들도 비슷하지만 새롭고 다른 길,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새들이 날고... 그렇게 길을 넘어 숲으로 마을로 가자는 시 같다.
재인 :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계속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고. 같은 배움을 하고, 같은 공간, 같은 사람이 지루할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안에선 새로운 생각이 들고, 새로운 날씨이고, 새로운 것들이 많다. 똑같아보여도 늘 같지 않고, 새롭게 살아간다. 지루하다 생각하지 말고 새롭게 살고 싶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나도 내 길을 새롭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없다>
지현 : 이 시가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이유는 뭔가 새날을 찾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나도 하기 싫거나 힘들 때 아... 내일이 빨리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오늘이 소중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지내고 싶고 지내야 겠다.
이준 : 내일은 없다는 게 뭘까? 내일을 기다리다 자고 일어나면 오늘이다. 내일은 없는 걸까?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긴 한데... 오늘은 어제의 내일일 뿐인가. 이 시는 내일을 기다리기 보다 현실을 잘 살자는 이야기 같다. 굉장히 역설적인데 맞는 말이다.
상준 : 윤동주 시인은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시에서도 그런 점이 들어난다. 힘들어도 시로 잘 풀어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힘들어도 꾸준히 시를 썼다는 게 대단했다.
*
윤동주 시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시인은 깨끗하고 쉬운 우리말로 시를 쓰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시를 동무처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의 말글을 없애고, 이름까지도 버려야했던 시기에 우리말을 지킨 다는 것은 큰 용기였어요. 슬픔과 절망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일제강점기, 그 시절로 돌아가 청년이자 선배인 윤동주 형, 오빠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5.10.)
〈새로운 길〉은 윤동주가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쓴 시로, 새내기다운 설렘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의 내용은 단순하다. 화자가 내를 건너고 고개를 넘어서 숲과 마을에 간다. 이 길은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길이다. 그 길에서 민들레와 까치, 아가씨와 바람을 만난다.
‘나’가 가는 길은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내를 건너고 고개를 넘어야 하는 똑같은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다. 오늘도 새롭고 내일도 새롭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이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 9.)
이 시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슬픈 모습을 흰색 이미지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흰 수건을 두른 검은 머리. 먹고살기 위해 수건을 동여맨 모습이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발이 거칠어진다. 흰 저고리와 치마는 슬픈 몸집을 가린다. 가난하여 제대로 먹지 못한 조선 여인의 허리는 가늘다. 이 시가 슬픈 까닭은 우리 민족의 삶이 거칠고 슬프고 가늘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우리 민족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이 시에 담겨 있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1938. 9. 15.)
화자는 아우와 밤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달빛 서린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인상을 시로 썼다.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앳되고 붉은 아우의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려 있다. 싸늘한 달은 앳된 아우를 좀처럼 봐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를 싸늘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형의 질문에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해맑게 대답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암울한 시대라는 현실이 형을 더 슬프게 한다. 이 아이가 부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
*설운 : ‘설익은’ 혹은 ‘서러운’ *서리다 : 수증기가 찬 기운을 받아 물방울을 지어 엉기다.
2학년 때 윤동주는 기숙사에서 나와 하숙을 한다. 이 시기에 우리말 문예지인 《문장》이 창간되었고 많은 시인이 시집을 출판했다. 윤동주는 이런 시집들을 읽으며 시를 쓴다. 〈자화상〉, 〈투르게네프의 언덕〉, 〈소년〉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연희전문학교 3학년인 1940년에는 한 해 끝자락인 12월에 쓴 〈팔복〉, 〈위로〉, 〈병원〉 이렇게 3편의 시만 남긴다. 시를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이때 평생의 친구인 정병욱을 만난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1939년 11월 10일, 일제는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 – 창씨개명령’이라는 악법을 내놓고,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이렇게 일제가 독을 품고 설쳐 대던 무렵게 ‘자화상’이란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자화상이란 ‘스스로 자기 얼굴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1939년 11월 10일, 그때 내 얼굴을 내가 그렸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서정홍 농부님
이 사나이(시인)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몇 번을 들여다봐도 스스로가 미워지고 스스로 가엾어져서 한참을 서성거립니다.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으로 온 세상이 피비린대로 물들 때, 시인은 어찌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부끄럽고 가엾은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봅니다. - 서정홍 농부님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1940. 12.)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자선 시집을 내고 싶어 했으며, 시집 제목을 ‘ㅂㅇ/병원’으로 삼고 싶어 했다.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는 동주의 이야기는 왜 이 시의 제목이 병원인지를 추측하게 한다. 병원 뒤뜰 살구나무 아래 젊은 여자가 누워 있다. 흰옷을 입은 여자는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다리가 하얀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던 듯하다. 여자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나비조차 찾아오지 않지만 이제는 슬프지도 않다.
