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다의 특별하고 간절한 그리고 소박한 사연들,
시간 나실때 편안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기대와 가슴 속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
결승선 그녀에게 제 인생 배달갑니다
전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나태해지지 말자고 시작한 마라톤. 저에게 일년에 한번 있는 소풍같은 날이었습니다.
벌써 춘천 마라톤만 5번째 출전이지만, 이번 마라톤은 특별합니다.
이번 마라톤은 제 스스로 큰 약속을 안고 달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돈도 제대로 못벌면서 공부만하고 있는 저를 옆에서 응원해주는 그녀.
매번 마라톤 참가할 때마다, 결승선에서 기다려주던 그녀.
그래서 버스탈까, 포기할까 생각이 들어도 당당히 들어가는 모습 보여주고자 걷고 또 걸어서라도 완주했었는데.
이번 마라톤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녀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를 품고 42킬로를 뛰어 그녀에게 갈겁니다.
당당히 도착해서 그녀 손에 바지를 끼워주면서, 말할 겁니다.
"달려오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 비록 빠르게 달리지 못하고 걷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도 빠르게 달려가지는 못해도
너와 함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꺼야. " 라고 말이죠.
좋은 레스토랑도 좋은 선물도 할 수 없는 형편에 무뚝뚝한 프로포즈지만,
42킬로를 뛰는 동안 그녀만 생각하며 달려 온 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할 것 같네요.
아직 몇 년 남은 공부와 불확실한 미래에 걱정도 많겠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큰 힘이 되어준 그녀에게 결승선에서 제 인생 선물하고 싶네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그녀가 놀랄 생각하니 벌써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춘마를 아들과 함께 뛰고 싶다던 65세 아버지의 소원
저는 남들처럼 평범한 회사원이고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가장입니다.
마라톤에 처음 입문한 건 2005년 경기 마라톤(하프)에 참가를 하면서 였고 군대 시절에 같이 일하던 미군 원사가 달리는 걸 좋아해서 둘이 매일 달리면서 도전 의식이 가슴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나 봅니다. 제대 후 처음 하프 마라톤에 도전을 했고 그 후로도 꾸준히 하프를 마라톤 위주로 대회에 나가다가 2007년 하이서울 마라톤 대회에서 처음 풀코스를 도전했습니다. 5시간 4분으로 완주를 하긴 했지만 준비 없이 나갔던 대회라 오히려 마라톤에 대한 반감만 사고 그 뒤로는 인생에서 달리기 자체를 지워버렸습니다. 달리기는 잊어버리고 졸업과 취업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아버지께서 병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안구 쪽에 문제가 생겨서 한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로 가면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실의에 빠졌고 특히 아버지는 가장 힘들어 하셨습니다. 물론 성격상 내색은 안하셨지만 누구보다 힘드셨단는 걸 가족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마라톤 재미있냐고 물의셔서 그냥 몇년 전에 제가 느낀 것들을 그대로 말씀을 해 드렸습니다. 그 당시 60에 가까운 아버지가 마라톤을 시작하실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갔고 몇달 뒤에 어머니께서 니 아버지 말려야 하는 거 아니나며 심각하게 말씀하셔서 아버지랑 둘이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눈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련을 술이나 먹으면서 인생을 한탄하고 싶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내신게 마라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뛰는 동안은 가장으로서 힘든 것과 회사 걱정등 모든 것들을 잊고 땀 한방울 한방울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같이 하자고 계속 권유하였지만 전 그냥 회사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핑계를 되면서 멀리서 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꾸준한 연습으로 60이 넘는 나이에 영종대교 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를 완주하셨고 그 자신감으로 매년 동아 마라톤 대회 춘천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면서 노익장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통풍, 혈압, 당뇨등 잔병이 많으셨는데 지금은 65세의 나이에도 아프신 곳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모든 잔병이 마라톤을 하면서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저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올라왔지만 회사 생활과 잦은 술자리로 점점 살이 찌면서 제 자신에게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더욱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그러다가 문득 올해 1월에 평소 너랑 같이 완주 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지금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랐더니 20대 후반 85키로 정도였던 몸무게가 105키로로 늘어 있었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혐오스러울 만큼 보기 싫었습니다. 그 날 바로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매일 식단을 챙겨주고 같이 걷기부터 시작해 주었던 아내 덕분에 체중이 점점 줄었고 한달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달리기 연습에 본격적으로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평일에는 각자 연습량을 맞춰 가면서 운동을 했고 주말에는 함께 뛰었습니다. 아버지랑 처음 뛰던 그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랑 뛴다는 그 자체로 너무 행복했던것 같습니다. 꾸준히 연습량을 늘리면서 올해 4번의 하프를 완주를 하였고 분당마라톤 대회에서는 20대에서 기록하지 못했던 1시간 48분대로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습니다. 지금 저와 아버지는 10월 26일 풀코스완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연습하면서 힘도 들고 부상 걱정도 되지만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오늘도 운동화 끈을 매어 봅니다.
