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적의 인생론과 서정적 진실의 탐색
--황경연 시집 『틈새에 피는 꽃』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삶의 고뇌와 인생의 지향점
우리 인간들은 탄생된 소중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으로 삶과 인생, 그리고 생사에 대한 다양한 사유(思惟)와 동시에 생활 현장에서 현실적인 고락(苦樂)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인생 지향점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그 삶에서 어차피 겪게 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정적인 체험을 유발하고 거기에서 우리 시인들은 자신만의 특유한 이미지를 창출하게 되는 정신적인 시적인 발성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여기 황경연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틈새에 피는 꽃』을 일별하면서 먼저 이러한 상념에 젖는 것은 그가 다채롭게 구상하고 분출하는 시법에서 그 소재나 주제가 대체로 보편적인 삶의 일상성에서 상황을 설정하고 우리들에게 보여주거나(showing) 들려주는(telling)시적인 전개가 평범하면서도 무엇인가 인생론적인 주제를 가미(加味)하고 있다는 그의 시정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경험”이라는 말로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의구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경연 시인도 이와 같이 자신의 순정적인 삶에서 도출된 체험들이 여과(濾過)된 정신적인 지향점이 바로 어쩔 수 없이 긍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자신의 언어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하며
억지 꿈이라도 만들어 놓고
그 얼마나 많은 다짐들을 했었나요
또 한해가 시작되고
쉰여덟 번째 봄이
흘러가고 있지만
소소한 다짐도 않기로 해요
비장한 다짐을 한 발걸음이
이젠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잖아요
얼었던 강이 녹고
새순이 돋아 잎을 피워도
그저 바라만 보아요
다만 더 자주 바라봐주고
그윽이 미소 짓는다면
다가올 세월이
그다지 모질지만은 않을 거예요
-- 「그냥 살기로 해요」 전문
황경연 시인은 우선 순박한 사유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살기를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도입한 제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살기로 해요”라는 일상적인 그의 사유가 그동안의 고행이나 불합리들의 요소들은 모두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긍정적인 심적으로 지향하는 체념 혹은 자적(自適)하는 안온한 심리적인 평온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적인 상황 절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하며/ 억지 꿈이라도 만들어 놓고/ 그 얼마나 많은 다짐들을 했었나요”라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그의 삶에서 유추할 있는 그동안의 난관이나 고초(苦楚)를 초월하여 이제는 “쉰여덟 번째 봄이/ 흘러가고 있지만/ 소소한 다짐도 않기로” 했다는 그의 소신(所信)은 확고하게 그의 내면 의식을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인식에는 그가 삶의 행로에서 비장한 다짐으로 일관(一貫)했다면 이제 와서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세상 만물의 변화에고 “그저 바라만 보”겠다는 안온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 대한 인생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상처받은 수많은 날이
꽃잎으로 피어났습니다
사실
하루하루가 생채기로 얼룩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보면
가슴속 흉터 하나 숨기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감내했던 조롱과 비웃음은
성숙한 인격의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됩니다
흉터는
언젠가는 피어날
고운 꽃잎입니다
--「흉터」 중에서