여자처럼 ‘나’도 아프다. 그런데도 늙은 의사는 병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화를 낼 수도 없다. 참는 수밖에 없다. ‘나’의 병 또한 젊은 여자처럼 가슴앓이일지도 모른다. 식민지 젊은이의 가슴앓이. 그래서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누워서 그 여자와 자신의 병이 낫기를 소망한다. 동병상련의 마음. 타자의 아픔을 공유하는 마음. 모두가 아픈 이 시대에서, 세상천지가 병원 같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같은 자리에 누워보는 연대의 마음이 아닐까.
3학년 때 다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4학년 때는 친구 정병욱과 하숙을 한다. 이때 16편의 시를 쓴다. 〈눈 오는 지도〉, 〈십자가〉, 〈별 헤는 밤〉 등이 이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졸업 기념으로 시집을 내려고 할 때 서문처럼 쓴 〈서시〉도 이때 쓰였다. 윤동주는 졸업 기념으로 자선 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내려 했으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내지 못하게 된다. 이때 3부를 필사하여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한 부는 은사인 이양하에게, 다른 한 부는 정병욱에게 주었다. 정병욱이 잘 보관해둔 덕분에 지금 우리가 윤동주의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11.5.)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드러내 놓고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쓸쓸하게 살다 간 윤동주 시인. 그 부끄러움을 달래기 위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다 간 윤동주 시인. - 서정홍 농부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1941. 11. 20.)
이 시는 윤동주가 시집을 내기 위해 서문처럼 쓴 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으나 유고시집이 나오면서 ‘서시’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시는 시인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소망하는 화자. 그래서 잎새를 흔드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화자. 지독히도 순수하고자 하는 화자의 자기 성찰이 아프다.
죽어가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것들이다. 힘 없는 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연대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은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시인의 삶을 괴롭게 한다. 별을 노래하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조차 힘들게 하는 시대이다.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한다.
<간>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1941. 11. 29.)
이 시는 우리나라 <토끼전>과 서양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절묘하게 엮어 풀어나간 작품이다. <토끼전>은 죽을 병에 걸린 용왕이 나으려면 토끼 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거북이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다. 죽을 위험에 처한 토끼는 지혜를 발휘해 간을 산에 놓고 왔다는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다. 이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는다.
윤동주는 두 이야기에 나오는 간을 절묘하게 연결한다. 용궁에서 겨우 살아온 토끼는 습한 간을 바위에 말린다. 간을 말리는 햇빛 바른 바위가 있는 산이 곧 코카서스 산이 된다.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 간을 쪼아 먹는 곳, 그러니 둘레를 빙빙 돌며 간을 잘 지켜야 한다.
독수리는 매일 프로메테우스 간을 쪼아 먹는다.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로 인해 고통받고, 독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행동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나는 여위어가지만, 내 간을 쪼아먹는 독수리는 살쪄서 나를 일깨우고 각성하게 한다.
제우스의 명령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주었던 프로메테우스. 그의 행동은 인간에게는 축복이었으나 자신에게는 영원한 고통이자 희생이었다. 그래서 화자는 다시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은 야위더라도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무거운 죄를 매달고 바닷속으로 침전하더라도 그 희생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다짐한다.
* 둘러리 : 둘레 * 침전하다 : 액체 밑바닥에 가라앉다. * 시름 : 근심과 걱정
윤동주는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대학을 졸업했다. 1942년 스물여섯 살에 윤동주는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는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한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유학을 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으로 가는 데 필요한 도항증명서도 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오쥬우’가 되었다. 당시 릿쿄대학은 전시라는 이유로 단발령을 강요하는 등 군국주의가 횡행했다. 1942년 1월 24일에 쓴 〈참회록〉은 창씨개명의 고통을 표현한 시다. 이 시기에 쓴 〈쉽게 씌어진 시〉 또한 일본 유학 동안 ‘홀로 침전하는’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성찰하는 시다.
윤동주는 그가 몸소 겪고 있던 그 처참하고 치욕적인 시대상황에 절망했다. 그는 한민족의 언어와 글을 갈고 닦을 것을 그의 필생의 목표로 정했고, 거기에다 온 심령을 기울여온 문화인이었다. 그런데 이미 민족의 말을 빼앗기고 글을 빼앗긴 데다가, 이제는 겨우 남은 껍데기였던 성과 이름마저 벗기우고 빼앗기고 있다. 채찍 밑에 엎드린 어린 양처럼, 또는 노예처럼, 그 잔인하고 사악한 폭력에 굴복하고 있는 무력한 자신과 자신의 동족을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을까! _<윤동주 평전>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942.1.24.)
참회는 부끄러워하여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는 이 시는 그 참회의 도구로 거울을 쓴다. 구리거울은 <자화상>에서 우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더러운 녹이 낀 구리거울은 빼앗긴 조선 왕조 모습 같다. 그런 거울 속에 화자의 얼굴이 있다.