오늘도 대회를 위해 땀을 흘리는 모든 마라톤인들 화이팅입니다.
<말아톤>에 감동한 일본인 러너입니다
2014년도 춘천마라톤에 참가신청한 구보 에리카라고 합니다. 오사카에 사는 일본인입니다. 제가 한국의, 그것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뛰게 된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일본에서는 몇 년전부터 마라톤이 엄청난 인기입니다. 2015년 도쿄마라톤에는 3만5500명 모집에 30만5734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10대 1을 넘습니다.
저도 5년 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관서지방의 교토마라톤과 오사카마라톤은 물론이고 전국의 여러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오사카성 바로 앞에 살고 있는데 매주 목요일 오사카성을 세바퀴 돌아 15킬로씩 달리는 모임이 있습니다. 50명 가까운 사람이 즐겁게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봄 어느날 우리 모임에 한국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오사카성을 좋아해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혼자서 연습을 하다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모두 그를 통해 그 전까지는 몰랐던 한국의 역사, 음식, 한글을 알게 됐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NHK의 한국어 교실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그가 올해 한국으로 돌아갔고 춘천마라톤에 초대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영화 <말아톤>을 소개해주어 감동하며 보았는데 바로 그 영화의 배경인 춘천마라톤이라고 했습니다.
< 말아톤>은 드물게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입니다. 당시 저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달리기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동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저는 왜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국문화도 더욱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달에 저의 꿈이 이뤄집니다.
초원이의 눈물과 인생이 얼룩진 그 곳, 춘천에 갑니다. 아름다운 호수와 단풍, 강변이 있는 춘천을 마음껏 즐기며, 초원이처럼 행복한 얼굴로 완주하고 싶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세요 !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よし、いくぞー!
할아버지와 신발
"할아버지, 이 시장 근처에 X이키, X디다스 매장 없어요?"
가게 앞 매대에서 신발을 힐끔 쳐다보던 손님이 할아버지께
한 말이었습니다.
"요즘 이런 걸 누가 사 신기나 하나?"
외지에서 온 듯한 화려한 차림의 손님은 신기하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지나갔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강원도 화천군의 어느 시장 안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6.25 동란이 나던 해에
남으로 피난 오시면서 시작하신 장사니까, 할아버지의
신발가게는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시라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께서는 신발가게를 계속 운영하시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신발가게 장사로 4명의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자부심과 당신이 판매하시는 상품들은 양질의
제품이라는 일종의 장인정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고가의 브랜드 신발과 비교해봤을 때, 가격 대비
성능은 상대적으로 뒤쳐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장표"
신발은 아무래도 품질이 떨어진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가게에서 판매하는 신발이
신고 다니기 창피하여, 고가의 브랜드 신발을 사서 신고 다니
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제가 신고 온 고가의
브랜드 신발을 보시고는, "이런 건 우리집에도 있지 않느냐."
