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궁핍하고 비천한 70년대 농촌의 삶이라고 한들
부모님은 한 해 한 두 차례 관광을 떠나셨고, 거나하게 펼치는 잔치에 참석했다.
잔치는 복날 어르신들이 복다름을 할때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에 동 회관에서
펼쳐 졌고 관광은 보통 봄 가을에 이뤄졌는데 그 광경은 과히 보기 드물게
소란스럽고 분주한 게 지켜보는 이들도 설레게 했다.
그 광경의 일반적인 명칭은 봄엔 꽃 놀이, 가을엔 단풍 놀이라 일컫엇다.
보통 부녀회에서 주관하였는데 상포계가 주관하는데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문중 딸래들 모임에서 떠나기도 했다.
그런 날 아침이면 새벽부터 집집마다 노랗고 동그란 알미늄 찬합에
찰밥을 해서 담는다. 단체 음식으로는 삶은 돼지고기와 계란 여러 판에 몇 광주리나
뙤는 떡과 빛은 단술에 갖가지 반찬 그리고 두어 말의 탁배기와 소주 박스들이
관광 버스가 도착하는 동네 어귀 당나무 밑에는 착착 쌓아둔 모양이
흡사 이삿짐 같았다.
새벽같이 그렇게 떠난 동네는 다소 고요했고 그들이 돌아올
밤중 시간에 맞춰 미처 함께 떠나지 못한 사람과 젊은 축에 드는 일부는
농악대를 구성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잔 한잔 걸친 그들은 멀리 버스 불 빛이
어른 거리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걸친 술에 흥이 도쳐 북치고 장구치고
쾡과리 놀음과 징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스에 있던 어르신들도 이미 흥에 취하고 술해 취해 있는데다
귀환을 반기며 한바탕 울러대는 사물놀이에 여흥이 더 번져 동네 어귀는
일시 춤마당이 된다. 그렇게 한판 크게 놀고는 이제 동네로 들어서며
집집마다 흥을 불러들이고 액운을 쫒는 지신밟기 때처럼
밤 늦도록 꽃놀이의 흥취는 달빛과 별빛과 함께 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농촌의 유흥 문화지만
다가오는 오월에 문중에서 버스 두 대를 대절해서 어디론가 한번 떠난다고 하니
참석해 볼까 고민중이다. 고향에 남은 재종. 삼종 형님이 팔순에 육박하니 그분들이
안 계시면 가끔 열리던 문중 행사도 명맥을 다하겠지. 그 아래 세대인 재종질이나
삼종질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들은 타지에 터 잡고 살며 문중이라는
테두리에서는 벗어난 터이고, 그 문중 테두리의 마지막 세대인 나나 동류들이
그들을 끌어 모아 희미한 연줄이라도 이어갈만한 열정은 없다. 거기다가
격조했던 일가 친척에게 '내가 너희 아버지와는 몇 촌이니 자네와 나는 몇 촌간이 된다.
그러니 웃대 고조 할아버지는 같은 할아버지다.'라는 식의 설교가 꼰대 짓이고 또한
시대와 걸맞지 않는 면구함이 없지 않을 터다. 그래서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고
아쉽게 바라보면서도 딱히 붙잡을 생각은 없다.
아마도 사라져 가는 풍습중에 하나겠지.
어제는 그러한 떠들썩한 꽃놀이는 아니고
지역 관광회사에서 운용하는 꽃놀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백설기 한 뭉텅이와 생수 한 병을 주었다. 갓 해온 따뜻한 떡을 먹으며
예전 부모님들이 떠났던 꽃놀이 광경과 그 흥취가 잠시 떠올랐었다.
광양 매화 마을을 들러 구례 산수유 축제에 다녀왔다.
매화를 시작으로
유채가 곳곡에 만발할 것이고
이어서 벗꽃 축제가 곳곳에 펼쳐질 것이고
다음으로 참꽃과 철쭉이 온 강산을 분홍으로 물들이겠지.
궂이 큰 맘 먹고 찰밥을 싸고 각별한 찬을 준비해 떠나지 않아도
나서는 길이 꽃놀이가 될 터다. 하지만 나는 맨 밥에
양념 된장 한 줌을 들고 나서는 날을 되도록
자주 가지려 애써 볼 요량이다.
자연 속에서 먹는 밥이 어디 배를 채우는
요기에 불과하랴. 허기진 정신에 알찬 밀알이 되고
가난한 영혼의 자양분이 되어 푸석하게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할지도 모른다.
@더하기 빼기 열불터지기 전에 함 다녀오세요.^^
@스윗드림 돈도 시간도 없다.
다음 뱅기표 끊을 때 한 장 추가로 부탁하자.ㅋㅋ
@더하기 빼기 이번에 좀 꽁돈이 생겨서 갔는데 아마 또 갈거 같아요;;;; 열불 터지지 마세요ㅜ
@스윗드림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한 번 데리고 가는 걸 생각해봐.ㅋㅋ
@스윗드림 오~~ 일본 다녀왔구나
좋았겠다^^
@더하기 빼기 열터져 죽기전에 짐꾼이라도 하실래요? ㅋ
@벨라 응.언니 일정이 좀 빡빡했지만 패키지니까 .. 사람 구경도 잼나고 암튼 스트레스 확 풀리네
@스윗드림 달자야 고맙다~~ㅋㅋ
@스윗드림 잘했어 잘했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