황경연 시인의 뇌리에는 지난날의 고뇌에 대한 참회의 시정신을 강렬하게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은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고통과 비애를 던져주고 있으나 그는 이를 우리들의 삶에서 생채기와 가슴속 흉터 그리고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감내했던 조롱과 비웃음은/ 성숙한 인격의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된다는 고차원의 지적(知的)인 정신세계를 탐색하고 있어서 그는 결론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날이/ 꽃잎으로 피어났”다는 어조로 절망의 삶을 희망으로 전하하는 그의 시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 역경의 빛깔과 시련의 향기로
피고 지고 이렇게 또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더 아름다워지지 않아도
더 향기로워지지 않아도
억겁의 풍파를 품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다
--「지지 않는 꽃」 중에서
한편 그는 이처럼 “지지 않는 꽃”에서 그가 삶의 역경을 비유적인 시법으로 형상화하는 어조는 남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역경의 빛깔과 시련”이 한 송이의 향기로 피어나서 우리들에게 더욱 풍족하고 유복한 환경을 염원하지 않아도 “억겁의 풍파를 품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남는다는 그의 숭고한 인생관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작품 「구량리에서-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도 산까치의 까시락진 울음소리와 물잠자리의 눈부신 날개짓과 까매지는 자갈돌의 반짝거림 그리고 왜거리의 고고함을 그가 “메마른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때” 그의 고향 “구량리 강가에서 보았느냐”고 자문(自問)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어서 그의 삶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2. 고뇌의 성찰과 간절한 기원
황경연 시인은 다시 그의 인생 여정에서 삶에 대한 애착으로 설정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고뇌와 아픔 등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내면 깊숙이 간직한 소망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경향을 목도(目睹)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여망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며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지향성을 적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의식은 이미 <시인의 말>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시를 쓰는 것이나 /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는 일이다/ 폭풍우 속을 걸어온 지난날들을/ 이제는 다 털어내려 한다/ 흔들림 없는 가을 들꽃처럼 / 환하게 웃으며 / 저 들판에 서고 싶다”라고 천명(闡明)한 바와 같이 그가 그의 여망이나 소망은 모두가 자성(自省)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서 투영하고 싶은 간절함은 그의 깊은 삶의 중심을 표명(表明)한 것이다.
골목길 틈새에
제비꽃이 피었다
햇볕은 언제나
잘 정돈된 정원의 목련나무만을 쪼여
크고 환한 꽃등을 밝히지만
별이나 달도 내려오지 않는
그 틈새에도
꽃은 핀다
간절한 소망은 어디서나
꽃으로 피리니
아픔을 삼키고
질기게 뿌리내려
조그만 등불 하나 밝힌
고귀한 꽃 한 송이
-- 「틈새에 피는 꽃」 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그의 중심 사유의 시적인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틈새에 피는 꽃”이 적시하는 상징이나 비유는 그가 평소에 간직했던 순화된 사유의 일단을 골목길 틈새에 핀 제비꽃의 아픔에서 자신을 투영하는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획득한 진실은 “간절한 소망은 어디서나/ 꽃으로 피리니”라는 어조에서 명징(明澄)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돌틈에서 어렵게 피어난 제비꽃의 모진 고통이나 고독한 삶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인내 등은 바로 이러한 소망을 통한 성찰의 염원이 발흥(發興)하여 그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하고자 하는 시법은 우리들을 공감의 영역으로 흡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우리 인간은 모두 어떤 발견의 항해(航海)의 도상에 있는 탐구자라는 말과 같이 황경연 시인도 어쩌면 “아픔을 삼키고/ 질기게 뿌리내려/ 조그만 등불 하나 밝힌/ 고귀한 꽃 한 송이”라는 어조와 같이 인생항해의 새로운 발견을 위한 탐구자가 아닌가 단정하기도 한다.