라고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할머니께 철없이 대꾸
하였지만, 그때 씁쓸해 하신 할머니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되신 할아버지를 도와 틈틈이
가게일을 도와드리고 있지만, 손자로써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 해드렸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 신발가게의 상품을 신고 풀코스를 완주
한다면, "시장표" 싸구려 신발이 아닌 가성비 높은 양질의
신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생전에 손자가 당신이 판매하는 신발을 신고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출사표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남은 기간을 철저히
준비하면서, 결전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풀코스 마라톤 첫번째 출전이지만, 단풍색으로 물든
산야를 가로지르는, 가을의 전설 대열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반세기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할아버지 신발가게 신발을 신고
당당하게 스타트 라인에 서겠습니다.
대회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 결전에 날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타고난 자신의 육체를 사랑한다
해와 달이 가고 10월이 오면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장에서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남은 어쩌면 너와 나 필연이 아닐까?
대한민국이 국가부도 위기를 겪는 1997년 知命(50세)을 막 지난 나는 사무실에서 답답하게 일만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고 후련하지 않아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한없이 뛰어보자 하고 시작한 달음박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거리를 만들어 2년을 더위와 혹독한 추위에 흘러내리던 땀이 모자 끝에서 길게 얼어 매달린 고드름은 뜀박질을 더 미치게 하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답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곧 죽을 것만 같은 생각에 온몸을 던져 홀로 하는 달음박질을 지천명으로 받아들였다. 그후부터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다는 마라톤대회가 있는 것을 알게되어 대중 앞에서 뛰기로 작심하고 그동안 쌓은 실력으로 1999년 3월21일 매년 봄에 열리는 1박2일 공인코스 경주대회 10km(00:51분)데뷔를 시작으로 10월 춘마대회를 목표로 연속되는 2박3일 전지훈련 여정은 10월3일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언덕이 심한 육지에서 열리는 제1회 통영마라톤대회 하프(1:44)에서 중위권의 기록을 달성하고 돌아와 당차게 10월24일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 하프(01:50)완주를 하였다.(이후 하프코스대회는 영원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체계적인 훈련으로 체력을 만들어 마라톤에 입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꾸준하게 연습을 하면서 이듬해 55세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 풀코스 도전자 5420명 (03:34:24) 708위를 하면서 현재까지 하프 1년,풀15년 연속16년 출전 인연이 지속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춘천운동장에서 출발를 하다가 2009년 새로 신축한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출발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곳 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춘천시 공지천을 출발해서 의암호를 일주 하는 42.195km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던 지난 시간과 과거의 일들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음미하다가 슬픔에 젖어 땀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가슴아픈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달려야했던 아련한 추억이 있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운동화를 벗지 않고 살다시피 달음박질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날을 생각하고 실버세대를 살면서 최고의 몸짱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 이제 완성단계에 있고 주변에서는 100점 만점에 110점이라는 평가를 해주니 마라톤으로 해서 얼마나 아름다운 몸을 만들었는지 알것같다.
영양 과잉이나 운동 부족 따위 때문에 불필요하게 덧붙은 살이 없이 온몸이 잔잔한 근육들로 다져진 몸이다.
나 스스로를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얻었을 때의 기쁨은 혼자만 느끼기에는 너무나 아까워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근육을 움직이는 동작을 느끼는 성취감, 그것은 마라톤을 즐기는 방식에 따라 판가름이 난 것이다. 멋진 몸은 신체의 면역력을 길러 질병을 예방함으로 앞으로도 섭생을 잘해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이다.
가을의 전설이 끝나면 七旬 을 맞는다. 남은 시간은 북망산천(죽어서 묻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으니 욕심없이 늘 겸손하게 살으려고 한다. 또한 나이를 잊고 마라토너를 넘어 알파인마라토너로 강인한 체력을 만들어서 건강한 신체가 뒷받침되어야 오래오래 내가 하고 싶은 취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살아 숨쉬고 뜀박질 할 수 있는 체력에 감사하며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세상 끝나는 날 까지' 가을의 전설은 함께 가야할 영원한 나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동안 춘천 의암호 일주 654.0225km 에는 원앙을 수놓은 이불를 깔고 베개를 베고 내 인생의 뜀박질 가락이 담겨있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의 앨범으로 장식되어있다.
