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지붕의 그 여자가 사는 집 개나리 울타리 숲속 교실에서 도강설이 솔솔 흘러나왔다 알알이 여문 들판을 휘저어 놓고 우르르 몰려와 수런대는 새떼들 이미 허수아비 기만한 죄로 수배 중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반가의 피붙이들인지 개나리 나뭇가지를 책장처럼 넘기며 가갸거겨 글공부에 물이 올랐다 포르릉 짹짹 하나 둘 셋 넷 날렵한 동작으로 몸풀기도 하면서 재재재 재재재 수다도 한창이다 온 천지 꽃 그림자 맑은 계절엔 새들도 감상문을 쓰는지 개나리 꽃가지에 올라앉아서 온몸으로 꽃의 무늬를 읽으며 쓰고 그리고 지우고 북새통이다 오선지 위에서 음표가 통통 뛰고 화선지 위에서 풀벌레가 기어가고 원고지 위에서 문장이 꿈틀댄다
새들의 기미를 엿보던 여자가 삼각대를 세우고 화구를 펼쳐 놓는다 새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여자의 손끝에서 낱낱이 기록될 것이다 그 여자 목하 증거 수집 중이다
-2022.월간 우리詩 11월호 P26
-시집 : 『맑게 씻은 별 하나』 『날마다 너에게 보낸다』 『나비가 되어 』 활동 : 현 <양주작가회의> 부회장,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