내 허리까지만 닿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싶다
높은 담장으로 감추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저 안에서나 밖에서나 훤히 보이는 마당에
호박넝쿨 실하게 키워 밥공기만한 애호박 걸어 놓고
아침마다 이슬 깨트리며 노래 부르는 나팔꽃도 올리고
꽈리 열매 단풍보다 더 곱게 익을 때까지 기대어 설
딱 그만큼의 높이로 서 있고 싶다
울 밖에도 봉숭아꽃 나란히 심어
오가는 이 함께 손톱에 꽃물 들이는
안과 밖이 따로 없는 그런
허리까지만 닿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살고 싶다
--「울타리」 전문
그의 기원 의식의 실체는 “울타리”라는 사물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매 연마다 “싶다”라는 접미사를 사용하여 그가 소원하는 모든 형태의 심신을 소망하고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 허리까지만 닿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싶다”는 시적 상황 도입에서부터 그가 전개하는 작품의 흐름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존재의 위치에서 분수에 걸맞게 적절한 정도의 자기를 정립하고 싶은 순정미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높은 담장으로 감추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는 위상에서 울타리에 산재한 현실적인 상황을 안온하게 수용하고 긍정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인생을 구혀하려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그의 소망은 울타리와 동행하는 호박넝쿨이나 나팔꽃, 꽈리 열매, 봉숭아꽃들과 함께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살고 싶은 순수성의 진실이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어서 그의 인생관을 다시 감응(感應)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황경연 시인은 자연 친화와 더불어 지신의 적요(寂寥)를 통한 인생적(혹은 시적) 이미지의 창출을 모색하면서 “태양은 아직 저리도 찬란한데/ 한 가닥 미련도 없이/ 송이째 툭 떨어지는/ 저 도도한 낙화// 내 마지막도 저와 같아라/ 내 무덤도 / 능소화 꽃무덤만 같아라(「능소화 지다」중에서)”라거나 “강 깊이 침잠된 내 아픔들도/ 무심한 소쩍새 소리 들으며/ 그곳에서 그렇게 편안해질 것입니다(「유월의 강가에서」중에서)”라는 등의 어조와 같이 그의 여망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범주에서 그동안의 고뇌와 번뇌를 상쇄(相殺)하려는 궁극적인 심려(心慮)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3.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향수
우리들은 누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면서 살아간다.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인생의 터전이며 삶의 근거지였다. 그 그리움이 멈춰선 곳에는 언제나 부모와 가족들이 존재한다. 일찍이 조지훈 시인은 어느 글에서 고향의 산천은 어떠한 명승지보다도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로 고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경연 시인도 영원한 불망(不忘)의 대상으로 남아서 그의 내면 심중에 남아있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복합적인 이미지로 생성하여 그의 사유에서 발흥하는 시법으로 형상화하는 정신적인 원류로 깊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향수에는 그가 탄생한 생명의 모태(母胎)인 어머니와 가족들 그리고 생장하면서 체험한 고향 산천의 풍광(風光)을 비롯해서 생활 현장에서 보고들은 풍습 등의 정감어린 생생한 현장의 실생활(real life)들이 세세하게 망라하는 이미지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경연 시인은 떠나온 고향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유년의 애틋한 감정의 이입(移入)이 그의 작품에서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도 그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향수의 여운이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백도 “고개들 들어 산위 높이 솟은 달을 보고 고개를 숙이면 문득 고향 생각이 떠오른다(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靜夜思)”라고 읊었듯이 고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그리움의 대상이다.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소리 있어 나가보니
휘영청 밝은 달에 걸친 구름만
두고 온 고향산천 그리며 노닐고 있네
아, 그 시절
동무들과 거닐던 솔밭길 비추이던
다정한 그달이 예까지 찾아와
텅 빈 가슴 채워 주네
애달프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가보니
창백한 달빛 아래 귀뚜라미만