앞으로 38일 후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서 어떻게 공연을 펼칠것인가? 젊어서 죽네사네 하면서 살아온 젊은 날의 한때가 그리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사무치게 하는 뜨거운 눈물을 또 흘릴지 모르겠다. 흐른다면 그 눈물은 감격이 되고 타고난 몸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또한 마라톤은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까지 챙기며 홀로 할 수 있는 놀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건강한 육체로 멋진 인생을 살다 가자!
가을의 전설에 행복한 워낭소리가 들린다.
작년에 처음 출전한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은 나에게 삶에 의미를 준 맑고 향기로운 워낭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추억이었다. 금년에도 새롭게 그 추억을 만들어 보련다.
벌써 겨울기운이 느껴지는 싸늘한 날씨다. 이만 오천여명의 사람들이 출발 선상에 길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듯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맨 앞은 엘리트 선수들로 티브이에 인기를 독차지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매만큼이나 기록과 연습량을 뽐내고 서 있다. 그다음은 A그룹, B그룹, C그룹 …… 나는 H그룹으로 기록이 없는 선수들 속에서 85kg이 넘는 육중한 몸으로 서 있다. 그중에서도 맨 뒷부분의 풍선에 ‘5:00 시간’이라고 새겨진 풍선을 든 길라잡이 뒤에서 몸을 풀면서 출발을 기다린다.
첫 출발 신호가 끝난 후 26분이 지나자 내가 속한 그룹이 출발한다. 가볍게 발을 내민다. 걷기보단 빠르고, 하프를 뛸 때처럼 숨이 가쁘지 않다. 상쾌하다. 골인 지점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길게 늘어진 떡가래처럼 차곡차곡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고 있다. 1킬로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7분이다. 몸을 가볍게 풀면서 걸음을 옮기다 보니 벌써 5킬로미터를 왔다. 34분 36초. 재미있다. 이렇게 10킬로를 지나자 의암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물가를 뛰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에는 단풍이 수줍게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다. 20킬로미터를 지나 반환점에 다다를 때까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상쾌하게 달리고 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목청껏 이야기한다.
“24킬로미터에서 28킬로미터까지가 가장 힘들어요. 이곳만 통과하면 쉽게 완주할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뒤따르는 마라톤 마니아들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 에-.”
정말 힘들어진다. 운동화 끈을 너무 세게 맺는지 발가락과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한다. 피가 통하지 않는다. 양말이 두 겹으로 겹쳐졌는지 왼쪽 발을 딛기가 힘들다. 잠시 동행하는 사람들을 이탈해서 신발을 벗는다. 양말은 멀쩡하다. 운동화 끈을 다시 맬 시간이 없다. 동행은 벌써 저 멀리 보인다. 힘차게 발걸음을 움직이지만 따라 붙기가 힘들다. 그냥 마니아들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5시간을 알려주는 풍선만 주시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인다. 무리를 이탈한 철새처럼 외로운 질주를 한다. 하필이면 가장 어렵다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뛰어야 한다. 멀리 댐, 수문들이 보인다. 그리고 곡선으로 이어진 길 위를 마라톤 마니아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뛰고 있다. 경사가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한 지점이다. 나는 성산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기분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발걸음을 한다. 아직은 힘이 비축되었는지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도 눈에 들어오고 산들산들 바람도 느껴진다. 어느새 수문 위를 뛰고 있다. 바람이 흘린 땀을 식혀주려는 듯이 얼굴과 목덜미 팔과 다리를 시원하게 가볍게 안마를 해준다.
‘와! 힘난다.’
벌써 30킬로미터를 뛰었다. 나는 3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자유발언대에 오늘이 생일인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한마디 말을 남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지만, 막상 그 지점을 지날 땐 기다랗게 늘어진 줄 앞에서 완주와 기록을 선택하게 된다.
‘인생은 이렇게 쫓기듯이 살다가 끝나나 보다. 정말 중요한 게 뭘까?’
