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아내 / 김지명
아내는 보험회사 설계사로 근무하며 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객과 상담하고 보험 가입자들의 안내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언 계절 유난히도 길었던 이천십일 년 일월 어느 날 아침 아내는 출근하면서 신신부탁을 한다. 광고지를 많이 가져왔으니 제발 좀 많이 부쳐 달라고 하며 스티커와 광고지를 큰 봉투로 한 뭉치 내놓았다.
요즘은 전봇대에 광고를 부착하지 못하여 골목 게시판이나 망이 채워지지 않은 전주에 눈치껏 부쳐야 한다. 오늘도 아내를 뽑기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고 나의 직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해보려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영하 날씨가 이어지는 차가운 날 장갑을 벗고 작업을 해야 하는 섬세한 일이다. 양팔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놀림이 불편하였다. 그러나 주민자치센터 공공 근로자들의 눈에 띄면 모두 회수되니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다니면서 부쳐야 했다. 광고지는 사원모집 광고와 신상품 보험 가입광고지다. 요즘은 보험회사도 많고 보험회사 근무해본 사람도 아주 많아서 모집광고를 부쳐도 소득이 그의 없는 편이다. 광고지 부치러 다니는 일도 하도 잦아서 요령과 이력이 더해져 잘하고 있지만, 그 실적은 만분의 일 정도이다.
주말이 되어도 쉬지 않고 아내와 함께 다니면서 곳곳의 게시판마다 붙여 놓았다. 그 후 혼자서 며칠간 쉬지 않고 지역을 바꾸어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광고를 보고 사원으로 새 출발 하겠다는 중년 부인이 찾아왔다고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날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고마움을 남편에게 수고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부터 힘이 솟아나 발걸음도 가벼웠다. 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많이 하였으나 길면 이틀 정도 아니면 그날 바로 사라져 버린다. 광고지 눈여겨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뜯어버리는 폐지 수집자와 공공근로 노인들 보아도 말 한마디 못하는 가슴 아픈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산불방지 공익 요원으로 신청하였으나 승용차가 있다 하여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내의 심부름이라도 도와야 하겠다며 부지런히 뛰었다. 추위도 잊은 채 손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져도 신입사원 한 사람 구해보려고 온갖 방법으로 광고지를 전달하여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요즘 광고지 부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의심하는 말투였다. 아내는 한 사람만이라도 연락이 있으면 하고 기다리고 바라는데 한 명도 연락이 오질 않으니, 고기 없는 호수에 낚시하는 심정이다. 열심히 일한 보람도 없이 손은 어름 장처럼 차고 마음도 고드름처럼 축 처져 얼어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새로운 보험에 가입한다든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겠다는 연락만이라도 왔으면 일한 보람이라도 있을 것인데,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날 아내로부터 악몽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힘없이 축 처진 목소리로 천천히 말문을 연다. 이젠 강물속에 물고기 다 잡혀버렸는지 보이질 않고 새끼가 자라야 잡을 수 있는데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회사에서 일거리가 없어 사표를 쓰려고 생각 중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힘이 쭉 빠져 하던일 멈추고 집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놀고먹을 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다시 찾는 그날까지 어떻게 생활할까 하는 걱정으로 눈앞엔 이슬 같은 물방울이 어리기도 했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저녁 어둠을 헤치면서 힘없이 퇴근하는 안내는 양손에 무엇을 무겁게 들고온다. 얼른 받아들고 드려다 보니 라면과 시래기였다. 아내는 실업자 남편이라도 굶길 수는 없다면서 먹을거리를 가져왔다. 따뜻한 마음이 애쳐로워 눈물이 어리곤 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면서 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를 바라보다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내는 식사하자고 부른다. 식탁에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대화하여도 별다른 계획이 잡히질 않았다. 무능한 탓일까? 팔자에 없는 돈벌이 하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일자리가 잡히질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지렁이가 밟혀서니 죽기만 기다리지 말고 살기 위하여 발버둥 처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작정 갈 곳 찾아 헤매다가 폭포수처럼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태연하게 말한다. 살다 보면 좋은 날 돌아오겠지 하면서 무엇이든 시작해 보라고 하였다. 힘없이 출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자리 찾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장 부근에 노점을 하려고 둘러보아도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 뛰어들어야 하겠다고 용기를 백배하여 도매 시장에서 과일을 몇 상자 구매하여 이웃마을 시장 변두리에 남의 가게 앞에서 전을 폈다. 잠시 후 가겟집에서 나와 자리를 비켜달라고 밀고 당기고 씨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보고 있던 젊은 청년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한다. 좋은 자리 마련해 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하였다. 친근감을 보이는 청년을 따라가 자리를 받아 전을 펼쳤다. 온 종일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만 바라보아도 한 사람도 물건을 싸자는 사람이 없이 하루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마수도 못하고 있는데 자리를 안내했던 젊은 청년이 다가오더니 많이 팔았느냐 하면서 미소를 보이면서 자릿세를 요구하였다. 아직 마수도 못했다고 하였더니 그러세요? 하면서 자기가 팔아준다면서 과일을 한 봉지 담아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과일값은 자릿세로 빼겠다고 하면서 청년은 멀어져 갔다.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벼룩이 간을 뽑아먹는 악랄한 행동에 분통이 치솟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도로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리고 구청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보스의 명령에 움직이는 청년에겐 두려움에 억눌려 할 말도 못하고 멀어져가는 뒷모습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인생의 허무와 무상을 오늘같이 느낀 일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