두고 온 고향 개울물 소리 내며 울고 있네
아, 그 시절
그 애와 거닐던 코스모스길 비추이던
아련한 그달이 예까지 찾아와
그리운 맘 달래 주네
--「가을밤에」 전문
황경연 시인은 “가을밤”에 달빛의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소리” 들리면 그는 “휘영청 밝은 달에 걸친 구름만/ 두고 온 고향산천 그리며 노”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귀뚜라미의 “애달프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 시절의 고향 개울이 목소리 내면서 흐느끼고 있는 정경(情景)에서 그리움은 그의 온몸을 엄습(掩襲)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향의 휘영청 밝은 달에 걸친 구름과 동무들과 거닐던 솔밭과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개울물 소리 그리고 “그 애와 거닐던 코스모스길” 등의 추억이 아련하게 “그리운 맘을 달래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고향에서 왔다는/ 호박잎 쌈 반가워/ 강된장 한 숟가락 듬뿍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한 쌈을 쌉니다(「호박잎 쌈」중에서)”라거나 “늦은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는/ 멀고도 오래된 고향의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배차적 연가」중에서)” 또는 “아,/ 모진 세월 살아내고/ 근사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중년의 내가 돌아가 고단한 삶 뉘고 싶은/ 그 동네 구랑리(「그 동네 구량리 2」중에서)”라는 어조로 고향에 대한 회억(回憶)은 더욱 시상(詩想)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고단한 보자기 속엔
보리쌀 한 됫 박과
쩐내 나는 고등어 한 손뿐
앞서가는 엄마 뒤
고개를 외로 꼬고
둔디미* 고갯마루 벌겋게 핀 참꽃만
애꿎게 툭툭 치며 걷는 걸음
소쩍새 울음소리
타박타박 따라오고 있었다
--「구량리역 풍경」 중에서
황경연 시인은 경북 문경 마성면 구량리가 고향이다. 구량리역을 중심으로 그의 고향에 대한 애환이 지금도 질펀하게 상기(想起)되면서 시적인 테마(주제-thema)로 등장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엄마의 고단한 보자기 속”에서 당시의 농촌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그 시대의 어려움이 지금은 그의 시적인 상황으로 변해서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고난의 생활상이 “보리쌀 한 됫 박과/ 쩐내 나는 고등어 한 손”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향수는 “엄마”를 주체(主體)로 해서 더욱 심화(深化)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엄마뿐만 아니라, 오빠와 언니 그리고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정한(情恨)의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어서 그의 의식의 흐름은 작품을 통해서 만감(萬感)의 교차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심저(心底)에 충만한 언어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
- 감꽃 피는 초여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새로 개발하는 광업소 일 나가시고/ 엄마는 기차 타고 점촌장으로/ 언니조차 4H 클럽 교육받으러 간 날/ 따가운 햇볕이 감나무 잎을 찰랑거 리게 해도/ 마당 가득 허기가 켜켜로 쌓였습니다(「감꽃」중에서)
- 배가 부른 까까머리 아부지는 / 감꽃 목걸이 정성스레 만들어/ 단발머리 엄마에게/ 수줍게 걸어 주었습니다(「감꽃 2」중에서)
- 터지는 울음 참으려 올려 본 하늘/ 희미하게 떠오른 반달엔/ 움푹한 엄마 얼굴로 가득했다 (「공순이의 꿈」중에서)
<오빠>
- 내 평생의 파수꾼이 되어 준 오빠야/ 다음 어느 생에는 / 내가 누나가 되어 지켜 주고픈/ 언제나 그리운 나의 오빠야/ 참 고마운 오빠야(「오빠야」중에서)
-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위대한 탐험 길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내 마음속 영원한 영웅인 오빠 손 꼭 잡고 / 돌아오는 산길이 다정하게만 느껴지던/ 유년의 어느 날이었다 (「용감한 소년」중에서)
<언니>
- 장닭의 벼슬 닮은 고고한 꽃잎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언니 얼굴이 떠올라요/ 온갖 풍파 이겨내고 이제는/ 보살님 미소 짓는 / 울 언니가 그리워져요(「울언니」중에서)
<아버지>
-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누에가 뽕을 갉아 먹던 소리/ 아버지 꿈을 키우던 소리(「불 효」중에서)
-아버지는/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극락이나 천상에 가지 않고/ 여러 번 나비로 다시 태어나/ 내 가는 곳마다/ 함께 살았다 (「어떤 윤회」중에서)
4. 자연서정과 시간성의 향연