만 24년 1개월, 살아온 삶 전부를 참회한다. 기쁨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참회한다. 제대로 살지 못한 삶을 참회한다. 그러나 이 참회록은 오늘로 끝이 아니다. 나라가 해방되는 즐거운 날 또 참회록을 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썼던 오늘의 참회를 다시 참회해야 한다. 무기력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해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참회해야 한다.
윤동주는 이 시를 쓰고 닷새 후에 창씨개명계를 제출한다.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부끄러움을 이 시로 표현한 듯하다. 이 참회는 다시 해방되는 날 부끄러운 고백이 될 것을 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한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참회한다. 참회하면서 온몸으로 거울을 닦는다.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그렇다! 부끄럼이란 것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의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럼에 마주서자면 그의 전 존재, 그의 전 중량이 필요하다._<윤동주 평전>
↓이후에는, 돌아가며 읽고 싶은 시 낭독하고, 글도 함께 읽었어요.
다음 윤동주 시인 배움 때까지 마음에 울림이 있는 시 필사하고, 감상평을 써와요. 그림과 노래 시 등 다양하게 해와도 좋아요^^
말본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의 네번째 꼭지,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첫번째 시간이었어요.
1. 잘못 쓰는 말을 왜 돌아보는가?
우리의 얼과 마음을 담은 말과 글, 어떻게 써야할까요?
- 잘 알아들을 수 있게끔 써야 합니다.
- 옳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 슬기롭고 착하게 써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말투로 대하고 있나요? 동무의 태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동무를 어떻게 대하고 있지? 생각해보며 말하고 쓰는 것이 슬기롭고 착한 말과 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상자에 담아."랑 "이 박스에 담아."를 놓고 본다면, "이 상자에 담아."로 써야 알맞고 올바르지만, "이 박스에 담아."라 말하는 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나 스스로 즐거이 옳고 바르게 말하면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꿈을 빝내는 길에서 함께할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입니다.
2. 갖가지 한자말
우리가 쓰는 말글 중에는 갖가지 한자말이 있어요. 갖가지 한자말안에 담겨있는 우리말 뜻을 헤아려보니 참 좋았어요.
우리말을 쓸 때, 우리 얼이 느껴집니다. 더 정겹고 따뜻합니다. 우리말을 배울 수록, 우리 겨레가 마음 나눌 말글이 우리말임을 느껴요.
그 중 두 가지를 꼽아볼까요?
- 열심 :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열심히 공부하다" 라는 말은 "힘껏/힘써/애써/온힘 바쳐/땀흘려/바지런히 배우다."로 고쳐쓸 수 있어요.
“열심히 해봐.” 와 “바지런히 해봐.” 는 어떻게 달리 들리나요? 어떤 낱말이 더 와 닿나요?
- 이해 :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이해하기 어렵다" 라는 말은 "알기/헤아리기/받아들이기/깨닫기 어렵다. 아리송하다. 알쏭달쏭하다."로 고쳐쓸 수 있지요.
“날 이해해줘.”보다 “날 좀 알아줘”, “내 마음을 헤아려줘”가 더 정겹게 들리지 않나요?
배움책 곳곳에 있는 낯선 낱말 살피고, '바르다'와 '옳다'에 대해서도 알아봤어요.
3. ‘바르다’와 ‘옳다’
이들은 모두 ‘반듯하다’와 연결된 낱말이다. 객관적으로 확립된 규범에 맞고 안 맞고에 따라서 ‘바르고 그름’을 따진다. 이에 비해 ‘옳다’는 어떤 가치 체계에 들어맞음을 의미한다. 그 가치 체계에 들어맞으면 옳은 것이고 그 가치 체계에 맞지 않으면 그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옳다’는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4. 재미로 살펴보는 우리말 어원
- 꼬드기다
‘남의 마음을 부추겨 움직이게 하다’라는 뜻이다. 연날리기는 겨울철에 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연을 날릴 때 연줄을 잡아 젖혀 연이 높이 날아오르도록 하는 기술을 가리켜 ‘꼬드긴다’고 하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 나발거리다
‘말을 수다스럽게 지껄이다’라는 뜻이다. 나발은 쇠붙이로 만든 긴 대롱처럼 생긴 옛 관악기로, 위는 가늘고 끝이 퍼진 모양이다. 여러 사람에게 신호를 주는 데 썼다. 원래는 ‘나팔’에서 온 말로,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팔’과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물건이다. 나발 소리가 크고 시끄럽다고 해서 흔히 ‘마구 떠벌리는, 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구경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다’의 ‘나발’이 그런 경우이다.
다음주까지는 동무에게 고운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줘요!
동무의 이름에 담긴 뜻을 녹여도 되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우리말 이름을 새로 지어주어도 좋아요^^
환→상준→서현→재인→이준→지현
첫댓글 3학년 학생들과도 윤동주 삶과 시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 삶의 바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꽃피워진 시에 마음에 머물고 먹먹해지기도 해요.
즐거운 공부 이어가며, 푸른이들 저마다 지어갈
'새로운 길'에도 좋은 밑거름 되길 바랍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