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朝鮮朝) 상신록 (相臣錄) 상신(相臣)은 조선(朝鮮) 시대 의정부(議政府)의 최고 관직(정1품)으로서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등 삼의정(三議政) 혹은 삼정승(三政丞)을 가리킨다.이들은 국가의 최고 의결권자로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국정(國政)을 총람했다. 또 이는 합의체였으므로 의정 중 어느 한 사람이 반대하여도 왕은 정책 결정에 구속을 받았는데, 따라서 상신은 인신(人臣)으로서 최고 지위요 영예로 일컬었다. 조선조 상신의 총수는 366명으로서 그 중 무과(武科) 출신이 7명, 음보(蔭補) 20명, 유일(遺逸) 5명을 제외한 334명은 모두 문과(文科) 출신이었다. 그런데 문반 우위(文班優位)의 조선에서 무과 출신으로 상신의 반열에 오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그 무과 출신으로 상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겨우 7명뿐이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영의정은 신경진(申景禛:平山申氏=平城府院君.仁朝廟庭 配享). 박원종(朴元宗:順天朴氏=중종반정 공신), 좌의정은 최윤덕(崔潤德:通川崔氏=세종조), 홍달손(洪達孫:南陽洪氏=세조조), 구인후(具仁垕:綾城具氏=인조반정 공신), 우의정은 조영무(趙英茂:漢陽趙氏=개국공신)와 이완(李浣:慶州李氏=현종조)이었다. 특히 사림(士林)의 거물급 인물은 유일(遺逸)이라 하여 크게 세간의 존경을 받았는데, 조선 역대 상신(정승) 중에서 유일로서 오른 인물은 송시열(宋時烈), 허목(許穆), 박세채(朴世采), 윤증(尹拯), 권상하(權相夏) 등 5명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허목'은 63세에 처음으로 지평(持平;정5품)이 되어 80세에 우의정이 됨으로서 늦벼슬의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음보(蔭補)는 문벌(門閥) 높은 가문의 훌륭한 선조(先祖)의 음덕(蔭德)으로서 벼슬에 나가는 것인데, 높은 관직자나 명신(名臣), 공신(功臣), 유현(儒賢), 전망자(戰亡者), 청백리(淸白吏) 등의 자손이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되는 제도를 말한다. 또 천거(薦擧)는 사림(士林) 중에서 학행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재야 인사를 현직 고관이나 지방관의 추천으로 벼슬에 발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음보와 천거를 아울러 음사(蔭士) 또는 음직(蔭職)이라 일컬었다. 음보로 상신이 된 사람은 배극렴(裵克廉), 김사형(金士衡), 심덕부(沈德符), 이거이(李居易), 이무(李茂), 유정현(柳廷顯), 심온(沈溫), 노한(盧閈), 남지(南智), 한확(韓確), 한명회(韓明澮), 황수신(黃守身), 심회(沈澮), 강순(康純), 한백륜(韓伯倫), 성봉조(成奉祖), 윤사흔(尹士昕), 한치형(韓致亨), 신수근(愼守勤), 원두표(元斗杓) 등이었다. 위처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상신의 배출은 어느 씨족 종중이나 대단한 자랑이요 영예로 삼았으므로 이른바 한 집안에 3대 정승, 부자 정승, 형제 정승 등이 난 것 등을 자랑으로 일컬어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전해 오고 있다. 참고사항 (1) 문벌(門閥)을 자랑하는 이들이 언필칭(言必稱) 정승(政丞)을 지낸 선조를 손꼽으면서 3대 정승, 부자 정승, 형제 정승 등등을 일컫지만 씨족들 가운데에서 정승의 배출로 아주 특출한 집안이 동래정씨(東萊鄭氏)였다. 우선 세조조(世祖朝)에 좌의정을 지낸 창손(昌孫)과 연산조에 좌의정을 지낸 괄(佸)이 부자간이었다. 이후 중종조 기묘사화(己卯士禍)에서 신진사림파(新進士林派)를 구하고자 크게 힘쓴 명신(名臣) 영의정 광필(光弼)이 있었는데, 그 손자 임당(林塘) 유길(惟吉)이 좌의정이었다. 유길(惟吉)의 독자(獨子) 창연(昌衍)이 또 좌의정을 지냈고, 광필(光弼)의 증손 지연(芝衍)이 우의정이었는데, 창연(昌衍)과는 재종간이었다.
창연(昌衍)의 손자인 영의정 태화(太和)와 좌의정 치화(致和)가 형제간인데, 창연(昌衍)의 다른 손자로 지화(知和)가 또 좌의정이었으니 태화(太和) 형제들과는 사촌간이었다. 그러므로 유길(惟吉)의 증손이며 창연(昌衍)의 손자는 나란히 3인이 정승(政丞)이었으므로 1가(一家) 삼정승(三政丞)이라 칭(稱)하였다.
