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태껏 가위를 눌려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오늘 처음으로 가위를 눌려본 것 같습니다. 가위에 눌렸다고 확정을 지은 것도 아니고 "같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아직도 그게 진짜 가위인지 아니면 가위를 눌리는 꿈(???)인지 분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어머니께서 급한 일이 있으니 의료용품 도매상을 좀 찾아서 직접 거즈나 소독약을 살 수 있나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전화도 해보고 했는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국에서 사기로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제 침대에서 그대로 잠이 드셨고 전 하는 수 없이 어머니께서 주무시던 매트에서 잤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께서는 볼일을 보러 나가시고 전 그때 잠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지요.
얼마후 잠에서 어렴풋이 깼는데 인기척과 함께 후우후우 하는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비몽사몽이라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걸 어머니께서 아침에 늘 체조하시던 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체조하실 때 어머니께서는 그런 러닝머신 뛸때같은 숨소리는 안내십니다-.-
당시 제가 자던 위치에서 왼쪽에는 소파가 있고 오른쪽에는 텔레비전이 있는데 텔레비전의 꺼진 검은 화면으로 소파에서 뭔가 팔딱팔딱 뛰는 것이 보였습니다. "엄마야?"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안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일어나려고도 했지만 움직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순간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지요.
'이것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
가위란 것이 수면싸이클에서 근육과 신경이 분리되어 있을때 의식이 깨어나는 현상이란걸 알고있었기에 가위가 풀릴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방안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와 인기척은 가위에 눌리면 보인다는 귀신이었을까요?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별로 그런 생각도 안들고 그냥 기다리기만 했으니 막상 귀신을 못봐서 아쉬웠습니다.
그러다가 탁 깨어났는데 방안에는 저 혼자였습니다. 근데 느낌이 영 예상 밖이더군요. 제가 생각하기론 가위에 눌리면 좀 기다리면 서서히 깨어날거라 생각했는데 깨어나는건 순식간이었고 그것도 얕은 잠에서 탁 깨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깨어나고 보니 그 몸이 안움직이던게 도대체 진짜 가위였는지 그냥 꿈이었는지 구분이 안되더군요. 방안을 그대로 인식했다는 것과 들리던 숨소리와 인기척은 너무 리얼했지만 어차피 비몽사몽간의 기억이었고 해서 이게 아직도 진짜 가위에 눌린건지 아니면 그냥 꿈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진짜 가위였으면 제가 겪는 첫 가위겠군요.
대부분 들리는 이야기로는 가위에 눌리면 몸은 안움직이는데 귀신같은게 나타나서 엄청난 공포에 떨었다는 경험담이었는데 저는 약간 긴장만 되었을 뿐 그렇게 무섭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나름 분석을 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위현상을 잘 모르는 관계로 깨어났을때 몸이 안움직이면 당황하고 무서워하는데 그런 감정들이 귀신의 형체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근데 저는 이미 가위현상이 뭔지 알고있었으니 처음에 약간 당황한거 빼고는 무서워하지 않았고 따라서 귀신도 안나타났다는게 제 이론입니다. 제가 느꼈던 인기척을 체조하는 어머니라 생각했던 것도 원래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그 방에서 체조를 하시니 일상생활에서 겪는 것을 비몽사몽간에 꿈 비슷하게 꾼 것이겠지요. 생각해보니 만약 제가 가위현상을 잘 모르고 그당시 상황을 무서워했다면 그 인기척은 어머니가 아니라 귀신으로 변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가위 이야기는 했고 이번에는 산불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오후가 되니 유리문에서 비춰오는 햇빛이 붉으스름하게 되더군요. 혹시 옛날처럼 황사가 오나싶어 문을 여니 하늘이 약간 흐릿했습니다. 얼마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는데 산불이 났다고 하시더군요.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의 반 정도가 오렌지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관련뉴스는 여기...