급수대가 보인다. 음료를 마시고 다시 물을 마신다. 갈증이 조금은 없어진다. 배가 고프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 35킬로미터를 지났으니, 이젠 7킬로미터만 가면 되는데 5시간 안에 들어가려면 1시간이 넘게 남았다.
‘천천히 뛰어도 되겠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인 것 같다. 달리고 달려도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앞에 뛰는 사람들도 뛰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속도를 알 수 없다. 주위에는 걷는 사람과 쥐가 나서 다리를 풀고 있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다. 나는 강한 의지로 그리고 다시 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발을 가볍게 몸을 사뿐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37킬로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이젠 5킬로미터만 가면 골인이다. 힘내자!’
나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진동이 일고 있다. 고통의 순간 나의 깊은 내면에서 들리는 향기로운 소리가 입을 통해서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할 수 있어, 반드시 할 거야!’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워낭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행복의 소리로 아름답게 울린다. 나는 없었던 힘이 솟는다.
“달려라. 석윤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할 때 나에게 힘을 주니?”
“난 사실 항상 너와 함께 하고 있었어, 네가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너의 마음속 크기만큼 난 비례해서 존재해.”
“정말?”
“내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산과 이야기하면 메아리 되어 너의 소리를 듣듯이, 바로 너 자신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야.”
“…….”
“넌, 너 자신과 깊숙이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고, 너 자신의 기가 일치되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구나. 난 사실 많은 사람에게 너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내가 이야기해준 것도 다 들려주고 싶고.”
“네가 아무리 알려주려고 해도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해. 공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말이야.” “워낭아 39킬로미터 지점에 오니, 더 괴롭다. 이젠 멈춰야 할 것 같아.”
“석윤아, 넌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어! 골인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넌 뛸 수 있어! 내가 지켜봐 줄게! 항상!”
“그래, 고마워!”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마라톤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나는 달린다. 힘차게! 달린다. 내 곁에는 워낭이 있다. 워낭의 소리가 나에게 힘 솟게 한다.’
나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듯이 소리가 나온다. 아름다운 워낭소리가 나의 입으로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행복을 비는 이에게 워낭의 작은 울림이 메아리 되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길…….
나는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열심히 뛰었지만 5시간을 넘어 5시간 3분 56초로 결승점을 지난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 허무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목표했던 5시간을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런데 워낭은 나를 반겨주고 기뻐해 준다.
“석윤아 잘했어! 그까짓 5시간이 뭐가 중요해. 정말 잘했어! 축하해!”
“아니야, 목표했던 시간을 초과했어. 마지막 2킬로미터만 잘 뛰었어도 시간 안에 들어오는 건데…….”
긴 한숨을 내뱉는다.
“석윤아,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해. 넌 흔들림 없이 열심히 뛰었어.”
“워낭아 고맙다. 고마워!”
“난,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진 않아. 네가 나를 놓지 않는 한 너와 함께 항상 존재해. 네 영혼과 함께……, 난 사람들과 수 천 년 같이 해 왔듯이 앞으로 수 만 년 간 같이 할 거야. 너와 함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면서…….”
금년에도 생생히 들리는 맑고 향기로운 워낭소리를 많은 사람과 듣기위해 가을의 전설과 같이 할 것이다.
가을의 전설은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한 부분으로 아름답게 빛날....
첫댓글 저마다의 사연이 감동을 주네요. 나는 왜 달리는지 춘천에서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쌀쌀한 아침에 가심 따땃해지는 감동글...어제 몬한 훈련...멘탈훈련으로 대체~^^
자신만의 사연을 가슴에 담고 달린다면 백리길의 여정도 힘들지 않고 달릴수 있으리라는 느낌입니다. 춘마에 참가하는 횐님들 모두 멋진 스토리를 풀어가며 달리는 즐런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좋은글 올려주고, 그동안 화요훈련 이끌어준 멋진 조영호코치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글 올리셨네요. 마라톤은 스토리다 !! 다양한 분들의 사연 감명깁게 읽었습니다****울 조프로님은 춘천에 무슨 사연을 갖고 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