다음 대에서 태화(太和)의 아들 재숭(載嵩)이 우의정이었으므로 광필(光弼) 이하 재숭(載嵩)까지 7세에 8정승이며, 유길(惟吉) 이하 재숭(載嵩)까지 5세(世)에 걸쳐 6정승이었다. 이후에도 유길(惟吉)의 6대손에서 좌의정 석오(錫五)가 났는데, 곧 치화(致和)의 증손이며, 7대손에서 우의정 홍순(弘淳), 8대손에서 영의정 존겸(存謙)이 났고, 9대손에서 영의정 원용(元容), 11대손에서 좌의정 범조(範朝)가 났으므로 결국 광필(光弼) 이하 13대에 걸쳐 13명의 정승, 유길(惟吉) 이하 11대에 걸쳐 11명의 정승이 난 셈이 된다. (2) 조선조에 3대 정승이 난 집안으로는 청송심씨(좌의정 덕부德符―영의정 온溫―영의정 회澮), 청풍김씨(우의정 구構-영의정 재로在魯-영의정 치인致仁), 달성서씨(영의정 종태宗泰―좌의정 명균命均―영의정 지수志修) 등 3 씨족이 있었다. (3) 부자(父子) 영상(領相)이 난 씨족으로는 청송심씨(온溫―회澮), 장수황씨(희喜―수신守身), 남양홍씨 토홍(土洪)의 '언필彦弼―섬暹', 해평윤씨의 '두수斗壽―방昉', 신안동김씨의 '수항壽恒―창집昌集', 연안김씨의 '익熤―재찬載瓚' 등이 있었다.
(4) 부자 정승으로는 (1), (2) 외에 동래정씨 영의정 창손(昌孫)-좌의정 괄(佸), 경주이씨 우의정 인손(仁孫)-영의정 극배(克培) 및 좌의정 극균(克均), 동래정씨 좌의정 유길(惟吉)-좌의정 창연(昌衍), 동래정씨 영의정 태화(太和)-재숭(載嵩), 풍양조씨(豊壤趙氏) 좌의정 문명(文明)―우의정 재호(載浩), 여흥민씨 좌의정 정중(鼎重)―우의정 진장(鎭長), 경주이씨 좌의정 태좌(台佐)-영의정 종성(宗城), 문화유씨 영의정 상운(尙運)-좌의정 봉휘(鳳輝), 안동김씨의 영의정 흥근興根-좌의정 병덕炳德' 등이 있었다.
(5) 형제 영의정은 신안동김씨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아들로 '수흥壽興…수항壽恒' 형제, 평산신씨 '만晩…회晦' 형제가 있었다.
(6) 형제 정승으로는 위 (4) 외에 경주이씨 영의정 극배(克培)-좌의정 극균(克均), 덕수이씨 좌의정 행(荇)-영의정 기(芑), 청송심씨 영의정 연원(連源)- 좌의정 통원(通源), 동래정씨 영의정 태화(太和)-좌의정 치화(致和), 여흥민씨 좌의정 희(熙)-우의정 암(黯), 파평윤씨 좌의정 지선(趾善)-우의정 지완(趾完), 전주이씨 좌의정 관명(觀命)-좌의정 건명(健命), 전주최씨 영의정 석정(錫鼎)- 좌의정 석항(錫恒), 청풍김씨 좌의정 약로(若魯)-좌의정 상로(尙魯), 풍양조씨 좌의정 문명(文命)과 영의정 현명(顯命). 연일정씨 우의정 우량(羽良)-좌의정 휘량(翬良), 풍산홍씨 영의정 봉한(鳳漢)-우의정 인한(麟漢), 안동김씨 좌의정 홍근(弘根)-영의정 흥근(興根)이 또한 형제였다.
(7) 세상에 전하는 말로 일가4정승(一家四政丞)이란 것도 있는데, 세조 때 공신이던 청주한씨 '영의정 명회(明澮)-좌의정 확(確)-우의정 백륜(伯倫)-영의정 치형(致亨)'이 10촌 이내 당내(堂內)였고, 풍양조씨 좌의정 문명(文命)과 우의정 재호(載浩)는 부자간이고, 영의정 현명(顯命)은 문명(文命)의 아우인데, 종조부 상우(相愚)는 우의정이었다.
(8) 위 외에도 '조손간(祖孫間)이 정승인 경우도 많았는데, 동래정씨 영의정 광필(光弼)-좌의정 유길(惟吉), 동래정씨 좌의정 창연(昌衍)-영의정 태화(太和) 및 좌의정 치화(致和) 형제 및 사촌 지화(知和), 전주이씨 영의정 경여(敬輿)와 좌의정 관명(觀命), 좌의정 건명(健命)형제는 조손의 사이이며, 이명(頤命)이 또한 관명(觀命) 형제와 사촌(四寸)이므로 경여(敬輿)와는 조손간이었다. 그밖에도 전주최씨 영의정 명길(鳴吉)-영의정 석정(錫鼎)과 좌의정 석항(錫恒) 형제, 덕수이씨 좌의정 집(土+集)-영의정 은(溵), 동래정씨 영의정 원용(元容)-좌의정 범조(範祖) 등이 조손의 사이였다.
(9) 상신이 많이 난 씨족의 주요 순위를 보면 전주이씨 22명, 동래정씨 17명, 신안동김씨 15명, 청송심씨 13명, 여흥민씨 12명, 청주한씨 12명, 파평윤씨 11명, 달성서씨 9명, 남양홍씨 당홍(唐洪), 연안이씨, 경주이씨, 풍산홍씨, 문화유씨, 청풍김씨, 양주조씨 등이 각 8명, 반남박씨, 풍양조씨, 평산신씨, 덕수이씨 각 7명, 경주김씨, 연안김씨, 의령남씨, 해평윤씨 등이 각 6명, 그 다음이 광산김씨, 진주강씨, 광주이씨, 창녕성씨, 연일정씨, 양천허씨 등이 각각 5명으로 상신 5명은 씨족별 순위로 보아 25위 이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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