원래 산불은 매년 행사처럼 찾아오기는 하지만 제가 봤던 산불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2001년 크리스마스 때 일어난 산불이었습니다. 당시 날씨는 쾌청했고 어머니와 저는 당시 한국에서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기다리시는 이모댁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선물을 주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데 한쪽 창문으로 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끼었더군요. 구름색깔이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저런 먹구름이라면 곧 비가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쪽으로 보이는 창문으로는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아무튼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지나도 그런 상태로 계속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켜니 뉴스에서 큰 산불이 났다고 말해주더군요. 제가 먹구름이라 생각했던 것은 바로 연기였던 것입니다.
집밖으로 나오니 하늘의 반은 "먹구름", 나머지 반은 쾌청한 하늘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현상이라 생각하며 오후가 되어 집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하늘에서 재가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해를 보는데 옅은 연기에 싸인 해가 오렌지빛으로 예쁘게 빝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로 찍었으면 싶었지만 카메라없는게 그리도 아쉬울 수가 없더군요.
어디 놀러갈데 없나 싶어 이모께서 무슨 원주민박물관에 전화를 하셨는데 산불로 타서 없어졌답니다-_-;;; 며칠이 지나며 연기는 서서히 사라졌지만 그주 일요일이 되자 집주변에서 타는 냄새와 함께 옅은 연기들이 나더군요. 아무튼 그것을 마지막으로 연기는 일단 사라졌습니다.
새해가 되자 이모께서 나우라에 별장을 빌려 삼주간 내려가 지내게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산불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검은 줄기와 누런 잎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별장에 가니 그 주변은 피해가 없는지 푸르렀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조깅을 나가서 좀 멀리에서 별장을 보니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별장 주변의 조금만 푸른 숲이고 그 주변은 온통 누렇더군요-.- 어떻게 별장주변 약간만 그렇게 안탔나 모르겠습니다.
불은 삼주만에 진화되었지만(비의 도움도 있었지요) 그 피해면적은 한반도의 몇배에 달했습니다. 나우라에서 지내는 동안 도로주변이고 어디고 나무들이 한결같이 모두 검은 줄기와 누런 잎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사람사는 바로 옆의 나무들이 저렇게 되었는데 막상 집들은 괜찮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산불의 규모가 좀 컸을뿐 산불은 거의 매년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숲들은 산불에 적응되도록 진화되었지요. 비록 줄기는 검게 타고 잎들은 누렇게 되었지만 죽는 나무는 얼마 없다고 합니다. 얼마뒤 검은 줄기에는 새로운 가지와 푸른 잎들이 돋아났고 일년안에 숲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제가 나우라의 별장에서 지낼때도 검게 탄 땅들에서는 고사리들이 자라나 무성했었습니다(여기 고사리 무지막지하게 큽니다-.- 그때는 난지 얼마 안되어서 그리 크진 않았지만 한국고사리들보다는 그래도 훨씬 큰 크기...). 동물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새벽이나 이른 저녁이면 캥거루와 웜뱃들이 저수지에 물을 마시러 나타났고 차타고 다니다보면 길가에서 캥거루나 월러비들을 심심찮게 목격했습니다(차에 치여 길가에 죽어있는 웜뱃도ㅜㅜ). 그놈의 지긋지긋한 파리떼만 아니라면 밖에 나가서 산책하며 돌아다니기 딱 좋은 곳인데 말입니다(어마어마한 수의 파리들 때문에 집밖에 마음대로 나가질 못해ㅠㅠ 나중에는 다 포기하고 얼굴에만 안붙으면 내버려뒀는데 꼭 얼굴에만 붙고ㅠㅠ 집안으로 들어올때면 반드시 몸을 털고 들어가야함ㅠㅠ).
아무튼 그 다음해 1월에 있었던 또 한차례의 큰 산불을 빼면(하늘의 반을 "먹구름"으로 덮었던 크리스마스때와는 달리 이건 하늘 한구석만 잠깐 덮고 말았음) 그뒤로는 그런 큰 규모의 산불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몇번씩 옅은 연기가 나기는 했지만 언젠가 한번 좀 멀리서 옅은 연기에 싸인채 저녁햇빛을 받고 있는 시티를 보니 건물들이 예쁘게 빛나던게 기억에 남는군요.
이상 오늘 겪은 일들에 대한 주저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첫댓글 불에 타도 죽지 않는 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네요~ 줄기는 죽었어도 뿌리는 살아있는 경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