황경연 시인은 지금까지 삶에서 추적(追跡)하거나 회상된 체험에서 획득한 이미지들에서 다시 외적(外的)인 자연 세계로 시선을 넓히고 있다. 그는 잡다한 일상적인 생활 범주에서 벗어나 “언제부터였을까// 저 꽃집의 화려한 장미보다/ 개천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애기똥풀이/ 더 예쁘게 느껴지기 시작한 때는(「때」 전문)”이라는 자연 서정에 몰입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만유(萬有)의 자연계에서 생성하는 복합적인 양상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없이 지천으로 산재한 자연에 대하여 시각적으로 흡인한 사물에게 자신의 안온한 서정성이 화합하고 화해하면서 자연 친화와의 안정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응시하는 대상 사물에는 산과 강 그리고 꽃들과 함께 구름과 달, 일몰 등 그의 시선이 멈추는 많은 사물에서 자신의 정서와 사유의 지향점이 동시에 발현하는 서정시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는 완연한 서정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정립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해질 무렵
남한강변 물안개공원
아치형 구름다리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다리 아래로 느리게 흐르는 세월이나
그 세월이 피워내는 연꽃향 맡으며
꽃향기보다 먼 기억들의 파편들을 바라본다
진실로 다정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연꽃 송이로 하나둘 피어오를 때
저 멀리 예봉산 태울 듯한 노을은
황홀한 일몰을 준비하고
물소리보다 잔잔하게 모두가
노을 속으로 혼연히 사라지는
아, 찬란한 순간이어라
--「황홀한 일몰」 전문
황경연 시인은 우선 “해질 무렵/ 남한강변 물안개공원”에서 바라본 “황홀한 일몰”에서 그의 고양된 정신(poetry)이 자의식으로 서정적인 사유가 발현되고 있다. 그는 이처럼 시정신에서 미적(美的)인 개념뿐만 아니라 진실에 감응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황홀한 일몰을 보고 있으면서도 다시 “다리 아래로 느리게 흐르는 세월”을 감지하고 그 세월이 피워낸 연꽃향을 맡으며 먼 기억의 파편을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노을과 연꽃 그리고 세월의 대칭적인 이미지의 합일(合一)은 어쩌면 형이상적(形而上的)인 고차원의 시법을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해질 무렵”과 “찬란한 순간”이라는 시간성에서 그는 어떤 상상에 잠겼을까. 일몰의 이미지나 상징은 사라지는 하루의 끝인데 여기에 황홀하다는 형용사를 덧붙임으로써 인생의 피날레(finale)의 장엄한 순간을 그는 염원하고 있다는 심적인 유동(流動)을 짐작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초가을 저물 무렵
삼태기산 꿀밤나무 아래에 앉아보렴
어깨 위 무거운 짐 내려놓고
그저 편한 다리쉼을 하다가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칡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산 아래 논배미에 익어가는
구수한 나락 내음도 배부르게 마셔보렴
지난 일을 후회하지도 말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홀한 노을빛 바라보며
푸르른 귀뚜라미 노래에 장단 맞추어
잊었던 연가 소리 내어 불러보렴
--「쉬어가기」 중에서
여기에서도 “초가을 저물 무렵”이라는 시간성에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는 “달콤한 칡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산 아래 논배미에 익어가는/ 구수한 나락 내음도 배부르게 마셔보”거나 “황홀한 노을빛 바라보며/ 푸르른 귀뚜라미 노래에 장단 맞추어/ 잊었던 연가 소리 내어 불러보”라고 권하면서 “쉬어가기”를 청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친자연적인 사유에서 동화(同化-assimilation)하는 “저물 무렵”이나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빛 등의 이미지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 생에 대한 자성(自省)과 함께 쉬어가면서 정리하는 그의 심리적인 일단을 엿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서정은 얼마니 아름답게 들리는가. “달콤한 칡꽃 향기”나 “푸르른 귀뚜라미 노래” 등의 언어적인 묘미(妙味)는 “그대 고단한 마음/ 저 환한 달에 걸린 구름처럼/ 안온해질지니”라는 이 작품의 결론과 같이 그가 인생행로를 서행(徐行)하라는 메시지를 명민(明敏)하게 적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황경연 시인은 이 밖에 자연 사물 중에서도 야생화에 대해서 많은 서정적인 이미지 투영하는 시법 전개를 읽을 수 있는데 작품 「달맞이꽃」 「구절초」 「패랭이꽃」 「개망초」 「코스모스」 등등에서 그의 미감이 가미된 서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황경연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서 많은 고뇌와 번민을 타개하고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역경을 순화하는 시법에서는 자아의 인식과 성찰 그리고 기원 등의 상황들을 여과하면서 이제는 성숙한 자연 친화의 서정으로 돌아가는 인간애(humanism)로 귀결하는 시적(혹은 인간적) 진실을 탐구하는 인생관으로 정립하고 있어서 그의 안온한 의식의 흐름에 충만한 서정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