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소(無名簫)] 무림화 사마연(武林花 司馬燕)···(1)
사마연은 거울을 다시 한 번 봤다.
차 한 잔 마실 시각에 거울을 든 횟수는 열 번도 넘었다.
(정말 신지기인의 말씀처럼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나 봐. 내가 이렇게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
처음엔 의식도 못하고 거울을 들었었고
, 이젠 의식하면서도 내려놓지 못 하는 지경이니….)
사마연은 거울을 내려놓았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다만 예전에는 늘 밝았었는데 요즈음
거울 속에서 만나는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당지연 낭자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하잖아?
그래도 좋아서 같이 다니는 걸 보면 그는
수심이 깃든 얼굴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괜찮아 사마연. 주눅들지마!!)
이빨을 한 번 꼭 깨물고서 사마연은 방을 나섰다.
진우명이 신지기인의 방에 불려갔다는 걸 듣고서
반 시진 가까이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용기없는 자는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그런 결론(結論).
"아니 우리 아가씨께서 이 노인네를 위해
손수 차를 끓여 오시고…이거 영광이외다."
신지기인은 사마연에게만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고,
당지연은 뜻밖의 사마연의 등장에 조금 긴장하는 듯싶었고
, 진우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 그대로였다.
"요즘 맹내(盟內)에 흉사(凶事)가 많이 생겼다고 들어서요.
심려가 많으시죠?"
사마연이 신지기인 앞에 놓은 찻잔에
주전자의 물을 부으며 말했다.
"글쎄 칠기(七奇) 중에 삼기(三奇)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됐으니 심려가 없다면야 거짓이겠지요."
"허나 신지기인께서는 범인을 아실 거 아니에요?"
사마연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지기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미 언니도 신지기인께서는 범인을
아시는 듯 한데 말씀을 않으신다고…."
당지연이었다. 한 주일 사이에 불검기인과 환허기인,
그리고 무영기인을 차례로 잃은 뒤 기인피습사건은 사라진 듯했다.
경비도 훨씬 강화됐고, 밀착경호까지 벌인 까닭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인들 스스로도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때문이었다.
자연히 회의 분위기도 무거워졌고,
대처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천면기인은 여전히 묵언상태로 칩거 중이었고,
만독기인은 현현관(玄玄關)의 독실(毒室)에
파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럴 때 그 소문이 퍼졌다. '범인의 정체를
신지기인은 알고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다'는.
소문은 또한 여러 소문을 따라 낳았다.
범인이 무림칠기의 일인이기 때문에 신지기인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사실 범인은
신지기인 그 자신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무심코 던진 당지연의 그말,
'연미 언니도 신지기인께서는 범인을 아시는 듯
한데 말씀을 않으신다고…'란 그 말이 던진 파장은 컸다.
"만약 내가 지연 낭자에게 진우명이 범인(犯人)이라고 말하면…
그 말을 믿을 거요?"
담담한 음성으로 신지기인이 당지연에게 물었다.
당지연이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신지기인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믿지 않을 겁니다.
기인께서 무언가 오해를 하셨다고 생각할 겁니다."
신지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전히 담담한 음성이었다.
"만약 내가 진우명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증거(證據)를 들이댄다면 어쩌시겠소?"
당지연이 더욱 당황해서 신지기인을 쳐다봤다.
[무명소(無名簫)]321-무림화 사마연(武林花 司馬燕)···(2)
신지기인을 바라보던 당지연의 시선이
바로 곁에 앉아 있는 진우명에게 옮겨갔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인 채 진우명은
신지기인과 당지연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진우명의 표정을 또한 사마연이 살피고 있었고….
당지연이 시선을 다시 신지기인에게 맞추고선 조심스레 말했다.
"명백한 증거를 내미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저로서는 믿지 않을 겁니다,
기인 어르신. 왜냐면 저는 이미 제
나름으로 진 공자를 알아 온 게 있으니까요.
만약 진 공자가 그러했노라고 얘기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증거로 제 믿음이 깨지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증거가 있어도 그러하다는데 증거조차 없으면 오죽하겠소?
그러니까 그런 것이오!!"
신지기인이 사마연이 놓아 준 찻잔을 들어 맛있다는 듯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그럼 범인은 아시는데 증거가 없으신 거군요?
하지만 신지기인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데
천하의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요?
기인의 말씀이라면 모두 다 믿을 텐데요…."
사마연의 말에 찻잔을 든 채 신지기인이 빙긋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선 방금 당지연 낭자의 얘기를 듣지 않으셨나 보군요."
사마연이 당지연을, 그리고 진우명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건 진우명 공자를 예로 들었기에 그런 것이고,
실제로 기인께서 그리 판단하시는
이유와 함께 범인을 지목하시면 어느 누가 믿지 않을까요?"
"진실이 늘상 진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더욱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진행된 일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란 더더욱 어렵고요.
왜냐면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이미 준비하고
그 일은 시작됐으니까 말입니다.
사람이란 진실 그 자체보다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 믿는데…
더욱이 이해관계(利害關係)가 얽혔을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진실처럼 보이는 법인데…
아무리 이 신지라한들 무리(無理)인 것이지요."
"사마 맹주께서는 어떠실까요?"
불쑥 진우명이 입을 열어 물어왔다.
"기인께서 범인을 지목하셨을 때,
그것이 각본에 의해서 전혀 진실 같지 않아 보일 때,
그때 맹주께서는 어떠실까요? 믿지 않으실까요?"
신지기인이 진우명을 쳐다봤다.
왜 그가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따뜻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믿으시지.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시겠지.
그러나 그 믿음은 맹주님과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믿음이기에 더욱 큰 불신(不信)을 낳게 되지.
그들이 그일을 실행에 옮겼을 때는
이미 그런 경우에 대한 준비도 다 끝냈기 때문에 말일세."
진우명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인 어르신의 뜻을 알겠습니다.
알아도 몰라야 되는 그런 경우로군요!"
신지기인이 다시 한 번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겠단 말이지?"
진우명이 대답했다.
"네, 어른신의 뜻, 잘 알겠습니다.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신지기인이 사마연을 쳐다봤다.
그녀가 태어날 무렵부터 보아 온 신지기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사마연은 딸 같기도 했고, 손녀 같기도 했다.
그 사마연이 이렇게 찻잔을 받쳐 들고 자신의 방에 온 이유도,
그녀의 시선이 자주 자주 진우명에게 가 닿는 것도,
왜 그녀의 얼굴에 수심(愁心)이 가득한지도 신지기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잘 알고 있는만치 마음이 아팠다.
"근데, 요즘 왜 대사형이 안 보이는 거죠?
맹우림 사형도 안보이고요."
사마연이 화제(話題)를 돌리듯 말했다.
정말 그렇다는 듯 진우명도 끄덕이며 신지기인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